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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나 없이 법 시행일 활동 시작?

해수부 장관 “특조위 활동 시작은 특별법 시행일인 1월1일부터”, 특조위 ‘7월 중순설’ ‘5월11일설’ ‘3월9일설’ 등 다양… 인양한 선체 조사하려면 오히려 활동 기간 늘려야
등록 2015-05-27 11:40 수정 2020-05-02 19:28

불씨는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댕겼다. 유 장관은 5월1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활동 시작 시점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일인 지난 1월1일부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진상 규명의 첫발도 떼지 못한 세월호 특조위가 벌써 5개월이나 활동했다는 주장이다. 또 길어도 내년 6월이면 그 활동이 끝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상 규명의 첫발도 떼지 못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지난 1월1일에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직원과 예산이 없어 텅 빈 세월호 특조위 사무실의 모습. 한겨레 이종근 기자

진상 규명의 첫발도 떼지 못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지난 1월1일에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직원과 예산이 없어 텅 빈 세월호 특조위 사무실의 모습. 한겨레 이종근 기자

‘위원회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1년
유기준 해수부 장관 “현재 특조위는 활동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게 맞으며 이를 상당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세월호 특별법(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제7조(위원회의 활동 기간)를 보면, ‘위원회는 그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활동을 완료해야 한다’고 돼 있다. ‘다만 위원회 의결로 한 차례만 활동 기간을 6개월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덧붙였다. 특조위 활동 기간이 최장 1년6개월이라고 못박은 것이다. 쟁점은 ‘위원회 구성을 마친 날’을 어느 시점으로 판단하느냐다. 유기준 장관은 국회 농해수위에서 “법의 시행일”이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특별법은 2014년 11월19일 국회를 통과해 2015년 1월1일 시행됐다. 야당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 중에서


유성엽 의원(새정치민주연합) 특조위가 정부에 시행령안을 언제 제출했나.
유기준 장관 2월17일이다.
유 의원 정부의 입법예고일은.
유 장관 3월27일에 했다. 쟁점이 여러 가지 있어 협의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유 의원 (해수부가 특조위) 활동 시작 시점을 1월1일로 봤다면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는 것 아닌가.
유 장관 그런 생각은 없었다.
신정훈 의원(새정치민주연합) 특조위가 2월에 시행령안을 냈고 정부는 5월에야 시행령을 공포했다. 그런데 정부가 그렇게(1월1일) 주장하면 국민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까.
유 장관 시행령이 공포됐음에도 (특조위가) 본격적인 활동을 안 한 부분도 있다.
신 의원 특조위가 협조하지 않은 날짜는 열흘도 안 되고 정부가 시행령 제정을 늦춰서 잃어버린 날 수는 5개월이다. 그런 변명 하지 마라. 아무도 (정부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유기준 장관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특조위 활동 기간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이미 경과된 시간만큼 (진상 조사에) 필요한 시간을 못 쓰게 돼 우려된다.” “현재 특조위는 활동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게 맞으며 이를 상당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활동인원 갖춰진 7월, 시행령 공포된 5월11일

세월호 특조위는 불쾌해했다. 권영빈 상임위원(진상규명 소위원장)은 5월21일 서울 저동 특조위 사무실에서 제6차 전원위원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해수부 장관이 무슨 자격과 권한으로 (특조위 활동 기간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16년 예산을 독자적으로 책정해야 하기에 활동 기간을 특조위가 다음 전원위원회(6월4일) 때 공식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활동 시작 시점이) 1월1일은 전혀 아니다.”

언제를 출범 시점으로 볼지는 특조위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특조위 활동인원이 실질적으로 갖춰지는 ‘7월 중순설’이 우선 있다. 특조위는 정치권(10명)과 법조계(4명), 유가족(3명)의 추천을 받은 위원 17명으로 꾸려졌지만 실질적인 활동은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한 공무원(36명)과 민간에서 채용한 별정직 공무원(49명)이 맡는다. 그러나 정부의 시행령 제정이 늦어지면서 공무원 파견도, 민간 채용도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채용 공고를 서두르더라도 7월 중순에야 직원들이 출근할 수 있다. 그때가 △진상 규명 조사 △피해자 지원 △안전사회 건설 등 특별법이 규정한 특조위 활동이 본격화되는 시점이다.

다음으로, 정부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공포한 ‘5월11일설’이다. 3월27일 해수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은 특조위를 공무원이 장악한 관제기구로 전락시켰다는 여론의 반대가 거셌다. 하지만 4·29 보궐선거가 끝나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4월30일 차관회의, 5월6일 국무회의를 거쳐 5월11일 특별법 시행령을 공포했다. 시행령은 대통령령으로 발령되므로 관보에 게재하면 곧바로 시행된다. 그 내용이 어떻든 특조위 조직의 밑그림이 그려졌고 각 실·과의 책임자를 임명할 수 있는 근거 법령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위원회 구성을 마친 날’로 볼 수 있다.

세월호 특별법·시행령 제정 경과

세월호 특별법·시행령 제정 경과

물러날 수 없는 마지노선은 위원들이 정부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3월9일설’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보면, 위원 임명은 대통령이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 4개국 순방 중이어서 이완구 총리가 대신 임명장을 전수했다. 3월5일 임명장을 받은 상임위원은 이석태(유가족 추천), 조대환(여당 추천), 권영빈(야당 추천), 박종운(대한변호사협회 추천), 김선혜(대법원 추천) 위원이다. 나머지 12명의 비상임위원은 3월9일 특조위 제1차 전원위원회에서 임명장을 전달받았다. 결국 ‘위원회 구성을 마친 날’을 아무리 좁게 해석하더라도 1월1일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기자와 만나 “애초에 유가족들은 (특조위가) 3년간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 1년6개월로 반 토막 내더니 정부가 또 반 토막 내려 한다. 시행령 제정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쓰레기’ 같은 내용을 내놓고 예산과 인력을 전혀 지원하지 않은 정부가 이제 와서 특조위 활동 기간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따져물었다.

인양은 2년까지 늘어날 수 있는데

김재원 의원(새누리당)이 특조위를 “세금 도둑”이라고 비판했지만, 시행령 제정이 늦어지면서 특조위는 아직 예산을 받지 못했다. 상임위원들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등 지난 3개월간 자비로 활동해왔다. 제6차 전원위원회에서 공개한 특조위 예산안을 보면 인건비 22억원, 운영비 48억원, 연구개발비 25억원, 청사 조성 경비 49억원 등 160억원이다. 지난 2월27일 특조위가 제출한 예산보다 33억원 줄었다. 그동안 직원을 채용하지 못해 인건비가 감소한 것이다. 특조위는 이 예산안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다.

특조위의 활동 기간이 줄어들수록 진상 규명은 멀어져간다. 사고 원인과 초동 대응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청문회와 특검을 진행하고 종합보고서까지 작성하는 데 1년6개월은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게다가 세월호를 인양하더라도 특조위 활동 기간 제한 탓에 핵심 증거물인 선체는 조사도 못할 수 있다.

해수부는 5월22일 세월호 인양업체 선정을 위한 국제입찰공고를 내며 인양 시점을 내년 10월로 추정했다. 특조위 활동 시작 시점을 유기준 장관의 주장대로 2014년 1월1일로 본다면 특조위 활동이 끝나버렸을 때다. 출범일을 7월 중순으로 늦춰 잡더라도 선체 조사를 장담할 수 없다. 인양 과정에서 부분적 실패가 빚어지거나 기상 상태가 나쁘면 인양 기간이 2년까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항소심 재판을 맡은 광주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경환)는 “세월호를 인양해 관련 부품을 정밀히 조사해야 사고 원인을 밝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 당시 조타기가 고장나거나 선체 이상(프로펠러 오작동)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 원인을 규명하려면 활동 시작 시점을 언제로 정할지 다툴 게 아니라, 활동 기간을 충분히 보장해 특조위가 선체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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