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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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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변화 못 읽은 까막눈

남북대화 노골적 방해한 아베 일본 총리…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 소식에 스타일 구겨
등록 2018-03-13 14:47 수정 2020-05-03 04:28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대화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런 북한의 변화를 평가한다.”

3월9일 오전 9시.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2분44초 동안의 약식 기자회견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말 그대로 ‘똥 씹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베 총리의 이날 회견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 “트럼프 대통령이 항구적인 (한반도)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올해 5월까지 만날 것”이란 내용의 ‘깜짝 회견’에 나서기 직전에 이뤄졌다.

자신의 초라한 입장 변화를 정당화

아베 총리의 회견으로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불붙은 남북대화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북한의 ‘미소 외교’에 속아 넘어가선 안 된다”는 부정적 태도에서 “평가한다”는 쪽으로 수정됐다. 이 극적인 변화를 추동한 것은 물론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정상회담 요구를 받아들인 트럼프 대통령의 미묘한 입장 변화다.

아베 총리는 이날 “방금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정상회담을 했다. (북한의 태도 변화는) 미·일이 강고히 연대하고 일·미·한 그리고 국제사회가 함께 고도의 압력을 가한 성과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를 위해 구체적 행동을 하도록 최대한 압력을 가한다는 미·일의 확고한 입장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미·일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100% 함께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이어 “4월께 미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이 그동안 일본이 단호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초라한 입장 변화를 정당화한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문재인 정부가 이끄는 남북대화에 부정적 훈수를 두거나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베 총리는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1월1일 신년사에서 “동결 상태에 있는 북-남 관계를 개선하여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자”고 하자, 1월24일치 인터뷰에서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 이전에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시간을 벌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핵·미사일 개발을 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2월9일 이뤄진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미소 외교에 속아 넘어가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문 대통령에게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요구했다. 이 발언을 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합동군사훈련 개최는) “우리 주권과 내정에 관한 문제”라 반박해 회담 분위기가 바싹 얼어붙기도 했다.

펜스 미국 부통령 성명만 부여잡고

일본의 태도는 3월6일 정의용 실장을 대표로 한 특사단이 △4월 남북 정상회담 개최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를 위한 북한의 의지 확인 △대화 기간 중 핵·미사일 실험 동결 등의 성과를 발표한 뒤에도 그대로였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튿날인 7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북한 문제에 대응할 땐 북한과 했던 과거의 대화가 비핵화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교훈을 충분히 고려하며 대응해야 한다”며 버텼다. 스가 장관은 이날 무려 세 차례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6일(현지시간) 성명(“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신뢰할 수 있고, 검증 가능하며, 분명한 조처를 취할 때까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을 언급하며 북한에 대한 미·일의 입장은 완벽히 일치함을 강조했다. 결국, 일본은 아베 총리의 우익적 신념으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조류 변화를 읽지 못한 ‘까막눈 외교’를 한 셈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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