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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실패·불신, 빈곤 청년에 드리운 스산한 마음의 풍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청년들의 심리 상태 조사해 발표… 경제적 조건에 따른 청년 세대 내 인식 및 심리 격차 뚜렷한 것으로 드러나
등록 2015-08-26 11:36 수정 2020-05-02 22:17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다시 청년이다. 청년 문제에 정치권, 언론, 학계가 새삼 주목한다. 그러나 청년이라고 해서 다 같은 청년이 아니다. 가난한 청년일수록 포기할 게 많고, 한번 쓰러지면 일어서기 힘들고, 사회에 대한 믿음도 허약하다.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청년을 내세운 세대 갈등보다 청년 세대 내 격차가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은 제1075호 표지이야기‘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만 18~24살 청년 빈곤율이 만 60~64살 노인 빈곤율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비롯해 객관적인 ‘청년 빈곤 지표’를 각종 통계와 숫자로 확인했다. 이번에는 빈곤 청년들의 ‘마음속 소리’에 귀기울여봤다.

빈곤율·실업률과 같은 객관적 잣대 말고, 스스로 판단하는 주관적 상태 역시 위태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한 청년과 부유한 청년의 마음도 비교해봤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하 연구원)이 개원을 기념해 지난 8월18일 연 ‘이 땅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했다. 연구원은 만 19~34살 청년 1500명을 대상으로 총 70개 문항을 온라인 설문조사했다.

‘빈곤’의 기준은 부모의 자산·소득에 대한 주관적 소속감으로 정했다. 상·중상·중간·중하·하 등 5개 구간으로 나눠 부모가 어디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느냐를 물었다. 빈곤층은 5개 구간 가운데 ‘하’라고 답한 이들이다. 세대 내 인식 격차를 따져보기 위해 빈곤층 청년들의 심리 상태를 ‘중상층 이상’(상·중상)이라고 답한 청년들과도 비교했다. ‘빈곤층’ 응답자는 180명, ‘중상층 이상’ 응답자는 163명이다.

열패감

빈곤 청년들은 ‘패자 부활’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한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여기는 빈곤층 청년은 10명 가운데 2명 남짓에 불과하다. 나머지 8명은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반면 중상층 이상 청년은 10명 가운데 4명이 “일어설 수 있다”고 답했다.

마음속 ‘희망의 사다리’도 거의 무너졌다. “열심히 일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빈곤층 청년은 11.7%뿐이었다. 중상층 이상은 그 3배인 33.7%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개 질문의 응답 결과를 합쳐 ‘패자부활지수’를 매겨봤더니, 빈곤층은 100점 만점에 17.2점, 중상층 이상은 37.7점으로 나타났다.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 격차도 컸다. “우리 사회는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가 제공되고 있다”고 응답한 빈곤층은 10%였다. 90%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중상층 이상은 그래도 22.1%가 “공정한 대가가 제공되고 있다”로 기울었다.

빈곤층일수록 ‘헬조선’(hell+朝鮮)이라는 자조도 강했다. “대한민국은 살 만한 나라인가”를 물었더니 빈곤층 청년의 82.2%는 “다른 나라에 비해 살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중상층 이상은 63.2%가 “어렵다”고 답했다. “살기 좋다”는 응답은 중상층 이상이 36.8%로 빈곤층(17.8%)의 갑절이었다.

포기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고 ‘삼포세대’로 부른다지만, 포기에서도 계급의 문제가 작동한다. 빈곤층 청년 10명 중 7명 이상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결혼이 꺼려진다”고 밝혔다. 중상층 이상의 56.4%만 “꺼려진다”고 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애 역시 빈곤층 청년 10명 중 6명가량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꺼려진다”고 고백했다. 중상층 이상은 36.8%가 경제적 부담 탓에 연애를 꺼렸다.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도 빈곤층(36.7%)이 중상층 이상(24.5%)보다 많았다.

출산 또한 비슷하다. 빈곤층의 83.9%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이 낳는 것이 꺼려진다”고 응답한 반면, 중상층 이상은 62.6%만 그렇다고 응답했다. 중상층 이상의 72.4%가 “출산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반면, 빈곤층은 60.6%만 출산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만큼 빈곤층 청년들이 일상적인 포기에 익숙하다는 증거다.

정치와 참여

가난은 사회와 정치 문제에 대한 관심도 좀먹는다. “평소 정치 및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답한 빈곤층 청년은 53.5%로 중상층 이상의 62.6%보다 낮았다. 그러다보니 “투표 등 나의 참여가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는 빈곤층 청년 역시 51.7%에 지나지 않았다. 중상층 이상 청년의 65%가 그래도 투표 등 참여 의지를 보인 것과 비교된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빈곤층 청년들이 기댈 곳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사회도, 주변 사람도 그들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한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신뢰한다”는 질문에 대해 중상층 이상 청년의 69.3%가 “그렇다”고 답했으나 빈곤층의 응답률은 55%에 머물렀다.

희망과 미래

현실이 지옥이니, 미래가 천국일 리 없다. “나는 미래에 대한 꿈과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질문에 대해 중상층 이상 청년은 17.2%만 “아니다”라고 답했다. 빈곤층 청년은 31.7%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도 중상층 이상은 “희망이 있다”(78.5%)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빈곤층은 “희망이 없다”(52.2%)와 “희망이 있다”(47.8%)가 엇비슷하게 나타났다.

일자리·주거·연애 및 결혼·인관관계·출산 등 5개 항목에 대해 청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를 가중치를 두어 합산한 뒤 현재 청년들의 자신감을 더해 ‘청년활력지수’를 계산해봤더니, 여기서도 세대 내 격차가 도드라졌다. 빈곤층은 현재(100점 만점에 38.9점)와 미래(45.6점) 모두 활력이 떨어지는데, 중상층 이상 청년은 그나마 나은 모습(현재 54점, 미래 58.5점)을 보였다.

청년 의식 조사를 주도한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은 “실제 청년층의 문제는 빈곤 청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청년 세대 내 격차가 세대 갈등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한 수준이다. 이를 직시하지 않고 세대 갈등 담론에 사로잡히면 결과적으로 청년 문제가 청년 세대 내부의 문제로 고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2회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  열려


사회적  경제,  청년 주거  문제를  부탁해


서울에 혼자 사는 청년 100명 가운데 36명은 ‘주거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전국 가구 주거빈곤율(14.8%)의 2배가 넘는다. 이 청년들은 1인당 최저 주거 기준인 14㎡(4.2평 남짓)에도 미치지 못하는 쪽방, ‘잠만 자는 방’ 또는 주택법상 주거공간이 아닌 옥탑방·고시원 등에서 밤마다 잠을 청한다. 서울시 청년 10명 중 7명은 자기 소득의 30% 이상을 월세 등 주거비로 쓴다. 청년은 새롭게 등장한 주거취약계층이다. 불안에 비례해, 주거 안정에 대한 욕망도 커진다. 청년의 90.4%는 “주택 소유가 필요하다”고 여긴다(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청년 의식조사’).
청년 주거 문제에 대한 해법은 없을까?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통해 주거 문제의 해결을 꾀하는 흐름이 존재한다. 한국에선 집 없는 청년들이 모여 ‘민달팽이유니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협동조합 주택을 직접 꾸리고 있다. 청년들끼리 모여살며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인천 서구 검암동의 ‘우리 동네 사람들’(우동사)과 같은 사례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에선 도심의 ‘빈집’을 셰어하우스로 탈바꿈시켰다. 홍콩에선 사회적 기업이 싱글맘을 위한 집짓기 사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8월31일 오후 2~6시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리는 제2회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 ‘사회적 경제, 주거 문제를 부탁해’에서는 이와 같은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다양한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인도·필리핀·홍콩·대만·일본 등 제1062~1065호에 소개했던 사회혁신가들이 직접 나와서,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노력을 소개할 예정이다. 참가 신청은 공식 블로그(www.anyse.asia), 페이스북(www.facebook.com/anyse2015)을 참고하거나, 전화(02-710-0075)로 문의하면 된다.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의 참가비는 무료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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