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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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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를 막는 법들

국내법의 기준으로 보면 불법인 공유경제 서비스들…
소유권 대신 ‘접속권’ 중심의 미래 경제 형태에 맞는 제도 마련 필요
등록 2012-05-25 12:20 수정 2020-05-03 04:26
서울시내 한 아파트단지의 주차장에 승용차가 가득 차 있다. 국내에선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비사업용 자동차를 빌려 쓰게 해주는 자동차 공유 서비스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돈을 받고 자가용을 빌려주는 건 불법이기 때문이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서울시내 한 아파트단지의 주차장에 승용차가 가득 차 있다. 국내에선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비사업용 자동차를 빌려 쓰게 해주는 자동차 공유 서비스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돈을 받고 자가용을 빌려주는 건 불법이기 때문이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전국 10개 대학교를 마구잡이로 골라 방학 기간 중 기숙사 공실률(비어 있는 방 비율)을 조사해보니 60%에 달했어요. 어차피 아무도 쓰지 않는 공간이라면, 여행을 다니는 국내외 학생들에게 저렴한 비용을 받고 숙소로 개방하면 좋지 않을까요?”

숙박비 한 푼이 아쉬워 여행 중에 찜질방에서 불편한 잠을 청해본 적이 있는 대학생들이라면 이런 제안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렇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낸 이는 올해 23살인 대학생 김태연씨다. 그는 지난 2월 한 기업체에서 진행한 대학생 해외탐방 지원 프로그램에 다른 학생 2명과 함께 참여했다. 11박12일간 영국과 프랑스에서 머물며 들여다본 주제는 ‘방학 중 기숙사 개방 사례’였다. “영국과 프랑스의 대학교 기숙사 5곳을 방문해 살펴보니, 방학 중에 비는 기숙사를 관광객에게 개방해 숙소로 제공하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해서 거두는 수익금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주거나, 기숙사 시설 리모델링에 사용하고 있었어요.” ‘1석3조’ 효과를 얻는 이런 시스템에 감명받은 김씨는 이를 한국에서도 구현해보고 싶었다. 김씨는 지금 학생들이 방학 동안 대학 기숙사를 빌릴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돔서핑’(Dorm Surfing)을 현실화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별다른 진전은 보지 못하고 있다. 안갯속을 헤매듯 모호하다. 어느 정부기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떤 법이 장애물이 되는지 두루 꿰고 있는 이가 없다. 전인미답의 어려움이다.

“법의 속성, 산업 앞서가지 않아”

“여기저기 알아보니, 돔서핑 서비스는 숙박업을 관리하는 공중위생관리법 및 대학 법인과 관련된 사립학교법 두 개와 연관이 있더라고요. 정부 쪽은 제 아이디어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던데 막상 서비스를 현실화하려고 공무원들에게 문의를 하면,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해주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기존에 없던 사업이라 관련 법률과 담당 부서가 어딘지 분명하지 않은 사정이 작용하는 거 같아요. 돔서핑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법이 겹쳐 있는데,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주지 못하는 거죠. 영국에서는 기숙사 개방과 관련해 따로 법률을 마련해 제도를 뒷받침해주고 있더라고요.”

이렇듯 국내에서 이제 막 첫걸음을 뗀 공유경제 서비스를 현행법 잣대로 보면 모호한 구석이 많다. 뜻하지 않은 장애물도 부지기수다. 소셜다이닝 ‘집밥’의 박인 대표도 법에 발목이 잡혀 애초 생각했던 사업 방식을 다른 쪽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가정집에선 밥을 하면 양이 참 많잖아요. 그냥 그런 걸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식품위생법 등을 따져보면 위험한 부분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등록된 음식업소가 아닌 곳에서 돈을 받고 음식물을 제공하면 식품위생법 위반이 되는 현행법 체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내에서 이제 막 첫걸음을 뗀 공유경제 서비스를 현행법 잣대로 보면 모호한 구석이 많다. 뜻하지 않은 장애물도 부지기수다

지난 5월16일 오전 11시,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아파트단지 안 주차장에는 주민들이 세워둔 차량이 빈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차 있었다. 공유경제의 정신을 살려보자. 이렇게 주차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차량을 잠시 누군가에게 빌려줄 수는 없을까. 그러나 국내엔 누군가 사용하지 않는 개인 차량을 몇 시간 동안 빌려쓸 수 있게 해주는 카셰어링 업체가 없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상 자가용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유경제 서비스가 발달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런 일이 불법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개인 간 차량 공유를 중개해주는 서비스 ‘릴레이라이드’(RelayRides)가 2010년 설립돼 운영 중이다. 차 소유주가 직접 대여료와 대여 기간을 정하지만 위법 행위일까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혁신기업가센터 ‘오이씨’의 장영화 변호사는 “법의 속성은 산업을 앞서가지 않는다”며 “돔서핑 같은 경우 기존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공익적 목적이 있다면 이를 잘 살펴 예외 규정을 적용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또 “식품위생법에서는 음식을 잘못 만들면 사람에게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등록된 업소에서만 음식을 판매할 수 있다는 건데, 음식을 파는 것보다 사람을 엮어주는 게 목적인 소셜다이닝 ‘집밥’의 경우 기존 법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도 공유경제 서비스가 활성화하려면 입법 미비 상태를 개선할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적 소유를 신성시하는 현행 법률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도 한국 사회의 법률체계와 경제구조가 소유권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소유권 대신 ‘접속권’을 강조하는 공유경제 서비스와는 상충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현행법은 사적 소유를 신성시해, 누군가 횡령이나 배임을 저지르지 않을까 감시하는 쪽으로 구성돼 있다”며 “미래 경제 형태에 맞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유경제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해법은
단속보다 지원·육성에 중점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공유경제 서비스에서도 최첨단 도시다.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탄생한 공유경제 서비스로는 개인 간 자동차 공유 서비스 ‘릴레이라이드’, 민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 장보기나 세탁물 찾는 일을 이웃에게 대신 맡길 수 있는 서비스 ‘태스크래빗’(TaskRabbit), 이웃집 음식을 공유하는 ‘고블’(Gobble) 등이 대표적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근간인 ‘사적 소유제’와 상충하는 측면이 강한 공유경제 서비스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자 이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격화하고 있다. 예컨대 에어비앤비에 방을 등록해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는 주민들에 대한 과세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은 공유경제 서비스를 기존 법률로 단속하기보다는, 법률을 개선해 공유경제 서비스를 지원·육성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해왔다. 지난 3월 에드윈 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유경제 워킹그룹’ 출범을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에드윈 리 시장은 공유경제 워킹그룹이 공유경제 서비스와 관련한 정책적 논란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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