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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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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캠핑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어”

11~13살 어린이들의 맞장구 토론 ‘어린이 정책을 결정한다면 나는 이런 걸 제안하겠어’
등록 2015-05-05 09:15 수정 2020-05-02 19:28

“당사국은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능력이 있는 아동에 대하여,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며, 아동의 견해에 대하여는 아동의 연령과 성숙 정도에 따라 정당한 비중이 보장돼야 한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12조는 어린이가 자신의 문제에 대한 견해를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어린이의 돌봄·안전·교육 등을 위해 마련된 여러 ‘어린이 정책’에 대해 어린이들은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어린이들이 지금 당장 정책결정권자가 된다면 어떤 일을 추진하고 싶어 할까.
어린이들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대안학교인 숲나학교 움틈·꿈틈(5~6학년 과정) 과정 아이들 8명과 서울 은평구 북한산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 7명을 지난 4월27일 오후 1시부터 각각 만났다. ‘어린이가 어린이 정책을 결정한다면’이라는 주제로 토론했다. 두 곳에서 동시 진행한 토론 내용을 한데 묶어 전한다.
참석한 아이들 북한산초등학교 6학년 구정찬·김강민·김태겸·김현우·이석현·이지윤·황다경/ 숲나학교 움틈·꿈틈 과정(5~6학년 과정) 권용빈·김민섭·김수현·김재윤·문정빈·심국용·이정민(여)·이정민(남)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어린이 정책을 보면 어린이도서관·어린이공원 등 어린이를 위한 공간을 짓는 정책이 많아. 어린이만을 위한 공간이 필요해?

정민(여) 어른들이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 놀라고 하는데 사실 별로 갈 데가 없어. 놀 친구도 없고, 놀 곳도 없어. 내가 사는 서울 신대방동 주변에 보라매공원이 있는데 거기는 차가 다녀서 안전하지 않은 느낌이야.

정민(남) 나는 경기도 구리에 살고 숲나학교 학기 중에는 평일에 기숙사 생활을 해. 구리도 그렇고 숲나학교 주변도 그렇고 우리 또래가 놀거나 활동할 만한 곳은 없어. 그래서 주로 실내에만 있게 돼.

국용 학교 주변에 대학교가 있긴 한데, 거기서 갈 곳은 축구장밖에 없고 다른 곳에 있으면 경비 아저씨들이 ‘저리 가’ 그래. 여기 주변에 애들이 갈 곳은 먹을 데밖에 없어.

재윤 철판떡볶이.

정민(여) 와플.

국용 뭐니뭐니 해도 곱창이 최고.

정민(남)중요한 건 어른들이 ‘왜 틀어박혀서 게임만 하니? 책만 보니?’라고 물어보면서 나가 놀라고 하는데 놀 데가 없다는 거지. 또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어른들이 ‘공부하라’고 시켜서 안에 있는 건데 나가 놀라고 하니 어쩌라는 건지.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서울에 있는 주요 공원(북서울꿈의숲공원·월드컵공원·서울대공원·서울숲공원·어린이대공원)을 아이들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키우는 ‘테마교육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공약했어. 실제 2014년 108억원, 2015년 64억원을 들여 공약을 이행하고 있어. 어린이들이 직접 어린이공원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 것 같아?

재윤 어린이공원을 만든다면 크게 하나를 만들기보다 작게 여러 개 만들면 좋겠어.

정민(남) 하나만 만들면 거기로 다 몰리니까. 사람들이 뭐 하나 생기면 너무 몰려서 정작 거기에 가면 제대로 놀지도 못해. 재윤 형 말처럼 차라리 여러 곳에 작게 많이 지으면 좋겠어.

다경 미래 진로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 여러 직업이 하는 일을 전시해놓고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서 강의도 하고 체험도 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 그럼 꿈이 좀 다양해질 것 같아.

석현 난 공원보다는 건물을 만들어서, 방같이 넓은 공간에서 자기가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하면 좋겠어. 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숙제를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다경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애들이랑 노는 애들이 같이 있으면 시끄러워서 어떡해?

지윤 방을 따로 만들면 되지.

석현 한 명당 하나씩. 어린이 호텔처럼 쓰는 건 어떨까?

지윤 운동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난 키가 작아 운동해서 키 커야 하는데 집에서 혼자 하면 외로워. 친구랑 같이 나와서 운동하거나 줄넘기를 했으면 좋겠어.

강민 그래, 학교는 시간 되면 문 닫으니까.

정찬 집 가까운 곳에 아이들만의 공간을 따로 지어서, 주말에 집 가까운 아이들끼리 같이 자고 매일매일 캠핑할 수 있으면 좋겠어.

지윤 어린이공원에는 돌봄교실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방학 때는 엄마·아빠 모두 회사에 가고 나면 위험하다고 집에만 있으라고 해. 방학을 알차게 또 재밌게 보내고 싶은데 차라리 어린이공원에 돌봄교실이 있으면 밖에서 놀고 돌봄교실에서 공부도 하고 같이 간식도 먹고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 지금 돌봄교실은 너무 저학년 위주야.

석현 맞아, 우리 같은 고학년을 위한 게 없어.

서울 강동구에서 ‘아마존’을 만든다고 해. 아이들이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래. 이런 건 어때?

석현 그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라면 그 공간을 도시처럼 꾸민 뒤 차만 못 다니게 할 것 같아. 우리가 사는 곳이 도시인데 사실 도시에서는 뛰어놀지 못하니까. 도시에서 뛰어놀고 싶어. 아파트·가게 등을 적당히 세워서 도시처럼 만든 뒤 차를 못 다니게 해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면 좋을 것 같아.

지윤 봄이나 여름에는 밖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거기다 정자 같은 걸 만들어주면 좋겠어. 추천도서를 놔두면 읽고 싶은 사람은 읽을 수도 있고.

정찬 나이 먹을수록 책도 많이 못 읽어.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은데 학원이나 가야 하고. 나이 먹을수록 공부를 해야 해서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책 읽을 시간도 없어.

태겸 난 아무것도 없이 그늘 하나만 만들고 나머지는 텅 비워두면 좋겠어. 자전거를 마음대로 탈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요즘은 ‘마을교육공동체’를 많이 꾸리는 것 같아. 강원도는 농촌공동아이돌봄센터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밝혔고 대구시 동구에서는 학교·경찰서·복지관·청소년시설·학부모단체·부녀회·개인사업장 등이 참여해서 어른들이 가진 시간과 재능을 기부하는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꾸리고 있다고 해. 마을공동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정민(남) 난 생각만 해도 불편해.

정민(여) 아니야. 생각해봐. 내가 엄마랑 어디를 가야 하는데 내 동생이 2명 있잖아. 그러면 다른 엄마네 집에 맡겨두고, 맡긴 엄마의 아들딸들과 내 동생들이 같이 놀 수도 있고. 동네에 영어 잘하는 어른네 집에 모여 영어도 공부하고, 책 잘 읽어주는 어른네 집에 가서 같이 책도 읽고, 놀기도 하고 뭐 그런 건데 그게 불편해?

정민(남) 난 진짜 불편해.

국용 난 괜찮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다보니까 이웃이 누군지 아무도 몰라. 사람들이 자기만 생각하고 삭막하게 변하는데 이웃이 서로 도우며 살고 알아가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재윤 요즘 같은 세상에 하려는 사람이 많을지 의문이야. 참여율이 높을까?

국용 서로 돕는 것은 좋은 일인데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날 것 같아. 웰빙이나 힐링처럼 마을도 유행 타는 거 아냐?

어린이 정책들을 보면 어린이의 안전을 위한 정책이 많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폐회로텔레비전(CCTV) 정책이 대표적이야. 어떻게 생각해?

다경 CCTV는 이미 범죄가 저질러진 다음에 범인을 찾기 위해서 설치해놓은 거지, 설치해놓는 순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야.

지윤 사건이 안 생기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사건이 생긴 다음에 하는 게 안 중요하다는 거지?

다경 그렇지.

강민 그것 때문에 사고를 안 저지를 수는 있지. CCTV를 발견하고 더 조심하니까.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정책들 중에는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 대책이 매우 많아. 스쿨존을 확대하고, 교통공원을 만들고…. 교통사고 위험을 직접 겪었던 적이 있어? 어린이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강민 어떤 애가 학교 주차장 땅에 뭐가 있었나봐, 돌 같은 것을 줍다가 후진하는 차에 부딪혔어. 많이 다치지는 않았는데 이런 사고가 많은 것 같아.

지윤 나는 학교에 가다가 차들이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것처럼 너무 빨리 달려서 사고 날 뻔했어.

태겸 우리 동네에는 비보호 좌회전 신호가 있는 곳에 횡단보도가 있어. 내가 건너고 있는데도 어떤 차 운전자 아저씨가 손만 내밀더니 그냥 휙 지나가버리는거야. 화도 나고, 잘못하면 치일 뻔했어.

정민(남) 우리 집에서 근처 초등학교 가는 길에도 횡단보도가 있는데 횡단보도가 짧아서 그런지 한 군데도 신호등이 없어. 운전자들이 그냥 막 달려. 너무 위험해. 횡단보도에 신호등을 다 설치해야 할 것 같아.

수현 횡단보도에 차단기를 설치하는 건 어때? 애들이 놀다가 신호등을 미처 못 보고 건너려고 하는데 차단기가 있으면.

국용 돈이 너무 많이 들지 않을까? 학교 앞에서 서행하지 않는 차에 대한 범칙금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 5만원이라면 20만~30만원으로, 강력하게.

정민(남) 학교 앞에는 주차도 문제야. 애들이 차 뒤에서 놀다가 차가 미처 못 보고 갑자기 출발해서 사고당하는 경우도 많잖아.

국용 그건 차 뒤에서 논 애들 잘못 아냐?

정민(여) 거기다 주차한 어른 잘못이지. 주위를 잘 살피지 않은 잘못도 있고. 아예 학교 앞에는 주차를 못하게 하는 게 좋겠어.

강민 보통 스쿨버스가 많은데 스쿨택시가 있으면 좋겠어.

정찬 그래, 대기하고 있다가 몇 명이 모여서 타고 갈 수 있고 집 앞에 바로 서니 안전하겠다.

어린이 정책들 가운데 정책을 처음 만들 때부터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정책이 있어?

현우 대통령 선거? (하하하)

강민 방과후 학교는 우리 의견이 많이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해.

석현 맞아. 지금은 재밌는 게 많이 없어.

현우 4D 프레임(입체도형을 만드는 블록형 교구)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 개설이 안 돼서 못했어.

지윤 바느질과 뜨개질도 있었으면 좋겠어.

강민 1년에 한 번씩 방과후 학교와 관련해서 설문조사를 하는데, 마지막 문항인 하고 싶은 거 써내는 칸에 아이들은 안 써. 주로 엄마들이 원하는 걸 써.

지윤 맞아. 엄마들이 다 결정해.

현우 시청이나 학교 홈페이지에 ‘어린이 의견란’이 따로 있으면 좋겠어.

석현 우리 의견을 이야기해도 잘 반영되지 않을 것 같아. 지금까지 그랬어.

지윤 막상 학교에서 회의할 때 의견들을 잘 안 내잖아. 이상한 건의사항을 내기도 하고.

현우 그건 회의 주제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싫은 걸 하는 거라서 그래.

어린이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린이가 참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유는 뭐야?

정민(여)사실 어른들은 어린이에 대해서 잘 몰라. 어린이 정책의 대부분은 어린이가 필요한 걸 해주는 걸 테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뭔지 우리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가장 우선인 것 같아.

정민(남) 어른들은 관심도 없으면서 다 안다는 투로 말해. 관심이 있다면 당연히 먼저 물어봤겠지.

정빈 어른들이 어린이를 무시한다는 게 느껴질 때가 언제냐면 길 지나다닐 때야. 길을 지날 때 내가 마주친 어른들 가운데 길을 먼저 비키는 어른을 본 적이 없어. 맨날 내가 비켜야 해.

정민(남) 어린이들이 말하는 걸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제일 큰 이유는, 우리가 하는 말을 모두 말대꾸라고 하기 때문이야.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자꾸 말대꾸하지 말래. 말대꾸라고 생각하고 우리 말을 무시하기 전에 우리 말을 들을 생각을 우선 했으면 좋겠어.

재윤 우리 의견이 들어가지 않으니까 셧다운제 같은 정책이 생긴 것 같아. 어른들의 입장에서 위험하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금지부터 하는 거지. 익스트림 스포츠들은 나이 제한이 많아. 번지점프는 만 19살부터나 가능하고. 이건 딴 얘긴데 자전거 같은 경우도 네발자전거에서 보조바퀴를 떼려고 하면 너무 간섭이 심해.

민섭 맞아. 어른들이 간섭하고 금지할 때 무조건 금지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어디까지 조절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 뒤 간섭해줬으면 좋겠어.

정민(여)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속담이 있잖아. 어른들이 이 속담을 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용빈 무조건 어린이 이야기만 들으라는 게 아니야. 어린이 이야기를 듣고 결정에 참고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아.

국용 어린이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야.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야. 지금 어른들이 정치하는 걸 보면 어린이가 더 잘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서로 완벽하지 않으니까,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율해나가야지. 적어도 어린이 정책을 만들 때는 더 그런 단계가 필요해.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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