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제19대 국회에서 아동(만 18살 미만)을 위한 공약은 10개 중 2개만 지켜진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을 위한 공약의 양과 질은 모두 처참한 수준이었다.
아동 공약은 사회 행복도 ‘가늠자’
글로벌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은 4월13일 치러질 총선을 앞두고 제19대 총선에서 아동의 권리·행복 증진 및 보호 등을 위한 아동 공약이 얼마나 제시됐고, 얼마나 지켜졌는지를 따져봤다.
생애주기에 따라 인간을 구분하면 선거 기간에 가장 배제되고 소외되는 집단은 아동이다. 노인 계층 역시 사회적 약자이지만 적어도 선거 기간에는 존중받는다. 1인 1투표권을 가진 ‘명백한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동은 한국 사회에서 투표권이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 19살부터 투표권이 있다. 세계적으로는 만 18살, 오스트리아는 만 16살부터 투표할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 과정에서 선거는 공공정책이 이슈화되고 실현되는 기본 축이다(‘한국 재·보궐 선거 캠페인의 특징과 정책선거 실현 방안’, 신두철, 한국정당학회보, 2005).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만 19살 미만 아동은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정책 실현을 스스로 요구하고 대변할 수 있는 경로가 없다. 이런 구조에서 ‘소외된’ 아동을 위한 공약의 내용과 그 이행 완료율은 결국 그 사회의 행복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 2월 실시한 제19대 국회의원 공약 이행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은 아동 공약 이행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누리집에는 각 의원들이 제출한 공약 자체 평가표와 소명 자료가 모두 올라와 있다. 누구나 가서 확인할 수 있다.
제19대 총선에서 3월23일 현재 활동하는 지역구 의원 237명(239명 가운데 문대성 새누리당 의원,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 미제출로 제외)이 내건 공약은 모두 8481개다. 이 가운데 아동 정책 공약은 1031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공약의 8분의 1에 불과하다(표1 참조).
국회의원 21명은 아동 공약을 하나도 내걸지 않았다. 아동 공약을 전혀 내걸지 않은 의원은 새누리당이 15명, 더불어민주당이 4명, 국민의당이 2명으로 나타났다(표4 참조).
아동의 몫으로 마련된 파이는 크기가 작을 뿐 아니라, 제대로 구워지지도 않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아동 공약만의 이행 완료율을 평가해보니, 1031개 공약 가운데 지켜진 공약은 224개(이행률 21.7%)에 불과했다. 10개 중 2개의 공약만 이행한 것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파악한 제19대 국회의 전체 공약 이행률은 51.2%로 절반 이상 이행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별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정당별 이행률을 보면, 더민주 소속 국회의원의 아동 공약 416개 가운데 105개가 완료돼 25.2%의 이행률을 보였다. 새누리당은 의원 수가 많은 만큼 약속한 공약도 525개로 많았지만 106개가 완료돼 이행 완료율은 20.2%로 나타났다. 정의당은 17개 가운데 5개, 국민의 당은 62개 가운데 5개만 이행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완료되지 않은 공약의 대부분은 추진 중이거나(53.2%) 축소(5.9%)됐다. 제19대 국회 임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추진 중인 공약은 이번 국회에선 이행 완료가 불가능함을 뜻한다. 축소된 공약들은 애초 제시된 공약보다 낮은 수준에서 이행됐거나, 내건 2개 이상의 항목 가운데 일부만 이행했을 경우다. 그 외 56개 공약이 폐기되거나 이행 보류됐다.
아동 공약 이행률은 왜 이렇게 낮을까. 대표적으로 꼽히는 원인은 아동에게 투표권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1인 1표’를 지닌 지역 민심을 사는 것에 의원들이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폐기된 공약들을 보면, 아동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성인까지 모두 아우르는 공약으로 탈바꿈시킨 경우들이 눈에 띈다.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확대하겠다던 전정희 국민의당 의원은 이 공약을 ‘지역에 귀금속 보석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공약으로 바꿔 이행했다고 밝혔다.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공약이 산업·경제 부문 공약으로 바뀌고 기존 공약은 폐기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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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화방 및 도서관을 건립하겠다던 함진규 새누리당 의원도 도서관과 문화방 대신 복합문화체육센터를 건립했다. 아동을 위한 문화생활·여가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결국 성인을 위한 공간만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강현아 숙명여대 교수(아동복지학)는 “투표권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공약을 이행하는 것은 지역에서 지지나 인정을 받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하다보니, 결국 부모의 이익에 부합하는 공약 등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선 등 당선을 위한 지역구 관리가 중요한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아동 공약 이행의 유인이 없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이행되지 못한 공약뿐 아니라 공약 전체의 성격을 들여다보면 제19대 총선에서 아동의 권리 증진과 행복 향상에 대한 고민의 수준이 얼마나 얕은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약속한 공약들은 대부분 보육 서비스, 교육·예체능 체험 활동 증진 등을 내용으로 하는 ‘발달권’에 치중돼 있다. 전체 공약 1031개 가운데 발달권이 545개에 달한다. 이 발달권의 52%를 차지하는 284개 공약은 학교 재건축, 인문계고 신설, 학교 안 잔디구장 조성, 자기주도학습관 개설 같은 교육시설 건립 및 개선 공약과 24시간 돌봄센터 설립, 공공어린이집 확충 등 보육시설 설립에 관련한 공약이다. 그 외 83개 공약이 과학예술영재학교 등 명문 초·중·고 유치, 영어체험센터 운영 등 학력 향상과 관련한 것이다(표3 참조).
공약의 내용적 측면에서는 여당과 야당 간에 별 차이 없이 유사하다. 다들 으레 생각하던 공약을 습관적으로 내거는 셈이다. 공약 자체의 문제도 있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지역에 국제고, 영재학교 등 우수 학생들을 선발하는 학교를 유치하는 공약은 ‘평등하고 행복한 교육’이라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고, 지역 아동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니라 타 지역 아이들이 이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그 지역의 아동·청소년에게는 불리한 정책이다”라며 “다만 집값 등과 연동돼 지역을 발전시킨다는 착시 효과를 주는 공약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신 아동의 행복과 권리가 뒷전이 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는 아동의 참여권 보장과 관련한 공약은 전체 1031개 공약 가운데 4개에 불과했다(표2 참조). 그나마도 아직 추진 중이거나 축소·폐기됐다.
매년 ‘청소년 동아리경진대회’를 열겠다던 김제식 새누리당 의원의 공약은 청소년 동아리 활성화 사업 예산 지원 등으로 축소됐다. 매달 청소년을 위한 콘서트를 열겠다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공약은 시민 전체가 참여하는 콘서트로 바뀌었다.
김영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청소년 참여권 보장을 위해서는 일회성 행사나 건물 설립보다 청소년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생활 속의 다양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제도를 마련하고 청소년참여위원회나 청소년의회와 같은 참여기구 운영에 있어서도 청소년을 참여의 주체로 인식하고 이들의 의견을 비중있게 반영해 실질적 참여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현재의 아동청소년공약들은 아이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성인의 눈높이에서 청소년을 가르치고 보호하려는 관점을 넘어서지 못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제19대 국회의원들의 선거 공약에서는 아동학대 예방과 관련한 공약은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의 안전과 관련한 공약은 대부분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 통학로 개선, 학교폴리스 배치, 돌보미 배치 등 물리적 방안에 국한됐다.
강현아 교수는 “최근 터져나오는 미취학 아동의 학대 사건은 사실 아동·청소년 운동을 하는 단체들 사이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사안인 만큼 매우 가슴이 아프다”며 “국회의원들이 진작에 시스템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생기지 않는 지자체-정부 간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정책을 제안했더라면 예방할 수 있었을 일이어서 더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 언제까지 찬밥 신세?총선 과정에서 아동은 그야말로 찬밥 신세다. 총선에서는 얼마나 많은 지역구에 예산을 끌어오고 도로를 설비하느냐 같은 ‘지역 개발 이슈’들이 장악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제19대 총선을 후보자 개인의 공약이 개발 위주의 지역 민원성 공약으로 점철된 “로비스트 선거”였다고 분석했다. 이는 아동 부문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학교 환경 개선, 각종 센터 설립 등 개발 위주의 지역 민원성 공약이 대부분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권리와 행복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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