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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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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까지 먹어 치운 ‘지네발’

전국 5만 개 음식점 문닫을 때 30대 재벌 자산·매출액 급증… 국내 외식업 시장 싹쓸이 나선 재벌 행태 비판 쏟아져
등록 2012-02-08 08:02 수정 2020-05-02 19:26
서울 종로구 한 거리의 떡볶이 노점상.

서울 종로구 한 거리의 떡볶이 노점상.

서울 동숭동에서 20년가량 음식점을 운영한 손아무개씨는 최근 걱정이 늘었다. 주변 공사가 마무리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해마다 줄어든 매출을 새벽과 점심에 건설현장 노동자를 상대로 밥장사를 해 메울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사가 마무리되면 매출이 다시 하락할 수밖에 없다.

» 대기업의 중소업종 진출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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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속도로 외식시장 침투하는 재벌

손씨는 “해가 갈수록 샐러리맨들이 아이들 교육비를 제외하고는 외식에 지갑을 열지 않는다”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그 이후로는 매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도 대기업 계열 직영점이나 프랜차이즈를 빼고는 비슷한 상황”이라며 “그나마 나는 건설현장 인부들 덕분에 메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동숭동 상점들이 한때 호시절을 누린 적도 있다. 권리금이 수억원에 달한 적도 있었다. 또 주변 상인들이 모임을 만들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젠 모두 옛말이다.

동숭동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해마다 문을 닫는 가게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5만 개 이상의 식당이 문을 닫았다. 폐업 식당 수는 2009년 2만9천여 개에서 2010년 4만7천여 개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도 상반기에만 2만6615개가 폐업했다. 휴업하는 식당도 늘고 있다. 2009년 14만9천여 개였던 휴업 식당 수는 2010년 25만1천여 개로 증가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2만7172개를 기록했다. 동네 빵집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03년 1만8천여 개였던 자영업자 빵집이 지난해 말 4천 개로 줄었다. 재래시장도 2003년 1695개에서 2010년 1517개로 줄었다.

반면 재벌을 비롯한 기업들은 무서운 속도로 외식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삼성, LG, SK 등 대기업은 물론 삼천리, 귀뚜라미, 대성 등 중견기업들도 외식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예컨대 삼성은 제과점 아티제와 웰스토리카페를 운영했다. LG는 LG패션의 자회사인 LF푸드를 통해 하꼬야씨푸드를, 아워홈에서 캘리스코를 통해 사보텐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현대차그룹이 제과점 오젠을 운영하는 것을 비롯해 두산그룹은 페스티나 렌떼, 한화그룹은 빈스앤베리즈, 동양그룹은 블랙앤브라운 등 커피숍을 갖고 있다. 코오롱은 슈크림빵을 파는 비어드파파를 운영 중이며, 중견기업인 귀뚜라미와 대성은 닥터로빈과 카페 타스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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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기업들은 훨씬 적극적이다. 롯데는 롯데리아와 카페 엔제리너스, 카페 칸타타, 패밀리레스토랑 TGIF, 패스트푸드 크리스피도넛 등 다양한 업종에 발을 들인 상태다. CJ도 자회사인 CJ푸드빌을 통해 빵과 커피는 물론 비빔밥에 국수까지 다양한 브랜드를 내놓으며 1800여 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신세계는 제과점 달로와요·데이앤데이를 비롯해 스타벅스, 베키아에누보 등을 거느리고 있으며, GS그룹은 미스터도넛을 운영한다. 농심은 코코이찌방야라는 카레점과 뚝배기집을, 매일유업은 샌드위치점인 부첼라를 비롯해 5개 브랜드를 갖고 있다.

정치권, 민심에 밀려 재벌 규제 나서나

잘 드러나지 않은 재벌 계열사 가운데는 분식업에 진출한 경우도 있다. GS그룹 계열사인 승산은 GS홈쇼핑의 물류를 맡아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다. 승산 허완구 회장은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작은아버지다. 승산은 현재 분식업에까지 발을 담근 바 있다. 2010년 프랜차이즈 업체인 육칠팔에 대주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육칠팔은 분식점 강호동천하를 비롯해 숯불구이점 육칠팔, 치킨집 치킨678 등 5개 프랜차이즈를 운영한다. 보광그룹도 치킨점 윙글을 운영 중이다.

이처럼 대기업의 동네 상권 진출이 급증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명박 대통령도 1월25일 “대기업 총수 2·3세가 운영하는 빵집에 대해 실태 조사를 해보라”고 한마디 했다. 그러자 재벌들이 경쟁적으로 제과·커피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 삼성은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다음날 “(이건희 회장의 장녀 이부진 사장이 대표로 있는) 호텔신라가 제과·커피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롯데가 제과점 포숑을, 두산이 커피숍 페스티나 렌떼 등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범LG 계열인 아워홈도 순대와 청국장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잇따른 사업 철수에도 시선이 곱지 않다. 그동안 먹는 사업뿐만 아니라 돈 되는 사업이라면 진출해 ‘지네발’ 확장을 과시해왔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이 한국은행·통계청 등의 자료를 근거로 분석한 ‘30대 재벌의 국내 경제력 집중 추이’를 보면, 2011년 30대 재벌의 총자산은 1460조5천억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인 1079조7656억원보다 26.1% 많은 수치다. 특히 2006년 이후 5년 동안 이들 재벌의 자산과 매출액은 2배 가까이 늘었다. 계열사도 1019개로 1.6배 늘어났다. 그만큼 다양한 업종에 진출한 셈이다. 예를 들어 주류 수입 및 유통을 보면, LG가 지오바인과 트윈와인을, 태광은 메르드뱅과 바인하임을 통해 주류를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SK는 WS통상, GS는 엠케이비앤에프, 신세계는 신세계엘앤비, 롯데는 롯데아사히주류 등을 통해 같은 영역에서 활동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대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방안을 두고 논의 중이다.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은 ‘경제민주화 실현’을 목표로 4·11 총선 공약 차원에서 재벌 개혁에 나설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대기업 정보 공시를 강화하는 것을 비롯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대기업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폐해 방지, 하도급 제도 전면 혁신, 불공정 거래 처벌 강화 등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은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꾸려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요건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통합진보당은 ‘재벌 체제 해체’를 목표로 내걸고 가칭 ‘재벌규제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30대 재벌의 국내 경제력 집중 추이’를 보면, 2011년 30대 재벌의 총자산은 1460조5천억원에 이른다. 특히 2006년 이후 5년 동안 이들 재벌의 자산과 매출액은 2배 가까이 늘었다. 계열사도 1019개로 1.6배 늘어났다. 그만큼 다양한 업종에 진출한 셈이다.

자영업자 보호 위해 업종 진출 제한 절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연구원의 백필규 박사는 “재벌들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해외시장을 두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고 진입장벽이 낮은 국내 외식업, 제과점 등에 속속 진출한 것은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 것”이라며 “이미 과포화 상태인 자영업 시장도 대책 마련이 필요하지만 대기업들이 자영업자를 고사시킬 위험이 높은 업종에 대해서는 진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은 “정치권에서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키는 등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을 제어하려고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하나의 방안으로 재벌의 무차별한 확장을 막을 수 없으니 다양한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카드사들의 이중 행태

대기업만 봐주는 카드사에 뿔난 소상공인들

이명박 정부 들어 소상공인들은 줄기차게 카드 수수료 인하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정부가 나서자 그제야 조금 양보했다. 지난해 10월 2.0~2.1%인 중소가맹점의 수수료율을 대형할인점 수준인 1.8%로 낮추고, 중소가맹점 범위를 연매출 1억2천만원에서 2억원으로 확대하는 등 ‘작은 성의’만을 보였다.

하지만 대기업의 요구는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1월 삼성·현대·롯데·신한·비씨·하나SK·KB국민카드 등에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했다. 신용카드는 1.75%에서 1.7%로, 체크카드는 1.5%에서 1%로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카드사들이 펄쩍 뛰었지만 한 달도 안 돼 모두 요구를 받아들였다. 대형할인점보다 더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당시 “카드사들이 현대차의 수수료 인하 요구를 수용한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고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대기업에 수수료를 낮춰주면 경제적 약자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든다는 이유였다.

소상공인들이 카드사를 상대로 직접행동에 나설 태세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가 2월1일 기자회견을 열어 카드 수수료 인하를 촉구했다. 김경배 소상공인단체연합회장은 “2월15일까지 수수료 인하 등의 조처가 없을 경우 롯데·현대·삼성카드 가맹 계약 해지와 카드 해지 운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배 회장은 “롯데카드는 롯데마트에, 현대카드는 현대자동차에 1.7%의 수수료를 물리고 있으며, 삼성카드는 미국계 대형마트 코스트코에 0.7%의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며 “서민 업종의 수수료 인하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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