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걸리는’ 것이고, 감염은 ‘되는’ 것이다. 주체의 의지와 무관하다. 그래서 대체로 수동형 동사와 어우러진다. 어떤 발병은 나와 무관하고 준비할 시간도 없지만, 순식간에 한 사람의 인생에 견디기 힘든 절망으로 닥친다.
아무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그 절망은 온전히 자기혐오가 된다. 나도 나를 혐오하는데 사회가 나를 혐오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솟아오르는 분노,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침전을 거친 뒤에야 겨우 병이 지각된다. 그 지각마저 때때로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병의 경우 그 병에 걸린 사람이 윤리적으로 오염된 것처럼 치부된다. 그 사회적 반응은 오롯이 개인의 고통으로 각인된다.
‘불도장’ 찍힌 ‘운수 좋은 날’낙인(烙印)은 불도장이다. 제 살을 파내지 않으면 지워지지 않는다. 설령 파낸들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욕된 불명예가 된다. 제아무리 발버둥쳐 평온을 찾으려 해도 병에 걸리기 전의 인격으로 살아가긴 어렵다.
어느 날 병에 ‘걸린’ 김현철(46·가명)씨도 그 낙인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그는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이다. 사람들이 흔히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라고 부르는 ‘죽음의 병’이다.
“몸이 조금 안 좋았지만 평소와 크게 다르진 않은 날”이었다. 의사는 처음에 “폐렴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원인균이 잘 찾아지지 않았다. 입원을 했고, 의료진은 여러 검사를 했다. 발병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조금은 불안했다. ‘동성애자라고 말해야 하나’ 망설였다. 물론 그때부터 생각은 했다. ‘혹시 내가 HIV에 감염된 건 아닐까.’
불행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입원실에 누워 있는데 레지던트가 조용히 불렀다. 복도로 나가는 짧은 순간 직감했다. “HIV에 감염된 것 같습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 검사를 더 해보겠습니다.” 성소수자였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유지해온 삶의 궤적은 그 한마디로 완전히 틀어졌다.
훗날 알고 보니, 감염 사실을 비교적 점잖게(!) 전달받은 것은 그나마 행운이었다. HIV 감염인 중 상당수는 감염 사실을 통보받는 과정에서 이미 ‘사람됨’을 잃어버린다. 한 HIV 감염인은 간호사들이 몰려와 침대를 끌고 가더니 중환자실 깊숙한 창고 같은 데 집어넣곤 “외국에 나갔다 온 적이 있느냐”고 취조하듯 따져 물었다. 정신이 통째로 멍해진 상황에서 “당신 에이즈 걸렸다”는 통보를 받고 감금됐다. 하룻밤 넘게 홀로 방치됐다.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죽어야 한다’는 생각만 반복하다가 결국 숟가락을 입안으로 찔러넣었다. 감염 확정 판정을 받고 10년이 지난 지금, HIV보다 그를 더 괴롭히는 건 그날 찔러넣은 숟가락이 남긴 성대의 상흔이다.
1980년대 HIV가 전세계로 확산된 이래 2015년을 기준으로 전세계에 약 3670만 명의 HIV 감염인이 살고 있다(유엔에이즈(UNAIDS), 2016). 한국에선 1985년 첫 감염인이 확인된 뒤 1만여 명이 HIV 감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질병관리본부, 2015). 한국의 HIV 유병률은 약 1만 명당 2명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발생 빈도만 놓고 보면 일종의 희귀질환이다.
“그럼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일반인들은 잘 구별하지 않지만 모든 HIV 감염인이 에이즈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HIV가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에이즈는 HIV 감염이 관리되지 않고 지속돼 면역력이 극단적으로 약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여러 이유로 공식 통계가 잡히지 않지만 “항바이러스 치료의 보편화에 따라 HIV 감염 이후 에이즈 환자로 악화돼 사망하는 경우는 급격히 감소”했다.
지난 30년간 HIV/에이즈 치료는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누군가는 “에이즈는 이미 정복됐다”고 말하고, 유엔에이즈 공식 기구는 “HIV와 에이즈를 더 이상 붙여 쓰지 말고 분리해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1995년 여러 약제를 병용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고 내성을 방지하는 칵테일 요법의 항바이러스 치료가 도입됐다. 이후 HIV에 감염되더라도 질병 진행 속도는 획기적으로 늦춰졌다. 전문가들은 20살 HIV 감염인이 지속적인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을 경우 70대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평균 기대수명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다. HIV 감염인에게 행해지는 항바이러스 치료가 대단한 것도 아니다. 꾸준히 약만 복용하면 된다. 처음엔 서너 알로 시작했다가, 바이러스 수치가 안정되면 하루 한 알만 먹어도 된다. 어떤 의미에선 당뇨병이나 투석보다 관리가 수월하다.
이런 사실은 적극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문지식을 갖춘 의료인들조차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에이즈가 인간의 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인지됐던 30년 전의 극단적인 부정 평가에 사회 인식이 여전히 잠식돼 있다. 개인의 관점에서야 HIV/에이즈 감염이 너무 위험한 문제이므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과학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는 달라야 한다. 병의 공포가 객관적이고 실증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질환에 대한 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 노력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HIV 감염인에 대한 치료 거부’는 매우 흔하게 발생한다. 사회적 차별과 배제는 낙인으로 작동하고, 감염인들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HIV 감염인 의료차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HIV 감염인의 40.5%가 스케일링 등 기본적인 치과 치료를 받는 데 별도의 기구나 공간을 사용‘당했다’. 감염인 중 26.4%는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약속된 수술을 거부당하는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 서울 시내 한 유명 대학병원은 “특수 장갑이 없어 수술이 어렵다”고 했고, 치과 치료를 하며 치료용 의자를 김장 비닐로 칭칭 감싼 병원까지 있었다. HIV/에이즈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더디 전진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다.
김현철씨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이성애자들보다 HIV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지만 그 수준은 “치료약이 개발됐다”는 것을 아는 정도였다. 막상 자신의 일로 닥치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덮쳐왔다. “공포심이나 수치심은 나중 문제”였고 생에 대한 고민만 절박했다. 의사에게 다짜고짜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의사는 의외로 간단히 대답했다. “그럼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 한마디는 어쩌면 지금까지 현철씨 삶이 파괴되지 않게 해준 결정적 버팀목이었다.
주사 테이프 위에 적힌 에.이.즈.당시 현철씨의 바이러스 면역(viral load) 수치는 6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의 수치는 1000이 넘기도 한다. “절망적인 수치였다.” 하지만 의사는 “면역수치가 0인 사람도 약만 잘 먹으면 곧 회복된다”고 현철씨를 다독였다. 의사가 환자에게 ‘나을 수 있다’는 말을 건네는 평범한 풍경일 수 있지만, 이는 HIV 감염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출발이다.
감염 확진 판정 순간, HIV 감염인은 가장 취약한 정서적 상태에 빠진다. 이때 의료인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의료인이 보여주는 작은 인정과 지지의 표현은 HIV 감염인이 ‘정서적 지지 체계’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감염 사실을 접한 의료인이 비전문적이고 비인격적인 태도를 보였을 때, 감염인은 ‘자살 시도’ 등 치명적 선택을 하는 충동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HIV 감염인들은 삶의 여러 경로에서 낙인에 따른 차별과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감염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 제일 밑바닥의 부정적 존재”가 되는 비하 감정의 반복적 연속이다. 현철씨는 HIV 확진 판정을 받기 전 광고회사에서 일했다. 나름 굴곡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확진 판정 이후 회사를 다니지 않고 홀로 글 쓰는 일을 한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이유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확진 판정을 받는 순간 조건반사적으로 ‘회사에 계속 다녀도 될까’ 생각이 들었다. HIV 감염 뒤 포기한 “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다”.
감염 사실은 가족은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었다. 다른 이유로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행여 누가 병문안을 올까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겐 부산에 입원했다고 하고, 부산에 있는 가족에겐 서울에서 잘 지낸다”고 했다. 한 병원에선 주삿바늘을 꽂은 테이프 위에 노골적으로 ‘에이즈’라고 써놓았다. “이게 뭐냐”고 항의하자 귀찮다는 투로 “떼어드릴게요” 할 뿐이었다.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인권침해라는 점에 무지할 정도로 너무 무감들 하다. 이런 현실에서 ‘보편적 주의 지침’ 같은 의료 인권을 말하는 건 무색했다.
“샤워는 나가서 하면 안 되니?”병원 내 차별은 이뿐만 아니었다. HIV 환자와 접촉면이 상대적으로 큰 감염내과 의료진은 덜하지만 다른 의료진은 그렇지 않았다. 수면제 처방을 하러 온 신경정신과 의사는 흡사 벌꿀을 캐러 온 사람처럼 나타났다. “장갑에 고글, 마스크까지 중무장하고 나타난 의사”를 보자 수치심보다 화가 앞섰다. 엇비슷한 이유로 몇 번이나 종합병원에서조차 협진 치료를 포기했다. 언제까지나 “감염내과 담당의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두렵다. 간병인을 두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일반병동에 있을 때는 그나마 간병인을 둘 수 있었지만 감염내과 특수병동으로 옮기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HIV 감염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포기하게 된다. 현철씨는 당시 함께 살던 파트너에게 간병을 부탁할 수 있어 운이 좋았다.
개인마다 편차는 있지만 HIV 감염인들은 공통적으로 확진 판정 이후 삶의 낙차를 경험한다. 아예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와 그나마 정서적 안전망에 걸려 딛고 서는 경우가 다를 뿐이다. 한국 HIV 낙인지표조사 공동기획단(연구책임자 서보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이 7월 내놓은 ‘한국 HIV낙인지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감염인 104명 가운데 82명이 누군가에게 감염 사실을 알렸다. 22명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누구에게 알렸냐’는 질문에 애인(40%)이 가장 많았고 가족(28%), 인터넷 커뮤니티(10%) 순이었다. 가족조차 쉽게 지지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가족에게 감염 사실을 알렸던 한 HIV 감염인은 일상적 접촉으로 HIV가 전염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건강 유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는 어머니가 “내가 샤워를 하면 화장실 전체를 다 닦고 먹은 식기를 다 삶더니, 어느 날 ‘그래도 샤워는 나가서 하고 오면 안 되니?’라고 물을 때 ‘확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장 의지하고 싶은 존재로부터 ‘더러운’ ‘격리해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경험은 삶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누군가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는 일은 HIV 감염인에게 중요한 요소다. 정서적 지지를 받는 HIV 감염인은 병을 훨씬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감염인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HIV/에이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타인의 홀대로 현실화되는 과정을 통해 내재적 낙인”이 구체화된다. 이를 통해 차별에 대항할 힘이 되는 정서적 자원이 사라지게 된다.
숨기지 않고 무겁지 않게 사는 꿈정서적 안정만 이뤄지면 HIV는 예방 가능한 질병이다. 2006년 치료비 후불제 프로그램 시행 뒤 국내 감염인들은 약값을 본인이 먼저 부담하면 나중에 환급받을 수 있게 됐다. 약값은 개인차가 있지만 “분기별로 40여만원 수준”이다. 여전히 수중에 현금이 없는 빈곤계층에겐 경제적 부담이 되는 액수지만 그나마 예전보다 나아졌다. 2006년 이전에는 본인부담금을 감당할 수 없는 감염인은 면역력 수치가 심각해질 때까지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흔했고 이는 감염 확산으로 이어졌다. 2006년 이전과 비교할 때 분명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약을 복용할 환경과 의지만 있다면 HIV는 충분히 사회적으로 관리 가능한 질병이 됐다.
현철씨는 확진 판정 이후 7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건강한 상태고, 심리적으로도 많이 안정됐다.” 처음엔 하루 세 알씩 먹던 약을 두 알로 줄이고 최근엔 한 알만 먹는다. 현철씨는 신체적 문제보다 심리적 고립감이 더 어려웠다. “일반 친구나 비감염인 동성애자 친구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는데, 같은 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눈 게 큰 도움이 됐다.” 동성애자들조차 HIV 감염 얘기를 꺼리는 현실에서 이젠 “같은 감염인을 만나 애인도 만들고 마음속에 뭔가 숨기지 않고 무겁지 않게 살아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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