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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시위’는 결국 승리했는가

박근혜 끌어내린 ‘촛불’ 주역에서 ‘이대 혐오’에 갇힌 금기어로 추락

이대 시위 승리로 정권 바뀌었지만 ‘여혐’은 여전히 이 사회의 ‘적폐’
등록 2017-11-14 07:08 수정 2020-05-02 19:28
이화여대 학생들은 시위 과정에서 꽁꽁 숨어야 했다. 지난해 10월17일 작업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대 학생들의 모습.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이화여대 학생들은 시위 과정에서 꽁꽁 숨어야 했다. 지난해 10월17일 작업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대 학생들의 모습.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2016년 7월28일 뜨거운 여름에 시작된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은 10월19일 최경희 총장의 전격 사퇴로 해피엔딩을 맞았다. 10월21일 이대 학생들은 86일간의 본관 점거 농성을 공식적으로 끝냈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총장을 끌어내린 이대 시위는 적폐 청산의 서막이었고, 박근혜씨 탄핵이라는 국정 농단의 결말을 암시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여자들의 시위가 유례없는 승리로 끝난 일에 대해 한국 사회는 이대를 촛불의 당당한 주역으로 추어올렸다. 그러나 이대 시위의 숨은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던 이대 학생들은 자신이 호명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대 시위는 이대 학생들의 ‘금기어’다.

트라우마에 고통받는 시위 참가자들

지난 10월24일 이대 후문에서 만난 재학생 ㄴ씨는 자꾸 주변을 살폈다. 20분 정도 걸어 연세대 앞 커피숍에 앉았으나 “여기도 이대생이 많을 것 같다”며 한 차례 더 자리를 옮겼다. 그가 말했다. “신상 털리기 싫어요.” 그는 자신이 기자를 만나 이대 시위에 대한 인터뷰를 한다는 사실이 발각될까봐 두려워했다. 실제 ‘이화이언’이라는 교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대 시위를 공론화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개념 없는 일”로 십자포화를 당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5월12일 이대 한국여성연구원이 주최한 ‘영페미니스트 워크숍’ 보이콧 사건이 대표적이다. 워크숍에선 ‘여성 연대로서의 이화여대 시위’라는 발제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발제를 맡은 학생 3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들은 이화이언에서 개인 신상 정보가 ‘털린’ 상태였다. 졸업생 A씨는 이날 워크숍에서 목격한 일을 이렇게 전했다. “한 학생이 약봉지를 흔들면서 내가 멀쩡해 보이냐고, 아직도 약을 먹는다고 말했다.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았다.”

학생들의 거부반응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는 당시 상황을 묻는 기자에게 한국여성연구원 관계자가 보내온 메시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이 원하지 않으면 다루지 않겠다고 그때 회의에서 학생들에게 말했기 때문에 좀 위축이 된다. 시간이 좀 있어야 할 것 같다.” 연구원의 한 연구자는 이대 시위를 학문적으로 분석해보려는 학자들의 시도가 학생들의 격렬한 반대에 막힌 상황에 대해 “연구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6월 인문학협동조합과 역사문제연구소 등이 주최한 학술 행사 ‘대학의 인권과 민주주의’에서 이대 시위를 주제로 발제하겠다고 했던 대학원생이 발표를 포기했다. 지난 1학기 교양 수업에선 조별 과제 주제로 ‘이대 시위’를 정한 학생들이 비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은 이화이언에 ‘사과문’을 올린 뒤, 조별 과제 제출을 포기했다.

익명성을 깨는 일에 대한 학생들의 트라우마를 이해하려면 최경희 전 총장이 사퇴한 10월19일과 점거 농성을 해제한다는 발표가 나온 10월21일 이틀 동안 벌어진 일에 주목해야 한다. 그때 이대 학생들은 ‘만민공동회’에서 86일간 있었던 모든 저항의 기록을 폐기하기로 ‘합의’했다. 만민공동회는 본관 복도에 모인 학생들과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 내 익명 게시판인 ‘비원’(비밀의 화원)에 모인 학생들이 거의 한 몸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온·오프라인 통합 의사결정 절차였다. 자료 폐기 결정이 대다수 이대 학생들의 공감대 아래 이뤄졌다는 얘기다.

왜 이대 학생들은 숨기로 결정한 것일까. 본관 점거 농성 때 언론에 배포하는 보도자료 등을 작성하는 언론팀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재학생 ㄷ씨는 ‘공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큰 우려는 학교의 보복이었다. 교직원이 우리가 버린 쓰레기통을 헤집고 다닌다는 얘기가 있었다. 총장만 나갔지, 교무처장부터 다른 교수들은 다 남아 있다.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그들을 어떻게 믿느냐고 했다. 교수들 지지 성명이 나왔지만, 모든 교수가 참여한 게 아니었다.”

가장 큰 우려는 학교의 보복

잊힌 일이지만, 이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에 한국 사회는 처음부터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 당장 학교 안에서부터 그랬다.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을 공식적으로 지지한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에 속한 교수는 100여 명으로, 이화여대 학부 전임교원(650여 명)의 6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이대 시위를 ‘학벌이기주의’ ‘순혈주의’라고 비판하는 기사도 적지 않았다. 이대 시위를 촉발한 평생교육단과대학사업, 즉 미래라이프대(미라대)가 고졸 재직자 또는 30살 이상 무직자에게 2년 만에 4년제 학사 학위를 주는 사업이라는 점이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다. 본관 점거 농성 6일 만인 8월3일 최경희 총장이 미라대 설립을 철회한 일을 소재로 쓴 칼럼(‘이대 나온 여자들의 승리’)은 “미래 사회에서 도입이 절실한 수준 높은 평생교육 시스템을 ‘학벌주의’로 배척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따가운 눈초리도 엄존한다”고 일침을 놨다. 이 칼럼은 영화 에 나온 김혜수의 대사 ‘이대 나온 여자’로 시작했는데, 이 대사에 대해 “지적이면서 아름답고, 집안도 좋고, 도도한 인상의 이화여대 출신을 은근히 비꼬는 말로 회자”된다고 적었다.

이대 시위가 ‘이대 나온 여자’들의 극성 정도로 인식됐다는 사실은 이대 시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뿌리 깊은 ‘이대 혐오’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학생들은 이대 시위에 ‘유난히 엄격한’ 잣대를 보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을 확인하면서 아예 침묵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ㄴ씨는 정유라 입학·학사 비리가 터져나올 때 화제를 모은 대자보 ‘어디선가 말을 타고 있을 너에게’에 대한 ‘페친’(페이스북 친구)의 평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화의 학벌에 대한 자부심만 있고, 돈 걱정 안 하고 공부할 수 있는 (이대생이라는)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비판이었죠. 그거 말고도 타임라인에 이대 시위를 평가절하하는 내용이 심심치 않게 올라왔어요.” 1학년으로 이대 시위에 참여했다는 ㄹ씨도 “이대 시위를 폄훼하는 댓글을 많이 봤다. 다른 학교 교수가 학벌주의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도 봤다”고 말했다.

‘이대 나온 여자’로 조롱받는 현실
‘언니가 왔다.’ 지난해 8월3일 이화여대 졸업생이 대거 참여한 최경희 총장 사퇴촉구 야간 시위를 학생들은 ‘반딧불 시위’라고 했다. 당시 본관 앞에서 이대 성명을 발표하는 이대 졸업생들. 연합뉴스

‘언니가 왔다.’ 지난해 8월3일 이화여대 졸업생이 대거 참여한 최경희 총장 사퇴촉구 야간 시위를 학생들은 ‘반딧불 시위’라고 했다. 당시 본관 앞에서 이대 성명을 발표하는 이대 졸업생들. 연합뉴스

2016년 10월 승리 이후에도 이대 학생들은 ‘촛불의 주역’이 아니라 ‘이대 나온 여자’로 호명됐다. 2016년 11월 서울의 한 사립대 모의국회에서는 정유라 부정 입학 사태를 풍자하는 연극을 하면서 정유라가 연상되는 인물 ‘정읍읍’을 등장시켰다. 정읍읍은 명품 가방을 메고, 휴대전화로 엄마와 통화하면서 엄마로부터 시시콜콜 지시를 받으며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후 이대 모의국회는 “‘이대 나온 여자’ 대사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면서 여성 혐오와 이화여대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담은 문구로 각인돼왔던 것”이라며 “전후 맥락으로 살펴본다고 해도 저희에게는 또 한번 차별적 시선의 피해자가 되는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는 항의 메시지를 보냈다.

국정 농단 청문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16일에는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이 청문회에 출석한 최경희 전 총장에게 “‘이대 나온 여자’들에 대한 자존심, 자부심”을 가리킨다며 영화 의 해당 대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본관 점거 사흘째인 7월30일, 본관 점거 중인 학생 200여 명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 1600여 명이 투입된 폭력적인 사태가 디지털 공론장에서 소비된 맥락은 ‘이대 혐오’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격하하는 여성 혐오의 한 종류라는 것을 보여준다. 학생들의 신체가 노출된 사진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퍼날라져 ‘얼평’(얼굴평가), ‘몸평’(몸매평가) 같은 성희롱의 대상이 됐다. 이후 이대 학생들에겐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 등 익명을 보장하는 ‘장비’가 시위의 필수품이 됐다. 이대 본관 점거 영상을 촬영해 방송한 이대 교내 방송은 학생들의 얼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는 이유로 거센 항의를 받고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이대 교내 방송국이 영상을 송출하는 대형 스크린은 학생들이 영상 노출을 막기 위해 붙인 대자보로 봉쇄됐다.

여성 혐오에 갇혀 스스로 고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대 학생들의 유일한 지원 세력은 이대와 여성에 대해 유달리 엄격한 한국 사회의 교묘한 문법을 먼저 체득한 이대 선배들뿐이었다. 8월3일 저녁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야간 시위에 3만여 명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모였고, 이 자리에서 “우리가 너희의 배후 세력이다”라는 졸업생들의 성명이 발표됐다. 이후 졸업생들은 별도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재학생들의 시위를 지원했다. 졸업생들은 카톡방을 ‘수랏간팀’으로 이름 붙이고 후배들의 농성을 지원했다. 8월 중순까지 2주 만에 1억원 가까운 ‘총알’이 지원됐다.

100만원가량을 ‘쐈다’는 졸업생 A씨는 이대 시위 국면에 등장한 “언니들의 연대”가 이대 출신이 겪는 고통에서 비롯된 ‘시스터후드’, 즉 자매애라고 했다. “이대 혐오는 공기 같은 거예요. 지금까지 늘 그걸 느끼고 살았죠. ‘이대 나온 여자’가 함의하는 부잣집 딸, 부자한테 시집간 여자, 또는 시집갈 여자와 같은 모든 응축이 온라인상에선 대단히 공격성을 띠어요. 일베 사이트에는 이대 학생 사진을 올리고 이대 ‘따먹었다’는 글이 공공연하게 올라오죠. 이대는 정복의 대상이고, 이대 학생들을 ‘걸레’로 만들어야겠다는 얘기가 너무 흔한 거예요. 저도 이번에 이대 시위 기사에 붙는 포털 사이트 댓글을 보며 이대가 이렇게까지 더럽게 취급되는구나 새로 알았어요. ”

‘여혐’ 공포 속에 끝내 익명성 선택

‘느린 민주주의’ 또는 ‘달팽이 민주주의’와 같은 재학생들의 의사결정 과정만큼이나 흥미로운 대목은 이대 재학생과 졸업생의 연대, 즉 언니들의 연대(이지행, ‘이대 본관 점거 시위 리포트’, 2016년 11월)다. 유사한 피해 경험을 공유하고 똘똘 뭉친 여자들의 시위는 여러모로 독특했다. 할랄푸드(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부터 푸드트럭까지 수랏간팀에서 삼시세끼를 챙긴 본관은 ‘이슐리’(이화+애슐리)로 알려졌다. 졸업생이 소독약이랑 청소도구를 들고 가서 청소해주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는 ‘이스코’(이화+세스코)라는 애칭이 붙었다. 퇴근한 졸업생들이 찾아와 재학생과 직업 상담을 한 본관은 저녁마다 ‘본관 경력개발센터’가 됐다. 아이를 데리고 오는 졸업생들을 위한 ‘아가방’까지 있었다. 졸업생들이 다른 일을 하는 동안 재학생들은 아가방에서 선배의 아이를 돌봤다. 학생들은 점거 농성이 이뤄진 본관을 ‘이화+유토피아’를 합한 ‘이토피아’라고 했다.

이대 학생들은 어떤 서열도 없는 수평적 의사결정을 강조했다. 본관에서 모든 학생들은 ‘벗’으로 서로를 불렀다. 이름이나 학번, 학과 등 아무런 신상도 묻지 않았고, 서로 존댓말을 썼다. 내부에서 이런 일을 도맡는 것을 ‘자봉’(자원봉사자)이라고 일렀다. 좀더 본격적으로 깊은 관여를 한 이들은 ‘헤비자봉’이라고 했다. 언론팀, 물품팀, 법률팀, 의료팀, 모니터링팀, 안전팀 등 농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부 팀이 돌아가고 졸업식 행동 TF(태스크포스), 채플 구호 선창 TF, 총시위 TF, 국감 TF 등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조직됐다. 흩어지는 TF도 여럿이었다. 재학생 ㄴ씨는 “군대도 서열문화고 남자들은 서열을 만드는 데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서열을 만들지 않았어요. 팀은 있었지만 팀장은 없었어요.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면 안 되니까 입구에서 지키는 팀이 있었는데, 나 몇 시에 가봐야 하니 교대 좀 해달라고 커뮤니티에 올리면 누군가 나타나서 대신 서주고, 그런 거였어요. 서로 이름은 몰랐죠, 익명이니까.”

1년 전 박근혜 정권을 쓰러뜨린 촛불집회의 주역이던 이대 학생들은 끝내 익명성을 선택했다. 이 기묘한 결론은 이대 시위가 승리해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고 문재인 정권이 등장했지만 도무지 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 사회의 ‘적폐’를 상징한다. ‘여성 혐오’라는 말이 한국 사회의 공론장에 나오기 전부터 이대는 여성 혐오의 대표적인 피해자였다.

여전히 마스크 벗지 못한 학생들

지난 8월10일 서강대와 연세대, 그리고 이대 학생들에게 강의 시간표 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타임테이블’이 갑자기 폐쇄됐다. ‘된장녀’ ‘김치녀’ 등 여성 혐오적 게시물이 일상적으로 올라오는 익명 게시판(놀이터)에 여성 사용자들의 ‘미러링’(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똑같이 남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중국 동포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며 반발을 산 영화 은 애초에 ‘이대 혐오’로 논란이 됐다. 난자 불법 거래를 다루면서 고등학교 학생증을 이대 학생증으로 위조하는 장면이 나오고, “기증자는 집안 사정이 어려운 이화여대생”이라며 “예쁘고 똑똑한 아이를 얻으실 것”이라는 대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대 시위는 결국 승리했는가. 여전히 두꺼운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지 못하는 학생들이 한국 사회에 묻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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