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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은 어떻게 왕이 되었나

연극계 여성 ‘미투 선언’으로 드러난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왕’ 이윤택

권력과 지원금 집중, 도제식 교육, 철저한 집단주의 속에 군림하다
등록 2018-02-27 14:25 수정 2020-05-03 04:28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2월19일 자신의 성추행을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성폭행 혐의를 부인해 피해자들의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2월19일 자신의 성추행을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성폭행 혐의를 부인해 피해자들의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최고의 연극집단의 우두머리를 모신다는 명목으로 마치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 각자에게 일어난 일과 목격한 일을 모른 체하며 지냈습니다.”(이윤택 연출가의 성범죄를 폭로한 여성의 글)

“저희가 사는 세계의 왕은 조민기였습니다.”(조민기 전 청주대 교수의 성범죄를 폭로한 여성의 글)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공고한 성의 왕이었고….”(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의 성범죄를 폭로한 여성의 글)

피해자를 셀 수 없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범죄가 폭로된 2월13일 이후 이어지는 연극계 ‘미투(#Me_too) 선언’을 목도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연극계 성범죄는 오랜 시간, 여러 상대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뤄져왔다. 고발자들은 하나같이 가해자가 그 세계의 ‘왕’이었으며 그를 고발했을 때 연극 무대에서 완전히 배제될 거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두려움은 폭력이 은폐되고, 지속되는 연료가 됐다. 이윤택·오태석 등 존경받던 연출가들은 어떻게 절대권력을 획득하고 그 세계의 왕이 된 걸까.

돈과 상징권력이 집중되는 연극계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합 대표는 “예술계의 특징은 ‘상징권력’이 굉장히 거대한 권력이 된다는 점이다. 작품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상징권력을 획득하고 발언권을 얻는다. 교수가 되고 각종 심사위원이 되고, 무대를 올릴 수 있는 지원금을 획득하는 등 권력이 집중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성추행이 폭로된 오태석 연출가는 극단 목화의 대표이자 서울예대 교수다. 연희단거리패를 만든 이윤택 연출가는 정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각종 지원금을 용이하게 끌어온 인물이다. 한 편의 ‘무대’가 소중한 연극인들에게 이런 권력이 있는 이들은 ‘거역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

이윤택 연출가의 예를 좀더 살펴보자. 1999년 경남 밀양시는 이 연출가가 밀양연극촌을 세우는 과정에서 그를 전폭 지원했다. 부지를 무상 위탁했고, 60억원을 들여 주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발했다. 연희단거리패가 여는 ‘밀양여름예술축제’는 2001년부터 매년 수억원의 운영비를 지원받았다. 그 액수는 2015년 5억1천만원, 2016년 4억9천만원, 2017년 5억1500만원이었고, 올해도 5억4천만원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 이들은 2011년부터 주말상설공연 지원금으로 1억원을 추가로 지원받고 있다.

이윤택 연출가는 2016년 10월 소극장 ‘30스튜디오’ 개관식에서 문화예술위원회 등으로부터 “매년 1억8천만원씩 지원받아왔던 것이 2년 전부터 딱 끊겼다”며 자신이 박근혜 정권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의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밀양시로부터 꾸준히 지원금을 받아왔고, 2016년에도 문예위로부터 지역대표 공연예술제지원금 1억원을 받았다. 이성미 대표는 “순수예술은 반드시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이 지원금이 고루 분배되는 게 아니라 특정 예술가에게 집중된다. 그것이 절대권력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자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제식 교육’의 문제점도 매우 크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는 “연출과 배우의 위계관계는 학교 때부터 만들어진다. 연출도 배우도 수평적 관계에서 연극을 만들어가는 주체인데도 대학에서 선후배와 사제 간에 엄격한 위계질서가 생겨난다. 이 위계는 몸과 생각에 뿌리박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비밀 없는’ 집단생활에서 만든 비밀

실제 이번 ‘미투 선언’을 보며, 교수-선배로 이어지는 위계문화를 자성하고 고발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예대 대나무숲’에는 ‘신입생 얼차려 문화’ 등 선후배 사이에 이뤄지는 관행적 폭력이나 오태석 교수의 수업 때 모든 학생이 일어나 교수를 맞거나 종강 때 무릎을 꿇고 평가를 듣는 권위적인 수업 문화를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변방연극제 예술감독을 역임한 임인자 감독은 “연극은 집단예술로 개인보다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이상향을 꿈꾸지만 역으로 집단예술의 특성을 강조하다보니, 대학이나 현장 모두 권위나 폭력이 자성 없이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연희단거리패는 ‘이상주의 연극공동체’라는 철학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단원 개개인을 존중하지 않고 창단자의 권위만 앞세웠다. 이를 통해 연출 미학을 가장한 폭력이 반복됐다. 그리고 이는 연극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사회 역시 대의를 앞세우며 억압하는 것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연희단거리패라는 특수한 연극공동체의 특징은 이 극단을 6개월 동안 참여 관찰하며 연극이라는 공연예술 활동이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기록한 서울대 석사 논문 ‘개인을 넘어서는 그 자리: 연희단거리패의 의례로서의 연극과 자아의 재구성’(권정은)을 보면, 잘 드러난다.

저자가 2015년 3~8월 6개월 동안 참여 관찰을 통해 쓴 논문에 따르면 ‘연희단거리패’는 개인 생활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생활을 한다. 2015년 8월 기준 단원 70명이 소속된 연희단거리패에서 중하급 단원과 신참 단원은 10~13명이 같은 방을 쓴다. “빈방들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선후배끼리 방을 공유해야 언제든지 연극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고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사생활도 제한된다. 극단에 휴가 제도가 생긴 것은 2009년이고 결혼한 신혼부부 단원의 집들이에 한 단원이 외부 공연 연습으로 불참해야겠다는 뜻을 전하자 이윤택 연출가가 “개념이 없다”며 강력하게 훈계하는 일화도 나온다.

이들은 시간표를 공유하고 철저히 함께 행동한다.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 조회를 한 뒤 산책을 하거나 각자의 구역을 청소한 뒤 오전 8~9시에 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오전 9시에 30분 동안 전체 회의를 하고 9시30분부터 30분 동안 매일 신체훈련을 마친 뒤 오전타임, 오후타임, 저녁타임으로 나누어서 연극을 준비하는 공동작업을 한다. ‘무얼 하는지 모르는 개인 시간’은 잘 용납되지 않아 특수한 신분이던 연구자에게도 “오전 신체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날에는 단원들이 (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정도였다. 그러나 “비밀이 없을 것”을 강조하고 개인 행동을 철저히 지양하며 그 생활 방식을 단원 대부분에게 내재화한 연희단거리패에서 이윤택 연출가는 처참한 비밀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안마를 받는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 안마가 지금 폭로된 형태의 안마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권위적이고 비상식적인 행태인데, 왜 가만히 있었을까. 나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이윤택’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젖어 있었던 것인가… 자성하게 된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의 말이다. 2월19일 공개사과에 나선 이윤택 연출가는 “성폭행을 한 적은 결코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진짜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할 때 ‘나 역시 묵인과 방조의 가해자가 아닌가’라며 많은 연극인들은 자책하고 있다. 이 대조적 풍경이 역설적으로 연극계의 희망일 것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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