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한국 트랜스젠더의 건강 연구를 하며 가장 자주 떠올린 단어는 ‘무지’와 ‘무례’였다. 내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많은 것들이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는 숨 막히게 높은 장벽이었다. 은행에서 신원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보일 때,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그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나는 짐작조차 못했다. 연구 과정에서 만나 친구가 된 트랜스젠더와 함께 맥주를 마실 때면, 옆 테이블 사람들은 우리 쪽을 쳐다보며 그녀의 성별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타인의 성별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권리가 있는 듯이 당당했다. 무어라 대응하기 애매한 상황을 긴장된 얼굴로 묵묵히 견디던 친구는 외려 얼굴이 벌게진 나를 달랬다. 괜찮다고 자주 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많은 사람이 무례했다.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보건학자로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트랜스젠더가 성전환 과정에서 받아야 하는 의료적 조처였다. 여기에는 정신과 진단(본인 출생시 법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다르다는 성별위화감(Gender Dysphoria) 진단), 호르몬 치료, 성전환 수술이 포함된다. 물론 트랜스젠더 개인마다 성별위화감의 정도가 다르고, 각자 살아온 역사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의료적 조처의 의미도 다르다. 누군가는 성전환 수술을 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니까 생계를 위해 수술을 미뤘고, 또 누군가는 지나치게 엄격한 법적 성별 정정 요건을 맞추기 위해 당장 원하지 않는 수술을 서둘러야 했다.
이러한 의료적 조처는 많은 트랜스젠더에게 자기 삶을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이 조처는 성별위화감을 낮추는 데 의학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점도 검증됐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무지와 무례 속에 의료적 조처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체성을 두고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성적 기호’라는 잘못된 단어로 표현하거나,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른 의료적 조처를 ‘미용성형’이라는 말로 깎아내리기도 한다. 한국의 의과대학 교육과정과 레지던트 수련과정에는 트랜스젠더 환자 진료에 대한 내용이 없다. 많은 트랜스젠더가 경험이 많은 의사에게 수술받기 위해 타이로 떠났다. 하지만 타이에서 수술받고 한국에 돌아온 뒤 후유증이나 합병증이 생기면 대책이 마땅치 않았다.
세계적 추세인 성전환 의료 조처 급여화무엇보다 이 모든 의료적 조처는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이것의 비용을 트랜스젠더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자녀의 성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부모는 드물다. 부모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살기 위해 성전환을 결심하는 20대 트랜스젠더가 감당하기에는 거대한 부담이다. 정신과 진단에 필요한 비용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겨우 마련한다고 해도, 호르몬 치료와 성전환 수술 비용은 몇 년을 일해도 마련하기 어렵다. 그 비용을 구하기 위해 일하다 20대가 훌쩍 지나간다.
외국의 예를 보면, 트랜스젠더의 성전환과 관련된 의료적 조처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 의료보험 체계에서 보장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12년 제정된 성별정체성법(Ley de Identidad de Genero)에 따라 트랜스젠더는 본인부담금 없이 필요한 모든 호르몬 치료와 외과적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미국도 2012년 이후 12개 주에서 메디케이드 규칙을 개정해 성전환 관련 의료서비스를 포함하도록 했다. 캐나다는 공공보험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위한 의료서비스와 수술을 제공하고,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가슴성형이나 제모까지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나는 올여름 한국 트랜스젠더 278명에게 그들의 사회적 경험과 건강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정신과 진단, 호르몬 치료, 성전환 수술을 포함한 모든 항목에서 트랜스젠더가 필요한 의료적 조처를 받지 못하게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비용이었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가 성전환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그래서 원하는 삶이 지연되는 걸 막을 수 있다면, 그들의 일상은 어떻게 바뀔까? 분명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힘겨운 일이 될 것이다. 내 트랜스젠더 친구들은 여전히 ‘너는 남자냐, 여자냐?’라고 묻는 수많은 시선의 폭력에 노출되고, 병원과 은행과 학교에서 힘겨운 순간을 마주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다수인 이들에겐 절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사회 곳곳에, 그리고 그들의 일상에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한국 트랜스젠더의 건강 연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 중 40% 넘는 이들이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고 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한국에서 나는 사회적 소수자 연구를 해왔고 수많은 관련 논문을 읽었다. 그러나 이런 수치를 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견뎌나가는 삶은 어떤 것일까.
우리 사회가 감당할 몫성전환 관련 의료적 조처를 급여화하는 결정은, 드러내 말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역사를 감당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그들에게 한국 사회가 보내는 작은 전언이 될 것이다. 당신 앞에 놓인 수많은 장벽에 무지했던, 당신의 삶에 대해 무례했던 과거를 용서해달라고. 늦었지만 이 문제 하나만이라도 우리가 함께 감당하고 책임지겠다고. 그러니 당신도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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