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마감(그 마감이 기사 마감이었는지 술 마감이었는지는 안알랴줌)을 마치고 여명이 밝아올 즈음 기어들어와 세상 모르게 처자고 있는데 갑자기 입구멍으로 뭔가가 확 쳐들어왔다.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 아들 녀석이 ‘레고 스타워즈’ 놀이를 하자며 ‘다스베이더’를 입속에 들이민 것이었다. 악! ‘입속의 검은 닢’도 아니고, 식전 댓바람부터 ‘전쟁’이구나~. 아들아, 내가 니 아비다. 아비 입속에 장난감 넣으면 에비~. 아들 녀석은 “너무하는구만~ 잠만 자는구만~”이라며 나가버렸다. 7살이 된 이후 말본새부터 행동거지까지 지 어미를 빼닮아가는 아들 녀석의 대꾸에 진짜 ‘뿜겠네~’ 하고 있는데 이윽고 들어온 와잎이 싸한 얼굴로 말한다. “아주 세월 좋구만~, 세월 좋아. 와이프는 아침부터 일어나서 애 밥해주고 쓸고 닦고 빨래하고 삭신이 쑤셔죽겠는데~.” 와잎의 폭풍 개생색에 당황하지 않고 낮은 포복으로 거실로 기어나오는데 아들 녀석이 등짝을 깔고 앉으며 팍~. 끝.
남편이 골로 가든지 말든지 와잎은 감기몸살 때문에 죽겠는데 이제 허리까지 아프다며 각설이타령을 해댔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생명에 지장은 없는 거니?” 와잎은 눈을 부라리며 “정말 생명에 지장 있게 해줄까?”라고 으르렁댔다. ‘그러니까 술 달라는 거구나?’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생명 연장의 꿈’ 때문에 이내 포기한 난, 결국 와잎이 듣고 싶던 말을 할 수밖에. “저녁에 외식할까?” 먹고 떨어지라는 심정으로 말하자 와잎은 앗싸라며 ‘라송’춤을 꿀렁꿀렁 췄다. 요새 술 안 먹었니? 어제 현관 앞에 놓여 있던 건 우렁각시가 먹고 간 술병이니? 참, 니 병은 술병 아니니?
레고 스타워즈 장난감을 새로 사주고 나서야 떨어진 아들 녀석을 처가에 맡기고 토요일 저녁 홍익대 앞으로 향했다. 친구놈 소개로 알게 된 이자카야(선술집)에서 저녁을 처묵처묵하고 2차로 산울림소극장 부근의 ‘동감상련’으로 갔다. 손님들의 신청곡을 깨알같이 틀어주는 음악살롱인 동감상련은 깔끔한 인테리어와 친절한 사장님(사진) 덕분에 여성 단골도 많은 집. 와잎은 와인 한 병에 버니니, 필스너, 호가든 각 일병과 치즈 안주를 고르더니 “아주 이런 야무진 데를 혼자만 다니구~ 세월 좋구만”이라며 힐난했다. 데려와도 난리구만~. 그리고 무슨 소맥 마시냐? 와인에 맥주를 같이 시키게~ 이렇게 여긴 내 생각은 곧 현실 아닌 현실이 되었다.
와잎은 와인과 맥주를 무심하게 말았다. 석대인(제976호 ‘카지노와 주야장천 쓰레기’ 참조)에게 배운 드라큘라주라고 했다. 7년 전 집들이 때 한번 시전한 걸 잘도 배우는구나~. 의외로 맛은 나쁘지 않았다. 남아공 스파클링 와인인 버니니와 섞으니 적당한 단맛이 좋았다. 와잎은 “바로 이 맛이야~”라며 3병 연속 와인을 원샷 원킬했다. 로또 됐니?
이럴 때를 대비해 연락해둔 ‘육체의 샴쌍둥이’ 기러기(기레기 아님) 선배가 때마침 토요일 강의를 마치고 합류했다. 와잎과도 돈독(豚毒)한 사이인 샴쌍둥이 선배가 오자 아뿔싸! 사태는 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빈속에 와잎의 가혹한 후래자삼배를 급마친 샴쌍둥이 선배는 f(x)의 를 신청해 올드팝과 가요를 주로 틀어주던 사장님에게 ‘쇼크’를 주더니만, 이내 그 노래가 나오자 감전된 사람 같은 몸짓을 선보이며 음악살롱을 순식간에 국빈관 카바레로 만들었다. 제발 놓지 마, 정신줄! 샴쌍둥이 선배의 감전사를 애도하며 와잎은 비의 을 신청했고, 술집은 미친 오누이 ‘석이와 은이’에게 점령됐다. 태진아로 빙의한 샴쌍둥이 선배는 품바춤을 추었고 살찐 ‘비’로 변한 와잎은 각설이타령을 추었다. ‘동감상놈’이로구나~. 난 테이블 밑으로 숨고만 싶었다. 노래가 끝나고 돌아보자 손님들 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없었다. 와인을 맥주처럼 말아드시는 와잎과 아이돌그룹의 댄스곡만을 신청하는 기러기 선배의 추태가 미안해 사장님에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은 “여기 터가 안 좋은 거 같다”며 “그나저나 힘들겠다”고 되레 날 위로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 울컥했다. “이건 ‘동감상련’이 아니라 ‘동병상련’이야.”
미친 오누이의 각설이타령은 인근 곱창집을 거쳐 새벽 5시경에야 끝이 났다. 와잎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문의 02-333-3799.
X기자 xreporter21@gmail.com* 자칭 타칭 전무후무한 의 최고 인기 칼럼이었던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는 제853호부터 제950호까지, 시즌2로 선보인 ‘X기자 부부의 킬링캠프’는 제952호부터 제978호까지 연재됐습니다. 시즌3이 언제 찾아올지는 안 알려드립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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