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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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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 콤플렉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교육과 미디어에서 동성애를 금기로 만들려는 보수 개신교…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돌아보는 이들의 논리
등록 2015-05-14 15:10 수정 2020-05-03 04:28

“레인보 콤플렉스.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에 대해 지금처럼 공적 담론에서 전방위적 금기가 퍼진 적이 한국에서 또 있었을까 싶습니다.” 한가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지금 한국 사회를 그렇게 진단했다. 억울한 이들을 ‘빨갱이’로 몰고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던 ‘레드 콤플렉스’가 지워지지 않은 자리에, ‘레인보 콤플렉스’가 더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10일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 예정일에 개신교 신자 등이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다수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동성애를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타락이라고 공격했다. 박승화 기자

지난해 12월10일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 예정일에 개신교 신자 등이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다수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동성애를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타락이라고 공격했다. 박승화 기자

교육과 방송에서 지워라

청소년성교육센터의 교사는 담담하게 자신들의 경험을 전했다. 지난해 12월, 어느 청소년성교육센터 교육장에 한 성인 남성이 침입해 고성을 질렀다. “동성애는 왜 생기나요?” 그는 강의실에 적힌 청소년의 질문 등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왜 이런 것을 가르치냐”며 강의를 방해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 성교육센터에 학생을 보낸 학교에 학부모를 자처하는 이들이 찾아왔다. 교장을 만난 이들은 “그 센터에 학생들을 보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센터의 한 교사는 “나중에 확인해보니, 정작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부모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미 센터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줄기차고 끈질기게 항의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동성애 성교육 반대’,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도 폭주했다.

지난 3월, 교과서를 만드는 한 편집자는 출판사 홈페이지 ‘교과서오류신고센터’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았다.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교과서 내용을 문제 삼는 글이었다. 그는 학계 연구를 근거로 답변을 했지만 항의는 끝나지 않았다. 이틀 연속 질문이 올라왔고, 같은 내용의 전화도 걸려왔다.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지난해 동성애 반대 단체들은 교육부 민원을 통해 중·고등학교 사회·윤리·도덕 교과서에 포함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올해의 항의는 지난해 놓친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기관과 달리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는 이용자 요구를 고려해야 하는 회사라 이런 항의에 더욱 취약하다”고 말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다음번 개정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보수 개신교는 앞으로도 자신들의 입장을 교과서 표준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침묵은 죽음이다’(Silence Is Death).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고전적 슬로건을 동성애 반대 단체만큼 이해하는 집단도 드물다. 슬로건을 뒤집어 이들은 사실상 “침묵하라” 한다. 이들이 각별히 관심을 두는 분야는 교육과 방송. 지난 2월 교육부가 발표한 ‘국가수준학교 성교육 표준안’(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엔 ‘동성애에 대한 지도는 허용되지 않음’이라는 항목이 들어가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앞으로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는 강사는 ‘자위 행위’는 ‘성욕구 해소’로, ‘다양한 가족형태’는 ‘가족관계의 이해’로 말해야 한다.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강제력을 가진 규정이다. 이렇게 성교육 표준안은 동성애에 대한 내용 삭제를 넘어 금욕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보수 개신교가 주장하는 내용과 유사한 것이다.

개신교 장관 그리고 위축 효과
지난 4월31일 서울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앞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 등이 JTBC 드라마 의 여고생 키스 장면에 대한 징계 절차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류유종 기자

지난 4월31일 서울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앞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 등이 JTBC 드라마 의 여고생 키스 장면에 대한 징계 절차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류유종 기자

성교육 표준안을 만드는 연구용역은 2013년부터 진행됐다. 나영정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 법연구회) 연구원은 “성소수자 단체는 연구 작업이 진행되는지 몰랐다”며 “논란이 되고 나서 보니, 2013년 연구 작업을 종합한 보고서에 이미 동성애 반대 기독교단체의 의견서가 첨부돼 있어서 놀랐다”고 전했다. 이들이 연구 작업 진행 상황에 대해 어떻게 꼼꼼히 알았는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성소수자 단체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시대에 퇴행적인 성교육 표준안이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개신교 신자로 국회의원 시절부터 ‘국가조찬기도회’ 등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2007~2008년 성소수자 차별 금지 항목을 담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도 앞장섰다. 그는 2010년 법조계 개신교 모임 ‘애중회’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가능하면 모든 대법관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이들이길 바란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말하지 말라’에 이어 ‘보이지 말라’는 결정도 나왔다. 지난 4월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JTBC 드라마 에 대해 법정제재인 ‘경고’ 조처를 내렸다. 이 드라마에 삽입된 여고생 키스 장면은 성소수자 차별 논란에도 결국 중징계를 받았다. 앞서 Mnet 드라마 에서 나온 이성 간 청소년 키스 장면은 ‘의견제시’라는 행정제재에 그쳤다. 징계가 결정되기 전, 성소수자 단체는 방심위 앞에서 키스 시위를 벌였지만 허사였다. 동성애반대국민연합 등은 2010년 동성애자 인물이 나온 SBS 드라마 를 규탄하는 광고를 냈다. 그만큼 이들은 미디어에 동성애자가 긍정적으로 등장하는 것에 민감하다. 의 키스 장면이 나오자 방심위 앞에서 가장 먼저 항의 집회를 한 것도 이들이었다.

논란은 위축을 낳는다. 앞서 언급한 청소년성교육센터 교사는 “우리 센터의 강사가 학교에 성교육을 가기 전에 강의 내용을 담당 교사에게 점검받는 일이 생겼다”고 전했다. 교과서 편집자는 “한번 수정 요구가 반영되면 앞으로 반복해서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드라마 PD는 동성애 혐오 발언을 일삼은 방심위 위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보수 개신교의 방식은 하나씩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는 성과를 쌓으며 강화되고 있다. 보수적인 윗선의 눈치를 봐야 하고, 끈질긴 항의에 시달리기 싫은 공무원은 알아서 논란을 피한다.

“법무부는 인권 전반에 관한 정책을 수립 총괄 조정하고 있으며… 귀 단체는 사회적 소수자 인권 증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단체로서 법무부의 법인 허가 대상 단체와 성격이 상이하여 법인 설립을 허가하지 아니하니 널리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법무부는 성소수자 단체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법인 승인을 허가하지 않는 이유를 그렇게 밝혔다. “성소수자 인권은 인권이 아니라는 거죠.”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법무부의 태도를 그렇게 요약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연구용역을 줬던 트랜스젠더 관련 보고서를 아직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윗선의 의지도 다르지 않다

윗선의 의지도 다르지 않다. 국가인권위, 방심위 같은 기관에 개신교 단체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이들이 이미 많이 포진해 있다. 지난해 11월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을 했던 최이우 목사가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에 임명됐다. 인권단체는 당시 “국가인권위가 권고한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조장법이라며 반대한 인물”이라며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방심위 위원들이 심의 과정에서 쏟아낸 말도 다르지 않았다. 한 방심위 위원은 “성소수자는 다수와 다른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신촌 일대에서 벌어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를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 등 개신교 신자들이 방해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지난해 서울 신촌 일대에서 벌어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를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 등 개신교 신자들이 방해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그리하여 지난 3월19일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선민네트워크, 홀리라이프 등이 주최한 ‘탈동성애자 인권포럼’이 열렸다. 이들은 동성애가 복음으로 치유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탈동성애자 포럼’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도 열렸다. 국제게이레즈비언인권위원회는 지난 4월3일 현병철 인권위원장 등에게 보낸 서한에서 공공기관에서 ‘탈동성애자 인권포럼’을 열도록 승인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8일 성소수자에 대한 ‘전환치료’에 반대하는 백악관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 미국에서 ‘전환치료’를 강요당한 청소년이 자살한 사건에 대한 응답이었다.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도 나왔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5월3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 등에게 보낸 서한에서 “성소수자를 포함하지 않는 성교육 표준안을 수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언론회는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다.

‘타락한 유럽, 실패한 미국’. 동성애 반대 그룹이 올리는 게시물, 발표하는 성명에서 반복되는 논리다. 한국교회언론회는 휴먼라이츠워치에 대해 “그 나라의 전통적이고 건전한 성윤리를 인정해주고 이를 보호하는 것은 다른 측면의 인권 보호가 됨을 잊지 말라”고 충고했다. 한국 개신교 일부는 성경적 윤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를 자임한다.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합의된 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고치고 지우라”는 것이다.

이제는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방심위의 중징계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4월29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앞서 4월13일 열린 성교육 표준안 규탄 집회에 서울시교육단체협의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가 함께했다. 나영정 연구원은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요구에서 보듯이 이들의 목표는 동성애 반대를 넘어선 성적 보수화”라며 “진보 진영에서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견고해진 연대, 격렬해진 반대

5월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T DAY)이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ICD) 체계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해 해마다 지구촌 130여 개 도시에서 캠페인이 열린다. 올해 한국에선 5월16일 ‘무지개 버스’가 전국에서 출발한다.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이들이 무지개 버스를 타고 모이는 것이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캠페인과 문화행사가 열린다.

올해 행사는 인권단체가 함께한다. 지난해 12월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무산에 항의하는 서울시청 무지개 농성 이후에 성소수자와 인권단체의 연대가 견고해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등 41개 단체가 이날 캠페인을 공동 주최한다.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게이 코러스 ‘G보이스’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함께하는 공연도 무대에 오른다.

6월9일에는 서울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이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서울광장의 상징성을 의식한 보수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이미 4월3일 에 ‘박원순 시장님, 를 결사반대합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 동성애반대운동연대 등은 개막식 날 ‘맞불집회’를 연다고 밝혔다. 지난해처럼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열리는 날에는 보수 개신교 단체가 길을 막을 것으로 보인다. 뜨거운 6월이 온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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