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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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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환자 60명의 ‘아름다운 마무리’

샘물호스피스병원 1박2일,

“슬픔 공유하는 사람 있어 외롭지 않아요”
등록 2018-08-21 09:17 수정 2020-05-02 19:29
샘물호스피스병원의 널찍한 공용공간 모습. 한 말기 간암 환자가 자원봉사자의 정성스런 발톱 손질을 받고 있다.

샘물호스피스병원의 널찍한 공용공간 모습. 한 말기 간암 환자가 자원봉사자의 정성스런 발톱 손질을 받고 있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땅 위에 떨어집니다.”

지난 8월15일 따가운 햇볕이 이글거리는 경기도 용인 샘물호스피스병원의 아침. ‘호스피스’란 평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연명의료 대신 인생길의 마지막 쉼을 제공하는 의료활동을 뜻한다. 하얀 벽에 붉은 진흙 기와를 올린 지중해풍 건물이 눈이 시리도록 반짝거린다. 잠시 남유럽의 휴양지인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병실마다 환자복 안에 감춰진 마른 꼬챙이 몸들이 느껴진다. 김소엽 시인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란 시가 한쪽 벽에 걸려 있다. 비로소, 이곳이 죽음과 관련된 곳임을 짐작하게 된다.

사회적·영적 고통 쓰다듬어주는 곳

오전 11시 매일 열리는 예배시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임아무개(56)씨가 딸(28)의 어깨에 손을 얹고 목청껏 소리를 내보려 하지만,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임씨는 이날 입원 일주일째를 맞았다. 원주희(66) 목사가 기타로 흥겹게 반주하면서, “오늘 하루가 남은 생의 가장 젊은 날”이라고 환우들의 힘을 북돋운다. “반 죽은 것처럼 살지 말고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살아봅시다.”

김아무개(49)씨는 찬송가를 신청하면서, “오늘 하루도 눈 뜨고 예배 드릴 수 있음을 감사한다”고 적었다. 그는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진다. 그럴 때면, 같은 병실을 쓰는 옆자리 환우가 그의 손을 끌어당겨 꼭 잡아준다.

원 목사는 “여기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했다. “죽음을 준비한다고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에요. 남은 날을 더 의미 있게 살고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야죠. 그럴 수 있도록, 우리가 몸의 통증과 사회적·영적 고통을 쓰다듬어줘요. 외로움의 짐을 내려놓고, 가족과 화해하고, 마지막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거죠.”

아직 40대인 김씨는 손거울을 자주 들여다본다. 새로 올라온 머리카락이 예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주말이면 충남 홍성 집에서 11살 아들이 찾아온다. “4년 전에 위암 진단받았어요. 이미 많이 진행됐죠. 그동안 항암 치료를 40~50차례나 받았어요. 빨리 죽기 싫으니까 뭐든지 다 했죠. 머리카락이 세 번 빠지고 세 번 다시 자란 거예요. 이젠 항암 치료 부작용 때문에 장이 막혔어요. 음식물이 내려가지 않아요.” 그는 “분비물을 빼내는 이 콧줄을 떼면 1시간 만에 죽는다”고 말했다. 그가 이 병원에 입원한 것은 7월31일. 항암 치료를 중단하고 “죽을 생각으로” 들어왔다. “대학병원에서 호스피스병원 가라 할 때는 정말 두려웠어요. 거기서 뜨면 죽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여기 온 뒤로 오히려 편안해졌어요. 이젠 희망이 생긴 것 같아요. 두 달 동안 살아 있으면 퇴원을 권유한다는데, 그때까지 숨이 안 끊어지면 어디로 가야 하나 벌써 걱정하게 돼요. 집에서 지낼 수는 없거든요.”

5분쯤 몇 마디 대화를 나눴을까, 김씨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윗배 통증을 호소한다. 병실을 지키던 요양보호사가 “아침에 콩국물을 조금 먹었다”고 귀띔했다. “아무것도 소화 못 시키는데…, 얼마나 먹고 싶겠어요.” 화장실을 다녀온 김씨는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다시 얼굴을 매만진다. 진통제 주사를 들고 온 간호사는 “아휴, 예쁜 얼굴” 하면서 김씨와 웃음을 나눈다.

‘오늘 하루만 잘 살자’는 마음
지중해풍으로 예쁘게 단장한 경기 용인의 샘물호스피스병원. 말기암 환자 60명이 따뜻한 돌봄을 받으며 마지막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지중해풍으로 예쁘게 단장한 경기 용인의 샘물호스피스병원. 말기암 환자 60명이 따뜻한 돌봄을 받으며 마지막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올 3월 간암 진단을 받은 임씨는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 이미 많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척추뼈로도 전이됐다. “처음엔 다 놓고 싶더라고요. 자포자기가 제일 쉽잖아요. 이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에요. 여기서 건강 회복해서 나가면 피를 맑게 하는 민간치료도 받고 싶어요.” 그는 “항암 치료 받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임씨 곁에는 회사에서 휴직한 딸이 늘 붙어 있다. “아빠, 요샌 하루하루 행복하지. 짜증낼 일도 없고, 어젯밤은 어땠어?” “잘 잤어.” 몇 달 사이 임씨의 몸무게는 67㎏에서 50㎏까지 떨어졌다.

그날 밤 부녀는 정다운 입씨름을 벌였다. 9월8일이면, 딸의 한 달 휴직 기간이 끝난다. 그때는 누가 임씨 병간호를 할 것인지,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엄마가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딸이 말하자, 임씨가 마뜩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젊은 사람이 계속 일을 해야지.” 그는 “딸아이가 이름 있는 가구회사에서 디자인을 한다”고 살짝 말해줬다.

임씨는 아흔 넘은 부모님한테 차마 자신의 말기 암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솔직히 두 자식보다 금실 좋은 부모님이 더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다 딸아이가 “아빠는 자기만 생각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셔야 할 것 아니냐”고 하자, “그래, 내가 이기적일지도 몰라” 하고 혼잣말을 했다.

혼자인 때가 가장 두렵다

그의 병실은 환자 셋이 같이 쓴다. “환자와 보호자들끼리 가족처럼 친해졌어요. 늘 웃고 떠들고 아웅다웅해요. 여기는 혼자가 아니라는 게 좋아요. 요양보호사도, 간호사도 다 식구예요. 통증 관리도 알아서 해주고요.” 바로 옆 병상의 송아무개(48)씨 아내는 “우리는 같은 슬픔을 공유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내일이 없잖아요. 그래서 곧바로 행동하게 돼요. 손을 잡아주고 싶으면 곧바로 잡아주고, 고맙다는 말도 곧장 하게 돼요. 그러지 않으면 후회하게 되거든요. 오늘 하루만 잘 살자, 그런 마음이에요.” 그때 복도에서 한 청년이 흐느끼듯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가실) 준비하라고 해요. 오늘 넘기기 힘들 것 같대요.”

샘물호스피스병원의 계광원 실장은 “환우들의 평균 입원 일수가 23~25일”이라고 한다. 입원한 환자의 절반 이상이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한다는 뜻이다. 두 달 이상 삶을 지키는 경우는 100명 중에 한 손가락을 꼽는다. 그러나 김씨와 임씨처럼 상당수 환자들은 오히려 ‘퇴원 이후’를 걱정한다. 계 실장은 “환우들은 혼자인 때가 가장 두렵다”며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말동무도 있으니, 하루하루 희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 오아무개씨는 “우리도 우울한 사람들 보면 힘이 드는데, 임씨 병실은 늘 밝고 웃음이 나온다. 시립요양병원에도 있어보고 다른 곳에서 봉사도 했지만, 환자들한테는 여기 환경이 참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샘물호스피스병원에서 일하는 여러 직원은 이 병원에서 가족을 떠나보낸 ‘기러기 가족’이다. 요양보호사 이순주(59)씨 부부는 2년 전 봄날에 스물여섯 아들과 영원히 이별했다. “아들은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1년 만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여기 들어와서 한 달 지낼 때 너무 좋아했어요. 그때 ‘병이 나으면 여기에서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했지요. 퇴원했다가 다시 나빠져서 재입원한 지 40일 만에 갔어요. 아들을 보내고 일곱 달 뒤부터 요양보호사를 시작했어요. 지금 일은 아들이 준 선물이지요. 남편도 하던 사업 그만두고 요양보호사가 됐어요. 여기서 같이 일해요.” 그는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기자에게 홍삼 음료수를 건네면서 밝게 웃었다. “아들이 너무 착했어요. 미치도록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아들을 나중에 다시 보려고, 오늘 하루를 살아요.”

샘물호스피스병원의 김재송 원장은 “큰 병원에서 항암 치료 받다가 임종 임박해서 여기로 오는 사람이 많다”면서 “마지막까지 무리하게 항암에 매달리기보다 조금 더 일찍 들어오면 통증 관리도 되고 따뜻한 분위기를 맛보면서 자기 삶을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호스피스병원을 잘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죽음의 흔적’ 남기지 않는다

샘물호스피스병원은 말기 암 판정을 받은 60명의 완화의료 환자를 돌본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호스피스 입원 병원이다.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 등 상근직원이 200명에 이른다. 병원 위쪽 1만m2(3천 평) 터에 ‘죽음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5천 명 규모의 특별한 자연 장지도 마련한다. 유골 묻은 위치를 표시하지 않고, 장소를 기억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다. 대신, 공동의 추모관을 만들어 떠난 이를 기리도록 한다. 9월부터 샘물호스피스병원에서 떠난 이들 중 희망자와 후원 교회에서 추천한 이들에게 무료로 장지를 제공할 계획이다.

용인=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26년 호스피스 외길 원주희 목사


“절망 안에서 희망 찾는 게 우리 일”


원주희(66·사진) 목사는 한국 호스피스 활동의 산증인이다. 국내에 호스피스 법제도 자체가 없던 1993년에 말기 암 환자를 돌보는 샘물호스피스병원 문을 처음 열었다. 그때부터 26년째, 죽음으로 가는 수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외길 인생을 살고 있다. 그 또한 지난해 위암 수술을 받았다.

여느 호스피스병원과 달리, 분위기가 어둡지 않다.
호스피스병원 하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떠올린다. 다른 호스피스병원에서는 통증 관리만 주로 한다. 샘물호스피스병원은 그렇지 않다.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살맛 나도록 도와준다.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사회적·영적 고통까지 관리하는 전인적 돌봄을 한다.
홀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 참 좋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절망한 분들이 여기로 온다. 절망 안에서 희망을 찾게 하는 것이 우리 일이다. 절망의 돌파구가 없다면 절망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절망 가운데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이 있으면, 남은 삶이 달라질 것이다.
병원 시설이 널찍하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상이 60개인데, 입원형으로는 국내에서 우리가 가장 크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그래서 여유 병상이 30개 더 있는데도 허가를 받지 못한다. 늘 입원 대기 중인 환자가 50~60명이다. 대기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분들도 있다. 복지부에서는 입원 호스피스보다는 가정 호스피스를 늘리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 하지만 통증이 심하거나 돌볼 사람이 없는 환자는, 입원 시설에서 수용해야 한다. 가정이든 입원 시설이든 한쪽으로 몰고 가기보다는,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선택지를 넓게 보장해야 하지 않겠나.
어떻게 호스피스를 시작하게 됐나.
군대에서 약사장교로 근무하면서 죽음의 두려움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그 뒤 질병의 고통이 약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42살에 목사 안수를 받고 샘물호스피스병원을 시작했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려면 죽음 이후의 소망을 가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됐고, 지금까지 이 길을 걷고 있다. 나는 행복한 목사다.

‘죽음 전도사’인 원 목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언장을 쓰고 고치고 다듬을 것을 권한다. 유언장 쓰는 것이,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면서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기는 길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이유는 죽음이 재촉될지 모른다는 잘못된 선입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 목사는 ‘아름다운 삶을 위한 유언장’에 신과의 관계, 가족·친구·이웃과의 관계, 소유물과의 관계, 일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내용을 꼭 담으라고 제안한다. 그는 2003년 펴낸 저서 에서 자신의 유언장을 소상하게 공개했다.
샘물 같은 호스피스병원에 입원하려면, 치료받던 병원에서 발급받은 말기 암 환자 소견서를 제출하고 상담해야 한다. 샘물은 입원 대기 기간이 약 1~2주다. 보험제도가 잘돼 있어, 한 달 입원비가 40만원 정도(환자 식사 포함 70만원)다. 샘물에서는 하루 세끼 보호자 식사도 무료로 준다. 보호자들이 지낼 휴식 공간도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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