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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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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 세운 벽창호들 보고 있나

- 헌재, 서울광장 차벽은 일반적 행동자유권 침해한 위헌이라 결론… “통행제지는 급박한 마지막 수단”
등록 2011-12-22 04:42 수정 2020-05-02 19:26
» 2009년 5월31일 경찰버스 ‘차벽’에 둘러싸인 서울광장.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차벽을 설치해 시민의 서울광장 통행을 원천봉쇄한 것이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 2009년 5월31일 경찰버스 ‘차벽’에 둘러싸인 서울광장.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차벽을 설치해 시민의 서울광장 통행을 원천봉쇄한 것이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그는 이런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2009년 5월23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버렸다. 그는 ‘포괄적 뇌물’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가족과 측근들까지 모욕을 당했다. 민심은 검찰 수사를 ‘정권 차원의 보복’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정치적 타살’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2008년 여름 촛불의 ‘배후’를 친노 세력이라고 판단한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이라는 존재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괴롭혔다. 노 전 대통령 재직 시절 기록물을 사저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을 검찰이 수사하고, 청와대가 정치쟁점화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1년여를 버티던 노 전 대통령은 결국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며 자신의 손으로 끝을 냈다.

서울광장서 열흘 넘게 추방된 시민들

뉴스를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에 시민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엔 시민들이 만든 분향소가 차려졌다.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경찰은 분향소 주변과 건너편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에워쌌다. 만약 ‘주차의 달인’을 뽑는다면, 경찰 말고 뽑을 사람이 또 있을까? ‘차벽’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세워진 경찰버스 사이에선 틈을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서울광장을 지나다니는 것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2008년 촛불 때도 경찰은 광화문 네거리를 컨테이너로 막아 ‘명박산성’을 설치하는 등 시민의 통행을 제한한 적이 있었지만, 특정한 공간의 통행을 장기간 원천적으로 막은 것은 드문 일이었다.

시민들은 이렇게 차벽에 둘러싸인 서울광장에서 열흘 넘게 ‘추방’당했다. 차벽이 사라지고 통행이 ‘허락’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2009년 5월29일 단 하루였다.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행사가 자칫 정치적 집회나 폭력 시위로 변질하는 것을 막기 위해 통제는 불가피하다. (추모 모임이) 정치 집회로 변질되고 폭력화할 우려가 있어 시민들의 서울광장 출입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주상용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차벽이 병풍 같아서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있다”는 망언을 늘어놓았다.

시민들은 “촛불에 겁먹은 정부가 추모 민심을 통제하려 한다”고 분노했다. 참여연대는 2009년 6월3일 “서울광장 봉쇄는 정부와 시민 간의 소통 단절을 상징한다. 민주주의의 장이자 소통 공간인 광장을 막는 것은 민주주의를 막는 것”이라며 차벽 앞 곳곳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이어 2009년 7월21일 “법적 근거 없는 경찰의 서울광장 차벽 봉쇄 행위로 서울 시민들은 서울광장을 통행할 권리, 서울광장에서 자유롭게 여가와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2년 가까이 지난 2011년 6월30일에야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들로 둘러싸 (헌법소원) 청구인들의 통행을 제지한 행위는 청구인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위헌임을 확인한다.”

헌재, “최소한의 조치로 보기 어려워”

일반적 행동자유권이란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에 포함되는 것으로, 모든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 즉 개방된 장소인 서울광장을 개별적으로 통행하거나 서울광장에서 여가활동 등을 하는 것은 일반적 행동자유권에 속하는데,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고 서울광장 통행을 원천봉쇄해 이런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 판결의 핵심 내용이다. 헌법재판소는 또 “(차벽 설치 등의) 통행제지 행위는 집회의 조건부 허용이나 개별적 집회의 금지·해산으로는 방지할 수 없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며 “통행 제지 행위는 당시 상황에 비추어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다행스러운 방향이었다. 참여연대 쪽은 “이 판결은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를 인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단순히 예측만으로 일상적으로 서울광장을 지나다녀야 하는 사람들의 통행까지 막으며 경찰이 공권력을 남용한 것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공권력을 행사할 때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최소한의 범위여야 한다는 점을 헌법재판소가 확인해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민들이 손을 놓고 기다리기만 했던 건 아니다. 헌법소원과 비슷한 시기 참여연대와 야당이 함께 시작한 서울광장 조례 개정을 위한 주민발의안에 6개월 동안 10만여 명이 서명했다. 그 전까지 서울광장은 서울시장이 허가할 때에만 이용할 수 있었는데, 노 전 대통령 추모제 땐 오세훈 당시 시장이 이용을 불허해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또한 집회를 근본적으로 금지해 시민들의 소통 공간으로서 서울광장이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맞서 시민들이 서울광장 운영을 신고제로 바꾸고, ‘공익적 행사 및 집회와 시위의 진행 등’으로 광장의 사용 목적을 확대하는 조례 개정안을 추진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시의회 다수당이었을 땐 이 안을 논의조차 할 수 없었지만, 2010년 6·2 지방선거로 시의회 권력이 교체되자 서울광장 조례도 그해 8월 개정됐다.

‘알박기’로 경찰의 요령도 늘어

그동안 경찰도 요령이 늘었다. 차벽 설치와 전면 통행 제지가 위헌 여부를 다투는 사이, 경찰은 ‘알박기’를 고안해냈다. 알박기란 집회가 열릴 장소에 미리 경찰들을 촘촘히 배치해, 집회를 열 수 없도록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참여연대 쪽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것처럼 위헌적 행위에 관한 긴급 구제조치,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당했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심사위원 20자평
오창익 아무 때나 아무 곳에나 경찰 차벽 세우면 안 된다니까
이상원 시민의 광장은 시민의 품으로
이재근 경찰버스는 경찰수송에만 쓰세요. 차벽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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