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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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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약도, 묻힐 곳도 없다”

버마판 아파르트헤이트의 상징 ‘아웅밍갈라’
등록 2013-09-18 06:29 수정 2020-05-02 19:27

시트웨 시내에 유일하게 남은 무슬림 구역인 ‘아웅밍갈라’는 시트웨 거주 로힝야들이 머물고 있는 또 하나의 무슬림 게토다. 이 구역에 거주하는 6500명가량의 무슬림은 밖으로 나올 수 없고, 취재 접근권으로 보자면 난민캠프보다 어렵다. 단, 이곳에 거주하는 극소수의 힌두교와 라카잉 불교도는 이동에 제약이 없다. 아라칸주 어디서건 다시 한번 반무슬림 폭동이 발생하면 가차 없이 타격을 받게 될 시한폭탄 구역이 바로 아웅밍갈라다.
은 8월 중순 인권 상황 점검차 시트웨를 방문 중인 유엔 인권대사 토마스 퀸타나 팀을 따라 아웅밍갈라에 진입할 수 있었다. 곳곳에 장총을 들고 선 경찰과 보안군은 사진 촬영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 주민은 수갑 찬 시늉으로 양 손목을 들어 보이며 갇혀 지내는 자신들의 절박한 현실을 표현하려 애썼다.
“의약품도, 먹거리도, 학교도 없다. 우리가 죽으면 어디에 묻힐지도 모르겠다.” 쌓아둔 속내를 손짓을 섞어가며 줄줄이 풀어내던 노인이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로힝야이고 싶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에게 자유가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묻자, 랑군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지쳤고 많이 두렵다. 랑군에 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Form 4’를 작성해야 한다.” ‘Form 4’는 이동의 자유가 없는 로힝야 무슬림들이 당국의 허가를 받을 때 작성하는 양식이다. 허가를 무사히 받으면 마을을 45일간 벗어날 수 있다.
10~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아웅밍갈라에는 초등학교만 하나뿐이다. 작은 구멍가게 네댓 개와 몇 묶음 안 되는 채소를 올려놓은 좌판식 장사치들이 있을 뿐 시장은 없다. 주민들은 경제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생계는 치명타를 입고 있다. 매주 월·목요일 국경없는의사회(MSF)의 방문만 허용될 뿐, 공식적으로 비정부기구(NGO)나 국제기구의 출입도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극소수 NGO들이 비밀 루트로 제한된 구호물자를 전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확인은 어렵다. 우산·헬멧 등 다양한 소품을 이용해 난민캠프 내 시장을 이용하는 주민도 있고, 체크포인트 군인들을 매수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도 하지만, 돈도 물건도 중간에 떼이는 경우가 흔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당하고 시민권은 물론 ‘시장 갈 자유’마저 박탈당한 로힝야 무슬림들, 그에 반해 별다른 제약 없이 생계를 이어가는 라카잉 불교도들. 이 두 커뮤니티의 ‘차별분리 정책’을 두고 정부도, 라카잉 정치인도, 그리고 ‘88세대’ 소속 민주화 투사 코코기도 같은 말을 했다. ‘또 다른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따로살이’라고. 학살 책임자들까지 초대한 랑군 88 행사장의 관용 따위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지독한 배제의 땅. 그건 단순한 ‘따로살이’가 아니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적나라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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