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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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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나이·학력 등에 대한 편견 뚜렷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 만의 편견들
등록 2014-02-28 08:54 수정 2020-05-02 19:27

“나는 편견이 없다.”
희망제작소가 지난해 하반기 3개월간 한국 사회의 편견을 온·오프라인으로 설문조사했는데 대부분의 응답자(300명)는 이렇게 전제를 깔고 한국 사회의 편견을 적었다. 한국 사회에 편견이 있지만 자신은 이러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 이유를 남경아 교육센터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편견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지만 우리는 일정 부분 동조하는 측면이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폐쇄적 태도다. 사회학자 필립스 데이비슨이 주창한 ‘제3자 효과’와 같은 맥락이다.” 제3자 효과란 특정 메시지가 자신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판단력이 낫다고 믿기 때문에 생긴다.
편견을 대하는 한국인의 또 다른 특징은 편견의 ‘당사자’가 아니라 ‘대변자’로 나선다는 점이다. 사람책은 자신이 겪고 느낀 점을 솔직히 털어놓아야 하는데, ‘남들은’ ‘누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주로 얘기하려 한다. 소속 집단의 목소리를 내는 데 신경 쓰다보면 자서전을 써야 하는데 르포를 쓰는 실수를 사람책이 저지른다. 남경아 센터장은 “사생활을 드러내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한국 문화의 특징과 관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28~30일 타이에서 열린 ‘아시아 휴먼라이브러리 포럼’에서 말레이시아·베트남·인도·인도네시아·캄보디아·필리핀 등 아시아 나라들의 편견 사례와 비교해보니 한국에서만 두드러지는 몇 가지 편견이 발견됐다. 첫째, 혈액형이다. ‘A형은 소심하다’ ‘B형 남자는 바람을 피운다’ ‘O형은 성격이 좋다’ 등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단정짓는 현상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나타났다. 둘째, ‘나이 든 사람은 보수적이다’ ‘중년 여성은 운전을 못한다’ ‘배 나온 중년은 변태다’와 같이 나이와 관련한 편견이 특히 많았다.
셋째, ‘결혼할 때 남자는 집을 장만하고 여자는 혼수를 마련해야 한다’ 등 한국의 특수한 사회적 배경과 성역할이 결합해 발생하는 편견이 조사됐다. 마지막으로 학력과 관련한 편견이 뚜렷했다. ‘서울대생은 머리는 좋지만 사회성이 떨어진다’ ‘연·고대 출신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등 대학 서열에 따라 기회가 불균등한 사회 현실을 반영했다.
반면 다른 나라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주민·장애인·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한국에선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수집된 편견 505건 가운데 사회적 소수자와 관련한 내용은 35개뿐이었다. 종교와 관련한 편견도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기독교인에 대한 것이 더 많았다. 윤석인 희망제작소 소장은 “어떤 편견을, 왜 갖게 됐는지 아는 게 첫걸음이다. 내 생각이 편견일 수 있겠다고 자각하고 그 주제로 자연스레 대화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게 휴먼라이브러리이니까”라고 말했다. 은 희망제작소와 공동으로 한국 사회의 편견을 연구하고 사람책과 독자가 만나는 소통의 장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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