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2012년 총선과 대선 당시 불법 정치 개입에 나선 군 사이버사령부와 긴밀히 협력하며 공조 체제를 유지했다는 사실이 국방부 공식 문건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사실을 전면 부인했지만, 지금껏 불법 정치 개입과 무관한 것으로 알려진 경찰이 사이버사 댓글 작전에 관여한 정황이 확인됨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경찰·검찰·국가정보원 구조개혁’ 등 권력기구 개편 작업에도 상당한 후폭풍을 불러올 전망이다.
‘레드펜 작전’ 때 군 지원 가능성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같은 당 이재정 의원실의 자료와 의 취재를 모아보면, 경찰청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기무사, 청와대, 국정원과 함께 총선과 대선이 겹쳤던 2012년 군 사이버사령부가 주도해 시행한 사이버심리전에 참여했다. 당시 군 사이버사가 펼친 심리전은 2013년 군 사이버사 댓글 사건이 폭로된 뒤 ‘불법 선거 개입’으로 결론 났다.
최근 군사 2급 기밀에서 해제된 국방부 ‘2012년 사이버심리전 작전지침’의 제2장 제4조(작전운영) 4항을 보면 “작전협조는 국방부, 합참, 기무사, 청와대, 국정원, 경찰청 등과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보안 유지하에 정보를 공유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문서는 국방부가 2012년 2월 작성한 공식 문서다. 이 문서대로라면 경찰은 청와대를 정점으로 군(국방부·합참·기무사), 국정원 등과 함께 사이버심리전에 ‘긴밀하게’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국방부는 1월20일 청와대에 올린 ‘BH 현안업무 보고’에서 “청와대, 국정원, 경찰청, 기무사 등 유관기관과의 실시간 정보 공유, 공동 대응 체계 유지”를 하겠다고도 밝혔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전직 군 관계자는 “(이 작전지침에 따라)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 인원이 수시로 국방부 내 사이버사령부를 방문해 작전 관련 내용을 협의하고 업무를 공조했다. (경찰청의) 방문이 공식 확인되지 않을 만큼 보안이 철저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온라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레드펜’ 작전(제1198호 ‘작전명 레드펜, 온라인 블랙리스트도 있었다’)의 대상이 민간인이고, 경찰이 (민간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 만큼 군이 아닌 민간인과 관련된 작전에서 업무 협조가 중요했던 것으로 안다. 군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위해) 24시간 검색과 수집만 담당하는 정보대와 경찰의 사이버 대공 부문의 노하우가 결합되면 시너지가 날 것으로 예상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즉, 군 사이버사가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는 누리꾼들의 아이디(닉네임, 누리집 주소 등 포함)를 모아 관리한 ‘특별관리대장’(레드펜 작전)을 경찰에 전달하면, 경찰이 넘겨받아 이 명단에 포함된 민간인을 직접 사찰하는 방식으로 군 작전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군 관계자 “경찰 수시로 국방부 방문”경찰과 군 사이버 부문의 협조는 군 사이버사가 창설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증언도 나온다. 당시 사정을 아는 군 관계자는 “경찰 쪽에서 업무 협조차 (군에) 수시로 드나들었다. 작전은 대체로 공문이 오가지 않아 기록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합참 내 우리 조직도 민간 심리전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없는 조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언급한 조직은 합참 내에 ‘정보과’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다, 2010년 1월 군 사이버사가 창설된 뒤 이 조직에 통합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들은 2012년 대선 때 댓글 작업에 핵심적으로 가담했던 심리전단의 주축 운영부대에 배속된다. 그는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당시 군은 합참 내 정보조직을 활용해 정부에 비판적인 아이디(ID)를 수집해 민간 여론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경찰도 군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군의 교류는 2010년 1월 군 사이버사가 창설된 뒤 경찰청 보안국 산하 보안사이버수사대장이 직접 사이버사를 방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군 쪽 파트너는 사이버사 내 심리전단(530단)의 (댓글) 운영부대장인 박아무개 과장이었다. 박 전 과장은 2013년 댓글 작전을 주도한 주요 인물로 지목됐지만 군 수사기관의 석연치 않은 은폐·축소 수사로 책임을 면했다가 국방부 개혁 태스크포스(TF)와 서울 중앙지검의 재수사가 이뤄진 뒤 지난 1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접촉 대상이 정보 검색·수집을 위한 정보부대가 아니라 댓글 작전으로 직접 정치 현안에 개입한 운영부대였다는 점이다. 전직 군 관계자는 “블랙리스트 등 사이버사가 관리하는 아이디 협조 차원이라면 직접 작전 실행 부대를 만날 필요가 없다. 경찰이 (댓글) 작전을 수행하거나 군 작전을 돕기 위해 공조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했다.
군과 경찰의 협조를 보여주는 문건은 그뿐만이 아니다. 2012년 1월 국방부의 BH 현안업무 보고에도 “(사이버심리전) 대응 전략으로 유관기관(청와대, 국정원, 경찰청, 기무사 등)과 실시간 정보 공유, 공동 대응 체계를 유지하면서 메시지 공동전송시스템(크로샷)을 이용, 실시간 전파·피드백”을 한 것으로 돼 있다.
경찰·군 사이버 조직 개편 동시에 진행하지만 2011년까지 박 전 과장을 직접 접촉한 것으로 지목된 경찰 인사는 국방부 문건과 군 쪽 관계자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아이디 신원 확인이나 (온라인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를 위한) 레드펜 작전 논의는 없었다. 경찰은 1992년부터 선도적으로 북한을 겨냥한 사이버 대공 업무와 관련된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를 세미나와 각종 (공개) 회의를 통해 교류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반적인 아이디가 아니라 친북 사이트 140개 차단과 관련된 자료를 건넨 적은 있다. 하지만 그 외 (자료 제공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기관의 공조를 유추해볼 기록은 군 자료 곳곳에 등장한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수행한 공로로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표창을 받은 군 사이버사 요원 ㅂ씨의 공적조서를 보자. 이 문서에는 “유관기관(경찰청)과 주요 첩보 활동을 93회 278건을 실시해 사이버 첩보 능력 및 부대 인식 제고에 기여함”이라고 쓰여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당시 경찰 인사는 “(왜 그런 문건이 생산됐는지) 알 수 없다. 공적조서를 만들 때는 (다른 부처와 공조한 내용을) 과장할 수도 있다고 본다. 군으로부터 그런 자료를 주고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는 국방부의 공적 기록이 허위라는 것이다.
경찰이 인정하는 것은 친북 사이트 차단 삭제 등 북한·종북세력의 사이버 선전·선동에 대응하기 위해 세미나와 회의 등의 자리에서 군 사이버사 관계자들과 만나 대공 업무의 노하우를 알려줬다는 내용 정도다. 경찰은 이런 접촉마저 2011년 이후엔 없었다고 주장한다. 2011~2012년 사이버보안수사대장을 맡은 경찰 관계자는 “사이버사 쪽은 아예 만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친북 사이트 주소 외에) SNS의 아이디 정보를 넘겨받은 바 없다는 다른 경찰 인사와 달리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쓰는 민간인들의) 아이디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이버사가 아닌 기무사로부터였다. 그것도 손에 꼽을 정도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업무를 하다보면 민간인 관련 부분이 있고, 그렇게 되면 법 위반 여부를 내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자료를 받으면 혐의가 있는지 경찰 쪽에서 내사를 해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경찰청 내 사이버 관련 조직의 개편과 군 사이버사령부 창설 등 군 조직 재편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경찰청 사이버 수사조직의 이름은 보안2계에서 2009년 12월 말 보안사이버수사대로 이름이 바뀌고 그에 맞게 조직을 대대적으로 정비한다. 군 사이버사는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010년 1월1일 창설됐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당시 온라인상의 대공 업무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을 뿐 군 사이버사나 국정원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정치 개입을 자행한 또 하나의 축이었던 국정원은 이보다 앞선 2009년 3월 국정원 3차장 산하 독립부서로 심리전단을 구성·편제하고, 사이버심리전 수행팀을 2개팀으로 확대 재편(2012년 4개팀으로 재확대)했다.
이번 사태는 청와대가 1월14일 발표한 경찰·검찰·국정원 구조개혁안에도 앞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경찰과 군 사이버사가 공조해 정치에 개입해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국정원이 갖고 있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한다는 청와대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대공수사를 담당하던 국정원 인력이 경찰로 넘어올 경우를 대비해 지난 1월 안보수사본부를 설치해 인사권과 감찰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방안을 내놓은 상태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영화 을 거론하며 “경찰에 대공수사권을 주는 것은 (서울대생 박종철을 고문해 숨지게 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면 보이콧까지 거론하며 공세를 펴고 있다.
대공수사권 이관 계획 차질 빚나경찰의 ‘모르쇠’ 반응에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와대까지 제출된 국방부 문서에 나온 근거를 두고 허위·과장이라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찰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뒤늦게 밝혀진 만큼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해야 할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이재정 의원도 “(군과 경찰의 공조가) 공식 문건으로 확인된 만큼 철저한 조사가 뒤따라야 한다. 불법 정치 개입으로 국정원이나 군 사이버사령부가 위축된 상황에서 경찰의 보안사이버수사 조직이 확대 개편돼왔다. 이 점을 생각할 때 이번 사안은 더욱 엄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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