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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큰손’들 밥상만 차려줄 건가

일본 사금융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고리대 피해 예방·구제 방안… “피해자·시민사회·법률가 나서 규제 법안 마련해야”

제985호
등록 : 2013-11-08 11:18 수정 : 2013-11-0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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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9일 일본 오사카 상공회의소에서 ‘제4회 동아시아금융피해자교류회’가 열려 한·중·일 금융피해자와 법률가가 모였다. 일본은 2006년 대부업 최고 이자율을 20%로 낮춘 데 이어 2009년 과잉 대출 규제와 대부업 등록 제한도 강화했다. 동아시아금융피해자교류회 제공

한국은 일본계 대부업체의 ‘좋은 먹잇감’이다. 이미 한국 대부업 시장에서 1·2위를 석권했고 저축은행까지 집어삼킬 태세다. 국내 1위 대부업체는 A&P파이낸셜대부. ‘러시앤캐시’라는 브랜드명으로 더 유명하다. 이 회사의 2012년 영업이익률은 19.6%에 이른다. 1천만원을 빌려주고 196만원의 이익을 올린 셈이다. 업종의 특성을 감안해야 하지만, 역대 최대, 최고의 실적을 냈다는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7~9월) 영업이익률(17.2%)보다 높다. 2위 대부업체 산와머니의 실적은 더 눈부시다. 지난해 1천만원을 대출해 303만원(영업이익률 30.3%)을 벌었다. 높은 수익성의 비결은 간단하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자에게 빌려주고 고금리 이자를 챙기는 것이다. 산화대부의 경우 일본의 같은 계열 대부업체인 산화흥업 등으로부터 연리 3.3%에 자금을 빌려 국내 대출자들에게는 32~39% 선의 금리로 빌려준다. 떼돈을 벌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 정부가 최고이자율을 39%로 떠받쳐서 가능한 일이다. 지난 10월19일 일본 오사카에서 ‘제4회 동아시아금융피해자교류회’가 열려 한·중·일 금융피해자와 법률가들이 모였다. 1970년부터 사금융 피해 구제와 고금리 인하 운동을 펴온 기무라 다쓰야(69) 변호사와 일본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우쓰노미야 겐지(68) 변호사를 <한겨레21>이 만났다.

30년 걸려 대부업 3대악 뿌리 뽑아

-매년 동아시아금융피해자교류회를 열고 있다.

기무라 다쓰야(이하 기무라): 일본계 대부업체가 한국·대만에 진출하면서 과거 일본에서처럼 다중채무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대부업에 맞서려면 우리도 정보를 교환하고 사금융 규제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대부업 3대 악(고금리, 가혹한 추심, 과잉 대출)을 뿌리 뽑는 데 30년이나 걸렸지만 한국은 그보다 빨리 이뤄내길 바란다.


1997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 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최고이자율을 연 25%로 묶어둔 이자제한법을 폐지했다. 980년에 고려 경종이 최고이자율을 원금의 3분의 1로 정한 뒤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던 이자제한법이 1천 년 만에 종말을 맞았다. 이후 사채시장 금리가 폭등했다. 월 2부(연 24%) 또는 3부(연 36%)가 적용되던 관행이 무너졌다. 대신 월 10부(연 120%)가 넘는 고리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생활정보지 등에 사채·대부업 광고가 나부끼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는 대부업 규제가 시작됐다. 1970년대 후반부터 대부업체에서 고이자로 돈을 빌려 쓴 서민들과 중소사업자들이 원금과 이자를 갚으려고 또 다른 대출을 받는 ‘돌려막기’가 성행했다. 빚이 빚을 낳으면서 일가족 자살과 야반도주가 연일 신문지면을 채웠다. 당시 일본 정부가 허용한 최고이자율은 연 109.5%. 이후 대출금리를 연 73%, 54.75%, 40%로 계속 낮췄지만 사회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일본 정부는 △대출금리를 29.2%로 인하하고 △과다한 채권 추심을 규제하고 △규제 위반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도록 대부업법을 개정한다.

일본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자 일본계 대부업체가 ‘자유로운’ 한국에 잇따라 상륙했다. 1999년 4월 일본계 대부업체 A&O크레디트(러시앤캐시 전신)를 시작으로 산와머니, 원캐싱, 바로크레디트, 유아이크레디트, 스타크레디트, 밀리언캐쉬, 미래크레디트, 아네스트, 베르넷크레디트 등이 들어왔다.

우쓰노미야 겐지(이하 우쓰노미야): 일본 정부는 최고이자율을 연 40%에서 29.2%로 내렸는데 한국은 반대로 연 25%로 제한하던 법률을 없애버렸다. 한국에서 영업하면 큰 이익을 남기겠다고 판단한 일본계 대부업체가 국경을 넘었다. 특히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하던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의 하나인 야마구치 조직이 한국에 진출했다.

‘이자율 규제→불법 금융 증가’는 업계 논리

-불법 사채업자가 급증할 것이라며 최고이자율(39%)을 낮추는 데 한국 금융 당국이 반대하는데.

기무라: 업계의 논리다. 일본에서도 그랬다. 첫째, 대부업 규제를 강화하면 불법 금융이 증가하고 합법 금융은 버틸 수 없다. 둘째, 규제는 업계 자율에 맡겨야 한다. 선택은 금융소비자의 몫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법조계가 대출이자 낮추기 운동을 줄기차게 벌여 성공했다. 이후 경제적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과 개인파산, 회생이 줄었다.

2006년 일본 대부업법이 개정되면서 최고이자율이 연 20%로 낮아졌다. 이마저도 대출금액마다 차이가 난다. 10만엔 미만을 빌리면 연 20%지만, 10만~100만엔은 연 18%, 100만엔 이상은 연 15%다. 법정 최고 이자를 초과하는 이자는 반환해야 한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2006년 1월 그렇게 판결했기 때문이다. 무등록 대부업체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우쓰노미야: 고금리 대출을 규제하는 법률은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법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법이다. 그럼에도 예전에는 불법 사채업자를 신고해도 일본 경찰이 수사하지 않았다. 돈 문제라며 형사처벌하길 꺼렸다. 2003년에 발생한 큰 사건이 이런 경찰을 바꾸었다. 불법 사채업자의 빚 독촉에 시달리던 일가족 3명이 철로에 누워 자살한 것이다. 장애가 있는 남편과 오빠와 살던 여성이 자살하기 전에 경찰에 신고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경찰은 외면했다. 시민사회단체가 ‘3명의 생명을 헛되이하지 말라’며 들고일어났고 국회의원들도 힘을 보탰다. 그해 불법 사채업자 수사만 전담하는 전담반이 경찰서에 생겼다.

-대부업 3대 악 중에서 가장 먼저 규제해야 할 것을 꼽는다면.

기무라: 다 뿌리 뽑아야 하지만 불법 채권 추심을 없애는 게 최우선 과제다. 인간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일본에서는 개인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면 그 순간부터 채권 추심이 금지된다. 법률대리인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 빚 독촉에 시달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던 사람들이 법률적 보호 덕분에 목숨을 구한다. 경제적 자살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시급한 건 불법 추심 근절

야마치 히데키(53)는 15년간 죽음을 생각했다. 출발점은 어머니였다. 빠듯한 살림에 급히 돈이 필요할 때마다 어머니는 빚을 졌다. 1979년 야마치가 대학에 다니면서 빚은 커져만 갔다.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어머니는 은행에서 대부업, 사채업으로 빠져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그를 어느 날 어머니가 급히 찾았다. 내일까지 50만엔이 필요하다고,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울었다. 그도 돈이 없었다. 동네 대부업자를 찾아갔다. 그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은행에 가면 대출 심사를 받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어머니에겐 저축한 돈이라고 거짓말했다. 50만엔, 50만엔, 또 50만엔…. 야마치의 빚은 500만엔으로 늘었다.

생활의 의욕을 잃은 히데키에게 어느 날 직장 상사가 다가왔다. 빚이 많다고 고백했더니 상사가 신문 기사를 건넸다. 전국 크레디트·고금리대금업자 피해자협회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지갑 안에 기사를 넣어놓고도 1년간 망설였다. 한 달 월급 17만엔을 받아 20만엔의 이자를 갚는 생활이 계속됐다. 채권 추심은 일상을 파괴했다. 악순환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고 느낀 히데키는 자살을 결심했다. 그 순간 1년 전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7개월 만에 히데키는 개인파산 면책을 받았다. 1500만엔의 빚을 졌던 어머니도 함께였다. 15년간의 자살 충동이 허무했다. 히데키가 말한다. “일본에서 경제적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연간 3만 명이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빚은 그냥 빚일 뿐이다. 빚은 해결할 수 있지만 잃어버린 목숨은 찾을 수 없다. 그깟 것 때문에 생명을 버린다는 게 어이없는 일이다.” 회원 4천 명이 가입한 전국 크레디트·고금리대금업자 피해자협회 회장인 히데키는 ‘생명의 전화’ 상담원으로 자원봉사한다.

우쓰노미야: 고금리, 가혹한 추심, 과잉 대출은 악순환을 만든다. 대출을 받았는데 이자가 높으면 원금과 이자를 갚기 어렵다. 채권 추심이 가혹해지면 채무자는 더 이자가 높은 곳에서, 더 많은 돈을 빌려야 한다. 몇 차례 돌려막기가 반복되면 다중채무자로 전락한다. 대부업체가 수입을 고려하지 않고 ‘묻지마’ 과잉 대출을 일삼기 때문이다.

기무라: 빌린 사람만이 아니라 빌려준 사람도 책임이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 정부가 고금리를 허용하고 대부업체가 과잉 대출을 일삼았다. 그러고는 무자비한 추심이 이어졌다. 채무자는 패닉에 빠져 주위 사람에게 상담을 하거나 냉정하게 빚 상환 계획을 세우는 게 불가능해진다.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비극적인 사건이 반복되는 구조적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 금융피해자가 스스로 대부업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법률가가 이를 도와야 한다. 때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말이다. 그래야만 법률이, 정책이 바뀔 수 있다.

근본 해법은 빈곤 문제 해결

35년 전 기무라 변호사는 등골이 서늘한 경험을 했다. 고금리 인하 운동을 펼치며 대부업계와 맞서기 시작할 무렵, 한 남성이 찾아왔다. 스스로 우익이라고 밝힌 그는 단도를 꺼내놓았다. “대부업자를 규제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더는 이런 일을 하지 말라.” 성명서를 읽은 뒤 한참을 마주 보며 침묵했다.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기무라 변호사가 경찰을 불렀다. “무서웠다. 하지만 물러설 수도 없었다.” 우편으로 면도날이 배달되거나 전화를 해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자제한법에 이어 2009년 6월 과잉 대출 규제와 대부업 등록 제한도 강화됐다. 이제 50만엔이 넘는 돈을 빌리려면 소득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연수입의 3분의 1을 넘는 돈을 대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업을 하려면 자본금이 5천만엔 이상 돼야 하고 자격시험도 통과하도록 했다. 마침내 대부업의 3대 악이 사라졌다. 대부업체 수는 어머어마하게 줄었다. 2013년 6월 현재 3313곳에 그친다. 최고치를 기록했던 1986년(4만7504곳)의 6.9% 수준이다.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한계를 지적한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부업체를 찾은 서민들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대부업 규제 운동이 결실을 맺자 2007년부터 반빈곤네트워크를 만들어 대표를 맡은 이유다. 기무라 변호사는 “복지가 문제”라고 했다. “가난하면 할수록, 돈이 쪼들리면 쪼들릴수록 고리사채라도 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병원비가 없어서, 등록금이 없어서 돈을 빌려야 하는 비참한 사회를 복지로 바꿔야 한다.”

참고 문헌 <대출천국의 비밀>(송태경·2011), <일본사회와 법>(김현주·2013)

오사카(일본)=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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