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씨는 태어날 때부터 B형간염을 앓고 있다. 건강 문제 때문에 출마를 못할 것이다. 안씨는 건강이 회복됐다고 주장하지만 이 병은 완치가 안 되는 병이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9월4일 MBN 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그는 전날 조갑제닷컴에도 ‘안철수 건강 상태, 대통령직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건 중 하나’라는 기사를 올렸다.
이명박은 괜찮고, 안철수는 안 된다?
지난 9월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실제로 B형간염 보유자다. 2002년 를 보면,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이 만성 B형간염과의 전쟁에서 몸을 회복한 뒤 최근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는 기사가 있다. “안 사장이 B형간염 바이러스와 인연을 맺은 것은 태어날 때부터. 1980년대 이전까지 국내 B형간염 바이러스 보균자가 전체 국민의 10%였던 것을 감안하면, 출생시 모체로부터 간염바이러스가 전염되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안 후보는 B형간염 보유자인 어머니로부터 바이러스를 물려받은 ‘수직감염자’였다. 혈액 등에 의해서만 전염되기에 B형간염은 수직감염이 대부분이다. B형간염 백신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1980년대 이전 출생자에게 많이 나타난다. 신생아에 대한 B형간염 예방접종이 일반화돼, 현재는 전체 국민의 3∼4%만 감염된 상태다. 특히 20살 이하에서는 1% 미만에 그친다.
안 후보의 몸에서 조용히 지내던 간염바이러스가 탈이 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그의 나이 35살이었다. B형간염은 15∼30년간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안 후보처럼 어느 날 갑자기 간 수치가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안 후보는 간염의 악화와 회복을 반복하다가 2002년에야 비로소 간 기능을 되찾는다. B형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6개월 이상 지속됐으니 그는 만성 B형간염에 걸린 거였다. B형간염을 오래 앓으면, 일반인보다 간경변증이나 간암 등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아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필요하다.
B형간염 보유자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을까? 이영석 가톨릭의대 교수의 답변은 이렇다. “바이러스 활동을 억제하는 다양한 약물이 있어 B형간염은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딴 B형간염 선수도 있을 정도다.”
대법원의 판례도 마찬가지다. “과로나 스트레스 자체가 일반적으로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을 악화시킨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다.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은 과로나 스트레스 없이도 악화될 수 있고 임상적으로도 그런 경우가 더 많다.” B형간염 보유자가 간암으로 사망하더라도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가까운 사례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그의 자서전 를 보면, 이 대통령도 1977년 현대건설 사장이던 시절 B형간염을 앓았다. 그의 나의 36살이었다. 이후 안철수 후보와 마찬가지로 악화와 회복을 반복하는 만성으로 간염이 옮아갔고, 1988년이 돼서야 간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섰다. 이 대통령이 건강상 문제로 대통령직 수행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나 언론 보도는 없었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size="3"><font color="#666666"> B형간염 보유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을까? 이영석 가톨릭의대 교수의 답변은 이렇다. “바이러스 활동을 억제하는 다양한 약물이 있어 B형간염은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딴 B형간염 선수도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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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예방 캠페인이 조장한 차별 의식
B형간염 보유자가 겪는 실제적인 문제는 건강보다는, 그릇된 상식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다. 특히 잘못된 사회 통념이 정부에서 비롯돼 더 심각한 상황이다. B형간염은 사회생활에서 다른 사람에게 건강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1980년대 초반 보건당국은 B형간염 예방 캠페인에 나서며 잘못된 사회 통념을 형성했다. A형간염과 B형간염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술잔만 돌려도 간염에 걸린다는 공포감을 심어준 탓이다. A형간염은 대체로 음식물을 통해 전염되지만 B형간염은 거의 혈액을 통해서만 전염되는데도 말이다.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최근에도 설문조사 응답자의 74%가 간질환은 타액(침)에 의해 전염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답한다. 반면 주사나 혈액(17.1%), 성접촉(2.8%) 등의 위험은 낮게 봤다.
그릇된 통념은 사회적 차별로 이어졌다. 2000년까지 B형간염은 ‘업무종사의 일시적 제한대상 질병’으로 분류됐다. 2000년 10월 보건복지부가 전염병예방법시행규칙을 개정해 “B형간염 보유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 등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한 행위”라고 밝혀 변화의 싹이 움텄다.
하지만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10월20일 ‘간의 날’을 맞아 2009년 국내 간질환 환자의 사회적 환경을 성균관대 의대 조용균 교수가 분석해보니, 취업과 학업·입학 등에서 겪는 어려움이 여전히 심각했다. B형간염 보유자라는 이유로 고용을 거부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37.3%였다. 암환자(21%)보다도 차별이 심했다. 해고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7.1%였고, 14.3%는 임금·승진 등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밝혔다.
채용 때 신체검사가 가장 큰 문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2005년까지 신규 채용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했다. 노동자가 일할 곳을 배치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실제로는 B형간염 등을 선별하는 도구로 활용돼왔다.
입사를 준비하다 포기한 B형간염 보유자의 경험이다. “어떤 기업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소리가 있었다. 원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냥 다른 곳보다 좋을 것 같았다. 서류 합격했고 면접 합격했다. 무척 기뻤다. 하지만 되레 걱정이 됐다. 신검이 있었다. 드디어 피를 뽑는다. 난 이게 세상에서 젤로 싫다. 왜 내 피는 이렇게 깨끗하게 안 보일까. 사회는 냉정했다. 피를 뽑고 며칠 후 한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최종 합격 통보가 아니었다. ‘다시 검사를 해보자.’ 당연한 결과였다. 난 정중히 재신검을 거부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B형간염 보유자의 차별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도 눈물겹다. “신랑은 모두 3번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정확히는 2번이다. 마지막은 직접 전화를 해서 상태를 얘기하고 (채용이) 가능한가 문의했더니, 자진 입사 취소가 됐다. 면접까지 다 통과했는데, 예외 없이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오히려 보균자 차별을 신입생 모집에 명시해
산업안전보건법이 2005년 개정돼 채용 때 신체검사는 의무 규정에서 빠졌지만 고용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B형간염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입사가 취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 큰 문제는 명확한 기준과 규정이 없다는 거다. 사업주나 입사 담당자가 주관적으로 판단이면 그만이다.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전문의의 소견도 휴지 조각이 된다. 일부 기업은 최종면접과 신체검사를 같은 날 실시해 B형간염 보유자를 탈락시키고는 다른 이유를 둘러댄다.
2009년 김아무개(20대)씨는 신입 행원 채용시험에서 최종 면접까지 통과했지만 신체검사 결과 B형간염 보유자라는 이유로 탈락했다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했다. 은행은 김씨가 고객 면담을 주로 맡을 예정이라 전염 위험이 높고, 잦은 술자리와 출장 탓에 B형간염으로 쉽게 발전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또 최종 면접 때 태도 점수가 낮았을 뿐, 신체검사 결과가 당락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권위의 조사 결과,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태도 점수는 신체검사 이후에 부여된 점수임이 확인됐다. 불참자가 생겨 추가로 신체검사를 받은 응시자는 김씨보다 2배나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신체검사 후 전문의는 종합의견을 내어 “김씨가 직장생활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밝혔다. 김씨가 B형간염 보유자임을 알고 은행이 낮은 태도 점수를 준 것이라고 인권위는 판단했다. “은행이 김씨의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릴 합리적 근거가 없다. 병력을 이유로 차별한 것이므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국가인권위가 2008년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병력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진정한 사건 117건 가운데 B형간염에 의한 차별이 60.7%나 됐다.
인권위의 권고도 무시하는 공립학교가 있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지방의 ㄱ외고가 그렇다. 2011년 어렵게 이 학교에 진학한 A군은 전교생 중에서 유일하게 기숙사 입사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B형간염 보유자라는 이유에서다. 학부모가 항의했지만 학교는 묵살했다. 기숙 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대학병원 내과 교수의 의견을 첨부해 인권위와 교육청에 진정서를 냈다. 인권위는 “B형간염을 이유로 학교 기숙사 입사를 불허하는 것은 차별이다. 입사를 허용하라”고 권고했다. 교육청도 “기숙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보냈다. 하지만 학교는 끝내 거부했다. “한 학생의 다소 불편한 점보다는, 나머지 400여 명의 건강관리가 더 중요하다.” 불허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학생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해 전염 가능성이 높다. 둘째, 다른 학부모의 항의를 막을 방법이 없다. “기숙사 생활을 통한 전염 가능성이 낮지만 구강이나 피부 상처(면도기·칫솔 등 공동 사용)를 통한 접촉은 직접적 전염 원인이 된다. 이러한 접촉을 완벽히 차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염이 우려된다.” 학교는 이듬해부터는 신입생 모집요강에 ‘전염성이 있는 간염은 기숙사 입사를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A군의 아버지는 가슴을 쳤다. “아이가 태어날 때는 신생아 예방접종이 보급되지 않아서 어머니한테 수직감염된 거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죄인으로 취급받는 아들이 안쓰럽다. 기숙사로 들어가는 친구를 놔두고 홀로 교문을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size="3"><font color="#666666"> 산업안전보건법이 2005년 개정돼 채용시 신체검사는 의무 규정에서 빠졌지만 고용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B형간염 보균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입사가 취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 큰 문제는 명확한 기준과 규정이 없다는 거다. 사업주나 입사 담당자가 주관적으로 판단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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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해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정부가 B형 수직감염에 노출된 신생아에게 면역글로불린 등을 예방접종한 것은 2002년 7월부터다. 예방 처치를 받지 않으면 신생아의 65∼93%에서 B형간염이 발생한다. 따라서 수직감염자들은 의료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태어난 시대의 희생자다. A군 아버지는 “B형간염이 집단생활에서 그렇게 위험하면 군대에도 보내지 말라”고 따졌다.
1993년부터 B형간염 보유자는 현역 판정을 받아 육군이나 의무경찰로 복무한다. 일상적인 생활로는 전염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만성 B형간염으로 진행된 경우에는 공익근무요원이 되기도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다. 다만 해군이나 해병대, 해양의무경찰에는 지원할 수 없었다. 당황스러운 건, 해양의무경찰과 함께 근무하는 해양경찰은 B형간염 보유자가 취업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이었다. 같은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해양경찰은 B형간염 보유자여도 괜찮고, 해양의무경찰은 결격 사유라며 탈락했다. 2006년부터 해군 등의 신체검사가 바뀌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B형간염 보유자인 의사는 어렵지 않게 취업할 수 있지만, 간호사나 원무과 직원은 종종 채용을 거부당한다.
비슷한 간질환인 C형간염과도 엇박자가 난다. C형간염 바이러스는 정상인의 상처난 피부나 점막을 통해 전염된다. A형간염처럼 술잔을 돌린다고 간염되지는 않지만 B형간염처럼 칫솔이나 면도기는 따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 C형간염은 한번 감염되면 70∼80%가 만성 간염으로 진행되고, 이 중 30∼40%가 간경변증·간암으로 옮겨간다. 예방이 중요한데 B형간염과 달리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항바이러스제까지 개발된 B형간염보다 위험하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는 B형간염이 줄어드는 반면 C형간염이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채용 신체검사 항목에는 C형간염이 아예 포함돼 있지 않다. 검사 비용도 비싸고 방법도 B형간염보다 복잡해서다. C형간염 환자는 다른 검사에 이상만 없으면 전혀 채용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항암제에서도 간암은 다른 암과 차별을 받는다. 소라페닙(상품명 넥사바)은 간암에 허가받은 유일한 표적치료제인데 약값의 50%만 보험급여가 나온다. 다른 암환자는 95%까지 지원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산정특례제도를 보면, 신장암 환자는 약값의 5%인 월 14만원에 소라페닙을 먹는다. 간암 환자는 10배나 많은 월 147만원, 연 1750만원을 내야 같은 약을 먹을 수 있다. 소라페닙은 신장암보다 간암에 썼을 때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약제 반응이 좋은 환자라도 1년이 지나면 무조건 급여 지원이 끊긴다. 눈 뜨고 치료를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차별 끊을 대안, 차별금지법 제정
B형간염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끊어낼 대안은 무엇일까.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는 국가인권위가 2007년에 입법 제안한 차별금지법을 꼽았다. “B형간염 보유자가 겪는 고용과 교육기관에서의 차별은 현행 법률로는 막을 수 없다. 채용 과정에 있는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기업의 주관적 평가를 규제할 방법이 없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병력을 이유로 차별하는 기업과 교육기관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 동변상련을 겪은 안철수 후보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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