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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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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무관심이 낳은 차별금지법 ‘금지’

2007년에서 2013년까지 차별금지법 제정 실패의 역사…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된 새 정부의 국정과제인 차별금지법 제정, 기독교계와 정부의 대립 불씨
등록 2013-05-05 18:49 수정 2020-05-03 04:27

“박근혜 정권과 보수 기독교의 싸움을 지켜보자고요!”
트위터 아이디 복지세상(@jk0027)이 올린 멘션이다. 왜 싸우지? 이유는 같은 멘션의 앞부분에 나온다. “정부가 차별금지법률안을 제출하면, 다시 보완해서 제출한다 합니다.” 김한길·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이 보수 개신교의 압력을 못 이겨 철회한 차별금지법안을 법무부가 다시 제출하면, 민주당이 다시 보완한 안을 제출한다는 것이다. 애초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정추진 과제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꼽았고, 법무부도 제정추진단을 구성해 정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르면 9월 정기국회에 정부안이 제출될 가능성이 있다. 유엔인권이사회 등이 2013년 한국에 대한 ‘국가별정례인권검토’(UPR)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고 한국 정부가 입법을 약속했기 때문에, 차별금지법 제정은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한국은 올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활동을 시작해 책임감이 더 커졌다. 만약 차별금지법에 개신교계가 그토록 반대하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가 명시된다면, ‘박근혜 정부’와 ‘보수 기독교’가 대립하는 은혜롭지 못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4월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별금지법 철회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지 않아 법안 철회는 마무리됐다.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철회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4월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별금지법 철회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지 않아 법안 철회는 마무리됐다.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철회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사실 차별금지법은 강력한 처벌 조항을 갖춘 법률이 아니다.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해 조사하는 도중에, 진정인에게 불이익 조처를 취하는 경우에 벌금을 매기는 정도다. 간접 차별, 괴롭힘 등에 대한 조항이 있지만, 그 실효성은 입법 내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2013년 슬로건은 ‘종북 게이’

2007년에서 2013년까지, 인권의 시계는 거꾸로 흘렀다. 2007년 노무현 정권 말기에 법무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예고했다. 논란은 같았다.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뜻하는 ‘성적 지향’을 차별 금지 예시 항목에 넣는 것에 개신교 진영이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2008년 발의된 법안은 ‘성적 지향’ 등을 차별 금지 항목에서 삭제해 ‘누더기 차별금지법’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그나마 정권 말기에 ‘면피용’으로 발의된 안은 17대 국회 임기가 끝나며 ‘자연사’했다.

교회의 권능은 갈수록 커졌다. 2007년,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은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 전설적인 구호를 남겼다. 2013년의 슬로건은 ‘종북 게이’로 요약된다. 북한은 동성애자의 존재조차 부정하는데, ‘종북’과 ‘게이’가 남쪽에선 일체를 이뤘다. 초교파 시민단체를 표방하지만 개신교도가 중심을 이루는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바성연)이 배포한 동영상 ‘차별금지법의 숨겨진 진실’은 이렇게 말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이여! 북한이 핵으로 도발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차별금지법’을 막지 않으면/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되어 종북세력에 의해 결국 월남처럼 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동성애로 병들어 자살할 것이며, 역차별로 인해 사회적 공감대를 가진 대다수의 국민들이 범죄자가 될 것이다/ 남남 갈등을 일으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종북세력에게 휩쓸리지 말아라!”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목사가 설교 시간에 동성애를 비판해도 벌금을 내게 된다’ 같은 말들이 유포됐다. 나아가 ‘미국에서 동성애법이 통과된 주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동성 간 성행위(항문성교)를 함께 가르치고 있다’ 같은 검증이 필요한 사례도 들어 있다.

사실 차별금지법은 강력한 처벌 조항을 갖춘 법률이 아니다.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해 조사하는 도중에, 진정인에게 불이익 조처를 취하는 경우에 벌금을 매기는 정도다. 간접 차별, 괴롭힘 등에 대한 조항이 있지만, 그 실효성은 입법 내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개신교계가 느끼는 위기감은 대단했다.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자 ‘종교의 자유’를 걱정하며 거리집회를 열고, 4만 장의 전단을 배포하고, 1천만 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열정이 퍼졌다. 나아가 ‘반동성애’ 캠페인을 통해 분열된 교회가 다시 하나되는 ‘교회 일치’ 흐름도 나타났다. 지난해 임원 선출 과정에서 갈등하다 조직이 분리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차별금지법 반대’에 한목소리를 냈다.

개신교계 진보라는 NCCK의 침묵

태평양 건너 미국의 한인교회도 한국의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을 벌였다. 한국 개신교는 태생부터 미국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낙태와 동성애를 사회악으로 여기는 미국식 근본주의 교회의 영향이 한국의 차별금지법 반대에도 강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보수 교회가 경쟁하는 다수라면 한국에선 압도적 다수다. 동성애 반대에 관해선 중립지대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은 지난 3월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철탑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이렇게 ‘치유와 화해’를 강조한 예장통합은 지난 4월, “성정체성에 대한 차별 금지는 보편적 윤리에 심각하게 반하는 조항”이라며 차별금지법 반대 성명을 총회장 명의로 발표했다. 여기에 개신교계 진보라는 NCCK의 침묵이 깊어간다.

자, 다시 돌아가 ‘종북 게이’라는 동거 불가능한 조합은 어떻게 나왔을까. 차별금지법 반대에 앞장서는 개신교 단체로 이름이 자주 오르는 에스더기도운동, 성시화운동본부, 의회선교연합 등의 홈페이지를 살펴보자. 에스더기도운동 게시판에는 ‘차별금지법안이 철회되었습니다’ ‘연방제 통일… 당신의 선택은?’ 같은 게시물이 나란히 떠 있다. 성시화운동본부 홈페이지에도 ‘한국교계 동성애·동성혼 국회입법저지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구국기도회’ 게시물이 함께 있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차별금지법 반대와 탈북자에 대한 임수경 민주당 의원의 발언을 규탄하는 성명에 에스더기도운동, 밝은인터넷세상만들기운동본부 같은 단체의 이름이 동시에 나온다. 반북·반동성애는 ‘애국기독교’의 활동에서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는 “2010년 군형법 계간 조항 개정이 논의될 무렵, 고엽제전우회 같은 단체가 반동성애 진영에 결합하며 ‘동성애가 국가안보를 흔든다’는 프레임이 나왔다”고 분석했다.

중구난방으로 분열된 민주당 가관

한국을 기독교 윤리의 최후 보루로 자처하는 자긍심도 더해진다. 바성연이 배포한 소책자 ‘동성애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이렇게 주장한다. “미국 몇 개의 주와 유럽 등의 몇 나라에서 동성애를 인정하는 법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동성애를 인정하는 나라들은 포르노를 합법화하여 성적으로 타락한 나라이다. 한국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성적으로 타락하였다. 현시점에 경제적으로 부유하면서 그래도 어느 정도의 건전한 성윤리를 가진 국가가 한국이다. 그러기에 경제적으로 부유하면서도 건전한 성윤리를 잘 유지하는 본보기 국가가 되어야 한다.” 이 문장에는 자부심과 더불어 위기감도 엿보인다. 한국 기독교가 건너온 미국에서도 동성혼이 확산되니, 소멸해가는 가치를 지킬 나라는 ‘선택받은 나라’인 한국밖에 없는 생각이 동성애 반대의 열정에는 깔려 있다. 차별금지법 반대를 대표하는 개신교 조직은 ‘한국교계 동성애·동성혼 국회입법저지 비상대책위원회’인데, 이름부터 한국에 없는 현실인 ‘동성혼 입법’과 싸우고 있다.

‘한국교계 동성애·동성혼 국회입법저지 비상대책위원회’의 상임대표는 민주당 의원 출신 김영진 장로다. 차별금지법 문제를 보면 민주당은 ‘무지개 정당’으로 재평가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소수자 관련 입법을 추진할 때는 다수의 입장을 설득할 논리와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2008년의 무산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된 뒤에야 성소수자단체도 그 사실을 알았을 정도다. 준비되지 않은 발의는 성급한 철회로 끝났다. 홍 교수는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에 들어가 있으니 조금만 정치력을 발휘하면 새누리당도 설득할 수 있는 판이었다”고 지적했다. 차별금지법 공동발의자로 서명한 김진표 의원은 자가당착의 표상이다. 그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종교특위 기독교위원장 자격으로 “동성애·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김한길 의원의 차별금지법에 공동발의자로 서명했다. 다시 반전, 최근 그는 “동성애·동성혼이 허용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문자를 개신교계 인사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군형법 92조에 대한 민주당의 분열은 점입가경이다. 차별금지법 철회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군사법원장 출신 민홍철 민주당 의원은 군형법 92조 개정안을 내놓았다. 위헌성 논란이 일었던 군형법 92조의 ‘계간’ 항목을 ‘항문성교’로 바꾼 개정안이 김광진 민주당 의원의 발의로 지난 3월 통과된 뒤였다. 민 의원이 낸 ‘군형법 일부 법률개정안 공동발의 요청’을 보면 92조 6항의 명칭이 ‘추행’에서 ‘동성 간의 간음’으로 바뀐다. 내용도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이 ‘군인 또는 준군인이 동성 간에 항문성교나 구강성교, 기타 유사성행위를 한 때에는’이라는 문구로 대체된다. 이렇게 되면 동성 간 합의된 성행위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처벌 대상도 남성 동성애에서 여성 동성애로 확대된다. 이 조항을 “동성애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비판해온 성소수자단체는 4월25일 민주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의 철회를 주장했다. 한편 한 민주당 의원은 군형법 92조 폐지안을 마련 중이었다. 앞서 김광진 의원의 개정안이 나올 당시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의 합의된 성관계는 처벌하지 않는 안도 나왔다. 이렇게 하나의 조항에 대해 4개 법률안이 나온 민주당은 진정한 다양성이 보장되는 중구난방 ‘무지개 정당’이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이 지난 4월25일 서울 영등포 민주통합당 당사 앞에서 민홍철 의원이 발의를 준비 중인 군형법 92조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차별금지법 철회 사태의 도중에 벌어진 일이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이 지난 4월25일 서울 영등포 민주통합당 당사 앞에서 민홍철 의원이 발의를 준비 중인 군형법 92조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차별금지법 철회 사태의 도중에 벌어진 일이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2007년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추진에 강하게 반발했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2013년의 논란에서 보이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이 기업활동의 자유를 제약한다’고 다시 주장할 필요도 없이 개신교계가 대리전을 치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개신교의 공격을 받는 상황을 즐기는 새누리당도 있다.
개신교 뒤에서 웃는 재계와 새누리

강력한 반대자와 헤매는 정당이 있지만, 차별금지법 찬성 여론은 확산되지 못한다. 여성·장애인 등이 함께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있지만, 찬성 여론 조직의 짐은 성소수자단체가 크게 지고 있다. 이것은 ‘이상한 나라’의 현상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은 원래 노동에서 나온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차별로 인한 해고를 다투는 과정에서 이를 판단할 법적 근거의 필요성이 먼저 제기된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한가람 변호사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계가 50%, 여성계가 30%, 소수자들이 20%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지금 노동계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도 버거워 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개신교가 강하게 나선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는 의견도 있다. 한채윤 대표는 “한국에서 차별은 존재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았다”며 “차별금지법 발의조차 가로막는 개신교 때문에 차별의 실체가 드러났고,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한가람 변호사는 “문제의 핵심은 헌법상 정교분리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종교적 신념이나 압력이 정책에 반영돼서는 안 된다는 공직자 윤리의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차별금지법 논란의 뒤에서 웃고 있는 이들도 있다. 2007년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추진에 강하게 반발했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2013년의 논란에서 보이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이 기업활동의 자유를 제약한다’고 다시 주장할 필요도 없이 개신교계가 대리전을 치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개신교의 공격을 받는 상황을 즐기는 새누리당도 있다.

차별금지법 철회가 알려질 즈음인 4월23일 프랑스에서는 동성결혼 법안이 통과됐다. 법안이 가결될 무렵, 반대하는 이들이 의사당에 들어와 야유를 퍼부었다. 클로드 바르톨론 프랑스 하원의장은 이들을 향해 “저 미친 사람들을 국회에서 쫓아내세요. 민주주의의 적은 국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쫓아내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법안 상정 하루 전에 탄약가루가 든 협박 편지를 받았다. 어디가 정상 국가이고, 누가 유능한 정치인인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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