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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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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초월하는 페미니즘을 위해

난민 혐오 대응 페이스북 페이지 개설한 페미니즘 연구자들

김보명 교수 “젠더 폭력 일삼는 악마는 제주 난민 아니다”
등록 2018-07-03 16:39 수정 2020-05-03 04:28

여성학 연구자인 김보명(사진) 인천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원은 6월27일 낮 인천대 교정에서 ‘페미니즘과 난민 혐오’를 주제로 인터뷰하는 내내 말을 고르고 거르느라 여러 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김 교수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제주도 예멘 난민 보호에 반대하는 주장에 동참한 이후 “혐오와 두려움을 넘어서는 페미니즘을 고민하기 위해” 여러 여성학 연구자들과 함께 페이스북 페이지 ‘경계없는 페미니즘’(www.facebook.com/@feminismwithoutborders)을 개설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의 이 현상을 오해나 왜곡 없이 설명할 언어를 찾는 일이 김 교수에게도 고민스러운 작업인 듯 느껴졌다. 2000년대 대학 내 성폭력 반대 활동으로 여성운동을 시작했고, 젊은 여성들이 젠더 폭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만 동의할 수는 없는” 복잡한 심경도 전해졌다.

이해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최근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제주도 예멘 난민 보호’에 대해 찬반을 물었다. 90% 가까운 학생이 난민 보호에 반대했다. 삶이 불안한 시대, 20대가 자신을 굉장히 취약하다고 느끼는 토대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좁은 자리에서 내가 발 뻗을 자리 하나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살얼음판이다. 그래서 내가 피해자고 내가 손해 보고 누군가 내 몫을 빼앗아간다고 느낀다.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하는 남성들은 여성에게서 원인을 찾고, 반대로 여성이 남성에게서 원인을 찾는 혐오의 시대라지만, 난민 문제를 놓고서도 젠더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남학생이 일자리와 치안·세금 문제를 다양하게 언급했지만, 여학생은 ‘공포’가 지배적이었다. 난민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성학 전문가로서 ‘페미니즘 이름으로 난민 보호에 반대하는 것’에는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느낀 계기가 됐다.

“많은 분이 난민에 의한 성폭력 공포가 ‘실재’한다고 얘기해요. 여성들이 공포를 느끼는 것은 맞고 거짓이 아니죠. 그런데 그 실재란 것은 무엇일까요? 실제로 무슬림 남성이 한국 여성을 강간하는 확률인가요? 한국 남성들이 성폭력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모든 한국 남성에게서 여성들이 극도의 공포를 느끼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왜 예멘인에 대해서는 모든 예멘 남성이 성폭력을 저지를 거라고 생각할까요? 우리가 예멘을, 예멘 남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예멘 남성한테 성폭력을 당할 것처럼 느끼는 공포를 ‘실재다, 아니다’라고 보기보다는 우리가 실재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어쩌면 환상일 수 있고, 환상이기 때문에 훨씬 강력하다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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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내가 느끼는 공포’와 ‘실재’ 사이의 비판적 거리두기를 설명하기 위해, 아직도 선연한 어린 시절 기억 하나를 예로 들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인신매매가 국민적 공포이던 때가 있었다. 거리에서 봉고차로 여성들을 납치해 유흥업소로 팔아넘긴다는 소식이 뉴스와 드라마에 도배됐다. 10대 소녀이던 김 교수에게 그 공포는 어마무시했다. 어느 저녁 피아노학원에 다녀오는 길, 봉고차 한 대가 나타나자 울면서 도망쳤다. 하지만 봉고차는 그냥 지나가는 차일 뿐이었다. 분명히 ‘나의 경험’이기는 한데 ‘내 안에서 나오는 경험’은 아닌 공포였다.

공포에 거리두기
지난 2월4일 독일 동부 콧부스에서 극우 시위대가 ‘충분히 많다’(Faxen Dicke) ‘국경을 닫아라’(Grenzen Dicht) 등 손팻말을 들고 반난민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 2월4일 독일 동부 콧부스에서 극우 시위대가 ‘충분히 많다’(Faxen Dicke) ‘국경을 닫아라’(Grenzen Dicht) 등 손팻말을 들고 반난민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봉고차 따위 무섭지 않다거나 인신매매가 괜찮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렇다고 모든 봉고차를 다 금지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이런 경험을 하는 이유는 뭘까, 왜 이런 공포를 느낄까, 비록 진정성 있는 공포이고 실제로 느껴지는 공포지만 ‘내 경험을 매개하는 사회적 힘’들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공포를 만들어내는 기제가 있는데, 그걸 살펴보자는 거죠.”

김 교수는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이 왜 ‘젠더 폭력’에 몰두하는지, 그것이 왜 ‘난민 혐오’로 이어지는지 배경에 주목했다. 페미니즘 연구자가 보기에, 젠더 폭력은 가장 대중적일 수밖에 없다. 젠더 폭력은 여성들이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20대는 노동이나 결혼 같은 경험보다 현실에서 자주 경험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게다가 자기 경험을 설명해주고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해주는 언어가 주는 위로가 분명히 있다.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이가 몇만 명 모이는 (혜화역) 시위 역시 위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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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페미니즘에는 다양한 언어가 있는데, 젊은 여성들을 가장 강력하게 끌어들이고 대중적 확산에 기여한 건 젠더 폭력”이며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모여서 찾은 자기 언어가 바로 젠더 폭력, 페미사이드(여성살해)”라고 설명했다. 멀쩡하게 화장실에 갔다가 살해당하는 무서운 현실에서 여성들이 선택한 언어(젠더 폭력)가 더해지면서 검증되지 않은 공포도 함께 증폭됐다. 이번엔 예멘 남성들을 향해 그 공포가 투사됐다는 분석이다. “무슬림 남성들이 강간하기도 하지요. 한국에도 미국에도 강간이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난민을 혐오하는 분들이 말하는 무슬림 남성, 짐승처럼 세상 모든 여성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악마 같은 남성이 정말 제주도에 있는 그 500여 명인가요? 공포가 투사됐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최근 여성이 많이 모이는 카페에서 유포되는 반무슬림 난민 글 속에는 ‘여성 할례’와 ‘조혼’ 등 무슬림 문화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자리잡고 있다. 전 지구적 가부장제 속에서 일어나는 젠더 폭력 중 하나다. 세상 어디를 가도 여성이 폭력과 억압의 대상이기 때문에, 지구촌 여성들은 자매애를 느낄 수 있고 공통적인 국제여성인권운동도 가능하다. 하지만 1980년대 여성 할례 논쟁, 1990년대 다문화 논쟁을 거치면서 여러 ‘의미의 결’을 고민할 지점이 생겨났다. (이슬람 여성이 얼굴을 가리는) 차도르와 히잡을 단순히 억압으로 비판했으나, 그것이 정체성의 표현일 수도 있고 오히려 여성을 ‘시선 폭력’에서 자유롭게 만들기도 하며, 나아가 여성을 성적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반론이 생겨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 교수는 먼저 ‘여성 할례’라는 말 자체가 서구의 관점에서 번역한 언어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할례를 문화상대주의로 이해하고 인정하자는 취지가 결코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이 보편화되기 전 ‘처녀 공출’이니 ‘성노예’니 하는 용어가 있었던 것처럼, 어떤 경험을 설명하는 중립적 언어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용어 자체가 화자의 시각을 반영하기 때문에 어떤 담론으로 경험을 이해하느냐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여성 할례라는 말이 서구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비롯됐다는 것부터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구적 관점이나 페미니즘의 언어로 여성 할례를 단순히 ‘여성 성기 훼손’으로 재현하면 안 되고, 당사자들의 경험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딸을 공동체 안에서 잘 살게 하기 위해 할례를 강요하는 어머니의 이야기, 이를 거부하는 딸의 이야기 등 당사자들의 언어를 들어보는 문화적 실천이 먼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 등과 ‘경계없는 페미니즘’을 함께 시작한 김선혜 여성학 연구자는 ‘여성 할례 문제를 여성주의적으로 고민한다는 것’에서, 한국에서 성행하는 소음순 성형과 질 성형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성 할례 등이 후진성과 열등함의 증거로 사용되어 해당 문화권 전체에 대한 타자화와 배척으로 연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페미니즘을 파고든 인종주의

사실 인종주의가 페미니즘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던 역사는 무슬림 혐오 이전 흑인 차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젠더 폭력과 인종주의, 그리고 페미니즘’에서 흑인 민권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계기를 마련한 사건 중 하나였던 에밋 틸 이야기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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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에 살던 흑인 소년 틸은 1955년 동네 식료품 가게에서 백인 소녀 캐럴라인 브라이언트 던햄에게 (아마도 성적 뉘앙스가 담긴) 말을 걸었다는 혐의로 백인 남성들에게 살해당했다. 틸의 훼손된 얼굴이 방송되면서 이는 흑인 민권운동의 불씨가 됐다. 던햄은 지난해 인터뷰에서 “틸이 나를 만지고 성적으로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는 고발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밝혔다. 백인 여성 던햄은 남부 인종주의가 얼마나 잔혹한지 몰랐을 것이며, 흑인 남성의 성적 공격성과 폭력성에 대한 공포를 내면화했을 것이다.

급진 페미니즘의 기념비적 서적인 에서 수전 브라운밀러는 이 사건을 성폭력 사례 중 하나로 언급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급진 페미니즘이 왜 흑인 여성에게 가장 거리두기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브라운밀러가 특별히 부족하거나 나쁜 페미니스트여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지배적 페미니즘의 맹점에 ‘인종 정치학’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왜 죽음보다 성폭력이 두려울까

김 교수는 젠더 폭력을 통해 페미니즘에 관심 갖게 된 많은 여성에게 혐오가 아닌 다른 페미니즘 언어가 있다는 점을 에둘러 전하고 싶어 했다. 여성이 젠더 폭력을 당하는 것도 맞고, 잠재적이면서 실제적인 피해자일 수도 있다. 다만 남성의 불법촬영 누드 사진을 올리거나 예멘 난민을 쫓아내는 방식으로 ‘나의 안전을 확보하는 느낌’을 갖지 않더라도 페미니즘을 무기로 여성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 역량을 키울 방법이 있다는 조언이자 격려였다.

아울러 전쟁 난민을 언급하면서 “전쟁에서 죽는 것보다 성폭력당하는 게 더 무섭다”고 표현되는 성적 공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성폭력은 당연히 두려운 일이지만 여성들이 왜 죽음보다 성폭력을 더 두려워하게 됐을까? 역설적으로 정조를 상실한 여성을 낙인찍는 가부장제 통념이 원인일 수 있다. 김 교수는 괜한 오해를 피하려고 성폭력의 트라우마를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다만 페미니즘 연구자로서 ‘강간당하느니 죽는 게 낫다’는 교묘한 통념을 넘어 성폭력 경험을 ‘극복할 수 있는 트라우마’로 재해석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심스럽게 위로이자 응원의 말을 전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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