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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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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후를 묻다

촛불 분석과 향후 전망 담은 비평 쓴 김동춘 교수 인터뷰

“보수가 자기파괴 자초했지만 사회 변화 이끌 새 주체는 안 보여”
등록 2017-03-14 09:12 수정 2020-05-02 19:28

태극기도 원래 있었고, 성조기도 원래 함께 나왔고, 넘실대는 적개심도 익숙하다. 태극기집회의 풍경이다. 한국은 원래 그런 나라야, 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익숙한 것에서 익숙해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따지면 때로 고통의 근원이 보인다. 그것은 생각하는 모든 존재의 몫이고, 특별히 학자의 존재 이유다.

대한민국이란 이름의 너무나 익숙한 체제가 성립 70주년을 맞은 2015년,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부 교수는 (사계절 펴냄)란 책을 썼다. 고 신영복 교수는 “70세는 참회록을 쓰는 나이”라며 “이 책은 바로 대한민국 70년의 참회록”이라고 추천사를 썼다.

개화파부터 시작해 청산되지 않은 친일, 반공과 개신교 신앙의 결합, 자본과 결탁한 독재권력, 미완의 민주화운동까지, 는 이 체제가 어디서 왔는지를 되짚는다. 친일 부역자가 청산되지 않고 미군정하에서 애국자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반공주의는 훌륭한 방패를 넘어 좌파와 민족주의자를 찌를 칼이 되었다.

이 과정에 대해 는 “일제하에서 민족의 자존심을 팽개치고 침략전쟁에 부역했던 과거는 분명히 수치스러운 것이었고 그 일부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들은 수치심을 공격성으로 바꾸었다”고 지적한다.

부패 정권은 탄핵됐다

책이 나오고 2년, 변화가 있었다. 촛불집회는 부패 정권을 탄핵했다. 마침 김동춘 교수는 계간 2017년 봄호에 ‘촛불시위, 대통령 탄핵과 한국 정치의 새 국면’이란 비평을 썼다. 여기엔 촛불집회 분석과 이후의 전망에 대한 제안이 담겼다. 70여 년의 역사만큼 논점이 다양하지만, 되도록 ‘한국 보수의 기원’과 ‘촛불집회 이후’에 질문의 초점을 맞췄다.

대한민국을 책에서 ‘반쪽 국가’ ‘반의 반 주권’이라고 요약했다.

분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의미의 주권국가가 아니란 뜻이다. 인근 주민의 동의 없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를 들여오는 것처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하는 반쪽 국가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란 일차적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의 반 주권’은 진보정치 세력이 등장하지 못하는 불구적 정치체제를 뜻한다. 분단된 한국은 자주독립 세력(통일 세력)은 물론 민권과 평등을 지향하는 모든 정치·사회 세력을 정치권에서 배제했다. 여전히 이 나라는 분단 ‘전쟁’ 체제다. 그런 체제를 유지하려면 모든 자원이 집중 배치되니 세월호 참사도 일어났다.

월남자, 개신교 그리고 개발주의는 반공주의와 기독교(개신교) 신앙의 결합에 주목한다. “대한민국은 월남한 엘리트들이 자신의 고향을 ‘짓밟은’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한 나라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월남민의 신앙과도 같은 반공주의는 대한민국 정체성의 핵심을 구성한다. 1950년 10월 황해도 신천에서 일어난 좌우 양측에 의한 학살에 그 기원이 있다”고 밝힌다. 특히 신천 학살을 양쪽 정부가 선전하는 것(북쪽에선 미군에 의한 학살, 남쪽에선 인민군에 의한 학살)과 다르게 좌우 갈등에 따른 양민 학살로 본다.

“대한민국은 월남한 엘리트들이 자신의 고향을 ‘짓밟은’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한 나라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월남민의 신앙과도 같은 반공주의는 대한민국 정체성의 핵심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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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 학살은 황석영 소설 의 토대가 됐다. 나중엔 북한을 직접 답사한 책도 나왔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책에서 말했듯,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만든 나라로 이민자 국가의 성격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 자신이 개신교 신자였던 제1공화국에서 이들이 지배 엘리트를 독점했다. 신천 학살은 좌우 대립 성격이 강했지만, 월남자들이 한쪽의 기억을 가지고 와서 지금도 끝없이 퍼내는 정치적 자본(Political Capital)이 되었다. 시스템은 한번 만들어지면 지속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월남자들의 기억이 국가의 기억이 되었다.

월남자 중심 개신교는 개발주의 시대를 거치며 급성장했다. “1950년대 중반까지 신설된 2천 개의 교회 중 거의 90%가 월남 기독교인들에 의해 건립됐다. 그뿐 아니라 월남한 목회자들이 한국의 거의 모든 교파의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고 오늘날까지 교계의 원로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8·15 당시만 하더라도 전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하던 개신교가 2014년에 이르러 국민의 21%가 믿는 최대 종교가 됐다”고 책은 전한다. 이렇게 급성장한 교회가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저변을 이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5개 중 4개가 한국에 있고, 이 교회의 설립자들이 모두 북한 출신이다. 월남 1세대의 경험은 기억으로 재생산되고 이후 세대에도 전해졌다. 그들은 ‘이 국가는 나의 국가이고, 공산주의를 피해서 내려온 사람들이 만든 국가다’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사립학교와 연결돼 강력한 물질적 기반도 다졌다. 같은 언론도 그렇다. 방응모씨나 선우휘 전 주필도 북한 출신이다.

이들의 절절한 애국심, 선민의식을 보면 ‘나는 이 나라에 더부살이하는 존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태극기집회를 봐도 우리 것을 빼앗긴 사람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뜨거운 환난의 가운데 있는 걸까? 어떻게 그 뜨거운 정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지 놀랍다.

그게 죽음의 공포를 한 번 넘었던 사람이 가진 강박증이다. 트라우마의 주요 현상이 정지다. 시간이 그때에 멈춰져 있다. 객관적이지 않게 적을 과장한다. 저들 때문에 내가 죽게 생겼다는 것이다. 원래는 국가권력이 알아서 하니까 나서지 않아도 됐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후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우파로 나서게 됐다. 다른 이유는 2000년대 이후 교회의 양적 성장이 멈춘 영향도 있어 보인다. 경제성장 이후 신자가 줄고 청년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현상은 보편적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이것을 음모 세력이 우리를 음해한 결과라고 여긴다.

김동춘 교수는 영화 을 언급하며 에 이렇게 썼다. “1945년에서 1953년 사이의 월남자 수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학자들은 대체로 80만에서 120만 정도로 본다. 숫자만 놓고 보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당시 군과 경찰의 최고위 간부, 기독교 지도자, 정부, 언론 상층부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수적 비중을 훨씬 능가했다.”
인적 네트워크를 타고 스며든 월남민의 기억은 보수의 기억, 국가의 기억이 됐다. 정보기관의 수장들도 오랫동안 월남민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이북 출신이고,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2014년 인천순복음교회 시국강연에서 “한국전쟁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사탄의 공격에 맞선 영적 전쟁이다”라고 말했다.
강경보수 논리가 소멸되기는커녕 인적 네트워크를 타고 국가기구로 스며들어 고착화됐다. 이들의 형성과 변화가 궁금하다.

1970년대 이후 새로운 지역주의 세력, 즉 경상도 보수가 월남민 네트워크와 결합했다. 다음엔 친자본 보수가 결합되고 최근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같은 젊은 보수가 더해졌다.

미국·일본·재벌 도구 된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박 대통령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7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중고생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박 대통령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7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중고생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근혜 정부는 강경보수의 최종적 목표인 사업들을 밀어붙였다. 교과서 국정화, 건국절 추진이 그렇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법외노조로 만들고, 통합진보당을 해산했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시대와 맞지 않는 보수우익의 숙원사업을 끝까지 밀어붙이다 생긴 파열음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부드러운 통치로 갔으면 훨씬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김기춘으로 상징되는 냉전보수의 월권을 묵인한 결과로 보수 전체가 자기파괴적 결과에 직면했다. 냉전보수를 제어하지 못한 보수세력 김무성, 유승민 등의 책임이 크다. 일체의 침묵으로 동반 몰락으로 간 면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시계는 1970년대에 멈춘 듯했다.

“‘누가 되느냐’보다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촛불 시민의 힘과 압력으로 후보가 정책을 수용하게 하고, 당선돼도 그 정책을 지속하도록 하며, 만약 배신하면 끌어내릴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당선 과정부터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이 부담이었고, 그래서 정치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대통령 본인이 위기의식에 쫓겼다. 그 정치적 공백을 치고 들어온 것이 미국과 일본, 재벌이다. (정부가) 대내외적 도구가 됐다. 대외적 도구가 된 사례는 사드와 ‘위안부’ 협정이고, 대내적으로는 재벌의 도구가 됐다.

이것은 한국 보수의 비극이지만 국민적 비극이다. 그들은 쫓겨나고 감옥 가면 그만이지만 국민의 잃어버린 4년은 누가 보상하나? 일단 들어온 사드를 누가 나가게 하나? 재벌들이 약탈한 수십조원은 누가 보상하나?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못을 너무 많이 박아놓았다.

그는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오늘의 이 게이트 국면은 단순한 정권의 붕괴 상황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등장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내적 붕괴로 볼 수 있다. 즉 박근혜 정권의 붕괴는 개발독재형 신자유주의(이명박 정권), (냉전보수가 주도한) 약탈국가(박근혜 정권)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것은 분단 70년을 이끌어온 한국 보수의 도덕적 붕괴 상황이다.” 그리고 촛불 이후 개혁 과제를 이끌어갈 방법으로 내부고발자센터와 적폐청산위원회 설치, 시민의회의 실권화를 제안했다. 이것은 정말 변화(Regime Change)인가.

객관적 변화의 계기는 맞다. 그러나 변화를 끌어낼 주체는 없는 것 같다.

스페인 포데모스, 그리스 시리자 등은 대중운동 과정에서 형성됐다. 한국에선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청년 세대가 신자유주의 분위기 속에 고립되고 길들여져왔다. 여기에 냉전 권위주의가 더해지면서 더욱 개인의 독립성, 독자성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국은 계급정치가 성립하기 어려운 구조여서 세대 문제가 중요하다. 세대에 따른 정치의식 편차도 뚜렷하다. 87세대가 세대 순환을 끌어내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회의원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청년 세대가 진입하기 쉬운 선거법을 만드는 것이 적극적인 양보다.

‘87년 한계’ 재현될까탄핵 이후가 중요한 이유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상황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 촛불 시민은 후보 중심으로 쪼개지고, 주체화됐던 시민들이 다시 손님으로, 소비자로 전락한다. ‘누구를 찍으면 좋을까?’를 묻는데, 그것은 또다시 노예가 되는 길이다. ‘누가 되느냐’보다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촛불 시민의 힘과 압력으로 후보가 정책을 수용하게 하고, 당선돼도 그 정책을 지속하도록 하며, 만약 배신하면 끌어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다.

보수우익은 재기가 어려운 지경으로 떨어졌나.

지역사회 기반이 건재하다. 한국자유총연맹 같은 관변단체는 강한 물질적 기반과 전국적 조직이 있다. 비례대표가 47석(15.6%)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사실상 모든 정치는 지역정치다. 지금 제도로 국회 구성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역주의가 약화됐다고 하지만 건재하다. 제도적 기반으로 국정원도 건재하다. 사법부도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정당의 지지도만큼만 변해도 우리 사회는 굉장히 진보적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보수의) 정당 외 기반이 강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보수세력의 도덕적 기반이 너무 취약하다. 한국의 보수는 애국자가 아니다. 한국은 폭력에 기초한 체제다. 폭력의 독소를 제거해야 정치적 게임이 된다. 독소가 제거되지 않으니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탄핵 인용 이후도 뭔가 고통이 있을 수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꺼지지 않는 촛불을 드립니다. 탄핵/대선 특대호 1+1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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