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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방해죄 남용을 방해하다

- 노동운동 탄압의 감초 업무방해죄 남용한 사법부에 제동건 대법원 판결…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는 아니다”
등록 2011-12-22 14:04 수정 2020-05-03 04:26
» 2009년 12월 철도노조 파업으로 멈춰선 화물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일하지 않으면 옥살이를 시키는 ‘강제노동법’이 우리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 2009년 12월 철도노조 파업으로 멈춰선 화물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일하지 않으면 옥살이를 시키는 ‘강제노동법’이 우리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암태 소작사건 업무방해죄는 모다 벌금형에.”( 1924년 8월31일)

1923년 8월 전남 신안군 암태도 농민들은 소작료를 터무니없이 올린 지주들에게 소작료 불납동맹으로 맞섰다. 일제시대 대표적 농민항쟁인 암태도 소작쟁의다. 관련자들은 ‘업무방해죄’로 처벌됐다. 당시 사설은 업무방해죄를 이렇게 전한다. “노동회 또는 소작회의 간부들이 경찰서 혹은 검사국에 불려다니고 잡혀다니며 구금이 된다, 처벌이 된다 하는 종의 보도가 끈힐 날이 적다. 오인은 이러한 현상을 보고 지주의 불인(不仁), 사법자의 편파, 민중의 비애 여러 가지 통감이 있다. … 이와 가치 비참한 경우에 빠진 소작인들이 미력의 단결로써 무리(無理)에 반항코저 함은 구사에서 일생을 구하는 것이니 이것을 죄라 하면 무고히 죽고 마는 것이 가하랴. 이제 소작회 혹은 노동회 간부들의 검거되는 죄명을 드르면 대개는 업무방해라 한다. 그러나 그 원인을 살펴보면 무리박탈을 당한 소작지의 공동경작이 아니면 불법 징수를 당한 공과금 반환의 요구에 불과하다. 그러면 이 업무방해의 죄명이 무리불법을 행한 자에게 도라가지 안코 무리불법을 당한 자에게 도라가는 것이 가하랴. 또는 법률이란 것은 사법자 운용에 따라서 관맹(寬猛)이 다른 것이니 만일 법률의 조문이 잇다 하야 가혹한 데까지 밋칠 것 가트면 인민은 반드시 수족을 놀릴 수 업슬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소작인단체에서 강포한 행동이 잇단 말을 듣지 못하엿것마는 사법자의 태도를 보면 이것이 엇지 편파가혹한 처치가 아니랴.”(1924년 9월9일 ‘소작운동에 대한 관찰’)

노동운동사는 업무방해죄의 역사

일제시대 ‘조선형사령’은 일본의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의용했다. 암태도 소작쟁의 사건에는 아마도 일본 구형법이 적용됐을 것이다. 일본 구형법은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위계·위력으로 타인의 업무를 방해한 이를 처벌하는 조항을 담았다. 우리 헌법은 1948년 제헌헌법부터 단체행동권을 보장했지만, 무비판적으로 일제 형벌의 잔재까지 형법의 틀 안으로 가져왔다. 위계·위력이라는 말은 그래서 낯설지 않다. 우리 형법 제314조(업무방해)는 “위계…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법으로 보장하는 제대로 된 나라는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아니, 처벌할 조항 자체가 없다. 파업의 목적은 회사에 타격을 주고 경영진을 압박해 교섭력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쟁의행위는 당연히 고용주의 업무 지장을 전제로 하는데, 이를 처벌한다면 단체행동권은 의미가 없어진다.

1980년대 말 이래 한국 노동운동사는 업무방해죄 적용의 역사다. 웬만한 파업에서 업무방해죄는 빠지지 않았다. 검찰의 업무방해죄 적용은 유행처럼 번졌고 ‘사법자의 편파’가 유행을 도왔다. 대법원은 1991년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의 요소를 포함하고 집단적인 작업의 거부, 즉 노무 제공의 거부라도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면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고, 20년간 처벌 기준이 됐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정책토론회에 나온 자료를 보면, 2002~2006년 노동형사사건(1심) 가운데 30.2%에 업무방해죄가 적용됐다. 업무방해죄가 적용된 쟁의행위의 유형도 가지가지다. 파업(1313건·44.1%), 점거(592건·19.9%), 피케팅(474건·15.9%), 준법투쟁(115건·3.9%), 태업(37건·1.2%) 등의 순이다. 폭력을 쓰지 않고 오로지 법대로 일만 하자는 준법투쟁도 업무방해가 됐다. 휴가를 쓰거나 정시에 출퇴근을 해도, 시간외근로를 거부해도 업무방해죄로 빨간 줄이 그어졌다. 사실상의 ‘강제노동’을 사법부가 용인한 결과다.

‘사법자의 편파’가 일부 바로잡히는 데 20년이 걸렸다. 2006년 전국철도노조 파업 당시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영훈(43) 민주노총 위원장 사건(변호사 권두섭·서상범·송영섭·최성호)이 계기가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지난 3월17일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이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한 경우에만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며 업무방해죄 적용 폭을 다소 좁혔다. “집단적 근로 제공 거부(출근 거부 등)는 당연히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기존 판례를 바꾼 것이다.

판례 변경이 있은 뒤 마구잡이식 업무방해죄 적용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렸다. 지난 10월27일 대법원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총파업 등으로 업무를 방해했다며 기소된 이석행(53) 전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노동자 100명 중 2명이 지역 집회 참가를 위해 2시간 파업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이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심사위원 20자평
금태섭 우리 법의 치부, 업무방해죄. 작지만 균열이 생겼다
김진 아쉽지만 한 줄기 빛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고…”
이상훈 밥값 안 낸다고 음식점 업무 방해죄? 아니겠죠
이재근 파업이 곧 업무 방해라는 공식은 이제 땡!


» 이홍훈 김지형 박시환 전수안 이인복 대법관

» 이홍훈 김지형 박시환 전수안 이인복 대법관


다수 의견 변경 가능하게 한 소수 의견들
“업무방해죄, 헌법 단체행동권에 반해”
“가장 먼저, 다시 죄형법정주의를 생각한다.”(대법관 이홍훈·김지형·박시환·전수안·이인복의 소수 의견)
업무방해죄 판례를 바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법관 13명 가운데 8명이 찬성한 다수 의견을 따랐다. 다수 의견은 “이런 의견이 나왔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권두섭 변호사)는 평가가 나오는 소수 의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동계와 노동법계에서는 다수 의견도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빛나는 문구들은 오히려 소수 의견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근로 거부는 채무불이행(근로계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등 민사 차원의 문제일 수는 있어도 일을 안 했다고 곧바로 형사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헌법에서 규정한 단체행동권에 반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형벌로 노무 제공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주심을 맡은 이홍훈 전 대법관은 “다수 의견이 나오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러 차례 합의 과정을 거쳐 다수 의견이 형성됐고, 다행히도 다수 의견 대법관들도 업무방해죄 판례를 전향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노동법 전문가로 소수 의견 주집필자였던 김지형 전 대법관은 “소수 의견은 특별히 새로운 얘기라기보다는 종래 업무방해죄를 부정하는 견해 등을 정리한 정도”라고 했다. 그는 “다수 의견에서 말하는 파업의 전격성이나 손해의 중대성 역시 모호한 측면이 있지만 이전보다는 업무방해죄 적용 범위를 상당히 제한하게 됐다”며 “진전된 결론이 나올 때까지 많은 토론을 거쳤다”고 술회했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사실상 강제노동으로 이어지는 업무방해죄는 노동법계에서는 워낙 비판이 많았던 사안”이라며 “앞으로 하급심에서 대법원 다수 의견의 애매한 부분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넓은 진폭의 판단들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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