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에 사는 이아무개씨는 지난해 8월 향토예비군설치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훈련에 참가하라는 통지서를 10여 차례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이씨는 이른바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자’다.
병역거부자보다 가혹한 현실
보통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병역을 거부해 실형을 살고 나오면 예비군 훈련이 부과되지 않는 것과 달리, 이씨는 군에 입대해 만기를 채우고 전역해 자동적으로 향토예비군에 편입됐다. 그 역시 군 입대를 앞두고 병역거부를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1년6개월에 이르는 수형 기간과 출감 뒤 받아야 할 사회적 불이익을 생각하면 군대 대신 감옥행을 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군생활 내내 신앙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2005년 군에서 제대한 뒤 청주의 한 인테리어 업체에 자리를 잡았다. 2006년 예비군 훈련에 참석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형을 살고 나온 또래의 친구들 얼굴이 어른거렸다. 훈련을 받지 않기로 했다. 불참이 계속되자 수사기관에 고발이 들어갔고, 검찰은 그를 기소했다. 이씨는 “헌법상 보장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따라 훈련을 거부한 것이니 예비군법이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 달 뒤 다시 예비군 부대로부터 통지서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역시 응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예비군 훈련 거부로 인한 6건의 기소 사건을 병합해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징역형을 구형했다. 이씨는 “이미 예비군 훈련 거부로 처벌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다시 같은 이유로 처벌받는 것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재판을 진행한 청주지법은 “새로 부과된 훈련을 또다시 거부한 경우이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유죄판결을 내렸다.
관례대로라면 이씨에겐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셈이어서 실형 선고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주심인 윤영훈 판사는 판결문에 양형 이유를 이례적으로 상세하게 적었다.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자의 경우 한 번 처벌을 받더라도 훈련 의무가 소멸되지 않고 예비군 복무 기간(8년) 동안 반복적 거부에 따른 반복적 기소와 처벌이 이뤄져 고통을 받게 된다. 반복적이고 단계적으로 상승되는 처벌은 피고인을 매우 불안정한 지위에 둘 뿐만 아니라, 군 면제자와 비교할 때 형평에 어긋나는 측면도 있다.”
그래도 남은 2년의 예비군 기간
윤 판사는 과의 통화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면 예비군 훈련 불응자 처벌은 합헌이지만, 소수 의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씨처럼 반복·누적적으로 처벌을 받는 것은 비례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며 “예비군법 위반도 기소된 건마다 처벌할 게 아니라, 병역법 위반자처럼 한 번에 처벌을 끝낼 수 있게 입법적 정비가 필요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씨가 이번 선고에 따라 벌금 300만원을 납부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남은 2년의 예비군 복무 기간에 지속적으로 훈련에 참가하라는 통지서를 받게 된다. 거부할 경우 또다시 기소돼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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