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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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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잘 다녀와”

296일 만에 내려온 두 사람… 법은 왜 노동자에게만 가혹한가
등록 2013-08-13 06:21 수정 2020-05-02 19:27
296일 만에 철탑에서 내려온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천의봉씨(왼쪽 세 번째)가 동료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최병승씨(네 번째)는 철탑 앞에 모인 조합원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자”고 말했다.김명진

296일 만에 철탑에서 내려온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천의봉씨(왼쪽 세 번째)가 동료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최병승씨(네 번째)는 철탑 앞에 모인 조합원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자”고 말했다.김명진

최병승·천의봉 편집위원이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8월8일 오후 울산의 바깥 온도는 40℃를 육박했습니다. 불타는 태양이 모든 것을 빨갛게 달궜습니다. 하늘 위에 남은 천막도, 하늘에서 내려온 두 사람의 얼굴도, 땅에서 그들을 맞은 이들의 마음도 빨갛게 익었습니다.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면서 최병승씨는 애써 웃었고, 천의봉씨는 이를 악물고 울었습니다. 이날 아침 최병승씨는 철탑에서 마지막으로 이를 닦으며 “눈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천의봉씨는 제대로 서있을 수 없어 부축을 받으며 울었습니다. 땅의 동료들도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눌렀습니다. 최병승씨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했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참았던 말들을 토해냈습니다. “법은 왜 노동자에게만 가혹한가.” 하늘에서 지상은 20여m에 불과했으나, 착륙하기까지 296일이 걸렸습니다.

위태로운 하늘이었습니다. 칼날보다 얇은 희망을 붙들고 견딘 철탑이었습니다. 불안한 합판 위에서 10일을 버틴 뒤 얻은 천막이었습니다. 100일을 보내며 겨울을 맞았고, 200일을 건너며 봄과 작별했으며, 300일을 바라보며 여름과 사투했습니다.

바늘 같은 추위가 온몸을 찔렀고, 숨 막히는 더위가 체력을 고갈시켰습니다. 농성 69일째 최병승씨는 저산소증으로 쇼크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7월20일 희망버스가 다녀간 뒤엔 천의봉씨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하늘만큼 땅도 위태로웠습니다. 철탑 농성 동안 울산공장 촉탁직 노동자와 아산지회 사무장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울산지회장은 수배 중이고, 수석부지회장은 구속됐습니다.

자본은 빈틈없이 완고했습니다. 세찬 바람에 철탑이 흔들려도 자본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2010년 7월과 지난해 2월 대법원 불법 파견 판결도 모르쇠해온 현대자동차입니다. 정규직 전환이 아닌 신규 채용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파견법 고용의제(사용주가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했을 때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를 헌법재판소까지 끌고 갔습니다.

철탑 생활 중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취임 직후 “임기 중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두 노동자가 하늘에 있건 땅으로 내려오건 외면할 뿐입니다. 권력의 침묵에도 틈이 없습니다.

1931년 강주룡(평양 평원고무 공장 여성노동자·국내 첫 고공 농성자)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노동자가 됐습니다. 하늘은 물러설 곳 없는, 노동자들이 세상을 버티는 마지막 절벽이었습니다. 그 하늘 밑이 요즘처럼 고요했던 때는 없었습니다.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309일을 기점으로 고공농성 일수가 급격하게 뛰고 있습니다.

무덤덤한 세상에서 100~200일 농성은 기본이 됐습니다. 굴뚝과 송전탑은 물론 굴다리, 아파트 옥상, 야구장 조명탑까지, 발디딜 수 있고 손 닿을 수 있는 모든 통로로 하늘에 오릅니다. 누구나 하늘로 오를 수밖에 없는 시대, 고공농성에 더 이상 충격받지 않는 시대, 인간의 조건을 포기하며 견디는 하늘을 더 이상 바라봐주지 않는 시대는 인간이 인간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짐승의 논리’가 지배하는 하늘 아래로 최병승·천의봉씨가 내려왔습니다. 땅을 밟으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고작 ‘사람 많은 울산역 앞에서 라면 먹는 것’이라던 노동자들입니다. 철탑 점거로 한국전력과 법원이 두 사람에게 부과한 퇴거강제금만 1억2천여만원에 이릅니다.

동료들을 가슴으로 안은 뒤 두 사람은 철탑 아래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차에 올랐습니다. 두 사람을 맞자마자 다시 떠나보내는 동료들이 소리쳤습니다. “병승아, 잘 다녀와라….” “의봉아, 울지 마라….” 노조는 목욕과 건강검진, 인권적 조사를 경찰에 요구했습니다.

을 창간하며 두 노동자를 편집위원으로 모셨을때 은 썼습니다. “하늘노동자들의 성공적 착륙을 목적으로 그들의 싸움에 동행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늘노동자들이 땅을 밟았으나 ‘성공적 착륙’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의 동행은 계속됩니다. 희망버스도 8월31일 예정대로 달립니다.

두 사람이 떠나자마자 296일동안 그들을 품어준 하늘 집이 헐리기 시작했습니다. 천막이 걷히고 비계가 뜯겨나갔습니다. 철탑엔 다시 허공만 남았습니다.

울산=이문영 기자최병승·천의봉 편집위원이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8월8일 오후 울산의 바깥 온도는 40℃를 육박했습니다. 불타는 태양이 모든 것을 빨갛게 달궜습니다. 하늘 위에 남은 천막도, 하늘에서 내려온 두 사람의 얼굴도, 땅에서 그들을 맞은 이들의 마음도 빨갛게 익었습니다.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면서 최병승씨는 애써 웃었고, 천의봉씨는 이를 악물고 울었습니다. 이날 아침 최병승씨는 철탑에서 마지막으로 이를 닦으며 “눈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천의봉씨는 제대로 서있을 수 없어 부축을 받으며 울었습니다. 땅의 동료들도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눌렀습니다. 최병승씨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했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참았던 말들을 토해냈습니다. “법은 왜 노동자에게만 가혹한가.” 하늘에서 지상은 20여m에 불과했으나, 착륙하기까지 296일이 걸렸습니다.

위태로운 하늘이었습니다. 칼날보다 얇은 희망을 붙들고 견딘 철탑이었습니다. 불안한 합판 위에서 10일을 버틴 뒤 얻은 천막이었습니다. 100일을 보내며 겨울을 맞았고, 200일을 건너며 봄과 작별했으며, 300일을 바라보며 여름과 사투했습니다.

바늘 같은 추위가 온몸을 찔렀고, 숨 막히는 더위가 체력을 고갈시켰습니다. 농성 69일째 최병승씨는 저산소증으로 쇼크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7월20일 희망버스가 다녀간 뒤엔 천의봉씨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하늘만큼 땅도 위태로웠습니다. 철탑 농성 동안 울산공장 촉탁직 노동자와 아산지회 사무장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울산지회장은 수배 중이고, 수석부지회장은 구속됐습니다.

자본은 빈틈없이 완고했습니다. 세찬 바람에 철탑이 흔들려도 자본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2010년 7월과 지난해 2월 대법원 불법 파견 판결도 모르쇠해온 현대자동차입니다. 정규직 전환이 아닌 신규 채용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파견법 고용의제(사용주가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했을 때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를 헌법재판소까지 끌고 갔습니다.

철탑 생활 중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취임 직후 “임기 중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두 노동자가 하늘에 있건 땅으로 내려오건 외면할 뿐입니다. 권력의 침묵에도 틈이 없습니다.

1931년 강주룡(평양 평원고무 공장 여성노동자·국내 첫 고공 농성자)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노동자가 됐습니다. 하늘은 물러설 곳 없는, 노동자들이 세상을 버티는 마지막 절벽이었습니다. 그 하늘 밑이 요즘처럼 고요했던 때는 없었습니다.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309일을 기점으로 고공농성 일수가 급격하게 뛰고 있습니다.

무덤덤한 세상에서 100~200일 농성은 기본이 됐습니다. 굴뚝과 송전탑은 물론 굴다리, 아파트 옥상, 야구장 조명탑까지, 발디딜 수 있고 손 닿을 수 있는 모든 통로로 하늘에 오릅니다. 누구나 하늘로 오를 수밖에 없는 시대, 고공농성에 더 이상 충격받지 않는 시대, 인간의 조건을 포기하며 견디는 하늘을 더 이상 바라봐주지 않는 시대는 인간이 인간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짐승의 논리’가 지배하는 하늘 아래로 최병승·천의봉씨가 내려왔습니다. 땅을 밟으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고작 ‘사람 많은 울산역 앞에서 라면 먹는 것’이라던 노동자들입니다. 철탑 점거로 한국전력과 법원이 두 사람에게 부과한 퇴거강제금만 1억2천여만원에 이릅니다.

동료들을 가슴으로 안은 뒤 두 사람은 철탑 아래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차에 올랐습니다. 두 사람을 맞자마자 다시 떠나보내는 동료들이 소리쳤습니다. “병승아, 잘 다녀와라….” “의봉아, 울지 마라….” 노조는 목욕과 건강검진, 인권적 조사를 경찰에 요구했습니다.

을 창간하며 두 노동자를 편집위원으로 모셨을때 은 썼습니다. “하늘노동자들의 성공적 착륙을 목적으로 그들의 싸움에 동행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늘노동자들이 땅을 밟았으나 ‘성공적 착륙’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의 동행은 계속됩니다. 희망버스도 8월31일 예정대로 달립니다.

두 사람이 떠나자마자 296일동안 그들을 품어준 하늘 집이 헐리기 시작했습니다. 천막이 걷히고 비계가 뜯겨나갔습니다. 철탑엔 다시 허공만 남았습니다.

울산=이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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