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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실패한 해경 지휘부와 꼭 닮은 청와대

세월호 탐사보도 3부① 우왕좌왕 초동대응 재구성… 구조 지휘할 해경 상황실에 100여 차례 전화, 사고 1시간 후 대통령 보고, 7시간 후 첫 비서진 회의
등록 2015-12-03 18:42 수정 2020-05-03 04:28
세월호를 둘러싼 ‘진실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가고 있는 이 세월호 탐사보도 3부를 시작한다. 지난 4월 1부에선 해양경찰 지휘부의 조작과 은폐, 구조 지휘 부재를 보도했다. 2부에선 한국 관료 사회에 만연한 ‘관행이라는 독’이 세월호 참사로 이어진 고리를 추적했다. 이번 3부에서는 단독 입수한 기록을 재구성해 청와대, 해경 등이 참사 과정에서 벌인 행태를 다시 파헤친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2014년 4월16일, 청와대에서 생긴 일이다. 3부 시작에 즈음해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와 함께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전남 진도 맹골수도에도 다녀와 그 현장을 전한다. _편집자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았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8시간, 첫 보고를 받은 지 7시간 만이었다. 대통령이 참사의 심각성을 알아차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았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8시간, 첫 보고를 받은 지 7시간 만이었다. 대통령이 참사의 심각성을 알아차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때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국가안보실과 대통령비서실의 21차례 ‘서면·유선’ 보고는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그 흔적은 남아 있다. 산산이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추다보면 우왕좌왕했던 청와대 초동대응이 드러난다. 청와대와 해양경찰 본청 상황실의 통화 내용과 당시 해경 상황실에서 일했던 해경들의 진술, 해경 무선 교신 등이 그 조각들이다.

이 입수한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자료를 종합해보면, 청와대는 사고 당일 승객 구조를 진두지휘할 해경 본청 상황실에 100여 차례 전화를 걸었다. 좌현으로 기운 세월호가 뒤집어져 뱃머리만 남기고 침몰하던 순간에도 청와대-해경 핫라인 전화기는 평균 3분 간격으로 울렸다. 청와대는 세월호 주변을 지나는 상선의 톤수까지 시시콜콜 물어댔다. 대통령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세월호가 뒤집혀 침몰하던 순간에도 청와대-해경 핫라인은 3분 간격으로 울렸다. 승객 구조를 지시해야 할 해경 지휘부에 청와대는 세월호 주변을 지나는 상선의 톤수까지 시시콜콜 물어댔다. 대통령에게 보고할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청와대 전화는 해경의 구조 활동을 뒤흔들었다. 청와대의 요구는 해경 지휘부를 거쳐 현장 구조 세력에 닿았다. 구조 활동에 전념해야 할 현장 구조 세력은 현장 사진을 찍고 구조 인원 수를 파악하느라 바빴다.

그 현장 보고들은 해경 지휘부를 통해 청와대로 들어갔다. 해경 지휘부는 감사원 조사에서 “현장의 구조 진행 상황을, (청와대의) 전화를 받느라 확인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해경 지휘부-현장 구조 세력으로 이어지는 ‘보고 커넥션’이 초동구조 실패의 한 원인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법원은 해경 지휘부의 불필요한 전화와 무선 교신 보고가 현장 구조 세력의 구조 활동을 방해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해경 123정장 김경일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면서 항소심 재판부는 이렇게 밝혔다.

9시19분 YTN 보고 여객선 조난 사고 인지

“해경 본청 상황실에서는 2014년 4월16일 9시36분 피고인(김경일)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2분22초 동안 통화하고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상황실 등에서도 피고인과 20차례 무선 교신해 보고하게 했다. 해경 지휘부는 피고인으로 하여금 구조 활동에 전념하기 어렵게 해 세월호 승객 구조 소홀에 공동 책임이 있다.” 해경 지휘부에 ‘구조 방해’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라면, 그날 청와대도 해경 지휘부와 다를 바 없었다.

청와대는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19분 YTN 보도를 보고 세월호 침몰 사고를 알았다. 오전 9시께 목포해양경찰서가 해경 본청에 “인천~제주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고 보고했지만 이를 외부로 전파하지는 않았고, 이 때문에 청와대도 보고를 받지 못했다.

최초 신고자가 선장이 아니라 승객(단원고 2학년 고 최덕하군)이라는 이유로 해경 지휘부는 초기에 세월호 침몰 신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가 침수돼 계류 중이니까 승객이 겁이 나서 신고할 수 있다”며 “6천t짜리가 금방 침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해경이 세월호 선장과 교신을 시도하는 사이 YTN 보도가 터졌다. 각 정부기관에서 해경 본청에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첫 전화는 청와대 상황실이었다.

청와대  진도에서 여객선 조난 신고 들어왔나?

해경  지금 현황 파악 중이다.

청와대  심각한 상황인가?

해경   심각한지 지금 배하고 통화 중이다. 배가 지금 기울어서 침수 중이고, 침몰은 안 됐다.

청와대  현장에 구조 세력은 있나?

해경 파악하려고 조치 중이다.

청와대  카메라 나오는 거 아직 없나?

해경   없다.

(9시19분 청와대-해경 핫라인)

3분 뒤인 9시 22분, 청와대는 핫라인으로 다시 해경에 연락해 △첫 신고 시간(8시58분)과 △여객선 이름(세월호) △탑승자 수(480명) △사고 현장의 기상 상황(양호)을 추가로 물었다. 해군과 상선에도 지원이 요청돼 있다고 해경은 보고했다. 청와대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냐”고 거듭 물었지만 해경은 “일단 현장에 가봐야 한다”고 답했다. 이를 토대로 청와대는 세월호 사고 상황을 내부 문자로 전파했다. 9시24분이었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막 수석비서관 회의를 마친 뒤였다. 김규현 당시 국가안보실 제1차장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끝내고 돌아온 참이었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 사고를 알리는 청와대 내부 문자는 박근혜 대통령에겐 전달되지 않았다. 김규현 차장은 “YTN 보도가 나오고 상황을 인지했지만 그것만으로 대통령 보고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현재 상황이 어떤지 또 구조된 인원은 얼마나 있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여러 군데 전화를 했다.”(2014년 7월10일 국회 세월호 사고 국정조사)

9시39분 “VIP 보고 때문에… 현지 영상 있나”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2014년 7월10일 국회 세월호 사고 국정감사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안보실과 비서실에서 21차례 ‘서면·유선’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2014년 7월10일 국회 세월호 사고 국정감사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안보실과 비서실에서 21차례 ‘서면·유선’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그 시각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 도착한 서해청 헬기 511호가 보고했다. 첫 구조 세력이었다. “현재 40도 기울어져 있고 승객이 대부분 선상과 배 안에 있다. 나와 있는 사람은 없다.” 헬기 511호는 해경 지휘부가 함께 교신하던 주파수공용통신(TRS)으로 교신했다.

100t급 경비정인 123정도 9시30분에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김경일 123정장은 해경 본청에 휴대전화로 “사람들이 하나도 안 보인다”고 보고했다. “갑판에도 (사람이) 안 보이고 (아무도) 뛰어내리지 않았다. 구명조끼도 그대로 있고 구명정도 하나도 터지지 않았다.” 본청 상황실과 서해청, 목포서 상황실에 수십 명씩 모여 있었지만 그 누구도 헬기와 경비정에 도착 보고 이후 특별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동안 청와대는 대통령 보고를 위한 정보 수집에 분주했다. 9시31분 해경 본청이 상황보고서 1보를 보냈지만 청와대는 기초적 사실을 계속 확인했다. “어디에서 어디로 가나?” “인천 출항 시간은?” “도착 예정 시간은?” “배의 크기는?” “승객과 선원 수는?” 구조 진행 상황을 파악하며 영상도 계속 요구했다.

해경   함정하고 헬기가 주변에 도착했다.
청와대   몇 시?
해경  9시35분.
청와대   배가 어떤 상태인가?
해경   지금 해상 추락자는 없는 걸로 파악됐다.
청와대  현지 영상 있나?
해경   ENG 영상은 없고 (현장에 도착한 해경이 찍은) 모바일 영상이 있는데, 외부로 보내기가 지금 좀….
청와대  지금 VIP(대통령) 보고 때문에 그런데 영상 받은 거 핸드폰으로 보여줄 수 있나?
해경  그렇게 하겠다.
(9시39분 청와대-해경 핫라인)

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을 보면, 기우는 배 안으로 뛰어들어 승객을 구조해야 할 해경들은 배 밖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서 해경 지휘부에 보고한다. 400여 명이 탑승한 6천t급 여객선이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해경 지휘부는 선내 진입, 퇴선 명령 등 구조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배 밖으로 탈출해 구조한 인원이 몇 명인지만 챙겼다. 청와대도 똑같았다.

청와대   구조 인원 얼마인가?
해경   123정에서 50명 승선했고 헬기편으로 6명 서거차도 방파제로 이동했다. 배는 60도 기울었다.
(9시54분 청와대-해경 핫라인)


청와대   (단원고) 학생들 옮기는 서거차도는 (사고 현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나?
해경  북쪽으로 4마일(6.5km) 정도.
(9시57분 청와대-해경 핫라인)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0시30분께 공식 논평을 내어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즉각 보고” 받았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사고 발생 1시간12분이 지난 오전 10시에 첫 대통령 보고가 이뤄졌다.

국가안보실은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서남방 30km 지점에서 사고가 나서 지금 침수가 되고 있다. 학생 등 약 500명 가까운 승객이 타고 있다. 현재 구조 세력들이 이동하며 일부는 도착했고 구조 활동이 진행 중이다. 현재 56명 구조됐다”고 보고했다. 그 시각, 세월호는 70도 이상 기울어 5층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123정은 세월호의 “좌현이 완전히 침수”됐고 배가 “완전 누운 상태”라고 무선 통신했다.

대통령 보고가 너무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 김규현 차장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초기 상황이 파악 안 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국가안보실이) 어느 정도 윤곽을 다 잡은 것이 9시50분이다. 그래서 10시에 대통령에게 첫 보고를 했다.”

첫 보고 이후에도 청와대는 영상과 구조 인원에 집착했다. “사진 한 장이라도 빨리 보내라”(10시9분), “구조 인원 몇 명인지 빨리 알려달라”(10시10분), “다른 거 하지 말고 영상부터 바로 띄우라고 하라”(10시25분). 김규현 차장은 “영상을 요구한 것은 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오전 11시10분부터 뒤집혀 뱃머리만 남긴 세월호를 실시간 현장 영상으로 지켜봤다.

2시50분 구조자 370명→166명 정정

세월호 참사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이 해경에 지시를 내렸다. 국가안보실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대통령의 첫 지시가 10시15분에 해경으로 전달됐다고 했지만, 청와대와 해경의 핫라인 통화 내역에는 10시25분으로 기록돼 있다. 이는 청와대-해경 핫라인 통화 내용과 국회 국정조사 회의록을 비교해 이 처음으로 밝혀낸 사실이다.

대통령 지시 사항은 이랬다. “첫째, 단 한 명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둘째, 여객선 선내를 철저히 확인해가지고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해라.” 박 대통령은 10시30분 김석균 해경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다시 한번 강조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장비, 또 인근의 모든 구조 선박까지 신속하게 총동원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그때는 300여 명을 품은 채 세월호가 완전 전복돼 인명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이었다.

김규현 차장은 “배가 침몰한다는 보고가 없었고 사망자가 있다는 보고도 없었다. 사망자 보고는 11시 넘어서였다. 당시 대통령 지시는 상황에 정확한, 정당한, 대통령이 당연히 내려야 하는 지시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망자 보고는 없었지만 단원고 학생들이 뒤집혀 있는 배 안에서 못 나왔다는 보고는 해경이 10시52분에 했다. 처음으로 청와대가 “탑승객이 어디 있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배가 뒤집어졌는데 지금 탑승객은 어디 있나?

해경  지금 대부분 선실 안에 있는 걸로 파악한다. 지금 선수만 보인다.

청와대   물에 떠 있는 인원이 있나?

해경  전부 학생들이다보니 선실에 있어 못 나온 것 같다.

청와대   지금 확인이 안 되나?

해경  지금 구조를 100여 명 했다.

(10시52분 청와대-해경 핫라인)

국가안보실은 해경 보고를 박 대통령에게 알렸다. “미구조 인원들은 실종 또는 선체 잔류 가능성이 많다.” 보고 시각은 “10시52분에서 11시30분 사이”라고 청와대는 감사원에 밝혔다.

11시1분~11시26분 ‘전원 구조’ 오보가 언론에서 나왔다. 오후 1시4분에는 구조자가 370명이라고 해경이 잘못 보고했다. 15분 뒤 해경은 “현장을 확인해보니 (구조) 인원 수가 차이가 난다”고 국가안보실에 알렸다. 1시30분에는 “일부 중복이 있다”고 했다. 결국 2시24분 해경은 “구조 164명, 사망 2명”이라고 확인했다. 하지만 국가안보실은 난감해했다. “큰일 났네. VIP(대통령)까지 보고 다 끝났는데.”

청와대   나머지 310명은 다 배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거 아닌가?

해경   많은 인원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2시24분 청와대-해경 핫라인)

5시15분 “구명조끼 입은 학생 발견 힘드나”

20여 분간 경위를 파악한 뒤 2시50분에 국가안보실은 “구조 인원이 정정됐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 소식을 김기춘 비서실장은 3시30분에 들었다. 그제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소집했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청와대의 첫 회의였다. 4시10분에 열린 회의에서 국무총리가 사고 현장에 가서 지휘하고, 대통령도 방문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5시15분 박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찾았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8시간, 첫 보고를 받은 지 7시간 만이었다. 나중에 국회 국정조사 과정에서 대통령은 사고 당일 국가안보실과 비서실에서 서면·유선 보고를 21차례나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참사의 심각성을 알아차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중대본에서 박 대통령은 “학생들이 다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기 힘이 드느냐”고 물었다. 그 시각 세월호는 거센 파도에 휘감긴 채 뱃머리만 떠 있을 때였다. 학생들은 선실에 갇혀 있었다. 사고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목포서 122구조대와 서해청 특공대는 세월호로 빨려들어갈까봐 잠수해 선내로 진입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다면, “구명조끼 입은 학생을 발견하기 힘드나”라고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이유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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