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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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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에서 우파단체로

2008년 11월부터 여론조작 활동한 국가정보원의 시험대 ‘알파팀’

국정원이 ‘여론조작 민간조직’ 활용한 방법·목표 보여주는 원형
등록 2017-08-15 05:05 수정 2020-05-02 19:28

국가정보원의 용인술은 노련하고 신중했다. 국정원은 온라인을 통해 우파 청년들의 활동을 지켜본 뒤, 능력이 검증되면 단체 설립을 지시하고 정권을 보위하는 실제 행동을 주문하는 방식으로 우익 성향 청년들을 정권 옹위 활동에 동원했다. 은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의 발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 공판에 제출된 ‘원세훈 녹취록’ 내용, 이 자체적으로 입수한 국정원의 민간인 여론 조작 부대인 ‘알파팀’ 내부 자료를 통해 이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알파팀은 여론 조작만 하진 않았다

는 8월4일 ‘국정원이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인터넷 댓글 여론 조작을 위해 민간인으로 구성된 30개 팀을 운영하며 인건비로 한 달에 2억5천만~3억원을 지급했다’는 사실을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국정원은 이 제1158호(4월24일치) 표지이야기로 보도한 ‘알파팀’의 존재와 비용 지급을 인정했다. 이에 앞서 은 지난 4월 국정원이 알파팀이라는 민간 댓글부대를 운영하며 온라인에 올리는 글 한 건당 2만5천원 정도의 대가를 지급해가며 전방위적 사이버 ‘여론전’을 펼쳐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국정원의 알파팀 활용은 댓글 여론 조작에 그치지 않았다. 국정원은 이를 넘어 알파팀 같은 우파단체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우파의 철학과 가치를 내세우는 단체 설립을 배후에서 추진하기도 했다.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복구해 7월2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 공판에 제출한 ‘원세훈 녹취록’을 보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09년 6월19일 “보수단체에 대한 운영비 지원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참여정부에서 중단됐던 보수단체 지원을 “정권도 교체된 마당”이니 재개하란 뜻이었다. 원 전 원장의 이 발언과 이 입수한 알파팀 내부 자료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움직임이 포착된다. 원 전 원장의 우파단체 지원 지시가 나오기 한 달 전인 2009년 5월께 알파팀이 ‘우파단체 소개 시리즈’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알파팀 팀원은 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정황상 (이 보고서는) 국정원에 보고됐을 것이다. 당시 알파팀 리더로 활동하던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가 이후 ‘국정원 직원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들었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알파팀이 작성한 총 32쪽 분량의 보고서를 보면,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교과서포럼, 자유시민연대, 바른사회시민회의, 시대정신 등 17개 우파단체의 △주요 활동 △현황 △주요 이슈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 등이 담겨 있다. 또 우파단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주요 활동 이슈로 △역사 교과서 개정 △좌파 코드 법조계 인적 쇄신 △(노무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양보 문제 추궁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반대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해체 △북한 실상 알리기 운동 △녹색성장 △대북 송금 의혹 규명 등을 열거했다. 그와 함께 각 단체 주요 인사들의 명단도 언급했다. 한 예로, 이명박 정권 시절 우파 교과서 집필을 주도한 교과서포럼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1945년 이후 현대사 부분을 새로 편집 보강해 대한민국은 잘못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중략) 선진화의 새로운 과제를 맞고 있는 나라임을 서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 뒤, 주요 멤버로 “박효종(서울대 정치학), 차상철(충남대 서양사), 이영훈(서울대 경제학) 교수가 공동대표로 포진”하고 있으며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기파랑)를 출간했다”고 정리했다.

당시 알파팀에서 활동한 팀원 ㄱ씨는 과 인터뷰에서 보고서를 작성한 경위에 대해 “조갑제닷컴에서 발행하는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회단체의 정보를 취합했다. 이후 김성욱 대표가 그걸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원세훈 전 원장의 공판 과정에서 공개된 녹취록을 보며, 국정원이 보수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현황 파악 목적으로 그 자료가 사용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파팀의 활동은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정한 조사 시기를 살짝 벗어나 있다.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2009년 5월부터의 활동을 표적으로 하는 데 견줘 알파팀의 활동은 2008년 12월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국정원 적폐청산 TF, 2008년 11월 활동부터 조사해야

이 확보한 알파팀 내부 자료를 보면, 실제 활동 시작 시기를 짐작하게 하는 자료는 차고 넘친다. 알파팀 리더인 김성욱 대표는 2008년 12월3일 알파팀 초기에 활동한 멤버 9명에게 ‘이름, 인터넷 주특기, 계좌번호’ 등이 포함된 신상 관련 자료를 요구하며 ‘벽을 넘어 전선으로’란 제목의 문건을 배포했다. 알파팀의 활동 방향을 정리한 문건이다. 문건에는 알파팀의 ‘비전, 목적, 계획, 전술’ 등이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다.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조사 시기를 2008년 하반기로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이 문건에서 흥미로운 점은 시기만이 아니다. 자료를 보면, 알파팀은 김성욱 대표가 운영했던 뉴스 사이트 리버티헤럴드를 ‘우파의 ’로 구축하고 이후 ‘한국판 헤리티지재단(미국의 우파 싱크탱크)’으로 발전시키려 했다. 이 계획은 국정원이 보수단체 지원으로 ‘우파 여론’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우파운동 활성화를 꾀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국정원이 알파팀에 ‘단체 설립’을 지시한 시점은 원세훈 전 원장의 ‘우파단체 지원’ 발언이 있기 3개월 전인 2009년 3월27일이었다. 김성욱 대표가 팀원들에게 2009년 3월27일 오후 1시40분에 보낸 전자우편을 보면 “오늘 학교(국정원을 뜻하는 알파팀 내부의 은어) 측과 협의했다. 임의단체를 설립한 뒤 임의단체 명의로 매월 좌익 추적 소식지를 제작하면 (국정원이) 용역 형태로 결제할 것”이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김성욱 대표는 “임의단체가 1인시위, 기자회견 등 인력 동원에 나설 때도 (국정원이) 지원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은 알파팀 같은 우파 조직을 1차 댓글부대로 활용한 뒤, 2차는 공식 단체를 설립해 정권 보위 활동에 나서게 하는 등 양지로 끌어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금껏 접촉한 알파팀원들 역시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알파팀원이던 ㄱ씨는 “알파팀은 국정원이 하려던 ‘여론 조작, 댓글 공작’의 원형적 모델이자 테스트베드였다”고 했고 또 다른 알파팀원 ㄴ씨 역시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2009년 5월부터 활동한 내역을 밝히겠다고 하는데, 알파팀의 최초 규합 시기인 2008년 11월부터 조사가 왜 시작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했다.

김성욱 대표는 팀원들에게 여론 조작의 필요성을 말하며 여러 차례 ‘국정원과의 협력을 통한 정치 세력화’를 강조했다. 댓글 달기를 통한 여론 조작이 당장은 큰 성과가 없는 소모적 활동으로 보이겠지만, 국정원이 알파팀 활동을 뒤에서 지원하고 있음을 밝혀 사기를 유지하고 앞으로의 활동 비전을 제시한 셈이다. 국정원 입장에선 알파팀을 통해 본격적인 여론 조작과 정권 보위 활동의 과정을 시험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거리로 쏟아져나온 우익단체, 국정원 작품인가

원세훈 전 원장은 2009년 10월 우파단체 지원을 넘어 “우리가 건전한 단체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알파팀이 국정원의 지원 아래 만든 단체 한국자유연합이 설립 허가를 받은 날이 2009년 9월29일이었다. 알파팀은 국정원이 벌인 여론 조작 작업의 시작점이자 국정원의 최종 목표를 짐작하게 하는 ‘테스트베드’였다.

당시 국정원의 계획이 얼마나 현실화됐을지 알 수는 없지만, 이후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최순실 게이트 등 정권에 위협이 되는 중요한 사회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여러 보수·우익 단체가 대거 거리로 나가 과격한 정권 보위 활동을 벌였다.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국정원의 여론조작 부대의 ‘원형’이었던 알파팀의 활동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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