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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수뇌부 연출·각색·출연, ‘김경일 123정장 구하기’

구하기’ 수사·조사 앞두고 해경이 작성한 대외비 문건과 123정장 휴대전화 분석해보니, 수사자료 넘기고 변호사 비용 약속해…
등록 2015-05-20 06:58 수정 2020-05-0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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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 ‘그날의 진실’ 세 번째 이야기는 해양경찰의 조작과 은폐다. 은 검찰이 압수수색한 해양경찰청의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 문서를 입수했다. 이 자료를 보면, 해경 수뇌부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초동 대응 실패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이 드러난다. 검찰도 이 내용을 파악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정의 칼날은 해경 수뇌부를 겨누지 않았다. 김경일 123정장만 업무상 과실치사, 허위 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기소하고 윗선에게는 면죄부를 안겼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김 정장은 항소하며 “다른 해경(수뇌부)과 차이 나는 잘못이 없다”고 억울해했다. “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청 등 상부 기관도 보고를 받고 지휘를 했는데 그들과 달리 말단 현장지휘관에게만 죄를 묻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 그래서 김 정장은 업무상 과실치사는 무죄, 허위 공문서 작성은 벌금형(또는 선고유예)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항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왜 그랬는지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드러나는 조작과 은폐의 실체
① 기본 시나리오,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

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앞두고 해경이 대외비로 작성한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을 입수했다. 85쪽짜리 문서를 보면, 크게 △신고 접수 △122 신고 관련 △상황 지휘 △인명 피해 현황 △승선자 산정 혼란 △상황 전파 △선박 전복 전 초동조치 △123정 초동조치 △항공구조 초동조치 등으로 나뉜다.

각 세부 항목은 질의응답 형식(143개)으로 정리돼 있다. 이 문서를 압수한 검찰은 “수사기관에서의 해경들 진술은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과 그 기조가 일치한다. 해경 차원에서 수사에 대비해 자료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23정 해경들의 검찰 진술은 짜맞춘 듯 똑같았다.

(구조 세력이) 사고 현장에 가면서 세월호 교신 여부
① 이동 중 VHF 채널 67번으로 호출했으나 교신하지 못함
② 승객이 다수(400~500명)라는 정보에 따라 인근 어선을 동원하기 위해 어선공동망(SSB)을 이용, 어선 동원에 구조 요청하며 이동
(2014년 5월30일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사고 해역에 도착한 유일한 구조 경비함인 123정의 김경일 정장은 5월22일 감사원 조사에서 이 문건과 정확히 일치하는 답변을 내놨다. 다만 “내 판단으로는”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VHF 채널 67번으로 세월호를 3차례 호출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세월호에 탑승한 인원이 350명인데 1시간 이내에 사고 현장에 도착할 경비정은 123정이 유일했다. 도저히 승객을 (다) 구할 수 없다고 나는 판단됐다. 선박 인근을 항해하거나 조업 중인 어선을 사고 지점에 집결시키도록 SSB 비상주파수로 사고 내용을 전파했다.” 이같은 김경일 정장의 진술은 검찰 조사, 법원 재판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선체가 완전히 전복되기까지 내부 승객 구조 활동은?
① 123정 대공 방송으로 승선원에게 구명동의 입고 탈출 지시
(2014년 5월30일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

박아무개 123정 항해팀장(경사)은 6월4일 검찰 조사에서 123정이 구조 현장에 도착해 고무단정을 내리기 직전 “승객 여러분, 퇴선하세요. 바다로 뛰어내리세요”라고 3~4회 대공 방송을 했다고 진술했다. ‘퇴선 방송을 하라’는 김경일 정장의 지시를 123정의 김아무개 부장(경위)이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김 부장도 같은 날 검찰 조사에서 “‘빨리빨리 나오세요. 저희들이 구할 수 있습니다. 물로 뛰어내리세요’라고 방송했다”고 진술했다.

문건과 일치하는 거짓 진술

123정에는 중국 어선을 단속할 때 쓰는 대공 마이크와 확성기가 있었다. 해경이 직접 선내에 진입하기가 어려웠다면 이 장비로 밖에서 퇴선을 유도할 수 있었다. 출구 앞에 있던 승객이 퇴선 방송을 듣고 빠져나가면 나머지도 뒤따를 상황이었다.

김경일 정장은 같은 날 검찰 조사에서 “(퇴선 방송을 했는데도) 아무도 바다에 뛰어들지 않았다. 고무보트를 출발시키고 123정 스피커로 다시 4~6차례 방송을 했지만 역시 그랬다. 그때부터는 당황해 퇴선 방송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123정이 찍은 동영상에는 대공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고 검사가 지적하자 김 정장은 “분명히 퇴선 방송을 지시했고 그 방송을 들었다”고 확언했다. 해경 수뇌부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했다. “접근하면서 ‘뛰어내려라, 퇴선하라’는 방송을 수차례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당시 헬기 소리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전달이 안 됐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7월2일 국회 진상조사에서 한 말이다.

결국 이들이 국회, 감사원, 검찰 등에서 내놓은 진술은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 문건에 적힌 시나리오대로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모두 사실과 다른 허위 진술이었다.

② 왜 거짓말했을까

세월호 침몰 직후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해경은 퇴선 방송을 했다는 내용의 허위 문서를 작성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2014년 4월24일 전남 진도군 진도군청에 마련된 ‘여객선 침몰사고 범정부 대책본부’를 찾아가 항의하는 모습. 한겨레 김성광 기자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려던 것이 아니다.… 진도 서망항으로 들어가보니 서해지방청 홍보계장과 직원 두 명이 와 있었다. 그 사람들이 10가지 정도를 이야기해줬다. 그중 하나가 세월호와 교신했는지, 퇴선방송 했는지였다. 어떨결에 ‘했다’고 답했다.”(김경일 123정장)

123정은 세월호 밖에서든, 안에서든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9시30분께 대공 마이크로 퇴선 방송을 10여 차례 했다고 한목소리로 거짓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김경일 정장은 2014년 8월5일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거짓말을 하게 된 경위를 밝혔다.

123정장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려던 것이 아니다. 처음에 ‘4.16자 경찰전보’를 보낼 때는 퇴선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그러니까 사실대로 기재해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연락이 와서 (4월28일에)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진도 서망항으로 들어가보니 서해지방청 홍보계장과 직원 두 명이 와 있었다. 그 사람들이 10가지 정도를 이야기해줬다. 그중 하나가 세월호와 교신했는지, 퇴선 방송 했는지였다. 얼떨결에 ‘했다’고 답했다.
검사 언론 인터뷰 준비 전까지는 해경 상부에서 퇴선 방송 여부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건가.
123정장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목포서장이 나한테 퇴선 방송을 했냐고 물어봐서 내가 했다고 해버렸던 것 같다.
검사 그렇게 중요한 조치 사항이 경찰전보 보고서에 빠졌다가 뒤늦게 했다니까 목포서장이 무엇이라고 하던가.
123정장 그냥 알았다고 했다.
검사 퇴선 방송을 한 적이 없다고 계속해서 보고하다가 갑자기 말을 바꾸면 왜 그 전에는 빠뜨렸냐, 언제 어디서 무슨 내용으로 방송을 했냐고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123정장 그런 말 안 했다.
(2014년 8월5일 김경일 정장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최초 경찰전보에 ‘퇴선 명령’ 없어

실제로 검찰이 압수수색한 4월16일 사고 당일 오후 1시2분 123정이 목포상황실에 보낸 ‘4.16자 경찰전보’를 보면, 퇴선 방송을 했다는 내용은 적혀 있지 않다. “9시30분 침몰 여객선 주변 해상 도착, 단정 하강 및 본정 이용 여객선 근접해 직접 계류해 인명구조 작업 실시(※여객선 경사각: 좌현 40도 가량).”

그러나 퇴선 방송을 했다는 거짓말은 사고 발생 직후 시작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 감사원 조사를 앞두고 123정장과 대원들은 ‘침몰선박 세월호 관련 시차별 조치사항’이라는 문서를 허위로 꾸몄다. 사고 발생 직후 해경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123정 대원들은 사고 당시 무엇을 했는지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작성 시점은 4월18일 또는 19일께로 보인다.

이때 ‘퇴선 방송’ 실시 여부가 중요 쟁점이었다. 김 정장은 “이아무개 순경이 뭔가 방송을 들었다고 하는 사고 현장 도착 무렵으로 (퇴선 방송을 했다고) 해라”고 지시했다. 또 대원들에게 시차별 조치사항을 숙지해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에 대비하라고 당부했다. 퇴선 방송을 실시했다는 거짓 진술을 이렇게 짜맞춘 셈이다. 123정장은 검찰 조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했다.

검사 해경 상부 지시를 받거나 관여하에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하거나 문서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고 하기 위해서, 모든 책임을 피의자가 지기 위해서 상부의 개입 사실을 숨기는 것 아닌가.
123정장 그런 것 없다.
(2014년 8월5일 김경일 정장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③ 김경일 정장과 수뇌부의 교감

그러나 김경일 정장과 해경 수뇌부가 ‘교감’한 과정은 검찰 수사 기록 가운데 하나인 ‘123정장 휴대전화 모바일 분석’ 수사보고서에 드러나 있다. 검찰은 7월24일 김 정장의 휴대전화를 임의로 제출받아 분석했다. 양쪽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분석한 이 자료를 보면, “퇴선 방송을 했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했던 4월28일 김경일 정장은 ‘시차별 조치사항’과 ‘인터뷰 내용’이라는 문건을 촬영해 청원해양경찰서 옥아무개 정보과장에게 보냈다. 옥 과장은 세월호 사고 직후 구조 현장을 지휘한 3009함에 파견돼 김석균 해경청장을 보좌하고 있었다. 김 정장으로부터 위 문건 등을 보고받은 것에 대해 옥 과장은 “김 경장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확인해 보고하기 위해 자료 사진을 받았다”고 검찰에서 밝혔다.

김 정장은 5월3일에는 “방송 횟수: 수회(약 10회), 방송 내용: 승객 모두 퇴선하세요, 바다로 뛰어내리세요, 퇴선하세요”라는 메모를 자필로 써서 목포경찰서 상황실로 보낸다. 이때 123정 조타실 위에 설치된 스피커 사진도 첨부했다.

“영웅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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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앞두고는 교감이 더욱 짙어졌다. 5월18일 백아무개 서해청 상황실장은 감사원 출석을 요청받은 사실을 김 정장에게 알려준다. “123정장 등 3명 감사원 감사대상자 출석요청 보고.” 5월30일 전아무개 서해청 경무계 인사반장은 서해청장의 지시로 김경일 정장의 감사 횟수, 내용 등을 확인한다. 그러면서 123정이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은 것과 선장 등 선원을 먼저 구조한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지지한다.

인사반장 형님, 감사는 몇 번이나 받았고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는지 청장님이 궁금해하시네요.
123정장 오늘 최종 받았어. 감사 끝나고 지금 나가.
인사반장 고생하셨습니다. 오늘까지 몇 번이나?
123정장 오늘 끝났고 담에 할 수도 있대. 끝난 것으로 생각해도 되는데 하면서.
인사반장 네, 고생하시네요. 최선을 다한 만큼 좋은 결과 있을 거라 믿습니다. 영웅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이 나라 언론이 한심합니다.
123정장 아마도 감사반이 하는 말이 세월호와 교신 못한 것, 선장 등 선원 먼저 구조한 것에 대해서는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 했어. 참고해.
인사반장 힘들더라도 그건 잘못한 사유가 안 되니 소신껏 얘기하고 이기세요.
(2014년 7월30일 123정장 휴대전화 모바일 분석 수사보고서)

감사에 이어 검찰 소환까지 예고되자 해경 수뇌부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수사자료를 넘기고 변호사 비용 지원을 제안한다. 6월4일 123정장의 검찰 출석이 예정된 날, 인사반장은 세월호 3층 유리창을 깨고 구조하는 사진을 보내며 김 경장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해경은 당시 검찰과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수사 중이었다.

123정장 지금 광주(지방검찰청) 가고 있어. 오늘 1차 검찰 오래.
인사반장 고생하시네요. (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유리창 깨고 구조한 사람들 찾고 있습니다. 구조한 똑똑한 직원(을 사진) 보내드린 사람과 매치해서 활용하는 방법도 모색해보시죠. 수사자료이니 남들 보여주지 말고요.
(2014년 7월30일 123정장 휴대전화 모바일 분석 수사보고서)
“123정까지 침몰했다면 조용했을 것을”
“아마도 감사반이 하는 말이 세월호와 교신 못한 것, 선장 등 선원 먼저 구조한 것에 대해서는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 했어. 참고해.” (123정장)

김 정장과 대원들이 검찰 수사를 받은 다음날인 6월5일 홍아무개 서해청 경비계장이 돕겠다고 제안한다.

“청장님 이하 123정 직원 여러분 많이 힘드시죠? 특히 정장님이 많이 힘드실 겁니다. 그러나 123정 모두 건강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다듬어야지요. 123정 잘못한 것 없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초지일관 밀고 나가십시오. 금일 서해청도 계장 이상 부장님 주재회의시 변호사 선임시 비용 문제를 포함해 123정을 돕자고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약해지지 말고 강해지셔야 합니다. 정장님 이하 123 총원 힘내십시오. -서해청 경비계장 홍아무개 배상”

김경일 정장이 다른 해경과 차이가 없는데 홀로 형사처벌을 받는 게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7월19일, 남기고 싶은 말이라며 자신의 컴퓨터에 메모를 남겼다. “좀더 멀리 있었더라면, 아님 전속으로 오다가 기관 고장이라도, 최악으로 123정까지 침몰해버렸다면 조용했을 것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조용히, 조용히, 죽고,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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