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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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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약자를 위한 한국은 없다

사각지대에 놓인 결식아동·노인 통계도 잡지 못하는 한국은 여전히 먹거리 후진국…
결식인구 오히려 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책임 떠넘기고 급식 전달체계는 혼란해 먹거리 복지는 먼 이야기
등록 2011-12-15 11:26 수정 2020-05-03 04:26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2011년 12월 대한민국은 여전히 많은 결식인구가 배고픔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회다. 배고픈 사람들은 대부분 절대빈곤에 허덕이면서도 강한 생존 욕구를 지녔다. 한 끼 식사를 위해 인간으로서 기본적 존엄성이 위협받아도 기꺼이 참는다. 아침을 먹으려고 무료 급식소에 새벽부터 줄서 있는 서울 노량진의 청년들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결식인구의 정확한 통계도 잡지 못하는 먹거리 후진국이다. 제대로 된 먹거리 복지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먹거리 복지는 누구나 항상 적극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게 안전하고 영양이 풍부한 먹거리를 자신의 식욕과 취향에 따라 물리적·경제적으로 충분히 보편적으로 구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국가는 이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학교급식을 포함한 공공급식이 이런 먹거리 복지의 실천이다.

» 물가는 오르고 무료급식이 절실한 노인은 늘어나는데 지원금은 몇 년째 동결돼 무료 경로식당 운영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의 한 무료급식소에서 배식을 기다리는 노인들. 한겨레 박종식

» 물가는 오르고 무료급식이 절실한 노인은 늘어나는데 지원금은 몇 년째 동결돼 무료 경로식당 운영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의 한 무료급식소에서 배식을 기다리는 노인들. 한겨레 박종식

지역아동센터 9% 급식비 지원 못받아

선진국의 먹거리 정책은 ‘푸드’(food)를 중심에 놓고 소비·건강·환경·문화·사회관계·과학기술·보건·정의·복지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을 공짜로 밥 먹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2008년 영국의 내각 전략기획단에서 작성한 보고서는 “경제·건강·복지·안전·환경 측면에서 먹거리 체계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어야 영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먹거리 복지정책은 이렇게 체계적이지도 전략적이지도 않다. 겨우 배고픈 사람들을 상대로 밥을 ‘먹여주는’ 수준이다.

결식아동 급식지원 프로그램은 취학아동의 학기 중 중식을 무료로 지원하는 교육과학기술부 사업과 방학 중 급식을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사업으로 나뉜다.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 및 저소득계층의 아이들이다. 2010년 대상자는 모두 48만3567명으로, 2005년의 25만7276명에 비해 22만6291명이나 증가했다. 급식 지원 방법은 세 가지다. △사회복지관이나 지역아동센터 등을 통한 단체급식 지원(17.3%) △일반음식점 이용 식권이나 식품권을 지급하는 방법(52.8%) △집에 있는 아이에게 도시락이나 식재료를 배달하는 방법(29.9%)이다.

이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신청과 배달 등 전달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급식업체는 급식비를 이중으로 청구하는가 하면, 배달이 누락되거나 아예 급식을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사업 주관 부처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도 많다. 학기 중 급식은 교육청이 맡아 무상으로 지원하지만, 방학 중 급식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관련 부서가 담당한다. 우유는 지자체 농축산 관련 부서가 따로 맡고 있다. 이런 전달체계의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학기 중이나 방학에 상관없이 급식을 비롯한 저소득층 자녀 지원사업 신청체계를 일원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결식아동 급식지원의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보고서를 보면, 2011년 지역아동센터를 찾는 10만233명 가운데 급식지원을 받는 아이들은 학기 중 7만1779명(80.1%), 방학 중 8만1197명(86.7%)이다. 나머지는 굶는다. 전국의 지역아동센터 3690곳 가운데 9%가량인 397곳은 급식비를 전혀 지원받지 못한다. 재정자립도가 11.7%에 불과한 전남은 22개 시·군 중 3곳(나주·보성·영암)만 급식비를 지원한다. 지역에 따라 급식 단가도 천차만별이다. 보건복지부는 ‘아동급식 지침서’를 통해 1식당 3천원 이상을 권고하고 있지만, 전북과 전남은 대부분 2500원 미만이다. 반면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성동구는 4500원, 다른 서울 지역은 4천원에 이른다.

2천원 점심을 십시일반 나누는 노인들

노인무료급식은 결식이 우려되는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무료 경로식당 운영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무료급식이 필요한 노인은 늘어나는데, 지원금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밥상이 날로 부실해질뿐더러 예산이 바닥나 식당 문마저 닫아야 할 경우가 수두룩하다. 실제 대전 시내 27곳 무료 경로식당 지원예산에 잡힌 이용자 수는 2471명인 데 비해, 하루 평균 490명씩 더 몰리고 있다.

이런 문제는 무료급식 지원 주체가 정부에서 일선 지자체로 넘어가면서 나타나고 있다. 무료 경로식당은 2000년부터 정부가 직접 지원해왔다. 그러다 2005년부터 67개 사회복지사업 등 모두 149개 사업이 ‘분권교부세’ 지원사업으로 포함돼 일선 지자체로 이양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업무를 이관했다는 이유로, 자치단체는 예산이 없다며 서로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무료급식이 없으면 굶어야 하는 노인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경로식당마다 지원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밥상을 20~30% 더 차린다. 경로식당을 찾아오는 노인들을 돌려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니 예산에 잡히지 않은 노인들의 점심은 한 끼 2천원짜리 지원금 명단에 오른 노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나누는 실정이다. 그나마 사회복지사와 조리사들의 헌신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쌀이 떨어진 경로식당은 급식 일수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것이 한국 먹거리 복지의 현실이다.

민간 영역의 먹거리 복지사업으로는 푸드뱅크가 있다. 식품제조기업이나 개인에게서 먹거리를 기부받아 필요로 하는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일종의 먹거리 교환 사업이다. 주로 노숙자쉼터, 사회복지시설, 결식아동가정, 무료급식소 등을 지원한다. ‘푸드뱅크’는 기탁받은 먹거리를 일괄적으로 배분하기 때문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정이나 시설에 즉시 제공할 수 없고, 선택권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한마디로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란 얘기다. 이런 단점을 보완한 것이 ‘푸드마켓’이다. 여기선 이용자가 매장을 찾아 필요한 물건을 선택하고 무상으로 구입할 수 있어서,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낙인 효과도 피할 수 있다. 문제는 푸드뱅크나 푸드마켓 사업 자체가 복지정책으로 자리매김하기엔 공공성이나 체계성,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자선이나 구제 수준의 프로그램 성격이 강한 것이다.



무료 경로식당은 2000년부터 정부가 직접 지원해왔다. 그러다 2005년부터 67개 사회복지사업 등 모두 149개 사업이 ‘분권교부세’ 지원사업으로 포함돼 일선 지자체로 이양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업무를 이관했다는 이유로, 자치단체는 예산이 없다며 서로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먹거리 위험사회 인식해야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먹거리 복지정책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먹거리 위험사회’에 대한 인식이 정착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생산자와 소비자, 절대빈곤 계층과 상대적 부유층, 시장주의자와 생태주의자 사이에 인식 차가 너무 크다. 그래서 먹거리 연대가 허약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먹거리 문제에 대응하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없다. 먹거리에 대한 적절한 보장 욕구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지는 ‘사회적’ 욕구다. 사회적 욕구 충족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다. 그것이 복지국가다.

김흥주 원광대 교수·복지보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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