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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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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안개 속 한 줄기 희망

- 4대강 사업 앞에서 삶터 지키려는 팔당 유기농민들의 양평군 상대 소송… 1심 승소 판결 깨고 항소심서 패소해
등록 2011-12-22 12:55 수정 2020-05-03 04:26
» 지난 3월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유기농단지 보존을 위한 두물머리 1주년 기념 생명평화미사가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열렸다. <한겨레> 자료사진

» 지난 3월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유기농단지 보존을 위한 두물머리 1주년 기념 생명평화미사가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열렸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곳에선 자주 안개가 낀다. 하얗고 축축한 공기 사이로 불쑥 사람이 시야로 들어왔다 다시 사라지는 아침이 잦다. 물안개다.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이 이곳에서 합쳐진다. 그래서 두물머리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두물머리 사람들은 안개에 익숙하다. 아침마다 물안개 사이로 장화를 신고 밭으로 향한다. 농민 서규섭씨도 다르지 않다. 집에서 양수리 733-4번지 밭으로 걸어가는 안갯속 길이, 이제 어색하지 않다. 벌써 10년째다.

점용허가권 남았는데도 포클레인 들이대

서규섭씨는 2000년 직장인에서 농민이 됐다. 서울에서 버티는 삶의 미래는 안개보다 불투명했다. 33살 청년은 태어난 고향이 아니라 마음의 고향을 경기도 양평군에서 찾았다. 2001년 또 다른 귀농 처녀를 반려자로 맞았다. 유기농 딸기를 재배했다. 펜 대신 낫을 잡은 전직 직장인의 손은 점점 거칠어졌지만 마음과 정서는 점점 덜 거칠어졌다. 딸 가을이와 하늘이가 차례로 태어났다. 도시의 소비자조합과 생산자조합이 직거래를 텄다. 유기농을 중간상인의 착취 없이 공급할 수 있었다. 유기농사를 짓는 동료 농민도 많았다. 두물머리엔 오랫동안 나루터가 있었다. 1971년 팔당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제한구역이 됐다. 농민들은 유기농사를 지었다. 양평군과 경기도 등 지자체도 농민들을 지원했다. 유기농의 메카가 됐다. 그는 행복한 농민이었다.

서규섭씨의 직함이 2009년 이후 하나 늘었다.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팔당공대위) 집행위원장’이라는 살벌한 이름이다. 2007년 겨울, 전직 건설회사 사장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명박 행정부의 지시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은 2009년 12월 농사를 그만 지으라는 의미를 담은 ‘하천점용허가 취소요청’을 양평군수에게 내려보냈다. 한나라당 출신의 김선교 양평군수는 대통령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농민 서규섭은 활동가 서규섭이 됐다. 그의 손은 호미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때론 전투경찰의 방패를 부여잡아야 했다.

마지막으로 법에 호소했다. 두물머리 주변 22.2ha 밭을 가진 11개 농가가 2011년 제기한 소송은 ‘하천점용허가 취소처분 취소’ 소송이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다. 길고 생경한 한자말은 ‘4대강 사업이 유기농 농가의 삶터를 망가뜨리게 하지 말아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헌법 제103조)한다. 소송의 법리적 쟁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두물머리 주변에 정부 주장대로 수량 부족 등 하천공사 필요성이 생겼는지. 둘째 유기농 농사로 팔당 식수원이 정말 오염됐는지. 셋째 농민들이 강변에 농사지을 법적 권한(하천점용허가)이 2012년에 끝나는데 4대강 사업의 예산과 설계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긴급하게 농민들을 내쫓은 행위가 정당한지.

법관들의 양심과 법률 해석은 저마다 다르다. 이준상 부장판사의 양심은 두물머리 농민들을 향했다. 수원지방법원 3행정부는 2011년 2월15일 농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하천 수량이 부족하거나 하천 상황이 변경되어 하천점용허가를 유지하는 것이 공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볼 아무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토해양부는 집요하게 반박했다. 특히 유기농업에 쓰이는 비료가 수질오염을 부른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자존심을 잃었다고 느꼈다. 국토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30년간 유기농업을 지지·지원해온 양평군수, 남양주시장, 경기도지사가 모두 팔당 수질오염의 책임자가 되는 셈이다. 농림수산식품부도 반박 견해를 밝혔다. 수원지법은 유기농사 때문에 “수질이 현저하게 변경되어 점용허가를 유지하는 것이 공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볼 아무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토부 손 들어준 서울고법

농민들을 변론한 법무법인 길상의 오범석 변호사는 특히 세 번째 쟁점에 무게를 실었다. 두물머리 주변 4대강 사업 1공구의 예산편성도, 구체적인 공정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2012년에 농사지을 권한(점용허가권)이 만료되는 농지를 2009년에 갈아엎을 긴급한 필요가 과연 있었느냐고 따져물었다. 수원지법은 농민들의 주장에 더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유기농업의 특성상 다른 곳에서 새로 농업을 시작해도 3년 이상 투자해야 비로소 수익이 발생한다는 점, 두물머리에서 올해 9월 세계유기농대회가 열릴 계획이 잡혀 있었음도 판단 근거로 들었다. 2월15일 농민들은 잠시 숨을 골랐다.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서울고등법원 행정6부 임종헌 부장판사의 양심은 다른 곳을 향했다. 세 가지 쟁점 모두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서울고법은 하천관리용 도로와 자전거도로 등을 만드는 사업이 하천공사에 해당한다고 봤다. 유기농업이 수질오염을 부른다는 국토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오범석 변호사는 2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2심 판결은 이익형량에 대한 판단이 두루뭉술합니다. 국토부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제대로 된 예산안도 없었어요. 항소심에서 예산 자료라고 제출했는데 공사비 도급계약서 자료를 낸 겁니다. 그게 무슨 예산안입니까.” 유기농 밭을 갈아엎을 긴급한 필요성에 대한 2심 판단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수질오염에 대해서도 농민들도 많은 자료를 냈고 프레젠테이션도 했습니다. 그런데 2심 판결문에서는 비교 판단을 안 하고 그저 ‘오염이 있다’고만 두루뭉술 판단했죠.”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정책총괄과에 판결에 대한 견해를 물었으나 “양평군에 물으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법률은 늘 현실의 뒤를 좇는다. 농지를 지키려는 투쟁과 소송에 함께했던 11개 농가 가운데 소송을 하는 사이 6개 농가가 떠났다. 경기도가 제안한 장기저리 대출을 받았다. 누군가는 강원도와 경기도 여주 접경지역 농지를 샀고, 또 누군가는 경기도 용문 근처로 떠났다. 새로운 농지에서 유기농을 시작하면 3년간 수확할 수 없다. 7억~8억원씩 돈을 빌린 그들은 3년 뒤부터 원금을 갚아야 한다. “단순히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줘서 땅을 사게 했다고 충분히 보상됐다고 하면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서규섭씨는 조용한 어투로 항의했다.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직거래 관계, 신뢰 등을 (새로 이주한 농지에서) 다시 맺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건 농가 개인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역에서 생산자조합이 만들어지고 소비자조합과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대법관의 양심은 어디로 향할까

딸 가을이는 11살이 됐고 하늘이는 8살이 됐다. 그리고 서규섭씨 등 5개 농가는 비닐하우스를 뒤엎으려는 포클레인을 저지하며 3심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서울고법 법관들의 양심은 가을이·하늘이와 함께 유기농업을 지속하려는 서씨보다 하천도로와 자전거도로 건설의 필요성으로 향했다. 서씨는 법관의 양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심사위원 20자평
이상훈 이렇게 좋은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히다니
이재근 두물머리에 농민이 있었음을 강물은 기억할 것
장서연 4대강 소송에서 유일하게 승소했던 판결
최재홍 농민에게 농토를! 두물머리엔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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