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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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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삶 망가뜨린 8년간 법정 싸움

9차례 재판받은 박철·최옥자씨의 사연…

경찰과 실랑이 ‘불행의 시작’, 귀농 꿈 접고 직장도 잃어
등록 2017-08-22 09:01 수정 2020-05-02 19:28




시민을 위한 법조 개혁

①박철·최옥자 부부의 싸움


검찰 개혁은 새 정부의 주요 화두다. 권력의 입맛에 따른 수사를 해왔다고 비판받는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 수사권 조정, 영장청구권 분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다양한 방안이 쏟아졌다. ‘정치검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며 기회를 잡은 것은 경찰이다. 오랜 숙원이던 수사권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자 경찰은 경찰개혁위원회를 꾸려 ‘인권경찰’ ‘민주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 역시 개혁의 파도를 피할 수 없다. 3월 초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를 축소하라’며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최근 법조 개혁 논의에는 가장 중요한 고리가 빠졌다. 수사와 기소, 재판의 대상이 되는 ‘시민’이다. 은 법조 개혁의 초점을 시민의 권리 보장에 맞춰야 한다는 취지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자기변호노트’팀과 ‘시민을 위한 법조 개혁’ 시리즈를 시작한다.
첫 기사는 지난 8년간 9차례 재판을 받은 박철·최옥자 부부의 사연이다. 부부의 법정 싸움은 수사와 재판이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교과서다. 은 8월8일 경기도 안산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또 재심 사건을 주로 변호해온 박준영 변호사에게 한국의 사법제도가 실패한 이유를 물었다. ‘자기변호노트’팀의 문제의식도 담았다. _편집자
박철(왼쪽)씨와 최옥자씨가 8월8일 경기도 안산의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박철(왼쪽)씨와 최옥자씨가 8월8일 경기도 안산의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8월 2주차 드라마 시청률 2위(닐슨코리아 기준)를 달리는 것은 (KBS)이다. 시청률 19.9%를 기록한 이 드라마의 두 주인공 무궁화와 차태진은 경찰이다. 10.9%로 시청률 6위인 (SBS)에는 검사와 경찰이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경찰, 검사, 판사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뉴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수시로 등장한다. 그래서 박철·최옥자 부부는 더 이상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2009년 초여름부터 8년 동안 부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간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2009년 6월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안산에 살던 박철씨는 한적한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게 꿈이었다. 부인 최옥자씨를 설득했다. 살 만한 곳을 알아보다 충북 충주의 한 농가주택이 눈길을 끌었다. 2008년 이사해 농사일을 배웠다.

공무집행방해 혐의 벌금형 약식기소
경찰이 증거로 제출한 당시 사건 동영상의 한 장면. 경찰은 동영상을 근거로 박철씨가 공무집행방해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화질을 개선한 같은 동영상은 박철씨의 위증 혐의를 벗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박철 제공

경찰이 증거로 제출한 당시 사건 동영상의 한 장면. 경찰은 동영상을 근거로 박철씨가 공무집행방해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화질을 개선한 같은 동영상은 박철씨의 위증 혐의를 벗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박철 제공

박철씨 부부는 전원생활을 즐겼다. 숲해설가 자격증을 따려고 수업도 함께 들었다. 수료식이 있던 2009년 6월27일 부부는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술자리에 참석했다. 박씨는 술을 마셨고 부인 최씨는 마시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 때 부인이 운전대를 잡았다. 귀갓길에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태울 계획이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경찰이 차를 세웠다. 음주 단속이라고 했다. 갑자기 뛰어든 경찰을 보고 깜짝 놀란 박씨는 욕설을 했다. 결국 차 밖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차에서 내린 과정에 대해 박씨와 경찰 쪽의 주장이 엇갈렸다. 부부는 경찰들이 박씨의 귀와 목을 붙잡고 끌어내렸다고 말했고, 경찰은 두 사람이 제 발로 차에서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 뒤부터는 경찰이 찍은 영상이 증거로 남았다. 박씨를 둘러싼 경찰은 세 명이었다. 동영상에서 최씨는 흥분한 남편을 말리고, 아들은 주변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실랑이하던 중 당시 충주경찰서 연수지구대 경장 박아무개씨가 박철씨에게 다가갔다. 박 경장이 갑자기 “아아아아아” 소리를 지르고 팔이 꺾이며 몸을 숙였다. 박철씨가 박 경장의 팔을 꺾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박 경장의 손이 꺾이는 장면을 박철씨의 아들이 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체포해”라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박철씨는 경찰 조사에서 욕설을 한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박 경장의 팔을 꺾었다는 사실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박씨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박철씨는 억울함을 풀겠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2010년 6월23일 1심 재판부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2010년 10월4일 항소심 첫 재판이 열렸다. 박철씨는 에 “판사에게 경찰관들을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하지만 바쁜 경찰관을 (1심에 이어) 또 부르기는 어렵다고 하더라. 대신 판사가 현장에 있던 부인을 부르자고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부부간에 무슨 증언이 되겠냐. 나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여길 테니 경찰을 불러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판사는 검사의 동의를 받아 부인을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박씨는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를 부른다는 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겠다는 뜻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대했다”고 말했다.

부부가 서로의 재판에 증인으로

2010년 10월18일 박철씨의 항소심 재판에 부인 최옥자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당시 재판 기록을 보면 검사는 최씨에게 “피고인(박철씨)이 경찰관의 팔을 비튼 것을 보았나요”라고 묻는다. 최옥자씨는 “그게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안 비틀었나요”라고 묻자 “예”라고 대답했다. “증인은 피고인이 팔을 비트는 것을 못 봤다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에도 “예”라고 답변했다. 검찰은 최씨의 증언이 위증이라며 같은 해 12월28일 최옥자씨를 기소했다. 박철씨가 다음해인 2012년 1월27일 대법원에서 공무집행방해죄로 벌금 200만원을 확정받기 전이었다.

최옥자씨는 당시 공립 유치원 교사였다. 공무원 신분인 최씨에게 재판은 여느 사람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징역형이 선고되면 직업을 잃는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법원은 2011년 4월28일 1심에서 최옥자씨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했다. 판사는 판결문에 “피고인이 유치원생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할 유치원 교사로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점 등에 비추어 그 죄질이 불량”하다고 적었다.

최옥자씨의 항소심에는 박철씨가 증인으로 나섰다. 억울함을 풀고 싶어서였다. 2012년 5월7일 오후 2시 청주지방법원에 증인으로 나선 박철씨는 검사가 “경찰관의 오른팔을 잡아 비튼 사실이 없나” “증인이 팔을 비튼 사실이 없음에도 당시 경찰관이 자작극을 펼친 것이라는 말인가” 등의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박철씨는 증언을 마친 뒤 주차장에 있는 차를 빼 집으로 향했다. 운전 중이던 오후 4시18분 문자메시지가 왔다. 법원을 떠난 지 20분밖에 되지 않았을 때다. “청주지방검찰청 304호 공판 검사실입니다. 5.11(금) 오후 2시에 출석 바랍니다. 이 문자를 받는 즉시 바로 회신 전화 부탁드립니다.” 이날 박철씨가 한 증언이 위증이니 피의자로 조사받아야 한다는 통보였다. 검찰은 최옥자씨의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2년 7월24일 박철씨를 위증 혐의로 기소한다. 세 번째 재판의 시작이다.

최옥자씨는 2012년 12월27일 대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돼 유치원 교사직을 잃었다. 최씨는 “내 사건 때 변호사는 ‘그냥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부인이 남편을 지키려고 거짓진술을 했다고 하면 벌금 100만원 정도밖에 안 나올 것이고, 그러면 신분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남편도 중간에 포기할 성격이 아니고. 변호사한테 그냥 끝까지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마음은 편해지더라고요.”

재판에서 일곱 번 연속 패소

새로 시작된 박철씨의 위증사건 1심 첫 재판은 2012년 9월25일 열렸다. 2014년 4월18일 1심 결과가 나왔다. 벌금 500만원. 재판에서 일곱 번 연속 패소한 셈이다. 부부는 여덟 번째 재판, 즉 박철씨의 위증사건 항소심 재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씨는 “그때 재판부는 달랐다”고 회상했다.

“판사가 검찰에게 한 사건을 가지고 부인을 위증으로 기소하고 또 남편을 위증으로 기소할 수 있냐고 했어요. 편견 없이 우리 사건을 판단해줄 것 같다고 생각했지요.” 경찰이 찍은 동영상 화질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사건 기록도 재검토됐다. 2015년 8월19일 박철씨는 처음으로 “피고인은 무죄”라고 적힌 판결문을 받았다. 이 결정은 2015년 11월26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사건이 일어난 지 꼬박 6년5개월 만이었다.

박철씨 위증사건의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경찰의 진술을 의심했다. 팔이 꺾였다는 박 경장은 사건 당일인 2009년 6월27일 경찰 조사에서 “(박철씨가) 갑자기 대들어 저의 오른팔을 잡아 뒤로 비틀어 땅에 넘어지는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오른팔에 약 10cm 정도 긁히는 상처를 입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2010년 5월26일 박철씨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사건 증인신문에선 “팔을 꺾이고 난 이후에 땅에 넘어졌나요”라는 검사의 질문에 “넘어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증언을 바꿨다. 또 박철씨 위증사건 항소심에서는 “오른팔을 확 꺾었는데 피고인(박철씨)이 그래도 술김에 겁이 나셨는지 확 꺾고 나자마자 팔을 뗀 거예요” “팔이 꺾여서 반 이상 꺾여 돌아가면서 제가 충격이 느껴져서 아프지 않으려고 머리를 숙였습니다”라고 다시 미묘한 진술 변화가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박 경장 증언에 의심이 간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검찰은 경찰 수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는지 판단하기 위해 존재한다. 법원은 검찰이 주장하는 피고인의 범죄 사실 유무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역할을 나눠놓은 것은 서로 견제하라는 취지다. 시민들이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6년 넘도록 이 사건을 의심한 것은 박철씨 위증사건 항소심 재판부 한 곳뿐이다. 박철씨는 “요즘 경찰, 검찰, 사법 개혁에 대해 말이 많다. 서로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처럼 당하면 그들이 다 한패로 보인다”고 말했다.

끔찍한 시간이 이어지던 8년 동안 박씨 부부가 가장 실망한 곳은 법원이었다. 최옥자씨는 “솔직히 사법부는 사건을 공정히 다루고 판단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첫 사건 때 남편의 대법원 판결을 보고 ‘틀렸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법원은 그래도 믿었는데….” 최씨는 지금도 그 점이 가장 아쉽다.

박철씨 위증사건에 무죄가 확정되면서 이 모든 것의 시작인 공무집행방해에 대한 재심도 가능해졌다. 청주지법 충주지원은 4월24일 박씨가 법원을 상대로 낸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다시 재판이 시작된다.

재심 재판부는 누구 손을 들어줄까

‘팔을 꺾었나’를 둘러싼 논란은 재심에서도 이어질 것이다. 박철씨가 팔을 꺾었다고 주장하는 박 경장은 과의 통화에서 “경찰관이 어떻게 팔이 꺾이지도 않았는데 거짓말을 했겠냐. 그 사람이 오른팔로 돌려가지고 (내 팔을) 잡아끌어서 아래에서 위로 올렸다. (하지만) 언론이 경찰관을 매도하는 식으로 보도했고 그걸 (법원에) 제출하니까 재판부에서 내 말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심을 시작하면 그쪽(박철씨) 거짓말이 다 드러날 것이다. 내가 잘못했으면 잘못한 대로, 박철씨가 거짓말했으면 한 대로 다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경장은 재심 재판부에 보내는 의견서에서 “박철 변호인 측의 언론 플레이는 저를 ‘한 귀농 가정을 풍비박산 낸 쓰레기 경찰’로 만들었습니다. 각종 언론사의 취재와 악플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모든 언론들이 저의 사건을 흥미 위주로 다루는 것을 보고 몹시 낙담하고 심지어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이번 재심 결정을 저의 훼손된 명예를 회복할 소중한 기회로 여기고 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면 저도 증인으로 나가 사실대로 성실하게 진술할 작정”이라고 적었다.

양쪽 주장은 여전히 첨예하게 맞선다. 재심 재판부가 누구 손을 들어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 법원의 재판이 이어지면서 박철씨는 오랫동안 가져온 귀농 꿈을 접고 충주를 떠났다. 도저히 그곳에서 살 수 없었다. 최옥자씨는 직장을 잃었다. 재심 결정이 났지만 부부의 망가진 8년의 삶을 책임지는 곳은 없었다.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사과하지 않았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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