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있을 때는 코가 마비되어 느끼지 못하여도 밖에서 들어오려면 맨 먼저 곰팡이 냄새가 그를 반겼다. 천장에 거의 맞닿다시피 조그만 들창문이 하나 붙어 있기는 하였지만 크기가 워낙 작아서 환기를 시키지는 못하였다.”(양귀자 ‘지하 생활자’) “지하도 안은 오전 열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비가 내리는 날씨 때문인지 평소보다 갑절은 더 돼 보이는 하루를 공친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초조한 담배 연기도 습기를 머금어 무거워졌는지, 아니면 미련 때문인지 밖으로 빠져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사오 미터 앞의 사람들 표정조차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공기가 부옛다.”(김소진 ‘지하 생활자들’)
환풍기 고장난 지하 4·5층 휴게실
정아무개(여성·사망 당시 47살)씨의 작업 공간, 쉬는 공간이 이랬다. 정씨는 2002년부터 지하 5층, 지상 20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청소원으로 일했다. 지하 2~5층이 주차장, 지하 1~지상 5층이 상가, 나머지가 아파트로 쓰이는 건물이었다. 평일에는 새벽 6시께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 토요일에는 아침 7시30분에 나와 정오에 퇴근했다. 정씨는 지상층 계단 청소가 끝나면 지하 3층 주차장에 있는 창고에서 매일 쓰레기 분리수거를 했다. 90가구에서 배출되는 병, 종이, 박스,
플라스틱을 분리해 포대에 담았다. 1시간 정도 걸리는 일이다. 점심은 지하 주차장 안에 있는 휴게실에서 먹었다. 오전 작업 뒤 최대 1시간30분이 주어졌던 휴식도 당연히 휴게실에서 했다. 이렇게 매일 4시간 이상은 지하 주차장에 머물렀다. 일주일에 이틀은 지하 5층 주차장 바닥을 청소했다.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질을 했다. 청소를 하고 나면 작업복과 신발에 먼지가 가득했다. 이런 날은 지하 주차장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었다. 방진마스크 등 보호장비는 지급되지 않았다.
휴게실은 처음에는 지하 3층에 있었다. 이 기간(2002~2005년)에는 점심을 먹거나 휴식을 할 때 문틈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매연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했다. 2006년부터 휴게실은 아래로 더 내려가 지하 4층과 5층 사이로 바뀌었다. 애초 창고로 쓰던 공간이었다. 창문이 있었지만 자동차가 주차하는 쪽으로 나 있어, 창문이나 출입문 틈새로 배기가스가 들어왔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 청소를 해도 창틀에는 새까만 그을음이 가시지 않았다. 정씨는 2006년 창문 틈새에 테이프를 겹겹이 발랐다. 그 뒤로 창문을 연 적은 없다. 휴게실에 작은 환풍기가 있었지만 2008년 고장이 난 뒤 1년 이상 방치됐다. 관리소장에게 환풍기를 고치거나 교체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에는 대형 환풍기가 있었지만 전력 소모량이 많아 하루 중 6시간만 가동됐다. 장마철이면 습하고 더워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겨울철에는 환기는 하지 않고 스팀만 가동해 여름보다 더 힘들었다. 지하 주차장은 천장이 낮았다. 천장 뿜칠이 떨어져나가기도 했다. 전기공사가 잦아져 먼지도 심했다. 상가를 낀 주상복합아파트라 출입하는 차량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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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도 안 피우는데 폐암 걸려
정씨의 코 안은 항상 헐어 있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정씨는 2009년 두 달간 감기가 낫지 않더니 갑자기 피를 토했다. 그해 4월13일 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았다. 정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승인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불복해 다시 심사 청구를 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됐다. 정씨는 산업재해보상보험 재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재심 결과를 보지 못하고 2010년 8월19일 숨졌다. 한국전쟁이 끝나기 전인 1953년 2월에 태어난 정씨는 예순 살을 못 넘겼다. 재심사위원회는 한 달여 뒤인 9월30일 정씨의 재심 청구를 정씨의 사망으로 판단 이유가 사라졌다며 각하 결정했다.
정씨의 남편은 아내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원진직업병관리재단 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정씨가 몸을 누이던 휴게실 환경을 분석한 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휴게실 안에서는 발암물질인 디젤 배출물질 수치(0.0089mg/㎥)가 바깥 대기에 견줘 3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이는 미국 정부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 권고기준(0.02mg/㎥ 이하)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1급 발암물질인 라돈도 환경부 권고기준(4pCi/ℓ 이하)에 육박하는 수치(3.4pCi/ℓ)를 보였다. 평균적인 실내 라돈 수치보다 3배나 높은 수치였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측정을 할 때는 휴게실 등의 청소 상태가 달라져 있었다. 환기시설도 완전히 가동됐다. 그런데도 발암물질 수치가 이 정도였다. 정씨가 일할 당시는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으로 연구소는 추정했다.
법원, “지속적 발암물질 노출 인정”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조일영)는 지난 9월29일 정씨의 남편이 유족 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정씨가 7년4개월이라는 장기간 동안 지하 주차장 청소원으로 일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암물질에 노출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참고 문헌 ‘청소용역노동자 정씨 폐암 관련 소견서’(원진직업병관리재단 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 판결문’(사건번호 2011구합8642, 재판장 조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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