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벌이는 행동은 스스로 빛난다. 행동의 동기로 자주 이념과 이상이 거론된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하나의 행동이 있었다. 대가 없이 형사 고발장을 쓰고, 대가 없이 시간을 들여 검찰을 방문한 두 사내가 있었다.
발행인 김기백씨가 밝힌 이념은 그의 기사와 맞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초 만난 자리에서 그는 자주 ‘사이비 보수우파’라는 단어를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13일 박원순 시장에 대해 고발장을 제출했다. 아름다운재단 불법 모금 혐의였다. 김씨와 만난 시점에 이미 검찰은 고발인 조사를 마쳤다. “제보가 들어왔다”고 그는 고발의 계기를 설명했다. 알고 지내는 후배가 지난해 3·11 일본 대지진 뒤 기부금 모집법 절차를 지키지 않고 모금했다 형사처벌됐다. 아름다운재단도 자신과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는데 형사처벌받지 않아 후배가 억울해했다. 그가 설명한 고발의 동기는 이 두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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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파, 뼛속까지 사대주의 물들어”
“얼마 전에 공개장 형식으로 아름다운재단에 내용증명을 겸해서 회계를 공개하라고 보냈다. …정확하게 언제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행정안전부가 아름다운재단에) 개선 조치를 하라고 의견을 밝혔고,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을 했는지 고스란히 밝혀야 한다는 거죠.” 추운 날이었다. 1952년생의 그는 실제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순수하게 한국의 대표적 기부자선단체를 한번은 짚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대표적 기부단체의 문제를 고발함으로써 기부문화를 개선하고자 했다는 게 고발 동기란 얘기다.
자신은 한나라당을 싫어하며 단 한 번도 총선과 대선에서 투표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당 활동 경험도 없다고 했다. 홈페이지에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한다”는 글이 보인다. “원래 ‘내 나라 내 민족이 세계 최고’라는 자긍심을 가진 게 우파야. 그런데 한국 우파들은 일본과 미국을 찬양하고 사대주의에 뼛속 깊이 물들었어. 그게 무슨 우파야. …이승만 대통령은 분단의 원흉이고 그로 인해 한국에서 기생하는 사람들이 상층부를 차지했기 때문에 지금도 일본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조갑제 같은 존재가 있어.”
한나라당을 사이비 보수집단이라 생각하는 민족주의자가 성숙한 기부문화를 만들려고 개인적 악연이 없는 박 시장을 고발했으며, 그 목적을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회계자료를 분석했다는 말이 된다. 열린 민족주의자가 만드는 의 지난 1월11일 톱기사는 ‘문재인 전화 한 통으로 기로에 선 부산저축은행 살렸다’라는 기사다. 극우 매체 기사를 퍼놨다.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다. 1992년 10월27일치에 김기백씨가 기록돼 있다. 1992년 10월26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안중근 의사 의거 83돌을 맞아 일본 핵무장 반대 등을 주장하는 시위였다. ‘일본의 재무장을 경계하는 한국인연맹’ 회원이라는 오병학(당시 27살)씨가 미리 준비한 칼로 자신의 배를 찔렀다.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김기백씨는 이 단체의 공동대표였다. 그는 2000년대 초 와 토론게시판 등에도 자주 글을 썼다. 토론게시판 글은 과도한 욕설로 거의 삭제된 상태였다. 그는 그전에 했던 직업, 수입원 등 생활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박 시장 고발이 싫어하는 한나라당에 이익이 되지 않느냐’고 두 차례 물었다. 그의 답변은 취지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선거 때이기 때문에 그나마 (고발 사건이) 보도가 됐지 선거 때가 아니면 보도 안 됐을 거다.” 김씨를 아는 한 극우 인터넷매체 기자는 “고발장 내면서 언론에 보도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공명심이 김기백씨의 동기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김씨의 꿈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화합이다. “일본으로 가서 민단과 총련을 만나 대일 문제에 관해 우리가 하나라는 선언을 이끌어내고 싶다.”
화투로 한국 현대사 점치는 타짜
정영모씨의 동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그도 투표 직전인 지난해 10월24일 장부 조작 혐의로 박 시장을 고발했다. 그는 현재 책을 쓰려고 강원도 있으며 정당 생활은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회계사는 아니지만 “비자금이나 장부 만드는 걸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름다운재단 이사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도 함께 고발했다. 그는 ‘아름다운재단’이라는 이름을 몰랐다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문제를 제기할 때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동기가 뭔지 묻고 싶었다. ‘많이 분노했나’라고 물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금은 개인이 출연한 재산이 아니라 수만 명이 1%씩 내놓는 것”이라고 그는 답했다. 다수의 선의를 아름다운재단이 이용해 분노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는 그전 직업, 거주지 등 신상에 관해 답하지 않았다. 그가 1996년 지은 (한솔미디어)를 그대로 이해하면, 그는 뿌리 깊은 반공주의자인 것 같다. 책의 내용을 종합하면, 그는 서울에서 교사 생활을 했으며 밤에는 화투를 쳤다. 프로페셔널인 ‘타짜’ 수준이었던 것 같다. 책에서 그는 화투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분석하고 예언한다. “똥 4패의 그림에는 이렇게 나타나 있다. 북쪽에서 김일성, 남쪽에서 2성 장군 셋이 쿠데타로 대권을 잡는다”는 분석 같은 유다. “북한 공산당의 출현과 그 수괴인 김일성의 탄생은 ‘공산 4패’에 예시되어 있다.” “식언과 번복이 디제이 고스톱의 주제다.” 1996년 어느 월간지 기사에도 정씨가 등장한다. 제목은 이렇다. “15대 총선에서 가장 높은 적중률을 기록했던 화투박사 정영모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화투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의 낙선과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당선 등을 예언했단다.
신념에 찬 ‘주의자’ 잘 안 보여
신념에 찬 ‘주의자’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고발 당시 언론들은 ‘보수단체’라는 주어로 이들의 행위를 그대로 중계 보도했다. 독자들은 누가, 왜 그런 고발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익명의 고발이 낳은 결과는 정영모씨의 이 발언에 잘 정리돼 있다. 그는 인터뷰를 거절하며 “ 독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아름다운재단이 어떤 조사를 받게 될 것인지”라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고발자들이 보이는 수사를 낳았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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