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가 가까워졌는데도 날이 쌀쌀하다. 교복을 입은 팔랑머리 여학생 둘이 손팻말을 들고 일본인 관광객이 넘쳐나는 서울 인사동 앞을 종종걸음으로 지나간다. 서울 문창중 학생들이다. 손팻말에는 ‘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 진심으로 사죄하라’고 굵은 매직으로 적어넣었다. 팔랑머리들이 향한 곳은 적벽돌로 단단히 쌓아올린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2011년 12월14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1천 번째 수요시위가 열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가장 명예롭고 아름다운 시위’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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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대 인신매매 범죄” 방조한 정부
“성명서. 우리 정신대협의회는 오는 1992년 1월8일을 기해 수요일 정기집회를 실시하며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다. 우리는 1990년 11월16일 36개의 여성단체가 모여 공식 발족한 이래 일본 정부에 대해 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6개의 요구사항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책임 있는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대처하기 곤란하다는 무책임한 망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정신대협의회는 이에 분노하며 앞으로 우리의 6개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임을 선언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박순금 이효재 윤정옥”
19년 11개월 6일. 그러니까 7281일 전에 타이프로 찍어 내려간 1차 수요시위 성명서에는 ‘일본 정부는 조선인 여성들을 종군위안부로서 강제 연행한 사실을 인정하라. 그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라. 만행의 전모를 스스로 밝혀라. 희생자들을 위하여 추모비를 세워라. 생존자와 유족들에게 배상하라.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교육 속에서 이 사실을 가르쳐라’라는 요구가 담겼다. 1천 번째 수요시위의 요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의 위안부 범죄 인정, 진상 규명, 일본의회의 사죄 결의, 법적 배상, 역사교과서 기록,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책임자 처벌. 일본 정부가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국내외 비판에도 불구하고 20년간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일본 정부의 태도는 고령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죽기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위안부’ 피해 신고가 이뤄진 할머니들은 1993년 153명을 시작으로 2006년 11명 등 모두 234명이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새로 등록한 위안부 피해자는 없다. 반면 2007년 14명, 2008년 15명, 2009년 6명, 2010년 5명에 이어 올해에만 16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남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63명에 불과하다. 나이가 가장 적은 할머니가 77살, 최고령자는 95살로 평균 나이가 86살에 달한다. 일본 정부가 ‘스모식 버티기’를 하는 동안 속절없이 할머니들은 세상을 등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렇다 치고 한국 정부는 무슨 노력을 보여줬을까. 최근만 해도 일본군 ‘위안부’를 “잔학성과 규모 면에서 20세기 최대 인신매매 범죄”로 규정한 2007년 7월 미국 하원 결의, 그해 11월 네덜란드 의회와 캐나다 의회 결의, 같은 해 12월 유럽의회 결의, 2008년 6월 유엔 인권이사회 실무그룹 보고서, 그해 10월 유엔 B규약 인권위원회 권고 등은 모두 일본의 즉각 사죄와 적정한 배상, 일본인에 대한 역사교육과 이를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 단호한 반박을 담고 있다. 2008년 10월 우리 국회도 전체 의원 261명 가운데 260명의 찬성으로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공식사과 및 배상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지난 20년간 ‘위안부’ 피해자 지원사업을 제외하고는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대일 청구권을 모조리 정리해버렸다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의식해 일본에 들이댈 법적 스탠스를 자신 있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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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음에도
그런 와중에 전기가 마련됐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8월 한국 정부는 1951년 10월부터 1965년 6월까지 진행된 한-일 회담 문서철 156권, 3만5354쪽을 법원의 결정에 따라 공개했다. 당시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청구권 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두 나라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란 점을 법적 근거로 들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과는 관련 없으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도 한국 정부의 이렇다 할 외교적 노력은 없었다. 오히려 2006년 4월 “일본 측과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므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처를 취하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결국 1년여 뒤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접 나섰다. 2006년 7월, ‘위안부’ 피해자 109명은 한-일 회담 관련 공개 내용을 근거로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관련한 분쟁을 해결하려는 조처를 취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는 게 청구 이유였다.
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한-일 양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한다. 그래도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한쪽이 분쟁의 중재를 요청한 날로부터 30일 안에 중재위원회를 꾸려 회부한다.” 협정 내용을 두고 분쟁이 생기면 1차적으로 외교 경로, 그래도 안 되면 중재위원회를 통해 해결한다는 얘기다. 한국 정부는 이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반면 일본 정부는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책임 등은 모두 정리됐다는 태도다. 한마디로 분쟁 상황이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들은 “우리 정부는 헌법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외교적 조처나 분쟁 해결에 나서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지 5년이 지났다. 2009년 4월 공개변론이 한 차례 있었지만 헌재 심리는 지리하게 이어졌다. 헌재 안에서는 위헌성 여부를 따지는 연구보고서·추가보고서가 숱하게 작성돼 재판관과 연구관들 사이에 회람됐다. 심리 도중에도 외교통상부는 “협정의 해석과 관련한 분쟁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할머니의 마음까지 들여다봤다”
5년여가 지나며 109명이던 청구인은 64명으로 줄었다. 그사이 45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등진 것이다. 지난 8월30일 헌재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재판관 6(위헌) 대 3(각하) 의견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청구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구체적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무자비하게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사후적으로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배상청구권을 가로막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심대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에 따라 외교통상부가 분쟁 해결 절차로 나아가야 한다고 결정했다. 특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절박한 처지를 위헌 결정의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 “1991년부터 최근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법정에서 진행해온 소송은 한-일 청구권 협정을 이유로 모두 패소가 확정됐다. 이제 일본 법정을 통한 사법적 구제와 일본 정부의 사죄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현재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은 모두 고령이어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
반면 헌재는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우리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다.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 발전 가능성’ ‘외교관계 불편’ 주장에 대해 “이런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사유가 기본권 침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청구인들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타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헌법학계 관계자는 “헌재 결정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당연한 결론이어서 특별한 내용도 없다. 다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풀이 성격이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좋은 카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가 과거처럼 ‘정치적 이유’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는 것과 법률적 결정에 따라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는 데는 무시 못할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심사위원장인 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사법적으로 수용해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 점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진 변호사는 “위안부 헌법소원 사건은 변호인단도 기대를 많이 안 했던 것으로 안다”며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까지 재판관들이 들여다봤다”고 평가했다.
헌재 결정이 나오자 20년간 요지부동이던 정부도 나섰다. 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에 근거해 지난 9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양자협의를 요구하는 구상서를 전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여전히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등이 소멸됐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일본 정부 못지않게 이명박 대통령의 ‘저자세’도 문제다. 헌재 결정이 나온 뒤인 지난 9월, 이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를 만났지만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10월에는 노다 총리를 서울에서 다시 만나 정상회담을 했지만 역시나 위안부 문제를 공식 거론하지 않았다. 헌재 결정을 대통령부터 무시한 셈이니 외교통상부의 노력에 성의가 실리기를 기대하기란 난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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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철거 요구한 일본
“이명박 대통령이 백발의 늙은이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우성치는 소리를 모르신다고 못하겠지요. 일본 정부를 향해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배상할 것은 배상하라고 엄중하게 말해줬으면 감사하겠습니다.” 1천 번째 수요시위에 참여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5) 할머니의 말이다. 이 대통령은 12월17~18일 일본을 방문해 노다 총리를 또다시 만난다.
1천 번째 수요시위를 기념해 일본대사관 앞에는 팔랑머리 여학생들을 닮은 소녀 동상이 세워졌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꽃다웠던 시절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무표정하지만 단호한 얼굴로 일본대사관을 응시한다. 일본 정부는 이 동상의 철거를 공식 요구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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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소원 청구 계기는.
2005년 한-일 회담 문서를 공개하며 우리 정부가 법적 책임은 일본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 정부를 움직이려면 정부도 부인하지 못할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를 활용하자는 판단을 했다.
위헌 결정을 예상했는지.
한-일 청구권 협정을 어설프게 맺는 바람에 오히려 권리구제 장애물을 만들었으니 이 정도 의무는 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워낙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문제라 결과는 장담하지 못했다.
결정이 나오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나 역시 이렇게 오래 걸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헌재가 외교통상부의 행위에 대해 작위의무를 인정하는 것이라 선례가 될 수 있으니 법리적으로 신중하게 심리했을 것이다.
헌재 결정 뒤 정부의 노력에는 만족하나.
외교통상부가 상당히 노력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헌법을 준수해야 할 대통령이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 처지에서는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의 노력이 형식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헌재 결정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하니 대통령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헌법 위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대통령이 헌법을 지키지 않으면 탄핵 사유가 된다. 정치적 책임을 묻는 탄핵까지 논의할 수 있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가.
2년여에 걸친 법리 검토 끝에 2010년 12월 대한변협과 일본변협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가 법치주의 국가라고 한다면 법률가들의 판단을 존중해서 관련 법을 만드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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