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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책임은 현장에, 권한은 책상에

‘해체’라는 초강수 카드 받아든 해경… 수사는 경찰청이 단속은 국가안전처가 맡는

이원화 구조에서 불법 조업 단속 어렵고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도 논란거리
등록 2014-05-27 09:05 수정 2020-05-02 19:27
박근혜 대통령이 해경 해체를 선언한 지난 5월19일,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해양경찰청 모습. 신소영기자 viator@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해경 해체를 선언한 지난 5월19일,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해양경찰청 모습. 신소영기자 viator@hani.co.kr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 냈습니다.”

지난 5월19일 대국민 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해안경찰 해체를 선언한 뒤 후폭풍이 거세다. 세월호 침몰 당시 늑장·부실 대응으로 해경이 여론의 뭇매를 맞아왔지만 사망 선언은 예상치 못한 초강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론화 과정 없이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운송수단 없고 승무원 없고 전용 헬기 없고…

박 대통령은 왜 해경 해체 카드를 꺼내들었을까. 이유는 간명하다.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이 본연의 임무인 구조 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박 대통령은 “사고 직후 (해경이)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인명 구조 활동을 펼쳤다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이 보인 행동은 허점투성이였다. 첫째, 4월16일 아침 8시53분 119에 신고한 단원고 학생 최덕하(17·사망)군과 3자 통화했지만 경도와 위도를 물으며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둘째, 오전 9시7분 교신을 시작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도 배가 급속히 기울고 있는 상황인데도 선장에게 “알아서 하라”며 퇴선 명령을 미뤘다. 셋째, 구조대원이 너무 늦게 도착하고 소극적이었다. 오전 9시27분 해경 소속 511헬기가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해경 구조대원들이 세월호 갑판 위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배 안으로는 진입하지 않았다. 3분 뒤 도착한 123경비정은 승객이 많은 세월호 선미 대신 선수에 배를 댔다.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이 그곳으로 나와 구출됐다. 그러곤 배 주위를 줄곧 돌면서 바다에 뛰어든 사람만 구조했다.


“해군이 비상 상황에서 개입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일상적으로 시민의 안전을 해군이 맡는 것은 위험하다.” -이동영 세한대 교수(경찰행정학)


수중 수색이 가능한 전문인력은 너무 늦게 도착했다. 운송 수단이 없어서였다. 구조 전문 인력인 목포해경 112구조대는 타고 갈 고속함정을 몰 승무원이 없었다. 그래서 세월호가 완전히 물이 잠긴 뒤인 오전 11시24분에야 등장했다. 심해 잠수가 가능한 특수구조단(SRU)은 전용 헬기가 없었다. 부산 다대포동에서 차를 갈아타며 이동한 탓에 오후 1시42분에야 나타났다.

해경이 세월호 구조에 실패한 원인을 박 대통령은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출범한 이래 구조·구난 업무는 사실상 등한시하고, 수사와 외형적인 성장에 집중해온 구조적 문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둘째, “몸집은 계속 커졌지만 해양 안전에 대한 인력과 예산은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고 인명 구조 훈련은 매우 부족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2월 내무부 치안국 소속 해양경찰대로 해경은 출범했다. 당시 해경은 대원 658명과 해군으로부터 넘겨받은 181t급 낡은 경비정 6척이 전부였다. 그 뒤 조직이 커져 1996년 경찰청에서 분리되고 해양수산부에 둥지를 틀었다. 2005년엔 해경청장 계급이 경찰청장과 같은 치안총감으로 올라서며 차관급 기관이 됐다. 현재는 4대 지방해양경찰청, 17개 해양경찰서에 8685명(전·의경 2천여 명 제외)을 거느리는 ‘공룡 조직’이다.

해경청장 13명 중 해경 출신 2명

해경 전체 인력 가운데 바다 경비에 나서는 수는 3700명(42.6%) 정도다. 구조·수색 등을 맡은 잠수 인력(486명), 오염 방제를 맡는 인력(261명)을 다 포함해서다. 심해 구조가 가능한 특수구조단원은 9명(행정 담당 2명 제외)이다. 나머지 해경 조직의 절반 이상은 기획·수사, 행정 지원, 파출소 근무 등 바다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을 한다. 그래서 바다를 잘 모르는 일반 경찰 출신이 해경을 이끄는 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1996년 해경과 경찰청이 나눠진 뒤 해경청장을 맡은 13명 중 해경 출신은 2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경찰청에서 넘어왔다. 김석균(49) 현 해경청장은 해경 출신이지만 바다를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법제처 사무관을 지내다 1996년 경정 특채로 임용됐다. 현재 경무관 이상 고위 해경 간부 14명 중 함정 근무 경력이 없는 사람이 절반이나 된다. 구조·함상 전문가가 아니면 간부로 임용하지 않는 일본 해상보안청과 미국 해안경비대(US Coast Guard)와 비교된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세월호 사건에서 해경이 구조를 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아예 구조 시스템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력뿐 아니라 예산도 해양 안전에 덜 배정해왔다. 지난해 해경 예산 1조572억원 중 안전·구조와 관련된 ‘해양 안전 확대’에 쓴 돈은 167억원(1.6%)이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기 한 달 전인 지난 3월11~13일 전남 목포 앞바다에서 ‘인명 구조’를 주제로 한 해상종합훈련이 있었다. 주제가 인명 구조이고 훈련이 2박3일간이나 벌어졌지만 침몰선 안에 들어가 인명을 구조하는 훈련은 하지 않았다.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내린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정도가 전부였다. 123정이 세월호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 훈련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해경의 문제점을 뜯어고치는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데 해양·재난 전문가들도 공감한다. 그러나 갑작스런 ‘사망 선언’을 놓고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희망제작소 재난안전연구소장인 이재은 충북대 교수(행정학)는 “해경 해체는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잘못된 조직문화와 관행이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수뇌부 한두 사람을 바꾸거나 관료를 교체한다고 해서 해경이 올바로 서지는 않을 것이다.” 주강현 교수도 “해경이 스스로 개선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갔다”고 동의했다.

해경 사라지면 해군이 바다 장악

하지만 형식과 절차 면에서 문제점이 많다고 정치권은 지적한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5월20일 개인 성명을 내어 “정부의 작동 시스템에서 드러난 총체적 부실은 외면하면서 하부 기관에 극단적 처방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논평했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불과 3주 만에 청와대 밀실에서 모든 대책을 만들어서 내놓는 것 자체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해경 해체가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동영 세한대 교수(경찰행정학)는 해경이 사라지면 해군이 바다를 장악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군이 비상 상황에서 개입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일상적으로 시민의 안전을 해군이 맡는 것은 위험하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단속에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박 대통령의 발표대로라면 수사는 경찰청이, 단속은 국가안전처가 맡는 이원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노호래 군산대 교수(해양경찰학)는 “해안 치안을 일원화하지 않으면 날로 흉포해지는 불법 조업을 제재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안전처 신설도 논란거리다. 이동영 교수는 “이번에도 책임은 현장에, 권한은 책상에 두겠다는 얘기”라고 평했다. “재난관리 시스템의 핵심은 10분, 20분 안에 사고 현장에 도착해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현장 전문가를 많이 길러내고 그 전문가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는 것이다.” 이재은 교수는 “사고 수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사고 분석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범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며 “조직을 새로 만들더라도 전문성이 없는 안전행정부 공무원이 수평 이동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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