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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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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개혁을 둘러싼 송영무 딜레마

기무사 의혹으로 국방개혁 암초 만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
등록 2018-07-17 08:09 수정 2020-05-02 19:28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전익수 공군 대령에게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수사할 특별 수사단장 임명장을 준 뒤 돌아서는 모습. 연합뉴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전익수 공군 대령에게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수사할 특별 수사단장 임명장을 준 뒤 돌아서는 모습. 연합뉴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더 이상 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러다 군 개혁은커녕 기무사도 못 바꾼다.”(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송 장관 개인으로 볼 때 충분히 예상됐던 상황이다. 송 장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제라도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이름 밝히기를 꺼린 군 출신 현 정부 인사)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7월11일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과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 의혹을 수사할 특별수사단 단장에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대령)을 임명했다. 전 단장은 8월10일까지 독립적으로 인력을 꾸려 수사한다. 송 장관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전 단장은 송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는다. 군내 사법 권력을 독점해온 국방부 장관이 지휘계통에서 배제된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오히려 송 장관은 지난 3월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에게서 계엄령 문건 작성을 보고받고도 묵살했다는 의혹으로 수사 대상이 될 처지에 놓였다. 군 개혁이 본궤도에 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장관의 발목을 잡은 계엄령 문건 작성 의혹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국방 개혁 주체가 수사 대상?

송 장관은 2017년 9월 국군 사이버사령부(사이버사)를 중심으로 군의 정치 개입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등 국방 개혁의 초석을 놓겠다는 뜻에서 ‘사이버사댓글사건 재조사 티에프(TF)’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정보수집국 폐지 등 국내 파트 대폭 축소를 이끌어낸 국가정보원에 견주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렇다 해도 9월에 이 티에프를 ‘국방 사이버댓글사건 조사 티에프’로 확대 개편하고 2010~2014년 사이버사 댓글 사건 재조사와 2008년 이후 기무사 정치 관여 의혹 수사를 진행하면서 군의 정치 개입 재발 방지라는 애초 개혁 목표를 향해 순항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송 장관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군 개혁이 좌초될 수 있다는 비관 섞인 전망이 나온 것은 취임 전부터다. 1970년대 군에서 비민주적 엘리트 교육을 받고 성장한 송 장관에게 군 기득권을 박탈하는 작업을 맡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이번에 계엄령 문건을 다룬 송 장관의 태도는 그의 이력에 비춰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영관급 한 인사는 “송 장관이 문건을 보고받고 수사 지시를 하지 않고, 제도 개선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평소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이제라도 군 개혁을 위해 교체하지 않으면 지난 시기처럼 군 개혁은 좌초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송 장관이 개혁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번 사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송 장관이 즉각 수사해 인적 청산을 하기보다 제도 개혁에 방점을 찍은 것은 군의 체질을 고려한 판단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국방부의 한 고위 공무원은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나 한민구 전 장관 모두 친위 쿠데타를 획책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 솔직히 그럴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윗선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송 장관이니 그들을 사법 처리하기보다는 근본 대안 마련 쪽을 고민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는 7월2일 기무사의 세월호 사찰 의혹을 수사하기도 전에 이례적으로 먼저 언론에 알린 사실만 봐도 기무사의 개혁 의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와 관련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7월12일 기자브리핑에서 계엄령 문건에 대해 “(송 장관이) 기무사 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이 문건도 같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대변인은 “사실관계에 회색지대 같은 부분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송 장관의 의도가 무엇이든 시민의 법감정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송영무의 회색지대

송 장관이 주도해온 군 개혁은 암초를 만났다. 계엄 문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계엄령 문건 논란의 중심에 송 장관의 거취가 아닌 기무사 개혁 이슈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 소장은 과 한 통화에서 “계엄 문건을 보면 지난 정부 시절 기무사가 육사 출신 육군을 앞세워 어떻게 친위 쿠데타를 획책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지금이야말로 송 장관을 중심으로 기무사 개혁을 위해 힘을 결집해야 할 때”라며 “군 개혁을 주도하는 송 장관이 흔들리면 기무사 개혁은 물 건너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의원도 ‘훅’에 출연해 “(송 장관이) 여전히 국방 개혁의 의지를 갖고 있고 이를 믿고 지켜보자”고 했다.

군 내부에서는 개혁의 고삐를 당기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기무사 개혁은 물 건너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 부대에 근무하는 한 현역 대령은 “지금도 기무사의 세월호 사찰이나 계엄령 문건에 대해 동료들끼리 이렇다 저렇다 편하게 말을 못한다. (현장 지휘관에 대한 기무사의) 동향 파악이 사실상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기무사는 누가 뭐래도 살아 있는 권력이다. 이전에도 기무사 개혁이 말만 나오다 좌초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기무사의 동향 파악과 보고는 이전 정부에서도 수차례 폐지한다고 공언하던 핵심 개혁 과제였다. 현재 기무사 개혁위원회는 동향 감시 대상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국방부가 기무사 1처를 해체해 관행적인 군 지휘관 동향 파악 업무를 폐지하고 신원조사 업무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내용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서 판은 크게 흔들렸다. 대통령의 특별수사 지시에 발맞춰 기무사 개혁 티에프는 활동 시한을 7월 중순에서 8월 초로 늘려 잡았다. 여권에서는 조직과 인원을 줄이고, 동향 대상을 줄이는 등 권한을 조정하는 수준에서 방첩 등 군 정보기관 본연의 기능만 남기고 대정부 전복(저지) 및 대테러·사이버 관련 기능 등을 국방부만 아니라 국정원·경찰까지 나눠 갖는 사실상 해체에 가까운 논의 수준으로 올라갔다.

“기무사 존속으로 인한 편익 없다”

강도 높은 개혁을 자유한국당 등 일부 야당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공감한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현재 4200명 규모의 조직을 방첩을 담당할 600명만 남겨서 합참의 한 부서로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사실상’ 해체가 아니라 ‘명확한’ 해체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위원장은 “기무사가 존립하는 한 정치적 중립은 영원히 기대할 수 없다. 그 임무 또한 대부분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임무”라며 “지금까지 저지른 범죄와 해악을 봐서도 존속으로 인한 편익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강조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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