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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안이 있었다면 국정화 막았을까

‘교과용 도서에 관한 법률 제정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40명 공동 발의했으나 여당 반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해
등록 2015-10-28 07:18 수정 2020-05-02 19:28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2일 청와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2일 청와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박근혜 정부의 강행 의지를 제어하지 못하는 법률의 미비점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선 교육부 장관이 특정 과목을 국정교과서로 지정할 권한을 갖는다.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교과서의 국정화가 정권의 뜻대로 언제든 추진될 여지가 있다. 장관이 특정 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장관의 국정교과서 지정 권한 타당한가

우선 국정화가 진행되는 절차를 볼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뤄지는 교육에 관한 사항을 정한 ‘초·중등교육법’이 있다. 어떤 과목의 교과서를 국정도서로 할지, 검·인정도서로 할지 등에 관한 규정은 이 법 제29조에 있다. 하지만 제29조는 다시 2항에서 “교과용 도서의 범위·저작·검정·인정·발행·공급·선정 및 가격 사정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적고 있다. 교과서 지정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시행령으로 불리는 대통령령으로 넘겼다.

이 대통령령이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이다. 이 규정을 보면, “국정도서는 교육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교과목의 교과용 도서로 한다”(제4조)고 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월12일 2017학년도부터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행정예고했다. ‘초·중등교육법’ 제29조 2항에서 위임한 범위 안에 있는 대통령령을 따라 황 장관이 국정교과서를 지정한 자체는 절차상 문제가 없다. 하지만 국정화 지정·고시와 같은 중요한 내용을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위임한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때문에 장관이 정권의 의지대로 국정화를 고시하는 권한을 제한하는 법안이 지난해 8월 발의됐다. 지금처럼 국가적 혼란을 부른 정권의 국정화 강행을 제어할 수 있는 법안이었지만 당시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김태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교과용 도서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그것이다. 이종걸·정세균·이해찬 등 39명의 다른 의원들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교과용 도서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에 위임한 초·중등교육법 제29조 2항을 고쳐 별도의 ‘교과용 도서에 관한 법률’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 제정안의 핵심은 국정교과서를 “(신설하는) 교과용 도서 위원회가 지정”하도록 한 데 있다. 장관이 국정교과서를 정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위원회가 이미 지정된 국정교과서의 개편·수정을 요구하는 권한도 갖게 했다. 9명 이내로 구성되는 위원회를 교육부 소속으로 두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여야 간사와 협의해 추천하는 6명을 위원회에 포함하도록 했다.

김 의원은 “교과용 도서와 관련해 사회적 갈등이 반복되고 있으나, (국정화 지정과 고시를 대통령령에 위임할 뿐) 관련 법률이 존재하지 않아 근거 법률을 새로 만들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임위까지 가지도 못한 제정안 논의

이 제정안은 지난 2월10일 국회 교문위 전체회의에 상정됐지만 논의가 더 진행되지 못했다.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당시 회의에서 “위원회의 권한이 과도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부정적 의견을 냈다. 새정치연합의 한 교문위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협조하지 않아 이 법안에 대한 논의가 교문위에서 더 진행될 수 없었다”고 했다. 위원회가 갖는 권한의 범위에 대해선 여야가 논의를 거쳐 수정할 수 있겠지만, 장관이 국정교과서를 독점적으로 지정·고시하는 권한을 견제(위원회 설치 등)하려는 국회 차원의 논의까지 진척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정부는 11월5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해 고시한다는 방침이고, 20일간의 행정예고는 요식행위로 흐르고 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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