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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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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하나의 가족’ 있어요

법원, 삼성전자 LCD공장 희귀질환 첫 산재 인정…

2015년 삼성 일방적 보상 기준 제시 뒤에도 죽음 잇따라
등록 2017-02-20 15:48 수정 2020-05-02 04:28

“승소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소리를 질렀던 것 같아요.”
김미선(37)씨는 지난 2월10일 기쁜 소식을 들었다. 법원이 미선씨가 앓고 있는 난치성 희귀질환을 ‘산업재해’라고 인정하여 판결한 것이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선씨는 판결 소식을 전해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의 임자운 변호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되풀이했다.
산재 인정까지 16년

2015년 1월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김미선씨를 만났다. 그로부터 2년 뒤 2017년 2월, 서울행정법원은 미선씨가 앓는 다발성경화증이 1997~2000년 삼성전자에서 일할 때 접한 유해물질 등으로 인한 산업재해라고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류우종 기자

2015년 1월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김미선씨를 만났다. 그로부터 2년 뒤 2017년 2월, 서울행정법원은 미선씨가 앓는 다발성경화증이 1997~2000년 삼성전자에서 일할 때 접한 유해물질 등으로 인한 산업재해라고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류우종 기자

기다림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미선씨는 2001년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다발성경화증은 중추신경계에 염증 세포가 침투해 나타나는 희귀 질환으로, 감각이 이상해지는 초기 증상부터 신체 마비, 시신경 손상 등으로 이어진다. 현재 미선씨는 앞을 거의 볼 수 없다. 2010년 무렵부터 시각장애인용 ‘하얀 지팡이’ 없이는 혼자 다닐 수도 없다. 병을 얻은 뒤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 무려 16년이 걸렸다.

1997년 6월 여자상업고등학교를 다니던 미선씨는 삼성전자 기흥 공장에 들어갔다. 2000년 6월 휴직할 때까지 LCD 패널과 회로 등을 조립했다. 하루에 200~ 300개 LCD 패널 가장자리에 묻은 이물질을 천에 화학물질을 묻혀 직접 닦았고 납땜 작업도 했다. 종이 마스크를 쓰고 면장갑을 끼고 창문이 없는 공간에서 8시간 넘게 근무했다.

2000년 3월부터 팔과 다리에 갑자기 힘이 빠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급기야 몸의 왼쪽이 마비됐다. 공장에서 일하며 접한 유기용제와 유해물질 때문일 것이라 의심했지만, 회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미선씨는 16년 동안 홀로 병과 싸워야 했다. 재혼한 어머니에게 손을 벌릴 형편이 아니어서, 동생들이 번갈아 미선씨 병원비를 대줬다.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터다. 고관절과 무릎 연골이 괴사되어 수술도 받았다. 특히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고통이 더 심해졌다.

“다른 건 다 참겠는데 눈이 안 보이니 갑갑해요. 어떤 때는 죽고 싶어요. 우울증 약도 먹고 있어요. 수면제도 먹고요. 삼성이면 무조건 대단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애사심 강한 사원이었어요. 회사 때문에 이렇게 아프게 될 거라고는, 회사가 이렇게 나 몰라라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미선씨처럼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다발성경화증을 진닫받았다고 ‘반올림’에 제보한 피해자는 4명이다. 한국인의 다발성경화증 유병률(2000~2005년)은 인구 10만 명당 3.5~3.6명이다. 발병 당시 미선씨는 산업재해라는 게 뭔지도 몰랐고, 어떻게든 회복해 회사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반올림’을 알게 되고 2011년 뒤늦게 산재 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미선씨의 요양급여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협력업체 피해자들의 잇따른 죽음

서울행정법원 제1단독 이규훈 판사는 미선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미선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원고(김미선씨)가 작업 중 유기용제나 신경조직을 파괴하는 유해물질에 직접 노출되었을 것으로 추단된다. 또한 취급 물질의 위험성이나 유의사항에 대해 안전관리 교육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수행한 점 등을 볼 때 업무로 인해 발병했거나 질병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고 보인다”고 했다.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인정받은 첫 산업재해 피해자다. 삼성과 화학물질을 공급한 업체 쪽은 ‘관련자료 폐기’와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화학물질 제품명과 성분 등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2015년 1월 (제1047호 표지 이야기 ‘바늘구멍 보상안이 뉴챌린지의 서막인가’)은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미선씨를 만났다. 삼성이 그해 1월16일에 공개한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보상 기준과 관련해, 실제로 피해자들 중 얼마나 보상받을 수 있는지 전수조사해 분석하는 취재를 위해서였다.

삼성은 백혈병과 뇌종양, 유방암 등 몇 가지 질병에 한해 재직 기간, 발병 시기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피해자들만 보상한다고 밝혔다. 그 기준에 따르면 미선씨는 보상 대상이 아니었다. 삼성은 그해 9월 진행한 보상 절차에서 다발성경화증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보상(치료비)하는 3군 질환으로 분류했다.

2015년 1월 삼성전자가 처음 제시한 기준에서는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같은 작업장에서 일해 같은 유해물질에 노출됐지만, 도의적·법률적 책임은 삼성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를 고용한 협력업체에 있다는 이유였다. 이후 삼성전자 쪽은 그해 9월 공식보상 창구를 개설하면서는 협력업체 퇴직자들도 보상 대상에 포함시켰다.

2015년 1월 과 전화 인터뷰한 황동규(가명)씨는 2013년 피부암(피부T세포림프종)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황씨는 2011년 11월~2013년 1월 삼성전자 화성 공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화학약품을 창고에 넣거나 기계장치에 화학약품을 연결하는 업무를 했다. 피부암 발병으로 인해 그는 2013년 1월 퇴사했다.

“등과 엉덩이 쪽 피부만 빨갛고 사는 데 아직 큰 불편함은 없어요. 낮에는 병원 다니며 치료받아야 해서 밤에 할 수 있는 경비 일을 하고 있죠. 막내가 아직 초등학생이라 돈을 벌어야 해요. 대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다 IMF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했어요. 공인중개사도 해봤고, 피자집과 치킨집도 차렸는데 잘 안 돼서 삼성전자 협력업체에 들어간 거예요.”

황씨는 “삼성이 위험한 일을 맡긴 협력업체 노동자도 (본사 직원처럼)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했는데, 삼성 직원과 동일하게 보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화학물질을 운반·관리하거나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위험한 업무는 대부분 협력업체의 몫이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황씨는 지난 2016년 12월8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반올림’에 접수된 피해자 중 78번째 죽음이다. 황씨가 2014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낸 산재 신청은 아직도 ‘처리 중’이다.

황씨에 이어 지난 1월14일 새벽 또 한 명의 삼성전자 협력업체 노동자가 눈을 감았다. 2006~2012년 삼성전자 화성 공장에서 반도체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하다 백혈병에 걸린 김기철씨다.

최순실은 몇 백억… 직업병 피해자는?

“삼성이 최순실한테는 몇 백억원을 줬다면서요. 그런데 한때 가족이었던 우리 피해자들에게는 산재 인정도 안 해주고, 보상 문제도 제대로 책임지려고 하지 않잖아요.” 김미선씨는 삼성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보상 문제가 어그러진 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반올림’이 노숙농성을 한 지 500일이 넘었다. 오는 3월6일,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처음 알린 고 황유미씨의 10주기다. ‘반올림’은 삼성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1만인 서명(cto.kr/ry)을 받고 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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