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옛 대한주택공사)는 ‘공’기업이다. 공기업은 시장에서 사기업이라면 다루지 않을 상품을 팔거나, 사기업에만 맡기면 안 되는 상품을 거래한다. 이를테면 물과 땅, 지상파 등 공공의 자원이 주된 거래 대상이다. 따라서 공기업은 이윤과 함께 공공성이라는 토끼를 한 마리 더 잡아야 한다. 문제는 공기업이 이 본분을 망각할 때 생긴다. 이럴 때 공기업은 종종 사익에 눈멀어 공공성을 내팽개친다. 그러면 공기업은 고삐 풀린 야수가 된다.
LH공사, 주민에게 하루 1만원 배상금 부과
2007년 가을부터 광주시 광산구 운남주공 6단지 아파트에서 LH공사가 그랬다. 공공임대아파트의 저소득 세입자를 대상으로 폭리를 취하려던 LH공사의 이빨에 재갈을 물린 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홍훈 대법관)였다. 많이 늦긴 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LH공사라는 거인과 4년 넘게 법적 공방을 펼쳐야 했다. 다윗과 골리앗 정도가 아니었다. 개미와 공룡의 싸움이었다.
광주시 광산구 운남동 운남주공 6단지 아파트는 2001년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무주택 서민 1148가구에게 저렴한 주거공간은 새로운 보금자리가 됐다. 문제는 2007년 10월 시작됐다. 임대사업자인 LH공사는 입주민을 대상으로 분양전환 신청을 받으며 아파트값을 주민들에게 통보했다. 당시 임대주택법에 따르면, 공사는 임차인에게 먼저 우선분양전환권을 줘야 했다. 공사의 통지서를 받아든 주민들의 입이 벌어졌다. 분양가가 턱없이 높았다. 107㎡ 아파트값이 9천만원을 넘어섰다. 이웃한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아파트보다 오히려 높은 수준이었다. 주민들이 나섰다. 795가구가 모여 분양전환가의 기초가 되는 건설원가를 산정한 자료를 달라고 공사에 요구했다. LH공사는 이를 거부했다. 주민들은 분양절차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듬해 광주지방법원에서 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과거 판례에 따른 것이었다. 2004년에는 법원이 “산정 기준에 위배된 분양전환가로 분양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효력까지 부인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LH공사가 돈을 더 부과해도 주민들은 이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었다.
1심 판결을 등에 업고 LH공사의 ‘집행’이 시작됐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불법거주 배상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1만원씩이었다. 분양 계약을 거부하는 가구의 현관문이 하나씩 강제로 열렸다. 광주지방법원에서 점유이전 가처분 신청을 받은 결과였다. 주민들을 대표하는 박해림 분양가대책위원장은 “아이들만 남아 있는 낮에 아파트의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임대주택이 이익 수단돼선 안돼”
소송은 2심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전세가 뒤집혔다. 광주고등법원 제1민사부는 2009년 11월 LH공사가 택지비와 건축비를 부풀려서 아파트값을 부과했다며 주민 1가구마다 약 800만원씩을 반환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는 LH공사가 가만있지 않았다. 소송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다. 지난 4월21일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 비용도 LH공사가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지루한 소송 끝의 승리였다. ‘웃돈’을 주고 분양을 받은 가구들은 그만큼의 돈을 돌려받았다. 불법거주 배상금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대법원은 “임대주택제도가 임대사업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판결 배경을 설명했다. 소송을 진행한 김성훈 변호사는 “임대주택법 등의 취지는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공적 책임을 LH공사가 저버린 것에 대해 법원이 경종을 울렸다는 데 판결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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