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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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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역행 ‘종북몰이’ 공군, 너마저…

대선·총선 앞둔 지난해부터 전역자 교육 대폭 강화…
국회의원·언론인·사회단체 인사들에게 무차별 종북 딱지
등록 2013-07-24 02:09 수정 2020-05-02 19:27
한 군부대가 내무반에 장병들을 정렬시킨 채 정훈교육을 실시하고 있다.한겨레 자료

한 군부대가 내무반에 장병들을 정렬시킨 채 정훈교육을 실시하고 있다.한겨레 자료

군대는 무엇으로 사는가.

ㄱ씨는 지난 2월 말 공군 병장으로 제대했다. 그는 전역 직전 ‘아싸 (ASSA·Airman Self-reengineering & Society Aid) 캠프’에 참 여했다. 강사로 나온 한 대북방송 대표가 파워포인트를 띄웠다. 하 얀 스크린에 낯익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이었다. 1980년대 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시 절의 임종석 전 의원도 보였다. 오연호 대표도 있었다. 강사는 “이런 종북주의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나 평등을 이야기하는 단체에도 종북주의자들이 스며들어 있다”고도 했다. ㄱ씨는 황당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교 직원노동조합, 참여연대…. 웬만한 시민사회단체는 다 언급됐다. 강 사가 중도 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거론했을 땐 ‘웃 긴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예비역 대령의 강의는 더 충격적이었다. “효 순이·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일 억울해하지 마세요. 미 군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얻는 게 더 많으니까 그 정도는 참아야 합니 다.” ㄱ씨의 입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자리를 뜨고 싶어 도 어쩔 수 없었다. 아직 군인의 옷을 입고 있는 한 교육을 거부할 권 리가 그에겐 없었다.

중도 시민단체에마저 ‘종북’ 딱지

아싸 캠프는 공군 장병이 전역 전 이수해야 하는 의무교육 과정이 다. 전국의 공군 장병들은 19개 상급 부대에 입소해 2주간의 교육을 받아야 제대할 수 있다. ‘표준 프로그램’ 3일째는 종북교육의 날이다. ‘종북세력 실체 인식 및 위험성’ 강의 및 토론이 잡혀 있다. 종북세력 에 대한 각자의 각오를 발표해야 하고, 야간엔 국가관과 종북세력을 주제로 분임토의도 해야 한다. 종북교육을 받지 않으면 사실상 전역 이 불가능한 구조다. 전역을 볼모로 종북몰이에 동참하길 강요하는 것이다.

공군본부는 지난해 6월11일 예하부대에 하달한 공문에서 아싸 캠프의 목적을 ‘국민 안보교육 도장화’로 설명하고 있다. 무예를 닦 는 도장처럼 아싸 캠프를 전 국민의 안보의식을 닦는 도장으로 만들 겠다는 뜻이다. 아싸 캠프가 전역병 교육 외에 부대 인근 학교와 주 민들을 대상으로 병영체험 및 안보교육 강사 지원까지 나선 이유다. 2011년 2월 취임 3돌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상기시키며 장병 정신교육 강화와 국민 안보의식 지원을 지시한 게 아싸 캠프의 발단이었다. 이듬해 3월 주 5일제 수업이 전면 실시되면 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각 군부대가 학생들의 나라사랑 의식을 함 양하는 안보교육 도장이 되라고 지시했다. 성일환 공군참모총장도 지난해 4월 취임사와 5월 현안점검회의에서 ‘국민 안보교육 도장화’ 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동안 2박3일간 운영돼오던 전역 전 교 육이 결국 지난해 7월20일부터 2주간으로 대폭 확대됐다. 전역 전 교육이 없는 육군이나 부대 일정에 따라 하루 또는 이틀 실시하는 해군과도 크게 대비된다. 공군은 “짧은 기간으로는 전역을 앞둔 장 병의 국가관, 역사관, 안보관을 확립하는 데 제한이 있기 때문”이라 고 설명한다.

아싸 캠프의 종북교육을 이수한 전역자들 다수는 심한 왜곡과 편향성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4월 군복 무를 마친 ㄴ씨는 불쾌한 기억을 떠올 렸다. “예비역 장성 강사가 평화로운 집 회와 노동자들의 시위 사진을 보여주며 모두 종북세력이 주도했고 부화뇌동하 는 사람들이 같이 설치고 있다고 설명했 어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가 정부 정책과 배치된다 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종북세력으로 규 정하는 건 전체주의 아닙니까.” 지난 3 월 아싸 캠프를 이수한 ㄷ씨도 “국방대 학 교수가 햇볕정책과 인도적 대북 지 원을 모두 쓸데없는 짓이라며 특정 정권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모 습을 보고 과연 교수 자격이 있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공군 장병들 사이에선 아싸 캠프를 두고 “아싸가 우리를 아싸(아웃사이더)로 만 든다”는 말까지 들린다.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사회 복귀 교육” 이란 국방부의 설명과 달리, 많은 장병들이 아싸 캠프가 오히려 건 강한 시민의식을 해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정전 60년 동안 외부의 적과 전쟁을 치르지 않은 군대는 종북이란 내부의 적을 ‘생산’하고 전쟁을 벌이며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종북교육 목적이 ‘민주시민으로 복귀’라는 억지

공군은 무엇으로 나는가.

한국 공군은 오른쪽 날개로만 난다. 공군의 동력은 균형 잡힌 두 날개가 아니다. 하늘의 새가 좌우 날개로 날 때 공군은 왼쪽 날개를 스스로 자른 채 60년을 날고 있다. 정치적으로 심하게 치우친 내부 교육 시스템이 공군의 기울어진 비행을 지탱하고 있다. 아싸 캠프만 이 아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정훈교육은 장병 들에게 ‘정부 시책의 일방적 내면화’를 압박하는 통로다. 이 분석한 공군의 일일 정훈교육 자료에서 정치적 중립이란 아예 없었다.

공군 일일 정훈교육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근무일 전일 실시 를 원칙으로 한다. 교육자료는 공군본부 정훈공보실에서 직접 제작 해 전자문서 형태로 하달된다. 각 부대 정훈공보실은 A4용지 한 장 분량의 자료 내용을 매일 아침 근무 시작 전에 의무적으로 방송해야 한다. 방송 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부대에선 장병이 직접 낭독하거나 게시판에 붙여 읽도록 한다. 공군은 포상휴가를 걸고 정훈퀴즈대회 를 열어 자료 암기를 권장·유도하고 있다. 공군은 지난해 총선 전인 3월19일(‘군인에게 정치적 중립은 의무 이다’)과 대선 전인 10월2일(‘정치적 중립을 생각할 때’), 11월19일(‘대 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정훈자료에서 군인의 정치적 중립을 거듭 강조했다. 공군의 지침은 정부 정책을 옹호할 때나 ‘같은 편’에겐 적 용되지 않는 이중 잣대와도 같다. 장병들의 비판적 의사표현은 막으 면서도 공군은 정치적으로 치우친 정훈교육 자료를 쏟아냈다. 지난 해 6월26일 자료(‘종북의 실체를 직시하자’)는 애국가를 부정한 “모 국회의원”(이석기 의원)을 “우리 사회 안에서 활개치는 내부의 적”으 로 규정했다. 지난 2월 전역한 ㄹ씨는 “낭독해야 할 정훈교육 자료 내용이 지나치게 편향적이어서 읽기 싫은 자료는 후임 병사에게 대 신 읽으라고 떠맡긴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 민주당 안 규백 의원을 통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육군이 총 선과 대선이 있던 지난해에 실시한 강사초빙 종북교육은 총 166회였 다. 2011년의 21회에서 급증했다. 올해는 5월까지 4회만 진행했다. 해군은 지난해와 올해 5월까지 각각 12회와 2회, 공군은 각각 27회 와 0회를 실시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선거를 염두에 두고 야당을 겨냥한 종북교육이 집중 편성됐다는 의혹이 통계로 뒷받침되고 있 는 셈이다. 종북몰이를 통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특정 사이트를 중심으로 비밀리에 이뤄졌다면, 군의 종북몰이는 국방의 의무를 이 행하는 불특정 다수 장병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정훈교육, MB 시절부터 노골적 정권 홍보의 장 전락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틀 뒤인 2월27일(‘제18대 대통령 취임에 부쳐’)과 취임 한 달 시점인 3월27일(‘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향 하여’) 공군은 박 대통령의 4대 정책기조(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 한반도 평화와 통일 기반 구축)를 거듭 홍보했다. “전 공군인 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의 핵심 내용을 잘 숙지하고 (…) 성공적인 국 정운영에 기여”할 것도 주문했다. 5월13일엔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설명하며 “전 공군인은 한-미 정상회담 및 공동선언의 내용과 의 의에 대해 정확히 숙지하라”고 강조했다. 반면 비판은 엄벌에 처해졌 다. 지난해 6월12일 자료(‘군인에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잘못’)는 한 육군 대위가 트위터를 통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비판한 것을 두고 “대통령님에 대한 비난은 엄연한 ‘상관모욕죄’에 해당”된다고 ‘판결’했 다. “국가원수에 대한 비방을 일삼는 것은 우리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군 기강과 기본 질서를 뒤흔드는 것으로서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 군 검찰은 해당 대위를 상관모욕죄로 기소했다.

권력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명박 정부 시절 공군 정훈교육은 노골적인 정권 홍보의 장이었 다. 교육을 회피할 수도, 논리를 반박할 수도 없는 군대 장병들을 대 상으로 한 일방적인 주입이었다. 정치권력은 군대라는 ‘비판의 진공 상태’를 마음껏 활보했다. ‘땡전뉴스 부활’ 논란을 빚은 이 전 대통령 의 라디오 주례 연설을 매주 월요일 영내 스피커로 들려주며 오전 정 훈교육을 대체하는 부대도 적지 않았다.

2009년 7월1일치 정훈자료(‘치산치수’)는 ‘대운하 예비단계’로 밝 혀진 4대강 사업을 두고 “새 시대를 준비하며 미래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진행되는 사업”이라며 모두 힘을 모으자고 했다. ‘치산치수는 국가의 중대사-물을 잘 다스리는 나라가 풍요’란 제목 의 자료는 아예 “4대강 살리기는 대운하가 아니”며 “4대강 살리기 는 대운하로 쓸 수가 없다”고 단정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 은 생산유발 효과를 가져올” 한국의 신뉴딜정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4대강과 한-미 FTA까지 정훈교육 통해 홍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우 2011년 미국 의회 통과(10월12 일) 2주 뒤인 10월26일에 정훈교육이 실시됐다. 같은 해 한국 국회의 비준안 날치기 통과(11월22일) 2주 뒤(12월5일)에도 교육자료가 하 달됐다. 두 자료는 한-미 FTA를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상을 제고하 고 경제 역량을 강화하는 조치” “국가 발전의 초석을 쌓는 중대한 결 정”으로 표현하며 “전 공군인은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 자”는 행동지침을 내렸다.

제주해군기지를 두고는 반대 목소리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2011년 9월 제주도의회가 이중협약서 문제를 두고 국정조사를 요구 하자 9월19일 주간 정훈교육 자료는 반 대 운동가들을 ‘전문 시위꾼들’로 매도했 다. 지난해 3월 구럼비 바위 발파 허가가 난 직후(3월14일 ‘제주해군기지 건설반 대 주장의 비합리성’)엔 “국론을 분열시 키고 국가안보를 뒤흔드는 반대세력의 선전·선동을 단호히 거부하라”고 주문 했다. 과잉 홍보 및 국제전화 기술 조작 논란을 빚은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캠페인을 두고는 “국가 브랜드를 제 고하고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일은 국가 를 위해 봉사하는 군인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며 동참을 독려(2011년 8월9일 ‘우리의 섬 제주도를 세계의 섬 으로’)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구호에 발맞춰 “녹색공군 구현 에 앞장서자”(2012년 2월14일 ‘실천하는 녹색공군을 향하여’)는 자료 까지 내려왔다.

‘진짜 사나이’의 나라는 진짜 행복할까

공군이 말하는 정치적 중립이란 ‘일방적 정부 정책 지지’인 셈이 다. 정부 정책에 이견을 품지 않는 것이 참된 군인의 자세라고 말하 는 듯하다. 지난 1월 제대한 ㅁ씨는 “4대강 사업과 한-미 FTA에 찬 성해야만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인가. 공군인은 왜 모두 제주해군기지를 찬성해야 하나. 그건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정치적 시녀가 되길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훈교육을 통한 정부 정 책 홍보는 노무현 정부의 군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7년 7월 한- 미 FTA의 당위성을 설명(‘한-미 FTA에 대한 올바른 이해’)하며 ‘군 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질문했다. 다만 사회적 논란이 되는 사 안 홍보에 빈도수의 차이는 있다.

공군은 본부 인권과 차원에서 ‘공군 인권 모니터단’을 운영하고 있 다. 모니터단은 장병들로부터 공군 내 인권침해 실태를 청취하고 시 정·제도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모니터단원으로 활동하다 올해 초 제대한 ㅂ씨는 “정훈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과 인권침해 문제를 수차례 제기했으나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끄는 MBC 병영체험 프로그램 는 가학과 폭력의 세계를 안방에서 웃으며 수용하게 만들었다. 이성과 논리가 아닌 통제와 위계의 내면화는 ‘군대와 결탁한 정치권력’ 혹은 ‘군대가 낳은 정치권력’이 한국 사회에서 실현하길 꿈꿔온 세상이다. ‘진짜 사나이들’의 나라는 어떻게 망하는가. 여태 목도해오지 않았나.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곽우신 인턴기자(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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