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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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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피해 결정판 전남CBS 성폭력

꼬리 자르고, 조력자 징계하고, 화해 내세워 합의 종용…

법이 구제 못한 성폭력 2차 피해 #미투 국면에서 회복될까
등록 2018-04-17 21:46 수정 2020-05-03 04:28




기획연재_미투 성공의 조건


① 직장: 2차 피해의 메커니즘
② 대학: 가해의 대물림
③ 학교: 페미니스트 소녀들이 사는 법
④ 법률: 젠더 베스트 워스트 판례

4월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강민주 전 전남 CBS PD는 “내 피해 사건 이후에 발생한 문화사업국 ㄱ씨의 성추행 피해를 보면서 내가 제대로 대처했으면 추가 피해가 없지 않았을까 자책했다”고 말했다. 최근 그의 복직이 결정됐지만, 복직 시점을 정하기 위해 그에게 가해졌던 2차 가해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김진수 기자

4월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강민주 전 전남 CBS PD는 “내 피해 사건 이후에 발생한 문화사업국 ㄱ씨의 성추행 피해를 보면서 내가 제대로 대처했으면 추가 피해가 없지 않았을까 자책했다”고 말했다. 최근 그의 복직이 결정됐지만, 복직 시점을 정하기 위해 그에게 가해졌던 2차 가해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김진수 기자

전남CBS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은 2018년 #미투 운동이 재소환한 여러 ‘미제 사건’ 가운데 하나다. 2016년 10월 전남CBS에서 일하던 강민주 전 PD가 5개월의 수습 기간 만료와 동시에 해고됐다. 전남CBS는 강 전 PD의 업무 능력을 문제 삼았지만, 강 전 PD와 전남CBS 노조는 간부들의 직장 내 성폭력에 항의한 것에 대한 보복성 해고라고 맞섰다.

2016년 2차 피해 기소는 단 1건

성폭력 피해로 일어나는 불이익 조처를 일컫는 ‘2차 피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강 전 PD 사건은 적절한 이름을 얻지 못한 채 ‘수습 PD 부당해고 사건’ 정도로 불렸다. 2017년 4월 부당해고가 맞으니 복직시키라는 행정명령을 내린 전남지방노동위원회(이하 전남지노위)의 결정문 역시 업무능력 평가의 부당함만을 명시했을 뿐,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조처라는 강 전 PD의 주장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전남지노위 판결 7개월 뒤인 2017년 11월, 전남CBS는 강 전 PD를 두 번째 해고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의 2차 피해 금지 규정(제14조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이 유명무실하던 시절에 벌어지던 아주 흔한 사례다. 2차 피해 관련 구제를 책임지는 고용노동부는 2016년 접수된 신고 556건 가운데 고작 29건(5.2%)의 피해만 인정해 검찰에 넘겼다. 다시 그 가운데 검찰이 혐의를 인정해 기소한 사건은 단 1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2차 피해는 우리 도처에 있다.

2016년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운영하는 고용노동부 위탁 고용평등상담실 10곳에 접수된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사례 391건 가운데 2차 피해(불리한 조치)가 있었다고 응답한 사례는 42.5%(166건)나 됐다. 그 비율은 2017년에 63.2%로 뛰어올랐다. 2018년 1월 시작된 #미투 운동 이전의 법과 제도는 ‘직장 미투 피해자’들에게 무용지물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전남CBS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찬찬히 되짚어봐야 한다.

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발 직후인 2월5일, JTBC가 강 전 PD 사건을 보도(“강민주 PD, 사내 성희롱 문제제기 했다가… 두 차례 해고”)할 때까지 그가 겪은 2차 피해는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는 ‘해고노동자’ 신분으로, 전남CBS를 상대로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JTBC 보도 직후 CBS 본사 내 PD협회, 여기자협회, 기자협회, 아나운서협회를 비롯해 30기, 34기, 35기 일동이 연명한 성명서 등 연대 성명이 쏟아져나왔다. 35기 동기 일동은 “힘겹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강민주 선배의 얼굴에 우리의 얼굴이 겹쳐진다. …너무 늦게 같은 목소리를 내게 돼 죄송스럽다”고 적었다. CBS 본사는 전남CBS를 본사가 직접 경영하는 직할국으로 전환한다는 대책을 내놨고, 직할국 전환을 위해 새 본부장이 전남CBS에 파견된 뒤 3월에야 조건 없이 강 전 PD를 복직시킨다는 ‘전향적인 결정’이 나왔다. 강 전 PD를 살린 것은 법과 제도가 아니라 #미투 운동이었다.

#미투 성패 가를 2차 피해 방지 대책

3월27일 열린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에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 세 번째) 등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미투연대 대표는 대학원장의 성추행 사실을 고발한 뒤 해고당한 남정숙전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교수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3월27일 열린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에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 세 번째) 등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미투연대 대표는 대학원장의 성추행 사실을 고발한 뒤 해고당한 남정숙전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교수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그렇다면 전남CBS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은 이제 해결된 것일까. 아니다. 조직 차원에서 일어난 2차 피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강 전 PD는 2월(1명)과 3월(3명) 두 차례에 걸쳐 2차 가해자 4명을 고용노동부 여수지청에 고발했다. 강 전 PD에 견줘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두 번째 피해자의 회복도 남아 있다. 2017년 6월 전남CBS 문화사업국에 입사한 지 보름 만에 소속 국장에게 강제추행을 당한 뒤 쫓겨나다시피 퇴사한 ㄱ씨의 피해는 지금까지 어느 언론도 제대로 다룬 적이 없다. CBS의 한 직원은 과 한 통화에서 “ㄱ씨가 자기 사건과 관련해 진정서나 탄원서 등을 보낸 것으로 아는데, CBS 본사가 한마디도 반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직원들은 여전히 신원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한 직원은 “미투 피해자를 도왔던 직원들이 각종 음해와 모함, 없는 죄를 뒤집어썼다. 불이익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2차 피해 방지 대책은 #미투 운동의 성패를 가를 시금석이다. 이 전남CBS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2차 피해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이유다.

① “우리 직원 아니다”… 꼬리 자르기 전략

강 전 PD가 해고당한 것처럼, ㄱ씨 역시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이 공론화한 지 두 달 만에 전남CBS를 떠났다. 그러나 ㄱ씨는 강 전 PD처럼 부당해고 구제 기관인 전남지노위를 찾아갈 수 없었다. “제가 잘린 게 아니라 사무실이 없어져서 쫓겨난 거니까, 이런 걸 부당해고라고 인정해줄지 자신이 없었어요.”

무슨 말일까. ㄱ씨가 채용된 전남CBS 문화사업국은 정확히 말해 전남CBS 내부 조직이 아니었다. CBS의 내부 조직인 양 ‘문화사업국’이라는 부서명을 달고 있지만, 광고영업을 대행하는 일종의 외주업체였다. 실제 문화사업국 국장이 별도의 사업자등록을 내서 운영하는, 전남CBS와는 다른 별도 법인이었다.

이 회사의 구성원은 ㅈ국장과 ㄱ씨, 단둘뿐이었다. ㄱ씨를 강제추행한 것은 유일한 상사인 ㅈ국장이었다.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한 뒤 전남CBS는 ㅈ국장과 맺은 계약을 해지했다. 이 과정에서 ㅂ씨가 회사에서 쫓겨난 일은 ‘부당해고’가 아닌 ‘고용계약 해지’라는 용어로 규정됐다. “ㄱ사원을 채용한 사업주 ㅈ 본인은 협찬 대행업무 계약권자인 갑 전남CBS로부터 2017년 9월1일부로 해약 통보에 따라 폐업하게 되어 오늘(31일)부로 고용계약이 해지됨을 연락드리오니 양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전남CBS 안에서 ㅈ국장의 지위는 사실상 조직의 내부 구성원이었다는 게 ㄱ씨의 주장이다. ㄱ씨는 “국장님은 (실제 우린) 외주업체지만 밖에서는 다 CBS 직원인 줄 알고 그렇게 생활한다고 했다. 전남CBS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중요하지, 외주업체인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고 했다. 전남CBS 문화사업국은 전남CBS의 총무팀 등 제작 지원 부서와 같은 업무 공간을 썼고, 명함도 똑같았다. ㅈ국장은 전남CBS 수습직원 교육에도 나서는 등 사실상 사내 간부였다. ㅈ국장은 강 전 PD의 수습 교육 때도 들어와 “최근 콘텐츠의 특징은 ‘힐링’이다, 슬로(slow)의 세상이다, 남녀의 잠자리도 슬로다. 슬로가 아주 중요하다”라는 성희롱 발언도 했다. CBS 본사가 전남CBS에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라고 지시했을 때, ㄱ씨 역시 다른 직원들과 함께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았다.

전남CBS는 ㄱ씨의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돌변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직원은 “노조에서 ㄱ씨를 보호해야 한다고 요청했는데, 당시 본부장은 ‘우리 직원이 아니어서 보호할 수 없다’고 회피했다”고 말했다. 강 전 PD는 “나에게도 그랬다. 나 역시 CBS 본사로부터 ‘계약직이 잘리고 나서 성희롱을 구실로 문제제기하는 것’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계약직이다,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는 시선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업주가 성범죄 피해를 입은 구성원의 고용관계를 문제 삼아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은 아주 흔한 2차 피해의 유형이다.

② 미투 조력자도 대기발령 3개월 징계

전남CBS에서도 성범죄 피해자를 도운 조력자가 보복성 징계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CBS 본사가 감사를 통해 강 전 PD에게 피해를 끼친 윤아무개 보도국장을 징계하라고 권고한 뒤, 전남CBS 이사회는 윤 보도국장에게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그와 함께 엉뚱하게 ㅇ팀장에게도 대기발령 3개월이란 중징계를 내렸다. 그는 강 전 PD가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본 성희롱 사실을 증언하는 등 ‘조력자’ 구실을 했다. CBS의 한 직원은 “잘못한 사람들이 따로 있는데 ㅇ팀장한테 다 뒤집어씌웠다. ㅇ팀장이 복귀를 위해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반성문을 쓴 것으로 안다. ㅇ팀장 아버지가 밖에서 이사회 욕을 하고 다닌다며 회사로 불러 해명하게 한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CBS 본사가 문제”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노조가 ㅇ팀장의 부당징계와 ㄱ씨의 해고, 그 밖의 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이사회의 전횡을 감사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으나, 본사는 2016년 12월 강 전 PD 성희롱 감사 이후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력자에 대한 보복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직장 내 성폭력 이후 일어나는 2차 피해와 관련해 획기적인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2013년 6월 르노삼성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와 악의적 소문을 유포한 직원과 회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자가 제기한 2차 피해를 모두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당시 피해자를 도왔던 조력자 징계 역시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사업주가 피해 근로자 등을 도와준 동료 근로자에게 부당한 징계 처분 등을 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업주가 피해 근로자 등에 대한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③ 화해 명목으로 합의 종용하는 지노위

강 전 PD는 2017년 4월 전남지노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지노위 위원장마저 ㄱ회사 쪽에 편파적인 태도를 취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3월 심문에서 김영중 전남지노위 위원장이 정회 중에 ‘내가 앞이 빤히 보인다’ ‘이러다 두번 세번 해고돼서 지노위에서 또 만나게 될 거다’ ‘돈을 섭섭지 않게 주겠다고 하니 합의하라’ ‘사내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관계도 안 좋지 않았냐’ 등의 말을 하며 사실상 합의를 종용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에 양쪽이 원만하게 화해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것일 뿐 합의를 종용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화해를 강요할 순 없다. 다만 회사가 복직을 받아들이거나 금전적인 부분에서 보상할 의향이 있으니, 이에 응할 용의가 있다면 심문 도중에도 화해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다는 의견을 말한 것이다.” 그는 ‘속기록에 남지 않는 정회 시간에 피해자에게 의사를 타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엔 “일상적으로 그렇게 한다”고 답했다.

강 전 PD는 지노위 결정문에 부당해고의 원인이 되는 ‘성희롱에 대한 문제제기’가 누락된 것도 사 쪽을 위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강 전 PD에 대한 전남지노위의 10쪽짜리 결정문을 보면, ‘성희롱’이란 용어나 이를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심지어 강 전 PD 당사자의 주장을 요약한 부분에도 이와 관련된 언급이 없다. 김 위원장은 “성희롱 관련 부분은 당시 확정이 안 된 내용이었다. 가해자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CBS 본사가 신문이 이뤄지기 3개월 전인 2016년 12월에 가해자를 징계하라는 감사 결과를 내놓은 사실을 묻자, 그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남CBS 관계자는 강 전 PD를 둘러싼 사태의 후속 처리 내용을 묻는 에 성희롱 가해자인 윤 전 보도국장을 다른 국으로 발령 내는 등 강 전 PD 복직에 대비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떼어놓는) 분리 조처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 전 PD가 2차 가해자들을 검찰에 고소한 문제와 관련해선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는 “2차 가해가 무엇인지 모호하다”며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의 말은 다르다”라고 말했다.

전남CBS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의 제2라운드가 열렸다. 이 사건은 성희롱과 뒤이은 2차 피해까지 입은 강 전 PD의 피해를 회복하는 모범이 될 것인가, 2차 피해를 가중하는 ‘블랙 미투’가 될 것인가. 전남CBS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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