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국가의 검열 욕망 속에서 사이버 사찰 ‘언제 어디서나’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 카톡 압수수색 싸고 디지털 시대 프라이버시권 뜨거운 논쟁…
수사대상자의 통신내용 볼 수 있는 통신제한조치허가서 꾸준히 청구·발부, “공권력의 적절한 통제가 이뤄져야”
등록 2014-10-07 05:57 수정 2020-05-02 19:27

“까똑!” 때로 직장 상사의 듣기 싫은 잔소리를, 때로 썸남썸녀의 설레는 두드림을 전해주던 애증의 목소리. 2010년 3월 출시된 뒤 ‘카카오톡’은 대한민국 대표 모바일 메신저로 자리잡았다. 월간 실사용자는 4천만 명이 넘고, 글로벌 누적가입자 수는 1억5천만 명에 이른다.
온 나라를 연결하는 통신 수단이 되니, 온 나라의 불온을 두루 살피고자 할 때도 이만한 검열 수단이 없다. 한 명의 카카오톡 계정을 압수수색하면 수백~수천 명의 불순분자까지 덤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대통령에 대한 “도 넘은 모독”을 일삼는 자들이 작은 방에 모여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메시지조차 찾아내고 밝혀내 벌주리라.’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사범 대응을 위한 검찰의 대책회의에 카카오톡 대표까지 참석시킨 데서 수사기관의 속내가 투명히 읽힌다.
덕분에 10월1일 합병·출범한 ‘다음카카오’는 국민 메신저에서 ‘사찰 메신저’로 추락한 터다. 카톡 사용자들은 앞다퉈 해외 메신저로 사이버 망명 중이다. 그러나 어디, 메신저 검열이라는 횡포의 죄가 ‘까똑’에만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국가가 검열을 욕망하는 한, 유비쿼터스(‘언제 어디에나 있는’을 뜻하는 라틴어) 통신망 안에서 사찰의 가능성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_편집자


1

1

이상하게 털렸다. ‘불법 집회·시위를 주동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구속 기소됐는데 카카오톡의 대화 내용을 압수수색당했다. 허무하게 털렸다. 수천 명과 나눈 메신저 대화를 압수수색당하고도 3개월 뒤에야 그 사실을 종이 한 장으로 알게 됐다. 얼마나 털어갔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5월1일부터 6월10일까지 40일 동안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의 아이디·전화번호, 대화 일시, 수·발신 내역 일체, 그림·사진 파일 등을 압수수색했다고 ‘사후 통지’하고도 경찰은 “6월10일 하루치 대화 내용밖에 못 봤다”고 한다. 그러니 당사자인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황망함으로 말한다. “수많은 이들의 지극히 사적이면서 때론 정치적으로도 악용할 수 있는 정보를 팩스 한 장 보내 무차별로 가로챌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상상이고 잔혹한 폭력행위입니다.”

정 부대표가 서울 종로경찰서로부터 카카오톡 압수수색·검증 집행사실 통지서를 받은 것은 지난 9월16일이다. 압수수색 당시 지인들과 나눴던 대화 중에는 신용카드 번호와 비밀번호, 재판과 관련해 변호사와 나눈 이야기, 초등학교 동창들과 나눈 이야기 등 내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수사 범위와 목적을 넘어선 개인정보도 수집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진보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0월1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판했다. “이는 단순히 간단한 압수수색이 아닌 광범위한 감시·사찰 행위이며, 심각한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사이버 검열이다.” 온라인상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이 우선인지 수사의 효율성이 우선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의 울타리를 넘어 국제사회에서도 뜨거운 관심사다. 지난 9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작성한 ‘디지털 시대 프라이버시권’ 보고서를 발표하고 정보기관의 대량 감시와 전자 수단을 이용한 각국의 감시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위키리크스’ 편집장이자 전세계적인 디지털 무정부주의 운동의 중심 인물로 활동해온 줄리언 어산지는 동료들과 쓴 책 에서 이렇게 적었다. “각국 정부들은 이제 새로운 사회의 혈관 구석구석에 거머리처럼 침투하여 우리의 모든 표현과 의사소통, 웹페이지, 그리고 모든 검색 용어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면서 하루에만 수십억 건에 달하는 검열로 얻어낸 방대한 정보를 거대한 일급비밀 창고에 영구히 보관함으로써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고자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2008년 광우병 촛불 정국 당시, MBC 방송작가의 다음 한메일이 모조리 자료로 압수수색되면서 디지털 프라이버시권이 화두로 떠올랐다. 당사자에게 통지 없이 이뤄진 전자우편 압수수색의 문제점이 지적되자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했다. 검사가 전기통신에 대해 압수수색을 집행하면 기소 시점으로부터 30일 안에 그 사실을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했다.

아무렇게나 다뤄지는 ‘개인정보’

하지만 6월27일 기소된 정진우 부대표는 두어 달이 지나서야 자신의 카톡 계정이 압수수색당한 사실을 통보받았다. 압수수색의 주체가 검찰이 아닌 경찰인 경우 공소 제기 시점이 아니라, 검찰이 경찰에 공소 사실을 통보해준 시점을 기준으로 30일 내 통지서를 보내도록 한 법 조항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처럼 검찰이 기소 뒤 뒤늦게 경찰에 통보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압수수색은 당사자에게 통지한 뒤 혐의 사실과 관계 있는 물건에 한정돼 이뤄진다. 디지털상의 정보는 때로 손에 잡히는 자산 이상의 값어치를 갖고 있지만 현행법대로라면 ‘개인정보’라고 말하기 차마 어려울 정도로 아무렇게나 다뤄지고 있는 셈이다. “(메신저 압수수색에서) 도대체 무슨 내용을 어디까지 들여다보고 그 정보를 어디다 썼는지 파악할 방법이 없습니다.”(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메신저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뿐 아니라 전자우편과도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의 더욱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카카오톡 같은 대화방에선 상대방이 굉장히 많아요. 500명이 모인 대화방이라면 거기서 개인이 대화에서 참여하는 비중은 500분의 1이겠죠. 아예 대화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경찰의 논리대로라면 저와 관계없는 499명의 대화까지 수사기관이 편리하게 취득할 수 있어요. 기본권 침해는 더 심대해진 겁니다.”
정진우 부대표 쪽은 이 과정에서 대화 목록에 있던 3천여 명의 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됐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수집된 대화 내용은 법원에 증거로 제출되지도 않았습니다.” 정 부대표의 변호를 맡고 있는 조영선 변호사는 “결국 수사가 목적이 아니라 정보 수집이 목적이었던 셈”이라며 “이런 식으로 정보를 수집하면 온 국민에 대한 성향 분석을 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종로경찰서 쪽은 “더 이상 공식적인 답변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9월19일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새로 만들고 인터넷 공간 검열 강화를 뼈대로 한 사이버 검열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같은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과거에 이뤄진 혐의 사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넘어 미래 범죄 가능성에 대한 ‘감청’(통신제한조치)까지 적극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미래창조과학부가 밝힌 2013년 통신 감청 건수는 632건으로, 447건이던 2012년보다 4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길영 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의 메신저 검열 움직임은 한마디로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비판했다. “세계적으로 인터넷 실명제의 영향력하에 있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입니다. 현재와 같은 수준의 논의가 가능한 곳도 중국과 한국뿐일 겁니다.”
이에 따라 사정기관이 카카오톡 대화를 실시간으로 엿볼 수 있는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다음카카오 쪽은 “실시간 모니터링은 기술적으로도 가능하지도 않고, 또 법률적으로도 불가능하다”(10월2일 CBS 라디오 )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카카오톡에 대한 통신제한조치허가서는 꾸준히 청구·발부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 사건 당시에도 검찰은 통신제한조치허가서를 통해 카카오톡의 특정 아이디에서 발신·수신한 자료들 가운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실과 관련된 정보에 대한 감청 허가를 요청한 바 있다. 실시간 감시에 해당하는 감청은 정보를 사전에 선별할 수 없으므로, 사실상 모든 대화를 사찰하게 된다.

이미 떠나버린 사용자들의 신뢰

논란이 일자 다음카카오는 “현재 평균 5~7일 동안 저장하고 있는 사용자들의 대화 내용을 서버 컴퓨터에 이달 안에 2일에서 3일 내외로 축소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용자들의 신뢰는 쉽게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외 메신저로의 망명이 줄을 잇고 있지만 오래 정보인권에 관심을 가져온 시민사회는 온전한 해법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국회에서의 입법 대응이 메신저 암호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핵심 쟁점이 아닙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어요. 기술적 조치의 문제가 아니라 공권력의 적절한 통제가 이뤄져야 합니다.”(장여경 활동가)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