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박정희 넘어 다당제와 시민참여로

박정희 세대’가 말하는 ‘촛불 대선과 그 이후’…

“다양한 의사와 이해를 담을 수 있도록 선거법부터 고쳐야”
등록 2017-05-09 14:22 수정 2020-05-02 19:28
박정희.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삶에 그만큼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름이 있을까. 촛불과 탄핵을 지나면서 많은 사람이 ‘박정희 시대의 극복’이라는 희망을 감지한다. 저항과 폭력으로 점철된 민주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개막도 기대한다. 국민교육헌장, 새마을운동, 유신을 배우며 성장했지만 대학 입학 뒤 박정희의 유산에 저항했던 ‘박정희 세대’가 촛불 대선과 그 이후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촛불집회에도 함께 참여한 50대 중·후반 대학 동기들, ‘정담80’이란 산행 모임 친구들이다. ‘촛불 대선’을 코앞에 둔 5월1일 저녁 서울 구기동 황헌만 사진작가의 작업실에서 ‘박정희 패러다임은 막을 내리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_편집자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자락의 구석진 작업실. ‘촛불 대선과 그 이후’라는 무거운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 황헌만(69)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 동영상 두 편을 감상했다. 태극기 지지자들의 폭발하는 울분과 촛불 시민들의 판타지 같은 축제의 느낌을 동시에 접할 수 있었다. 탄핵이 가결되던 그날 장면에선 순간순간 감탄사가 새나왔다. 동영상 제작이 처음이라는 황 작가는 “오늘 처음 작품을 공개하는 것이다. 양극단의 두 집단을 촬영하면서 두려움을 많이 느꼈고 지금도 두렵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역사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 내 소명”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시대, 한번에 몰락하진 않을 것

1980년 대학에 입학한 ‘박정희 세대’들은 지난 촛불집회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박정희 시대’가 저문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박정희 시대가 끝났다고 속단하긴 이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박정희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미래가 또렷이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15% 정도 얻는다면 향후 정치 지형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문선유(중견기업 간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15% 정도 얻는다면 향후 정치 지형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문선유(중견기업 간부)

문선유  박정희 시대엔 민주주의 하면 반공이었다. 지금도 걸핏하면 ‘종북 좌파’라고 딱지 붙이고 동조하는 사람이 (탄핵 반대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보면) 20%는 되는 것 같다. 그들이 품은 민주주의는 여전히 반공민주주의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패러다임이 종말을 맞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우리가 대학 시절에 추구하던 민주주의를 ‘반독재 민주주의’라 할 때, 지금의 민주주의가 어떤 민주주의인지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겠다.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차단하고 왜곡한다는 의견도 있고, 그래서 직접민주주의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윤정수  우리 또래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두 유형이다. 첫째는 박근혜에 대해 분노하고 한탄하는 사람, 둘째는 언론 보도가 잘못됐다고 적개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 둘의 비율이 반반인 것 같다. 박정희 패러다임이 무너졌다면 홍준표가 저렇게 올라갈 수 없다. 충분한 정보를 주면 사람들이 생각을 바꿀 거라 봤는데 그게 아니더라. 우리 윗세대인 60~70대에게 박정희는 체질화된 소신이고 정치적 헤게모니인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성이 뿌리 깊다. ‘우리 속의 박정희’는 서서히 소멸되지, 한번에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기동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박근혜의 몰락이지, 박정희 시대의 몰락은 아니다. 촛불 시민들이 가장 분노한 것은 박정희식 리더십이 아니라 박근혜의 무능이다. 알고 보니 최순실한테 놀아나고, 모든 것을 물어보고, 얼굴이나 고치고. 그래서 불신과 분노가 폭발한 거다. 박정희 시대는 반공과 성장을 이념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으로 다른 가치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며 국민과 나라를 나라를 이끌어왔다. 혹여 다음 정권이 또 죽을 쑨다면? 박정희 리더십이 다시 일어설 토양은 아직 남아 있다.

천낙붕  박근혜의 탄핵은 예상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8 대 0 전원일치 결정이 나온 것은 정말 의외였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브레인들이 모두 구속된 게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앞으로 보수가 득세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박정희 시대 같은) 옛날로 되돌아가는 대반동은 없을 거란 믿음이 있다. 1987년 민주화 때 쿠데타는 없을 거란 믿음이 생겼던 것처럼.

“개헌을 하든, 다당제와 결선투표제가 자리를 잡든, 확실한 정치제도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유종오(회계사)

“개헌을 하든, 다당제와 결선투표제가 자리를 잡든, 확실한 정치제도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유종오(회계사)

유종오  어떤 국가 체제에서도 무능한 정권은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박근혜는 80%의 압도적 다수가 떠났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다. 무능하고 부패하고 허깨비 노릇만 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패러다임이 무너졌다고 하려면 그다음이 있어야 한다. 개헌을 하든, 다당제와 결선투표제가 자리를 잡든, 확실한 정치제도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시민들의 요구는 다양하게 표출되는데, 그것을 담는 그릇은 아직도 네모 아니면 세모밖에 없다. 될 사람 찍어주자는 식의 투표 문화가 만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상현  다당제로 가야 하지만, 정치권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게 우리 안에 있는 박정희 패러다임이다. 지금 시대는 영웅이 필요한 게 아니다. 지방자치와 주민참여로 가야 한다. 이걸 몇몇한테 의존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먹고사는 데서 자유로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보듬어야 할 전쟁 반공 세대

태극기집회 참석자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미래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는 데 대체로 공감이 이뤄졌다. 1980년 이후의 분열과 갈등을 아프게 겪은 세대의 소망이고 반성일 것이다.

정기동  어느 나라나 국가주의 성향이 있지만, 우리는 좀 유별나다. 국가와 민족을 향한 열정, 애국심이 아주 강하다. 거기에 또 반공이란 게 있다. 축구도 국가대표팀 경기만 본다. 애국심이 불붙는다. 여기엔 긍정적, 부정적인 양면이 있다. 황우석을 떠받드는 건 부정적이라 할 것이고, 2002년 월드컵 열풍은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있지만 그래도 긍정적 면이 더 크다고 본다. 촛불은 긍정적 열정이 표출된 것이다. 한반도가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다보니 애국심이 더 뜨거운 것 같다. 건강한 민주주의가 잘 작동되지 못하면 언제든지 한쪽으로 쏠리는 민족주의 열풍이 몰아칠 수 있다.

박종덕  촛불 국면에서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다. 촛불 시민이 야당들을 끌고 가면서 간신히 여기까지 왔다. 상대적으로 촛불에 앞장섰던 이재명과 박원순 같은 정치인들은 본선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그 과실은 문재인과 안철수 차지가 되고 있다.

유종오  그런 점에서 촛불의 요구는 이미 실현됐다. 박근혜 탄핵과 구속, 그거 하나였던 것 아닌가. 실제로 촛불에 나섰던 시민들의 정치적 요구는 매우 다양하다. 홍준표 지지자들을 보자. 박근혜한테는 실망했지만 문재인은 빨갱이라서 안 된다고 한다. 그들 또한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할 분단 이후 전쟁 반공 세대다. 정치권이 나서니까 페이스북에서 ‘죽 쒀서 개 주냐’고 욕하던데, ‘죽 많이 쒀서 개 주면 안 되느냐’고 댓글을 단 적이 있다. 나는 오히려 촛불에서 정치권의 구실이 없었던 점을 돌아보고 싶다. 이제 간신히 탄핵 하나 했다. 촛불의 진정한 요구는 직접민주주의를 진전시키라는 것 아닌가. 그러자면 국민소환, 시민의회, 입법청원을 제도화해야 한다. 의회에 맡겨야 할 일이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풀려야 소수 정당이 클 수 있다.” -천낙붕(변호사)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풀려야 소수 정당이 클 수 있다.” -천낙붕(변호사)

천낙붕  태극기집회도 가봤다. 분위기가 자연스럽고 마음이 불편하지 않더라. 텔레비전에서 볼 때는 무서운 느낌이 들었는데, 현장 분위기는 상당히 달랐다. 촛불과 태극기가 서로를 이상한 집단이라고 관념적으로 대하는 것 같다.

김상현  에이, 나는 무섭더라.

윤정수  촛불과 태극기로 대표되는 진영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제는 극복할 길을 찾아야 한다. 진영 간의 조화로운 공영을 도모해야 한다. 그래야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든 뭐든 할 수 있지 않겠나. 한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또 무조건 반대하고 물고 늘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유종오  우리 50대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정서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매개자 구실을 하는 세대라고 본다. 양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중재자 역할을 하되 현재의 청년, 비정규직, 사회적 약자가 자기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실어줘야 한다.

박종덕  우리가 대학에 입학한 1980년에 민주화의 봄이 잠깐 열렸다. 그러나 다시 전두환이 정권을 잡았고, 엄청난 시위와 투쟁을 겪으면서 1987년에야 직선제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 7년이 걸렸다. 그런데 지금은 불과 몇 개월 만에 박근혜를 끌어내렸다. 30년 전과 차이는 뭘까.

문재인에 대한 기대와 우려

촛불 대선 이야기로 넘어가자, 대선 1강 체제를 굳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에 대해서는 합리적 보수 세력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하면서도 꽉 막힌 안보관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이 나왔다.

유종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4월29일치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부까지는 공직을 임명할 때 먼저 능력이 있느냐를 본 다음 내 편이냐를 따졌는데, 노무현 정부 때 그게 깨지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엉망이 됐다고 말하는 걸 봤다. 문재인은 성공하지 못한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한 사람이다. 복잡한 정치적 변수에 대응하는 유연성과 타협에 약하다.

문선유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15% 정도 얻는다면 향후 정치 지형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문 후보에 대해 ‘가장 준비돼 있다’고 말하지만 준비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때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박근혜를 끌어내렸다. 30년 전과 차이는 뭘까.” -박종덕(부동산정보회사 대표)

“불과 몇 개월 만에 박근혜를 끌어내렸다. 30년 전과 차이는 뭘까.” -박종덕(부동산정보회사 대표)

박종덕  문재인 후보와 가까운 사람들한테 그의 인간성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운동권에서도, 고시 공부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두루 좋게 평가받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문재인은 어떨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 대중 앞에서 이야기할 때, 대통령 되면 이걸 꼭 하겠다는 게 가슴으로 잘 안 느껴지더라. 그게 안타깝다.

유종오  그런 점에서는 심상정이지.

천낙붕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권력의지를 갖게 된 사람이다. 지금은 대통령 하는 게 운명을 넘어 소명이라고 하는데, 소명이란 게 주어지는 것이 아닐 텐데….

정기동  문재인 후보에게 긍적적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세상은 천천히 바뀌는 법이다. 시민혁명으로 바로 정권이 바뀐 사례로는 이번이 가장 강력하다. 4·19혁명 때와도 다르고, 1987년 민주화 때는 정권 교체도 못했다. 그 동력을 안고 출범하는 정부다. 문 후보는 노무현의 장점이 없지만 단점도 없는 사람이다. 결기는 노무현에 미치지 못하나 촛불의 동력과 본인의 통합력으로 당면한 과제들을 피하지 않고 맞서 가리라 본다.

“촛불과 태극기로 대표되는 진영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제는 조화로운 공영을 도모해야 한다.” -윤정수(중소기업 대표)

“촛불과 태극기로 대표되는 진영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제는 조화로운 공영을 도모해야 한다.” -윤정수(중소기업 대표)

윤정수  문 후보에겐 큰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문재인한테 비판적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장점을 기대할 수도 있다. 노무현이 낭만과객이라면 문재인은 무사라는 느낌이 든다. 뭘 좀 안다고 어정쩡하게 고집하는 사람은 아닐 게다.

정기동  바른정당이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올 때 참 잘됐다 생각했다. 장차 중심적인 보수 세력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했다. 유승민이란 사람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합리적이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선거토론회에서 안보 이야기를 할 때 답답했다. 우리한테 안보는 뭐냐. 평화의 보장이다. 종전 이후 60년 동안 민주정부 10년보다 더 평화가 보장된 시기가 있었나? 수십년 집권한 보수세력이 평화를 위해 뭘 한게 있는지, 염치도 없고 코믹하기까지 했다. 다른 문제에선 합리적인 사람이 안보 문제는 왜 저렇게 이야기할까. 바른정당이 안보 문제에서 같은 생각이라면 지금보다 외연이 넓어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을 주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왜 바른정당을 찍겠나, 자유한국당 찍지.

개헌보다 선거법 개정 더 어려울 것

다양한 의사와 이해를 담을 수 있도록 선거법부터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정치에 너무 기대를 걸지 말고, 공유경제를 열어가는 젊은이를 격려하고, 우리 스스로 통합의 효소가 되자는 ‘세대공헌론’도 나왔다.

“유승민이란 사람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합리적이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안보 이야기를 할 땐 답답했다.” -정기동(변호사)

“유승민이란 사람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합리적이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안보 이야기를 할 땐 답답했다.” -정기동(변호사)

정기동  개헌을 얘기하는데, 선거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지금의 소선구제는 1987년 직선제 이후 소수 야당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적 카드로 김대중이 관철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긍정적 역할을 충분히 했다. 이제 30년이 흘렀다. 소선구제는 더 이상 다양한 세력을 대변하지 못한다.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문선유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다당제가 정착돼야 한다. (개헌보다) 대선거구제나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급선무라는데 동감한다. 비례대표를 고려하면 국회 의석을 500석까지 늘리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다.

윤정수 ·정기동 헌법보다 선거법을 바꾸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웃음)

유종오  국회 의석 늘리기보다 제대로 구실하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되는지, 평가를 먼저 해봤으면 좋겠다. 비정규직이나 환경, 청년, 보건의료, 국제 문제 등에 대해 입법활동을 잘하는지 전문가들이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환경 자체가 미비하다. 정치인들에 대한 사상적 검열도 여전하다. 심상정조차 자기 주장을 스스로 검증하는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천낙붕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풀려야 소수 정당이 클 수 있다. 기득권 보수 정당이 이들의 성장을 기를 쓰고 막는다. 1987년 민주화 때는 직선제 외에 다른 것은 이야기하지 말자고 했다. 촛불 광장에서도 박근혜 퇴진에만 집중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문제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게 한계이고 그 이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앞으로의 과제다.

“정치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주위를 돌아봤으면 한다. 젊은 친구들은 공유경제를 이야기하지 않은가.” -김상현(협동조합 이사장·사진작가)

“정치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주위를 돌아봤으면 한다. 젊은 친구들은 공유경제를 이야기하지 않은가.” -김상현(협동조합 이사장·사진작가)

김상현  정치판의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주위를 먼저 돌아봤으면 한다. 젊은 친구들은 대놓고 공유경제를 이야기하지 않은가. (황헌만 작가 동영상에서) 촛불 광장에서 벌어진 멋진 축제를 봤지만, 이제 우리 머리에선 그런 것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태극기집회가 우리와 가깝지. (웃음) 지금 협동조합이랍시고 쥐꼬리만 한 조직을 끌고 가는데 맨날 쌈박질만 하고 있다.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게 책상 위치 하나 바꾸기 힘들더란 거지. 그런 속에선 타협이 있을 수밖에 없고 사람을 껴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소신과 원칙을 꾸준히 지키고 인내하는 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상 물정 다 겪어본 우리 같은 사람이 작든 크든 통합의 효소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살 만큼 살았으니 이 사회를 낫게 만드는 일에 작은 헌신이라도 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이게 무슨 법과 제도만으로 해결되겠나.

젊은 세대에게 하면 안 되는 말

친구들의 방담이 끝난 뒤 정기동이 페이스북에 띄운 ‘우리 세대론’을 보내왔다. 요약해서 싣는다.

나는 오래전부터 우리 세대가 고조선 이래 가장 행운의 세대라고 생각해왔다.

1960년생인 나보다 5년 위 세대는 어린 시절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진 학교에서 옥수수빵을 배급받았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밥 세끼를 꼬박꼬박 먹기 시작한 세대다. 대학을 졸업해서는 198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폭발적인 혜택을 누렸다. 정치적 폭압기에 청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래도 민주화의 힘이 축적되면서 주눅 들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우리 다음 세대는 어떤가? 경제도 기술도 더 발달했지만 그만큼 행복해졌는가? 열심히 노력하고도 서른이 되도록 자기 밥벌이 찾는 일이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지금 세상은 윗세대와 내 세대의 욕망이 만든 세상이다. 그 욕망을 제어하지 않고서, 우리가 세상 사는 방식을 함께 바꾸지 않고서, 다음 세대가 지금보다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우리 세대가 누릴 것 다 누린 역사상 가장 행운의 세대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는 우리와 다른 세상을 만들어갈 것으로 믿는다. 지난겨울 광장에서 보았던 수많은 젊은이가 다 함께 지혜를 모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낼 것을 믿는다. 그래서 더 행복한 세대가 되길, 그런 세상을 자기들 손으로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내 세대한테 두 가지 다짐을 권유한다. 나 스스로도 다짐한다. 아이들한테 절대 이런 표현을 하지 말자.

1. “우리 때는 말이야~.”

2. “요새 젊은 애들은 말이야~.”

서울대  동기생들의  산행   모임  ‘정담80’


80년  서울의  봄  함께한  벗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정담80’이란 산행 모임을 시작했다. 1980년 서울대 입학 동기 10여 명이 회원이다.
처음 모임을 제안한 정기동이 말했다. “대통령이란 자는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이게 아니다 싶은데도 이야기할 데는 없고, 우리가 서로 외로울 때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정담’이란 모임을 시작했던 게지.”
그 뒤로 매달 한 차례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10명 정도 모이는 ‘대성황’을 이룬다. 각자 고향의 산을 찾아가는 1박2일 순례도 즐겁다. 지난 4월에는 대학교수 친구의 명강의에 푹 빠져들기도 했다.
정담80의 특징은 특정 과나 동아리 출신이 아니라 사회대, 인문대, 법대 출신이 두루 섞인 비평균적 모임이란 점이다. 굳이 공통점을 찾으라면 대다수가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회원 가운데 이름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이도 거의 없고 정치권으로 진출한 친구도 없다. 뒤늦게 변호사가 된 친구는 남들이 꺼리고 돈 안 되는 ‘간첩 사건’을 도맡다시피 하고, 늦깎이 회계사 친구는 작은 출판사나 협동조합 고객한테 인기가 많다. 대기업 임원에서 ‘명퇴’한 친구는 협동조합과 중소기업 지원에 열심이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부르는 게 값이던 시절, 빠르고 정확한 부동산 정보를 공개한 ‘부동산 민주화의 선구자’인 친구도 있다. 김현대 선임기자도 ‘정담80’ 회원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