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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물려받는 ‘금수저’들 아시나요

고려대, 4대 걸쳐 이사장직 물려주는 등 ‘대학 4대 세습 시대’ 개막…전국 대학법인 144곳 중 절반 이상 세습 진행 중
등록 2016-07-21 15:15 수정 2020-05-03 04:28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 7월12일부터 사흘간 ‘삼성 이재용 3대 세습, 이대로 괜찮은가?’ 오프라인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이들은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기업 세습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변칙 증여, 불공정 합병 등 탈·편법적 수단으로 총수 일가는 수조원대 이익을 쌓았다”고 주장했다. 교계에서 ‘교회 세습’도 흔하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가 펴낸 책 를 보면 국내 교회 가운데 직계세습 교회 89곳, 변칙세습 교회 39곳의 사례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언론계 상황도 다르지 않다. 와 SBS 등에서 경영권 가족 승계가 이뤄지고 있다. 이 가운데 는 설립자로부터 4대 경영 승계가 진행됐고, 는 5대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대를 잇는 가족 세습 경영으로 이익이 사유화되고 손실이 사회화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기업, 언론, 교회 못지않게 사회 지도층이면서도 ‘경영 세습’이 일상화된 또 다른 영역이 있다. 그러면서도 뚜렷한 감시나 견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 사립대학이다.
대학교육연구소( khei-khei.tistory.com)가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실의 ‘2015년 사립대학 족벌세습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단독 입수해, 사립대의 ‘학교 대물림’ 실태를 살펴봤다. 국내 사립대학의 족벌세습 현황을 2~4대로 구분해 전수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_편집자
2011년 6월 ‘경기대·광운대·덕성여대·상지대 등 비리 재단 반대, 재단 정상화를 위한 전국 대학생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사립학교법 재개정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2011년 6월 ‘경기대·광운대·덕성여대·상지대 등 비리 재단 반대, 재단 정상화를 위한 전국 대학생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사립학교법 재개정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대학교육연구소의 분석 자료를 보면, 국내 사립대학에는 이미 ‘4대 세습’ 시대가 열렸다. 고려대를 운영하는 고려중앙학원에서 2012년 5월 김재호 이사장이 근무하면서부터다.

고려중앙학원은 전형적인 ‘장남 승계형 세습’이 이뤄지는 곳이다. 김 이사장은 고려대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1891~1955)의 증손자다. 김성수의 장남 김상만, 그의 장남 김병관이 이사장 자리를 물려받았고, 김재호 이사장 역시 김병관 전 이사장의 장남이다.

설립자와 그의 직계가 3대에 걸쳐 이사장이나 총장급 직책을 맡은 학교도 9곳이나 된다. 특히 단국대는 설립자 이후 3대 세습 과정에서 지금도 ‘이사장 아버지-총장 아들’ 체제를 유지하는 곳이다. 단국대는 장형(공동설립자 조희재 여사)이 1947년 설립한 학교다. 그의 아들 장충식(84)은 불과 35살이던 1967년 총장직을 맡아 이후 26년간 총장 자리를 지켰다. 그는 잠시 총장직을 내려놓았다 1996년 12월부터 8년간 이사장을 맡았다. 2004년 재임 시절 비리 의혹 등으로 이사장직을 떠났다가, 2013년 3월 다시 자리를 회복해 지금까지 단국대학 법인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현재 단국대 총장직은 그의 아들 장호성(61)이 맡고 있다. 2008년부터 8년째다. 단국대는 설립자의 직계가족 외에 장충식 이사장의 사위 박우성이 단국대병원장, 조카 장삼성이 학교 내 율곡도서관장을 맡는 등 전형적인 사학 족벌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3대 걸쳐 ‘이사장 아버지-총장 아들’ 유지

경북보건대를 운영하는 양산학원이나 추계예술대학교를 운영하는 추계학원도 3대 세습 과정에서 현재 ‘부모 이사장-자녀 총장’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양산학원은 설립자 편재열에 이어 딸 편군자가 이사장직을 물려받았고, 이후 아들 이은직을 총장으로 내세웠다.

황신덕(당시 중앙여고 교장)은 일제강점기 때 제자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보낸 친일 인물이다. 황신덕이 설립한 추계예술대학도 현재 ‘아버지 이사장-아들 총장’ 체제를 유지한 3대 세습 대학 가운데 하나다. 황신덕은 아들 임형빈을 31살 때인 1961년 추계학원 감사로 선임하고, 5년 만에 이사로 승진시켰다. 임형빈은 1996년 추계학원에서 제4대 이사장에 오른다. 임형빈의 아들 임상혁도 31살이던 1993년 추계학원 기획실장으로 법인에서 업무를 시작한 뒤, 기획실장을 거쳐 6년 만에 총장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


<i>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수십 년 가족 세습 체제를 유지한 사립대의 병폐는 뚜렷하다.</i>

‘3대 세습’ 과정에서 가족끼리 얽히고설켜 대학과 학교법인에서 주요 보직을 챙긴 사례도 흔하다. 상명대학 학교법인인 상명학원의 경우, 설립자 배상명이 딸을 통해 학교를 대물림했다. 딸 방정복은 상명여대 부속초등학교 교장을 거쳐, 상명여대에서 교수-대학원 원장-총장을 지냈고, 1990년에는 상명학원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듬해 다시 상명대학(당시 상명여대) 총장을 맡아 1999년까지 자리를 지켰다.

현재는 방 전 이사장의 아들 이준방 이사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방 전 이사장의 남편 이재기가 상명학원 원장을 했다. 이후에는 이 이사장의 아내 신정자(사망)가 상명대 부속유치원 원장을 했고, 이 이사장의 동생 이진실과 딸 이세정이 상명대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명지대 법인인 명지학원도 상황이 비슷하다. 설립자 유상근의 아들 유영구가 1992년부터 ‘이사장 대물림’을 받아 16년간 자리를 지켰다. 유 전 이사장은 2008년 이사장직에서 물러났지만 동생 유병진이 현재 총장을 맡고 있다. 또 유 전 이사장 아들 유재훈이 삼촌 유병진 총장와 함께 명지학원 이사직을 맡아 사실상 ‘대학 승계 수업’을 받고 있다. 지난해 이사가 됐을 때 유재훈의 나이는 35살에 불과했다.

전국 대학 중 ‘3·4대 세습’ 완료·진행 10곳
고려대를 운영하는 고려중앙학원을 시작으로 4대에 걸쳐 이사장직을 물려주는 ‘대학 4대 세습 시대’가 열렸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고려대를 운영하는 고려중앙학원을 시작으로 4대에 걸쳐 이사장직을 물려주는 ‘대학 4대 세습 시대’가 열렸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신라대를 운영하는 박영학원도 ‘전형적인 3대 세습’이 이뤄진 경우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앞서가는 한국적 여성 지도자 배출’을 목표로 박영택이 학원을 설립했다. 이후 큰아들 박해곤이 1968년 2대 이사장으로 ‘가업’처럼 학교를 물려받았다. 현재는 박해곤의 둘째아들 박태학이 신라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박태학은 신라대에서 보육교육원장-어린이집원장-연구지원부장-산학협력단장-교육학과 교수-연구지원부장-산학협력단장을 거쳐 2012년부터 6대 총장에 올랐다.

동서울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학산학원도 설립자 유래윤이 아들들 가운데 유용부를 학산학원 이사장, 유광섭을 총장에 배치해 요직을 모두 자식에게 물려줬다. 현재 유용부는 아들 유종승을 이사로 선임해 3대째 대학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대전과학기술대학교도 이병익(설립자)-이용국(전 이사장)-이효인(현 부총장)으로 이어지는 경영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성신학원처럼 설립자 언니의 사위, 그의 딸을 통해 세습을 이어간 독특한 사례도 있다.

계명대·대구대·초당대·포항대·호서대·한림대 등은 설립자나 초대 총장의 아들을 법인 임원이나 대학의 총장 자리에 앉힌 뒤, 자신의 아들을 다시 교수나 직원으로 받아들여 ‘대학 승계 수업’을 시킨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전국 대학법인 144곳 가운데 이미 ‘3·4대 세습’이 이뤄졌거나 진행 중인 법인이 10곳을 넘었다. 2대 세습을 포함하면, 대학법인 절반 이상에서 세습화가 이뤄지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분석 자료를 보면, 2015년 현재 전체 대학법인 설립자 또는 전·현직 이사장의 형제·자매·부인·직계손(며느리와 사위 포함)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대학법인이 무려 72곳에 이른다. 총장 또는 부총장으로 재직하는 경우가 53곳, 이사 구실을 하는 경우도 32곳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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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기업’ 된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

절대 권력을 휘두르면서 학내 주요 보직에 이른바 ‘자기 사람’을 심고 길게는 수십 년 가까이 세습 체제를 유지하는 ‘세습 사립대’의 병폐는 뚜렷하다. 이 과정에서 전횡을 휘둘러 각종 비리나 추문에 휩싸이는 경우도 많다.

명지대 유영구 전 이사장은 2012년 학교법인 자금 720억여원을 횡령하고, 명지건설 부도 당시 학교돈으로 1700억원을 부당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유병진 총장은 지난해 배다른 동생 유아무개 전 경영기획부장과 함께 무리하게 병원 개원을 준비하다, 학교법인에 264억원의 손해를 끼친 사실이 교육부 감사에서 적발됐다.

광운대 설립자 조광운의 차남 조무성은 1982년 이사장, 1988년 총장을 역임하는 등 광운대를 ‘대물림’받아 운영했다. 조무성 전 이사장은 1993년 총장 시절, 부정입학 대가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미국으로 도피했다. 조 전 이사장은 2015년에도 캠퍼스 공사 수주와 교사 채용 과정에서 억대 뒷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앞서 2004년에는 설립자의 손자가 광운학원 재단의 재무 담당자로 일하면서 62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징역 9년형을 받았다.

세종대는 설립자인 최옥자·주영하 부부와 아들 주명건 대양학원 전 이사장이 ‘비리 폭로전’을 벌이면서 사달이 난 경우다. 대양학원에는 장남 주 전 이사장을 비롯해 둘째아들 주장건은 대양재단의 수익사업체 세종투자개발 대표이사, 큰딸 주경란은 세종대 교육학과 교수, 둘째딸 주경은은 대학 부설 세종초등학교 교장 등 주씨 일가가 법인·학교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대만, 법으로 친·인척 주요 보직 채용 막아

그러나 최옥자·주영하 부부가 주 전 이사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2003년 10월 주 전 이사장을 상대로 최옥자 퇴직금 4억1800만원 횡령과 세종대 교비 유용·횡령, 세종호텔 ‘유령 직원’ 급여 횡령, 세종호텔 공사비 과다 계상 등의 책임을 묻겠다며 교육부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이들은 또 주명건 이사장의 해임과 관선 이사 파견도 촉구했다. 대학 운영 주도권을 두고 부모와 자식 사이 폭로전이 벌어지면서, 주 이사장은 교비 113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교육부 감사에서 드러났다. 주 전 이사장은 당시 이사장직에서 물러났고, 대양학원에는 임시 이사가 파견됐다.


<i>“가족세습은 부의 대물림뿐 아니라 부정·비리가 발생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김삼호 선임연구원
</i>

이 때문에 국외에선 학교법인에서 주요 직책을 맡는 이들의 친·인척이 법인 또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을 철저히 막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만에선 사립학교법에 ‘학교법인의 이사장·이사·감사·교장을 맡은 자는 그의 배우자·직계존비속·형제의 친·인척 관계인 자는 해당 학교에서 총무·회계·인사의 직무를 담당할 수 없다. 규정을 어기 자는 학교 주관 기관이 학교에 즉시 해직할 것을 명해야 한다’(제44조)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사립대들이 족벌을 만들거나 가족 세습 체제를 막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제19대 국회 때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재단임원 및 학교의 장과 배우자 또는 직계존속, 직계비속 관계인 자는 해당 법인의 학교의 회계 담당직에 채용을 금지’한 개정안(2013)과 개방이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인 이사장 및 감사, 교원 등을 역임한 사람은 개방이사가 될 수 없도록 한’ 법안(2013)을 발의했으나 상임위에서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

현재 사립학교법은 ‘이사 상호 간에 친족관계에 있는 자가 정수의 4분의 1을 초과해서는 안 되고, 감사는 감사끼리 또는 이사와 친족 관계에 있는 자는 안 된다’는 식으로 느슨한 제약을 두고 있다. 법인 사무국 직원이나 대학 교직원에 대해서는 ‘가족 취업’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그사이 사립대 법인들은 족벌 체제의 균열을 막기 위해 힘썼다. 사립학교 법인 1200여 개가 회원인 한국사립학교법인연합회는 ‘사학윤리강령’에 담겨 있던 ‘대학의 공공성’과 관련된 대목을 노골적으로 삭제했다.

1991년까지 사립학교법인연합회 윤리강령에는 ‘사학을 위해 제공된 재산은 국가 사회에 바쳐진 공공재산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사유물같이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후 이 강령에서 ‘사회적 책임’을 규정한 이 대목은 완전히 빠졌다. 대신 ‘공공성’ 항목에서 ‘학내 안팎의 개인이나 집단의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공공성의 원칙을 존중함으로써 교육복지 이념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어정쩡한 내용으로 대체됐다.

대학 공공성 어떻게 책임지나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고등교육을 책임지는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 대학은 태생부터 민간에 의존하는 형태로 발전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설립자들이 교육기관인 대학을 개인 재산으로 생각해 가족에게 물려주는 퇴행적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대학 세습 심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대학들이 사학윤리강령까지 고쳐가면서 대학의 사유화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선임연구원은 “설립자나 이사장의 친·인척이 이사회 임원이나 교직원으로 채용되면, 부의 대물림뿐 아니라 부정·비리가 발생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법인의 친·인척 비율을 현행보다 더 줄이고, 교직원에 대한 친·인척 임용 제한 규정을 담아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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