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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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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독수리 5형제’의 성적표

다수 의견에 맞서 진보·개혁 대법관 5명이 한 목소리 낸 사건들…
소부에서 각자 활동하며 얻어낸 중요한 선고 많아
등록 2012-05-16 11:58 수정 2020-05-02 19:26
독수리 5형제는 사실 ‘독수리 5남매’다. 김영란·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 대법관(왼쪽부터 임명 순서에 따라).

독수리 5형제는 사실 ‘독수리 5남매’다. 김영란·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 대법관(왼쪽부터 임명 순서에 따라).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 초부터 “전원합의체 심리 사건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정책법원화’를 꾀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대법관을 보좌하는 재판연구관도 100여 명 선에서 120여 명으로 크게 늘렸다. 대법관들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심리를 활성화하려면 대법관들 사이의 활발한 의견 교환과 토론이 받쳐줘야 한다.

결정적 사건에는 한 몸으로 ‘합체’

참여정부 시절에 임명된 진보·개혁 성향 대법관 5명(김영란·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을 이르는 ‘독수리 5형제’ 모두가 참여한 전원합의체 사건은 총 66건이다. 보수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시각과 달리 보수 성향 대법관들과 같은 의견을 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 5명이 다수의견에 선 비율은 83~88%였다. 다른 대법관들은 대부분 90% 이상이다.

독수리 5형제가 매번 한목소리만 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결정적 의미를 던지는 사건에서는 한 몸으로 ‘합체’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 번째 합체는 2007년 3월 이뤄졌다. 민주노동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 전국공무원노조 파업에 참여한 공무원들을 승진시키자 한나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이 이를 취소한 사건에서, “헌법에 보장된 지방자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다”며 나머지 대법관 모두에 맞서 소수의견을 냈다. 같은 해 5월, 비리로 퇴진한 김문기 전 상지대 재단 이사장이 낸 소송에서도, 비리사학 쪽을 옹호한 대법관 8명에 맞서는 소수의견을 냈다. 5명이 다수의견에 힘을 몰아주며 의미 있는 결정을 이끌어낸 경우도 있다. 2010년 4월 치열한 법리 싸움 끝에 학내 종교 자유를 요구하는 강의석씨의 손을 들어줬다. 마지막 합체는 2010년 7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볼 수 없다는 소수의견으로 나타났다.

2009년 5월 대법관 의견 6 대 5로 삼성 쪽에 유리한 결론이 나온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에서는 김지형 대법관이 다수의견으로 돌아서는 ‘이변’이 발생했다. 이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당시 사건 주심이던 김능환 대법관이 김지형 대법관의 ‘빈자리’를 메웠다.

독수리 5형제는 김영란 대법관이 퇴임한 뒤에도 ‘의미 있는 소수’로 뭉쳤다. 지난해 3월 “단순 근로 거부는 업무 방해로 볼 수 없다”며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옥죄는데 악용돼온 업무방해죄를 좁게 해석하는 소수의견을 냈다. 같은 날 이뤄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에서도, 이를 보도한 언론인을 처벌할 수 없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두 사건에는 이인복 대법관이 힘을 보탰다. 지난해 4월 4대강 사업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에서도 이들 4명은 “집행정지가 타당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소수 의견, 다양성의 최소 증거

독수리 5형제의 역할은 전원합의체보다 소부에서 각자 활동할 때 더 빛났다는 분석도 있다. 전원합의체에서는 결론을 뒤집지 못하고 의미 있는 소수로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법리를 다듬고 다른 대법관들과 ‘딜’을 해 얻어낸 중요한 선고가 많았다는 것이다. 노동법 전문인 김지형 대법관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대법원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부장판사는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소수 의견이 나오는 것과 나오지 않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르다”며 “대법관 구성 다양화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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