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책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해야 하는가?”
지난 2월18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수원시평생학습관 대강당에서 열린 휴먼라이브러리 창립자 로니 아베르겔 초청 강연 및 휴먼라이브러리 심포지엄에서는 구체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전국에서 휴먼라이브러리 기획·운영에 관심이 많은 300여 명이 이날 행사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2010년 국회도서관에서 처음 휴먼라이브러리를 연 뒤 이 행사를 진행했거나 진행하는 국내 기관·단체가 40곳이 넘었다.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휴먼라이브러리 기획자나 운영자, 사람책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Q&A 형식으로 정리했다.
편견·차별 대상 되는 사람만 사람책으로 -고정관념, 편견, 차별은 어떻게 다른가.=특정한 집단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형적인 그림’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아베르겔은 “매우 제한된 정보만으로 사람들을 유형화하는 것은 죄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고정관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적 편견’인데 몇 가지 특징 탓이다. 첫째, 편견은 불충분하고 부정확한 근거에 기초한다. 둘째, 가치판단이 작용해 특정한 집단을 실제보다 높게, 혹은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려는 경향을 띤다. 셋째,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이다. 넷째, 집단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편견이 잘못된 행동으로 나타나면 차별과 폭력이 된다. 예를 들어 ‘충청도 사람은 느리다’는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충청도 사람은 느려서 인사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차별과 폭력이다. 내가 어떤 집단을 싫어하긴 하지만 행동으로 표출하지 않는다면 편견은 있지만 차별은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휴먼라이브러리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나.=만남과 소통을 통해 다른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편견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관용의 자세를 취할 때 극복되기 때문이다. 세 단계를 거친다. 1단계에선 정보가 증가할수록 그 집단에 친밀감을 갖는다. 2단계의 개인적 접촉으로 부정적 긴장감이 줄고 마지막 단계에서 심리적 공감대가 강화된다. 만나고 소통하면서 고정관념과 편견 줄이기, 이것이 휴먼라이브러리 방법론이다. ‘누구나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원칙을 믿고 적당한 대화 환경을 조성하면 된다.
=일반 도서관과 동일하다. 도서관에 방문한 독자가 책 목록을 훑어본 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정해진 시간 동안 빌린다. 책을 읽고 나면 반납한 뒤 또 다른 책을 빌린다. 차이점은 휴먼라이브러리의 책은 사람이고, 책 읽기는 사람책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대화 시간은 일반적으로 30분 내지 1시간 정도다. 대화는 일대일 또는 일대 다수(2~5명 정도)로 이뤄진다.
-사람책은 누가 되나.=특정 고정관념이나 편견,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만이 사람책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인종, 성별, 나이, 장애, 성적 취향, 성정체성, 계급, 종교, 라이프스타일 등 때문에 편견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사람책의 제목은 이러한 편견과 직접 연계된 것이어야 한다. 난민, 동성애자,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 트랜스젠더, 노숙인처럼 말이다. 그래야 독자가 마음속 편견과 직면할 수 있다.
-사람책이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은.=아베르겔은 “고정관념을 뒤엎을 사람책을 선정하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여성주의자는 외모에 관심이 없다’는 고정관념이 발견되면 양성평등을 위해 일하는 여성스러운 여성이 이상적인 사람책이다. ‘장애인은 자립하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으면 유능하고 힘있는 장애인을 섭외한다.” 사람책의 덕목으로는 ‘솔직함’과 ‘열린 자세’를 꼽았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고, 열린 자세로 독자의 말을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말하기 좋고 외향적이라고 해서 사람책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독자와 진지한 대화를 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는 성향이 강한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
처음 여는 행사라면 10~15권이 적당-사람책이 유의해야 할 점은.=다른 사람인 척 연기하거나 특정 캐릭터를 만들려 하지 마라. 독자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신뢰를 잃는다. 너무 사적인 질문은 언제든지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똑같은 답을 네 번째 반복하더라도 그 질문에 처음 답하는 것처럼 독자가 느끼도록 최선을 다하자. 무엇보다 사람책을 대출한 독자와 만나는 시간은 최대 1시간이며, 그 독자와 다시 만날 기회는 평생 다시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왜 저를 대출하셨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 질문을 통해 그 독자의 관심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권의 사람책을 준비하나.=2~3권부터 70권 이상까지 다양하다. 가능하면 독자에게 충분한 선택권을 줄 정도로 풍성한 것이 좋지만 행사 장소나 운영자의 관리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경험에 비춰보면 최소 20권이 돼야 독자가 선택의 기회를 갖고 50권이 넘어가면 운영이 버겁다. 처음 휴먼라이브러리 행사를 여는 경우라면 10~15권이 적당하다. 그 정도면 다양한 편견을 담을 수 있고 3~5명의 운영자로도 관리할 수 있다.
-사람책 목록은 어떻게 만드나.=보편적으로 잘 알려진 편견이나 차별을 우선 고려한다. 예를 들면 종교, 인종, 민족적 소수자나 성소자 등을 선정할 수 있다. 반면 금발(외모적 특성), 경찰관(직업적 특성), 채식주의자(소비적 특성) 등과 같이 특수한 편견·차별 대상도 괜찮다. 독자가 청소년이라면 교사·사회복지사 등 특정 직업을 넣는다. 하지만 마약 남용자나 신나치주의자처럼 불건전하거나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책은 지양하는 게 좋다. 반대로 부정적이거나 파괴적 행동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람은 사람책으로 적합하다.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해선 안 돼-한 가지 주제로만 열어도 되나.=안 된다. 휴먼라이브러리의 목적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평등 프로그램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특정 신념을 확산하거나 특정 단체나 개인을 홍보하거나 상업용 목적으로 활용돼선 안 된다.
수원=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참고 자료(희망제작소·2014)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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