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GM 양해각서의 눈가림 셈법… 4억달라 들여와 20억달러 장기대출 얻어내
20억달러? 4억달러?
지난 9월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대우자동차 채권단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간 양해각서가 체결된 다음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갈팡질팡했다. 양해각서에 따른 GM의 대우차 인수조건과 가격이 워낙 복잡했기 때문이다. 채권단 대표인 산업은행쪽에서는 “정확한 인수가격은 20억달러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다음날 여러 개 신문을 본 독자들은 ‘도대체 얼마에 팔았다는 거야’하고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신문마다 계산법이 달라, 4억달러에서부터 8억5천만달러, 20억달러까지 천차만별이었다. “GM이 대우차의 알짜 자산만 사실상 공짜로 가져갔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정건용 산은 총재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적절한 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채권단, 12조원 넘겨주고 1조5천억 우선주 챙겨
우리 경제의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대우차 처리문제가 ‘GM의 인수양해’로 가닥을 잡은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인수본계약 체결까지는 2∼3개월 걸릴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협상에서 중요한 쟁점들은 대부분 교통정리했다. 한때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회사가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회사에 넘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얼마에 넘어가느냐이다.
GM의 대우차 인수방식은 아주 복잡하다. 일반적인 기업인수합병(M&A)방식이 아니라, 정부와 국내 채권단의 지원조건을 전제로 GM이 필요한 자산과 부채의 일부만 사들이는 방식을 택했다. 먼저 GM은 대우차 인수를 위해 초기 자본금 5억9700달러짜리 새 회사를 만든다. 여기에 GM이 4억달러(지분율 67%), 국내 채권단은 1억9700만달러(33%)씩 출자한다. 이 회사는 다시 대우차의 군산 및 창원공장, 22개 해외판매법인, 2개 해외생산법인, 부평공장의 연구개발(R&D) 및 정비부문 등을 가져간다. 부평공장 생산라인은 인수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국내외 대우차 법인의 상거래부채 8억달러도 함께 인수한다. 그러니까 대우차에 부품을 대주고 어음을 받은 상거래자들은 곧 GM의 신용이 담긴 어음으로 바꿀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대우차에 무려 12조여원을 빌려주고 자금이 묶여 있는 국내 채권단은 GM으로부터 무엇을 받을까? 양해각서에 따르면, 신설법인이 발행하는 ‘배당부 장기 우선주 12억달러’이다. GM의 신설법인으로부터 이 우선주를 채권단이 받는 것을 끝으로 대우차의 매각절차도 마무리된다. 국내 채권단은 대우차에 잠긴 12조원 가운데 현금은 한푼도 없이 1조5600억원어치(12억달러)의 우선주로 건지는 셈이다.
그나마 이 우선주조차도 정확히 가치를 계산해보면, 12억달러에 훨씬 못 미친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다. 대신 회사가 이익을 내 주주에게 배당할 때 보통주보다 먼저, 그리고 조금 더 많이 배당하는 주식이다. GM은 채권단에 주는 우선주에 대해 앞으로 5년 동안 연평균 2%, 5∼10년 동안에는 2.5%, 10년 이후 15년까지 7%의 배당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 10년이 지난 다음부터는 GM이 해마다 일정비율씩 우선주를 되사준다는 조건도 붙였다. 이는 결국, 앞으로 15년 동안 1주당 연평균 3.5%의 배당이 붙는 주식이지만 대신 10년 뒤에는 GM이 발행당시의 가격으로 되사가기 때문에 사실상 채권이나 다름 없는 ‘특별한 주식’을 채권단이 받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12억달러어치 우선주를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8억5천만달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우선주의 환매에 대해서 GM 본사의 보증이 없다. 배당이나 환매 모두 ‘대우차가 수익을 낼 경우’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GM이 인수한 대우차가 망하면 채권단의 우선주는 휴짓조각이 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풀리지 않는 방정식이 있다. GM의 신설법인은 채권단 출자분까지 합쳐도 자본금이 6억달러인데, 어떻게 12억달러어치의 우선주를 발행하는가이다. 또 현행 상법상 우선주의 국내 발행한도는 자본금의 25%이다. 이에 대한 양해각서상의 해법은 ‘주식 할증발행’이다. 즉 액면가격 5천원짜리 주식을 GM과 채권단 둘이서 5만원짜리로 쳐서 발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채권단의 우선주에 대한 배당률도 엄격하게 계산하면 연평균 3.5%가 아니라 연 0.35%이다. 국내에서 배당은 액면가격을 기준으로 삼아 실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가 5만원짜리 10% 배당과 5천원짜리 1% 배당은 같다.
수조원짜리 5천억원에 챙겨… 혜택에 특혜도
이처럼 특이한 우선주 동원은 GM과 채권단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 GM으로서는 대우차 인수와 관련해 미국 내 주주들로부터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국내 채권단은 헐값매각 시비를 잠재우기 위한 ‘마술’이 바로 우선주이다. 국내 채권단은 12억달러로 계산한 우선주와 GM이 인수해가는 부채 8억달러를 합쳐서 “대우차 매각가격은 20억달러”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GM 협상단은 “포드가 70억달러라고 불렀던 대우차를 현금 4억달러만 투입해 사게 됐다”는 주주들에 대한 설득논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현금 4억달러도 GM 본사에서 부담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양해각서에서 채권단은 GM 인수 뒤 20억달러를 6%의 금리로 추가로 장기대출해주기로 했다. GM 본사는 미국에서 4억달러를 빌려 국내에 잠깐 묻어뒀다가 국내 채권단에서 빌려주는 장기저리자금으로 갚아버리면 그만이다. 금융계에서는 ‘GM이 거저먹는 장사’라고 평가한다. 대우차 채권단에 들어 있는 한 국내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우차의 군산과 창원공장의 청산가치만 2조2천억원인데 5천억원 조금 더 내고 가져가게 된다”며 “최악의 가정을 해보면 GM이 대우차 인수 뒤 두 공장의 땅만 팔아 철수하더라도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GM이 전세계에서 차를 파는 회사로 남아 있으려면 있을 수 없는 가정이다. 아무튼 GM의 대우차 인수조건이 아주 좋은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직접 제공해주는 특혜도 있다. 양해각서가 체결되던 날 정부는 서울 롯데호텔에서 진념 재경부 장관 주재로 경제장관간담회를 열어 GM이 인수하는 대우차에 대해 7년 동안 법인세와 소득세 100% 면제와 함께 5년 동안 특별소비세 9개월 납부유예 혜택을 주기로 했다. 법인세와 소득세 면제는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른 조처이고, 자동차 판매시 평균 10% 정도 따라붙는 특별소비세 납부유예는 이번에 GM에만 주는 선물이다. 이런 금융, 세제상의 파격적인 지원은 현대·기아차와 르노삼성으로부터 역차별 시비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쪽에서는 당장 “우리는 98년 11월 기아차 인수시 부채 6조원을 떠안고 1조2천억원을 출자하고도 세제·금융상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라며 “GM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에 따른 대우차의 가격경쟁력 상승효과만도 10%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루디 슐레이스 GM 아시아·태평양지역 사장은 양해각서 체결 뒤 기자회견에서 “대우차에 대해 새로운 모델 개발과 설비투자를 지속해 연간 50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대우차는 영업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누적돼 ‘찬밥 더운밥’을 가릴 계제가 아니기 때문에 헐값 매각시비는 어불성설”이라며 “GM의 경영능력과 신용으로 대우차의 생산·판매, 금융이 모두 정상화되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우차 관계자 또한 “99년 8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뒤 정부와 채권단은 죽도 밥도 아닌 상태로 방치해 대우차의 기업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져왔다”며 “GM 인수와 함께 기존의 부채가 대폭 정리되고 새로운 투자재원까지 확보하는 만큼 회사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추가 국민부담 최소화에 만족하라?
대우차는 워크아웃과 부도를 거치면서 생산·판매능력이 크게 위축됐다. 한때 국내 승용차시장에서 33%에 이르던 시장점유율이 현재 17%로 떨어졌다. 김우중 전 대우회장이 ‘세계경영’을 부르짖으며 국내 금융기관에서 수조원을 꿔 투자해놓은 해외 생산·판매기지 또한 만신창이가 된 상태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대우차 채권 12조여원은 대부분 손실로 처리돼 국민부담으로 돌아오게 됐다. 정부와 채권단은 “추가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논리로 GM과 양해각서 체결을 ‘경사’라고 한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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