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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귀찮게, 지나치게…’ 경범죄 오·남용, 사회 건강 해친다

구걸도 범칙금 매기는 경범죄 시행령 개정안, ‘장발·미니스커트’ 단속의 추억 겹쳐… 모호한 조항에 집권자 의지에 따른 과도한 적용으로 사회 건강 해쳐온 경범죄, 전면적 재구성 필요해
등록 2013-03-23 10:00 수정 2020-05-02 19:27

“아래 보기와 같이 공공장소에서 어느 정도 수위로 노출이 되어야 처벌 가능한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① 성기·유방 등 신체 중요 부위 노출 ② 여성 상의 탈의 후 바닥에 엎드려 일광욕 ③ 비키니 수영복 착용 ④ 여성 상의 탈의 후 수건 등으로 가슴을 덮고 일광욕 ⑤ 중요 부위가 보일 정도로 속이 비치는 의상 착용 ⑥ 속옷만 착용.”

953호 특집1

953호 특집1

1954년 제정, 밀항도 경범죄

이웃집 중학생의 호기심이 아니다. 경범죄를 단속하는 일선 경찰의 궁금증이다. 2011년 7월 외국인 여성 3명이 서울 청계천변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겼다. 이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며 네티즌들이 처벌 여부를 두고 와글와글 갑론을박했다. 관할 경찰서의 기초생활질서 담당자는 곤혹스러웠다. 결국 이런저런 노출 상황을 가정한 질의를 상급기관인 경찰청에 보냈다. 경찰청 생활질서과는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현재 경범죄처벌법 조항만으로는 정확한 기준을 내리기 어려우나 사회 통념상 성기·유방 등 신체 중요 부위를 공공연하게 노출할 경우를 과다 노출로 단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출 행위를 개별적으로 판단하기 모호하므로 장소 및 시간, 주변 여건 등을 모두 고려해 단속해야 할 것입니다.” 여전히 모호한 답변 속에 분명한 것은 성기 정도였다.

2012년 5월 밤 10시에 한 파출소로 신고가 들어왔다. 누군가 동네 농구장에 개를 풀어놓아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관들이 다가갔음에도 개는 꼬리를 흔들며 짖지도 않았습니다. 개는 품에 안고 다닐 정도로 크지 않아 개 주인에게 범칙금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신고자는 ‘공공장소에서 목줄을 하지 않은 것은 일부러 개를 풀어놓은 것으로 봐야 한다’며 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경범죄처벌법의 범칙금 대상이 되느냐는 질의였다. 경찰청이 답했다. “경범죄처벌법에서 말하는 ‘위해동물 관리 소홀’은 무는 습벽이 있는 개, 사람을 받는 습관이 있는 소·염소 등이 그 대상입니다. 개의 무는 습벽은 현장에서 경찰관이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목줄을 안 했다고 해서 경범죄처벌법 위반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3월11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뒤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령안’이 통과됐다. 과다 노출이나 구걸 행위 등에 범칙금을 부과하는 한편, 술을 마시고 경찰서 등에서 소란을 피우는 행위에 대해 구속·체포가 용이한 60만원 이하 벌금 부과 조항 등을 신설해 논란을 일으켰다. 수십 년 전부터 있던 내용이거나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확정된 내용이었다지만, 아버지 박정희 시절 미니스커트와 머리 길이까지 처벌하던 ‘유신 경범죄’를 강력하게 환기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정부 구성이 늦어지며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가는데 하필 첫 국무회의에서 시민들의 일상을 세세하게 규율하고 처벌하는 내용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구걸 행위 처벌은 노숙인 등 가난한 이들만을 겨냥한 ‘빈곤의 범죄화’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유사한 조항이 미국에서는 이미 위헌 판단을 받은 바 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과다 노출 처벌은 신설된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내용이며 미니스커트나 배꼽티는 처벌되지 않는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28개 처벌 항목이 즉결심판 법정에 출석할 필요 없이 금융기관에 범칙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처벌이 종료되는 등 시민들의 편의성이 높아졌다”고 해명했다.

경범죄처벌법은 1954년 처음 만들어졌다. 그 뿌리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부과했던 경찰범처벌규칙에 있다. 87개에 달하는 처벌 항목 가운데는 신체 노출, 구걸, 단체 가입 강요 등 현재의 경범죄처벌법 조항과 빼닮은 내용도 많다. 경범죄는 중범죄가 아닌 것들을 말한다. 옆집까지 들리게 떠드는 행위,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슬쩍 버리거나 침을 뱉는 행위, 컴컴한 골목 구석에서 소변을 보는 행위 등을 처벌한다. 일반인의 생활과 많이 겹친다. 그러다보니 특정 시대의 사회적 상황과 풍속을 보여주기도 한다. ‘풍속의 처벌’인 셈이다. 1954년 제정 당시 처벌 항목에는 ‘일정한 주거를 가지지 않고 제방에 배회하는 자’를 처벌했다. 요즘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반면 지금은 따로 법률을 두고 엄하게 처벌하는 식품위생 범죄와 밀항까지도 ‘경범죄’로 보았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그랬을 것이다.

1973년 조항 확대, 2008년 단속 폭주
박정희 정권의 유신은 장발을 퇴폐 풍조로 보고 경범죄처벌법으로 단죄했다. 1970년대 도심에서 벌어진 장발 단속 모습. 보도사진연감

박정희 정권의 유신은 장발을 퇴폐 풍조로 보고 경범죄처벌법으로 단죄했다. 1970년대 도심에서 벌어진 장발 단속 모습. 보도사진연감

경범죄처벌법은 1963년 첫 개정이 이뤄진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다. ‘미신요법을 행하여 민심을 현혹한 자’ ‘신체의 전부를 노출시켜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게 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새로 들어갔다. 유신시대로 접어든 1973년에는 퇴폐풍조 단속 등을 이유로 기존 47개였던 처벌 항목 수를 54개로 대폭 늘렸다. ‘신체를 과도하게 노출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생겼다. ‘성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장발을 한 남자’ ‘미풍양속을 해하는 저속한 옷차림’도 처벌 대상이 됐다. 은밀한 장소에서 춤을 가르치는 행위도 제재를 받았다. 담배꽁초·침·술주정·유언비어·암표·새치기 등 자질구레한 단어들이 법조문에 대거 진입한다.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한 1980년 말에는 사회 정화가 강조되며 무전취식·무임승차·금연구역 흡연 등이 처벌 목록에 추가된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에는 유신 시절에 만들어진 장발이나 저속한 의상 등의 처벌 조항은 삭제된다.

어떤 법의 ‘영’이 서려면 의문의 여지 없이 명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딱 이만큼까지는 허락되지만, 그 이상 넘어가면 반드시 제재를 받는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사람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 의미가 불확실하면 어떤 행동이 처벌받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법 집행자 역시 불명확함을 빌미로 자의적인 법 해석과 집행을 하게 될 여지가 크다. 그런 점에서 경범죄처벌법은 도통 그 영이 서지 않는 법 가운데 하나다. 단속에 걸릴 때보다 안 걸리는 때가 많아서, 한 번쯤은 어겨봤을 법한 내용들이라, 제재의 강도가 범칙금 몇만원 정도로 약해서. 그런 이유들도 있지만 집권자 혹은 법 집행자의 의지에 따라 법 적용의 강도와 범위가 크게 좌우되는 탓도 크다.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단속된 건수는 30만7912건에 달했다. 이듬해인 2009년 단속 건수는 13만7717건으로 뚝 떨어진다. 해마다 줄더니 2012년에는 5만8002건으로 임기 첫해에 견줘 6분의 1로 줄었다. 범칙금 징수액도 2008년 61억9500여만원에서 2012년 11억여원으로 뚝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 5년을 거치며 ‘법질서 의식’이 확 높아졌을까. 참여정부 때와 비교하면 2008년과 2012년의 단속 건수는 예외적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07년 범칙금과 즉결심판이 부과된 건수는 모두 10만3401건이었다. 30만여 건에 달했던 2008년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하기 전부터 ‘법질서 확립’을 입에 달고 다녔다. 좋은 말이기는 한데 법질서에도 여러 수준이 있다. 대통령과 정부 각 부처가 떠받들었던 법질서라는 게 주로 시국치안이나 ‘낮은 수준’의 공중도덕이었음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8년 초 어청수 경찰청장은 기초·교통질서 확립 방안을 마련해 실행하라는 지시를 일선에 내렸다. 이때부터 각 지역 경찰들은 ‘법질서 확립 원년 선포식’ ‘교통질서 확립 선포식’ ‘기초질서 확립 캠페인’ 등 전시성 행사에 몰두했다.

지난 3월14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경범죄처벌법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인권단체연석회의·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참여연대·한국진보연대·홈리스행동 공동 주최. 한겨레 탁기형 기자

지난 3월14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경범죄처벌법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인권단체연석회의·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참여연대·한국진보연대·홈리스행동 공동 주최. 한겨레 탁기형 기자



경찰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첫해에 법질서를 워낙 강조하지 않았나. 단속 실적으로 평가받는 성과주의를 요구받다보니 경범죄처벌법 위반 건수가 확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권력자의 의지가 경찰을 통해 단속 건수로 실현된 것이다. 그러다 2011년 말 경찰에게 주어지던 ‘단속 점수’가 없어졌다. 2012년 단속 건수는 5만8002건으로 사정없이 곤두박질친다.


‘단속 점수’ 사라지자 ‘단속 건수’ 줄어

실적 채우기에 만만한 분야들이 있다. 대합실 등 금연장소에서의 흡연 단속 건수는 2007년 2만2564건에서 2008년 10만6348건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담배꽁초·껌·휴지 등을 버리다가 걸린 건수도 2007년 1만4818건에서 1년 사이에 6만389건으로 확 뛰었다. 침을 뱉었다가 단속당한 건수도 1002건에서 6425건으로 6배 넘게 증가했다. 시끄럽게 떠든다는 이유로 범칙금 딱지를 떼거나 즉결심판에 넘겨진 건수 역시 2만1660건에서 4만6960건으로 배 이상 늘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아무 곳에서나 담배 피우고 침 뱉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을 리는 없다. 경찰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첫해에 법질서를 워낙 강조하지 않았나. 단속 실적으로 평가받는 성과주의를 요구받다보니 경범죄처벌법 위반 건수가 확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권력자의 의지가 경찰을 통해 단속 건수로 실현된 것이다. 그러다 2011년 말 경찰에게 주어지던 ‘단속 점수’가 없어졌다. 2012년 단속 건수는 5만8002건으로 사정없이 곤두박질친다.

사소하게 보이는 행위까지 박박 긁어 처벌하는 경범죄 단속 강화는 사회 전체의 ‘군기’를 바짝 잡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범죄심리학 이론 가운데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사소하게 보고 방치하면 관리가 안 되는 것으로 판단한 사람들이 나머지 유리창까지 모조리 깨뜨려버린다는 내용이다. 이 이론이 나온 1982년 미국은 보수 공화당 집권기였다. 이론을 만든 제임스 윌슨은 우파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다소 무질서한’ 시민들의 일상에 대한 경찰력의 과도한 개입을 깨진 유리창 이론이 정당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0년대 미국 뉴욕의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깨진 유리창 이론을 뉴욕의 범죄 예방 프로그램에 적용했다. 이는 뉴욕시의 ‘무관용 경찰 활동’으로 이어졌다.

법질서 확립에 대한 신념은 박근혜 대통령도 뒤지지 않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법질서·사회안전 분과를 따로 설치하기도 했다. 역시나 어떤 법질서냐가 문제다. 박 대통령은 3월14일 경찰대 졸업 및 임용식에 참석했다. 그는 축사에서 “우리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반드시 근절시키겠다는 굳은 각오로 국민 생활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탈법과 무질서, 구조적인 부조리와 반칙을 엄단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앞서 경찰청은 박근혜 정부 첫 국무회의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올해는 오물 투기, 광고물 무단 부착, 현수막 등 ‘시각적 위반 행위’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인의 기호·선호까지 처벌하나”

현행 경범죄처벌법에는 ‘억지로, 재주 등을 부리고, 떠들썩하게, 못된 장난, 싫다고 하는데도, 함부로, 귀찮게, 신기하고 용한, 지나치게, 마음을 홀리게’ 등 추상적이고 애매한 용어가 많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경범죄처벌법의 ‘해체 후 전면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기초질서 위반 행위에 대한 규제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다만 이런 것들까지 경찰 활동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다. 경찰 업무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규제로도 충분한 내용이 있다. 반면 행정 규제가 아닌 형벌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단순 질서 위반은 범칙금이 아닌 과태료로 돌려야 한다. 지금 경범죄처벌법은 경찰에게 시민들의 일상을 규율하는 너무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 이를 정리하자는 것이다.” 범죄심리학자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정부나 권력자가 사회 통제 등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 경범죄처벌법을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키울 수 있다. 법의 영역이 아닌 부분, 개인의 기호나 선호에 관한 부분까지 국가가 처벌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수사권이 간절한 경찰도 자질구레한 것까지 신경 쓰기보다는 수사 업무에 집중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경찰은 선도부가 아니니까.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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