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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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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로 불법 시술하는 병원들


무릎 아프다고 간 병원서 추천한 불법 주사 PRP… 관리·감독 손 놓은 정부와
불법 시술 광고하는 언론에 좀먹는 국민 건강
등록 2012-05-11 10:34 수정 2020-05-02 19:26
가벼운 무릎 증상을 가지고 두 곳의 병원을 찾았다. 한 곳에서는 30만원어치의 불법 시술을 권했고, 다른 곳에서는 기자를 돌려보냈다. 두 병원의 취재에 앞서 정형준 적십자병원 재활의학과장의 자문을 받았다. 박승화 기자

가벼운 무릎 증상을 가지고 두 곳의 병원을 찾았다. 한 곳에서는 30만원어치의 불법 시술을 권했고, 다른 곳에서는 기자를 돌려보냈다. 두 병원의 취재에 앞서 정형준 적십자병원 재활의학과장의 자문을 받았다. 박승화 기자

무릎은 원래 약했다. 봄이 오면 조금씩 절룩거릴 때도 있었다. 봄은 또 왔다. 하찮은 건강 염려증이 도지면 병원을 찾아가 무릎부터 까보일 생각이었다.

서울 번화가의 고층 빌딩 앞에 섰다. 이른 아침이었다. 병원의 첫 환자였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의사와 마주 앉았다. 무릎을 다친 적은 없는지, 하고 있는 운동은 없는지 등 질문이 이어졌다. 의사는 환자용 침대에 누워보라고 했다. 기자의 무릎 주변을 한 번씩 꾹꾹 눌렀다. 동그란 무릎뼈 아래를 누를 때 아팠다. 아프다고 말했다. 의사가 말했다. “안 아픈 게 정상이에요.” 다른 곳에 마저 손을 댄 그가 말했다. “건염이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엑스레이를 찍고 오세요.”

“겁이 많으시군요?”라는 도발

10여 분 뒤, 엑스레이를 가리키며 그가 말을 이었다. “통증이 있다는 건, 인대가 슬개골(무릎뼈)로 부착되는 곳에 염증이 있다는 뜻이에요. 어떻게 확인하느냐 하면, 초음파를 통해서 볼 수 있어요. 양쪽 무릎이 다 아프다고 하셨으니까. 초음파로 보고 확인을 한 다음 양쪽 인대를 타이트하게 만들어줄 수 있게 주사를 맞을 수 있어요. 어때요, 한번 맞아볼래요?” 검사와 치료가 함께 진행되는 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격이 얼마인지 물었다. “초음파 검사랑 주사 맞는 데 한쪽에 15만원씩이에요.” 일단은 증상을 지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는 순순히 말을 받았다. 약만 먹고 물리치료를 받는 것으로 처방이 끝났다.

원장실을 나와 물리치료실로 옮겨졌다. 물리치료실에서는 간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에 누우라고 한 뒤, 중주파 치료기라는 물리치료기를 무릎 쪽에 연결해줬다. 질문이 다시 나왔다. “주사를 안 맞으세요?” 그렇다고 답했다. “겁이 많으시군요?” 말투는 상냥했지만, 약간의 도발을 품었다. 주사기를 싫어한다고 답하며, 무슨 주사냐고 물었다. 괜히 물었다. 답이 한참 이어졌다. 리가멘트·프롤로 같은 전문용어까지 등장했다. 결론은 부작용이 없고 물리치료보다 회복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바쁘신 분들이 주로 찾아요.” 간호사는 덧붙였다. 한 번 더 생각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병원에 갈 정도로 무릎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취재를 위해 가짜 환자로 찾아왔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봄이 올 때마다 무릎이 거슬리느니, 한번 손보고 발 쭉 뻗고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마음의 여운을 안고 병원을 나왔다. 진단비와 물리치료비, 엑스레이 비용을 합해 7400원이었다.

다른 병원도 찾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공공병원이었다. 여기서도 비슷한 질문과 똑같은 답이 오갔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으라고 했고, 따끈한 엑스레이 사진을 보곤 이렇게 말했다. “사진에서는 이상이 없어요. 슬개골에 연골연화증이 올 수 있기는 한데, 딱히 보이는 건 없어요. 일단은 괜찮아 보입니다. 안쪽 연골판은 MRI(자기공명영상)를 찍어야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연골판이 찢어질 때 나타나는 증상은 보이지 않아요. 제 생각에는 정밀검사를 해서 체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요거, 아픈 거는 2주 동안 약 좀 드시고, 보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아플 때만 드시고, 그래도 소용없고 계속 아프면 다시 오세요. 뭐, 걱정하지는 마세요.”



일부 PRP 시술 병원을 주요 매체가 아예 ‘전도사’로 나서서 소개하고 있었다. 일부 스포츠신문이나 인터넷 매체뿐 아니라 이른바 주요 일간지 와 도 이에 포함됐다. 불법 시술을 불법적으로 소개하는 극악의 조합인 셈이었다.

신의료기술평가 안 받은 시술은 불법

30만원 대 0원. 차이는 컸다. 한 곳에서는 불안을 심어줬고, 다른 한 곳에서는 안심을 쥐어줬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첫 번째 병원에서 추천한 주사는 자가인대혈소판재생치료술(PRP)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치료는 아직 의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아 의학계에서 격렬한 논란을 낳고 있다. 지난해 9월 국회 국정감사의 한 풍경이다. 질의에 나선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물었다. “현재 임의 비급여 시술이 사실상 불법으로 많이 이뤄지고 있다. 강남 유명 정형외과에서도 무릎관절 치료에 PRP 주사요법이 시술되고 있다. 이 시술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았나?” 허대석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은 “신청이 들어왔다가 신청기관이 자진 취하했다”고 답했다. 결국 PRP 시술은 당시까지도 국가의 공인을 받지 않은 시술이라는 뜻이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다시 확인해보았다. 연구원 쪽에서는 “PRP 시술에 대한 평가 신청이 다시 들어와서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황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검증은 거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결국 합법적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불법 시술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은 시술은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도 “현재 PRP는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았다. 따라서 환자들이 이 시술에 대해 진료비 확인 신청을 해오면 해당 의료기관에 강제 환수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에서도 PRP와 같이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시술에 대한 관리·감독에 손을 놓고 있다. 그사이 불법 시술은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도 이 점이 문제가 됐다. 허 원장은 “(일부 검증이 되지 않은 채 시술되는) 의료기술에 대해 국민 건강을 위해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가가 나서서 불법 시술을 단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사이 일부 병원의 어처구니없는 돈벌이는 계속됐다.

불법이 맺어준 언론과 병원의 돈벌이

기막한 점은 더 있다. 일부 PRP 시술 병원을 주요 매체가 아예 ‘전도사’로 나서서 소개하고 있었다. 일부 스포츠신문이나 인터넷 매체뿐 아니라 이른바 주요 일간지도 이에 포함됐다. 는 지난 1월6일 ‘건강한 당신’ 섹션에서 ‘자기 몸 줄기세포로 연골 재생, 관절 통증 없앤다’라는 제목으로 PRP 시술 내용을 소개했다. 기사 속에는 특정 병원과 의사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드러내 광고와 흡사했다. ‘기사 또는 전문가의 의견 형태로 표현되는 광고’를 금하는 의료법을 어겼다. 불법 시술을 불법적으로 소개하는 극악의 조합인 셈이었다. 도 지난 3월8일 ‘전문 진료 특화 병원’ 특집을 냈다. 무려 11쪽에 걸쳐 병원들의 진료 내용을 소개하는 별지였다. 이 안에는 병원 홍보 기사와 광고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특집에서는 PRP 시술을 한 병원을 이름을 들어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제목은 ‘뚝 끊어진 어깨 힘줄 완벽하게 이어’였다. 기사에서는 어깨 힘줄이 끊어진 환자를 대상으로 PRP 시술을 한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두 개의 불법이 교차한 공간에서 언론과 병원의 상업적인 이해는 기이하게 맞아떨어졌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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